무조신(巫祖神)

무조신

한자명

巫祖神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신

집필자 이수자(李秀子)

정의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로 여겨지는 신. 한국 문화에 무조신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설에는 법우화상(法雨和尙)과 8녀가 있고, 무속에는 바리공주, 말명할머니, 계면할머니, 쌍둥이 삼형제신 및 유정승딸 등이 있다. 이 중 쌍둥이 삼형제신 및 유정승딸 등은 제주도 무속에서 구송되고 있는 <초공본풀이>라는 신화 속에 등장하고 있는 신들이다. 제주도 무속에는 과거에 굿을 했던 무당들을 차례로 불러 모시는 ‘공시풀이’라는 소제차가 있는데, 이 내용은 제주의 전역사를 통해 무업에 종사했던 무당(심방)들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용

법우화상 전설은 이능화(李能和)의 「朝鮮巫俗考(조선무속고)」에 전한다. 지리산 암천사(巖川寺)의 법우화상이 신선이었던 지리산 천왕봉 성모천왕의 화신인 여인과 혼인하여 딸 8명을 낳아 무술(巫術)을 가르쳐 전국에 무업(巫業)을 행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②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朝鮮巫俗の硏究(조선무속의 연구)」 上(상)에는 오산지역의 무당 배경재가 구연한 <바리공주> 신화를 ‘무조전설’로 소개하고 있다. 오구대왕은 왕비가 일곱 번째 자식도 딸을 낳자 그 아이를 내다버린다. 그래서 이 딸의 이름이 바리데기가 되었다. 오구대왕은 나중에 병이 들어 죽었다가 이 딸이 길어온 생명수 덕분에 살아난 후 바리공주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이 때 바리공주는 “부모 슬하에 호의호식 못 하였으니 만신(萬神)의 인위왕(人爲王)이 되어 위로 백재일은 산 사람을 위해 천도하고, 아래로 유재일에는 죽은 사람을 위해 천도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만신의 인위왕은 바로 무당을 뜻한다. 이러한 까닭에 육지 쪽의 경우 바리공주는 무조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③ 말명굿에서 모셔지는 말명할머니는 구월맞이 굿을 올리려고 단골 시영집에 걸립을 나섰다가 그 집의 세존 방손이 기특하여 그 집을 명당터전으로 잡아주기 위해 사흘굿을 올려 준 신이다. 후에 이 집은 대단골이 되었고, 모든 집에서는 이 집을 큰집으로 모시고 구월맞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계면굿에서 모셔지는 계면할머니는 오동나무와 대를 심어 악기를 만든 신이며 전국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명과 복을 주고 우환과 재난을 막아 주는 신이다.

④ <초공본풀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부부가 나이가 들어 딸을 낳고 그 이름을 ‘이산줄이벋고저산줄이벋어왕대월석금하늘노가단풍자지멩왕아기씨’라고 짓는다. 딸이 열다섯 살 되었을 때 부부는 서울로 벼슬을 살러 가게 되어 집을 비우게 되는데, 그 사이 황금산 도단땅의 주자선생이 와서 딸에게 잉태를 시키고 떠난다. 부모가 돌아온 후 딸은 임신한 일로 인하여 집에서 쫓겨나 고생 끝에 남편을 만나고 후에는 불도땅에서 쌍둥이 세 아들을 낳는다. 삼형제는 고생하며 성장한 끝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지만, 세 아들 때문에 과거에 떨어진 삼천선비는 물명주전대로 자지멩왕아기씨의 목을 걸어 삼천천 제석궁에 가두어 놓는다. 삼형제는 어머니가 죽었는데 과거급제를 하면 무얼 하겠느냐며 어머니를 찾고자 황금산 도단땅의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주자선생은 아들들에게 어머니를 찾으려면 전상팔자를 그르쳐야 한다고 하면서 ‘천지문(天地門)’ 글자가 있는 무구를 만들어 주고 초감제•초신맞이•시왕맞이제를 설연한 후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삼형제가 너사메아들 너도령을 만나 북과 울쩡(징)을 만들어 삼천천 제석궁에 가서 열나흘을 울리니 궁에서는 아기씨를 내놓는다. 아들들은 어머니를 위하여 금법당을 만들어 무구 전체와 삼만 제기(祭器)를 보관해 놓고, 어머니로 하여금 신당(神堂)을 지키게 한다. 이어 상잔과 천문•요령•삼멩두를 만들어 연당에 두고 양반의 원수를 갚고자 시왕대반지(신칼)를 만들어 삼시왕으로 들어선다. 유정승 딸은 여섯 살 때 중[僧]으로부터 엽전을 받아 이것을 가지고 놀다가 말팡돌 아래 놓아두었는데, 일곱 살 되던 해부터 눈이 어두워지며 생사의 고통을 겪는다. 17ㆍ27ㆍ37ㆍ47ㆍ57ㆍ67ㆍ77세 때 같은 고통을 당하다가 77세에 처음으로 큰굿을 행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아랫마을 장자집 딸이 죽었는데, 유정승 딸이 지나다가 그것을 보고 혈맥을 짚으며 백지 알대김을 올리도록 한다. 딸이 살아나기 시작하자 유정승 딸은 전새남굿을 벌이고자 하는데, 무구가 없어 수소문을 하다가 자지멩왕아기씨가 있는 신당으로 찾아와 어멍딸(신어머니와 신딸 관계)을 맺고 일천기덕과 삼천제기를 얻어 큰굿을 벌인다. 이때 저승 삼시왕으로 갔던 아들들이 나와 북과 장구를 쳐준다. 전새남굿을 처음 벌일 때 마련한 것이 보전빈, 기매, 보답의 세면포ㆍ당반ㆍ감주ㆍ술ㆍ떡 등이었으며, 굿이 끝난 후에 유정승 딸은 당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새 제물을 해간다.

의의

무조신으로 여겨지는 신들은 이상의 자료 외에도 일부 더 있다. 작도대신, 대신할머니, 만신할머니신, 대신창부신 등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유형의 무조신들 중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제주도 무속에서 구송되고 있는 <초공본풀이>라는 무속신화에 나오는 쌍둥이 삼형제신 및 유정승딸과 관련된 내용이다. 신화는 일반적으로 신의 일에 기원하여 현존하는 자연환경의 제 현상이나 인간사회의 의례, 또는 의미 있는 모든 인간행동의 범례를 설명하는 본질을 지닌다. <초공본풀이>는 여기에 나오는 많은 신들의 행위에 기원하여 현존하는 무속현상, 즉 무법(巫法)의 제 기원을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조신에 관한 설명도 하고 있다. 따라서 <초공본풀이>는 올곧은 무조신화라 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제주도 무가에서는 초공신을 가리켜 ‘신뿌리’라 하고 있다.

<초공본풀이>에 따르면 최초의 무(巫) 사제자는 바로 중인 쌍둥이 삼형제신이다. 따라서 이들은 무당의 조상신, 혹은 시조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너사메아들 너도령과 함께 의형제를 맺고 무악기와 무구를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바로 무악기 및 무구적 측면에 있어 무조신이라 할 수 있다. 신화 내용을 중시하면 무속에 있어 최초의 무구는 천문(天門)이고 최초의 무악기는 북이며 무점구 중에서는 천문, 상잔, 신칼 등이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신당(神堂)은 무구, 무악기, 제기 등을 보관하는 곳인데, 이곳을 지키는 최초의 당신(堂神)은 바로 자지멩왕아기씨로서 여신이다. 또한 유정승따님애기는 최초의 강신무로서의 무조신이라 할 수 있다.

<초공본풀이>는 현재 제주도에서만 전승되고 있지만 원래는 열두거리 큰굿 가운데 세 번째 거리인 ‘초공제’에서 불렸던 신화로 볼 수 있기에 고대에는 육지 쪽에서도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육지 쪽에서 전국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제석본풀이>라는 무속신화는 <초공본풀이>와 같은 계통의 신화라고 이미 연구되어 있으며 이것은 바로 고대에는 육지 쪽에서도 <초공본풀이>와 같은 신화가 구송되었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제석본풀이>는 중이 여자 주인공을 찾아 와서 잉태를 시키고, 여주인공은 이로 인해 쌍둥이 세 아들을 낳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많다. 이것은 <초공본풀이> 내용이 워낙 길어 내용이 다 전승되지 못하고 앞부분만 남아 전승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육지쪽 <제석본풀이>에서는 쌍둥이 세 아들을 낳은 여신은 삼신[産神]이 되고, 쌍둥이 세 아들은 수복신(壽福神)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많아 이 신화는 무조신에 관한 신화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초공본풀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구•무악기•무법 등을 처음 창안했을 뿐 아니라 최초로 굿을 행한 무 사제자는 바로 쌍둥이 삼형제 신이며 이들의 신분은 바로 중[僧]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무신도에는 삼불제석 그림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깔을 쓴 세 명의 스님들이 그려져 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드는 부채에도 삼불선이 있으며 여기에도 고깔을 쓴 세 명의 중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여러 신당이나 법당 등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삼불제석 조상(彫像)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 무속에는 이처럼 고깔을 쓴 세 명의 스님을 그리거나 조상을 만들어 놓은 ‘삼불신’이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초공본풀이>에 나오는 것처럼 쌍둥이 삼형제신이 무조신이었다라고 한다면 이들은 우리 문화나 혹은 무속에 그 흔적을 많이 남겨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신도 ‘삼불제석’이나 삼불제석 조상들, 그리고 삼불선 부채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스님 모습은 바로 이것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이들은 원래 <초공본풀이> 같은 것이 원래의 모습대로 육지 쪽에서 구송되고 있었을 때 무조신으로 관념되었기에 무속에 그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초공본풀이>에서 전하는 것처럼 최초의 무속적 사제자들이 중이었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또한 중은 원래 무속적 사제자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선행 연구를 중시하면 우리문화에 남아 있는 절이나 여기에 몸담고 있는 스님들은 원래 무속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초공본풀이>에서 무조신이었던 쌍둥이 삼형제신의 이름은 본멩두, 신멩두, 살아살축 삼멩두인데, 굿의 제청에는 멩두를 걸고 굿을 하면서 이를 무조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참고문헌

朝鮮巫俗の硏究 上 (赤松智城ㆍ秋葉隆, 조선총독부, 1937), 제주도무속자료사전 (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한국무가의 연구 (서대석, 문학사상사, 1980), 한국무속연구 (김태곤, 집문당, 1981), 한국민속논고 (장주근, 계몽사, 1986),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진성기, 민속원, 1991),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무조신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무신도 삼불제석의 신적 성격과 형성배경 (이수자, 역사민속학 4, 한국역사민속학회, 1994), 제주도 무속신화-열두본풀이 자료집 (문무병, 칠머리당굿보존회, 1998),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 (장주근, 역락, 2001), 제주도 무속을 통해서 본 큰굿 열두거리의 구조적 원형과 신화 (이수자, 집문당, 2004), 이용옥 심방 <본풀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9)

무조신

무조신
한자명

巫祖神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신

집필자 이수자(李秀子)

정의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로 여겨지는 신. 한국 문화에 무조신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설에는 법우화상(法雨和尙)과 8녀가 있고, 무속에는 바리공주, 말명할머니, 계면할머니, 쌍둥이 삼형제신 및 유정승딸 등이 있다. 이 중 쌍둥이 삼형제신 및 유정승딸 등은 제주도 무속에서 구송되고 있는 <초공본풀이>라는 신화 속에 등장하고 있는 신들이다. 제주도 무속에는 과거에 굿을 했던 무당들을 차례로 불러 모시는 ‘공시풀이’라는 소제차가 있는데, 이 내용은 제주의 전역사를 통해 무업에 종사했던 무당(심방)들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용

법우화상 전설은 이능화(李能和)의 「朝鮮巫俗考(조선무속고)」에 전한다. 지리산 암천사(巖川寺)의 법우화상이 신선이었던 지리산 천왕봉 성모천왕의 화신인 여인과 혼인하여 딸 8명을 낳아 무술(巫術)을 가르쳐 전국에 무업(巫業)을 행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②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朝鮮巫俗の硏究(조선무속의 연구)」 上(상)에는 오산지역의 무당 배경재가 구연한 <바리공주> 신화를 ‘무조전설’로 소개하고 있다. 오구대왕은 왕비가 일곱 번째 자식도 딸을 낳자 그 아이를 내다버린다. 그래서 이 딸의 이름이 바리데기가 되었다. 오구대왕은 나중에 병이 들어 죽었다가 이 딸이 길어온 생명수 덕분에 살아난 후 바리공주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이 때 바리공주는 “부모 슬하에 호의호식 못 하였으니 만신(萬神)의 인위왕(人爲王)이 되어 위로 백재일은 산 사람을 위해 천도하고, 아래로 유재일에는 죽은 사람을 위해 천도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만신의 인위왕은 바로 무당을 뜻한다. 이러한 까닭에 육지 쪽의 경우 바리공주는 무조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③ 말명굿에서 모셔지는 말명할머니는 구월맞이 굿을 올리려고 단골 시영집에 걸립을 나섰다가 그 집의 세존 방손이 기특하여 그 집을 명당터전으로 잡아주기 위해 사흘굿을 올려 준 신이다. 후에 이 집은 대단골이 되었고, 모든 집에서는 이 집을 큰집으로 모시고 구월맞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계면굿에서 모셔지는 계면할머니는 오동나무와 대를 심어 악기를 만든 신이며 전국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명과 복을 주고 우환과 재난을 막아 주는 신이다.

④ <초공본풀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부부가 나이가 들어 딸을 낳고 그 이름을 ‘이산줄이벋고저산줄이벋어왕대월석금하늘노가단풍자지멩왕아기씨’라고 짓는다. 딸이 열다섯 살 되었을 때 부부는 서울로 벼슬을 살러 가게 되어 집을 비우게 되는데, 그 사이 황금산 도단땅의 주자선생이 와서 딸에게 잉태를 시키고 떠난다. 부모가 돌아온 후 딸은 임신한 일로 인하여 집에서 쫓겨나 고생 끝에 남편을 만나고 후에는 불도땅에서 쌍둥이 세 아들을 낳는다. 삼형제는 고생하며 성장한 끝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지만, 세 아들 때문에 과거에 떨어진 삼천선비는 물명주전대로 자지멩왕아기씨의 목을 걸어 삼천천 제석궁에 가두어 놓는다. 삼형제는 어머니가 죽었는데 과거급제를 하면 무얼 하겠느냐며 어머니를 찾고자 황금산 도단땅의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주자선생은 아들들에게 어머니를 찾으려면 전상팔자를 그르쳐야 한다고 하면서 ‘천지문(天地門)’ 글자가 있는 무구를 만들어 주고 초감제•초신맞이•시왕맞이제를 설연한 후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삼형제가 너사메아들 너도령을 만나 북과 울쩡(징)을 만들어 삼천천 제석궁에 가서 열나흘을 울리니 궁에서는 아기씨를 내놓는다. 아들들은 어머니를 위하여 금법당을 만들어 무구 전체와 삼만 제기(祭器)를 보관해 놓고, 어머니로 하여금 신당(神堂)을 지키게 한다. 이어 상잔과 천문•요령•삼멩두를 만들어 연당에 두고 양반의 원수를 갚고자 시왕대반지(신칼)를 만들어 삼시왕으로 들어선다. 유정승 딸은 여섯 살 때 중[僧]으로부터 엽전을 받아 이것을 가지고 놀다가 말팡돌 아래 놓아두었는데, 일곱 살 되던 해부터 눈이 어두워지며 생사의 고통을 겪는다. 17ㆍ27ㆍ37ㆍ47ㆍ57ㆍ67ㆍ77세 때 같은 고통을 당하다가 77세에 처음으로 큰굿을 행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아랫마을 장자집 딸이 죽었는데, 유정승 딸이 지나다가 그것을 보고 혈맥을 짚으며 백지 알대김을 올리도록 한다. 딸이 살아나기 시작하자 유정승 딸은 전새남굿을 벌이고자 하는데, 무구가 없어 수소문을 하다가 자지멩왕아기씨가 있는 신당으로 찾아와 어멍딸(신어머니와 신딸 관계)을 맺고 일천기덕과 삼천제기를 얻어 큰굿을 벌인다. 이때 저승 삼시왕으로 갔던 아들들이 나와 북과 장구를 쳐준다. 전새남굿을 처음 벌일 때 마련한 것이 보전빈, 기매, 보답의 세면포ㆍ당반ㆍ감주ㆍ술ㆍ떡 등이었으며, 굿이 끝난 후에 유정승 딸은 당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새 제물을 해간다.

의의

무조신으로 여겨지는 신들은 이상의 자료 외에도 일부 더 있다. 작도대신, 대신할머니, 만신할머니신, 대신창부신 등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유형의 무조신들 중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제주도 무속에서 구송되고 있는 <초공본풀이>라는 무속신화에 나오는 쌍둥이 삼형제신 및 유정승딸과 관련된 내용이다. 신화는 일반적으로 신의 일에 기원하여 현존하는 자연환경의 제 현상이나 인간사회의 의례, 또는 의미 있는 모든 인간행동의 범례를 설명하는 본질을 지닌다. <초공본풀이>는 여기에 나오는 많은 신들의 행위에 기원하여 현존하는 무속현상, 즉 무법(巫法)의 제 기원을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조신에 관한 설명도 하고 있다. 따라서 <초공본풀이>는 올곧은 무조신화라 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제주도 무가에서는 초공신을 가리켜 ‘신뿌리’라 하고 있다.

<초공본풀이>에 따르면 최초의 무(巫) 사제자는 바로 중인 쌍둥이 삼형제신이다. 따라서 이들은 무당의 조상신, 혹은 시조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너사메아들 너도령과 함께 의형제를 맺고 무악기와 무구를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바로 무악기 및 무구적 측면에 있어 무조신이라 할 수 있다. 신화 내용을 중시하면 무속에 있어 최초의 무구는 천문(天門)이고 최초의 무악기는 북이며 무점구 중에서는 천문, 상잔, 신칼 등이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신당(神堂)은 무구, 무악기, 제기 등을 보관하는 곳인데, 이곳을 지키는 최초의 당신(堂神)은 바로 자지멩왕아기씨로서 여신이다. 또한 유정승따님애기는 최초의 강신무로서의 무조신이라 할 수 있다.

<초공본풀이>는 현재 제주도에서만 전승되고 있지만 원래는 열두거리 큰굿 가운데 세 번째 거리인 ‘초공제’에서 불렸던 신화로 볼 수 있기에 고대에는 육지 쪽에서도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육지 쪽에서 전국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제석본풀이>라는 무속신화는 <초공본풀이>와 같은 계통의 신화라고 이미 연구되어 있으며 이것은 바로 고대에는 육지 쪽에서도 <초공본풀이>와 같은 신화가 구송되었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제석본풀이>는 중이 여자 주인공을 찾아 와서 잉태를 시키고, 여주인공은 이로 인해 쌍둥이 세 아들을 낳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많다. 이것은 <초공본풀이> 내용이 워낙 길어 내용이 다 전승되지 못하고 앞부분만 남아 전승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육지쪽 <제석본풀이>에서는 쌍둥이 세 아들을 낳은 여신은 삼신[産神]이 되고, 쌍둥이 세 아들은 수복신(壽福神)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많아 이 신화는 무조신에 관한 신화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초공본풀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구•무악기•무법 등을 처음 창안했을 뿐 아니라 최초로 굿을 행한 무 사제자는 바로 쌍둥이 삼형제 신이며 이들의 신분은 바로 중[僧]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무신도에는 삼불제석 그림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깔을 쓴 세 명의 스님들이 그려져 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드는 부채에도 삼불선이 있으며 여기에도 고깔을 쓴 세 명의 중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여러 신당이나 법당 등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삼불제석 조상(彫像)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 무속에는 이처럼 고깔을 쓴 세 명의 스님을 그리거나 조상을 만들어 놓은 ‘삼불신’이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초공본풀이>에 나오는 것처럼 쌍둥이 삼형제신이 무조신이었다라고 한다면 이들은 우리 문화나 혹은 무속에 그 흔적을 많이 남겨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신도 ‘삼불제석’이나 삼불제석 조상들, 그리고 삼불선 부채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스님 모습은 바로 이것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이들은 원래 <초공본풀이> 같은 것이 원래의 모습대로 육지 쪽에서 구송되고 있었을 때 무조신으로 관념되었기에 무속에 그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초공본풀이>에서 전하는 것처럼 최초의 무속적 사제자들이 중이었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또한 중은 원래 무속적 사제자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선행 연구를 중시하면 우리문화에 남아 있는 절이나 여기에 몸담고 있는 스님들은 원래 무속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초공본풀이>에서 무조신이었던 쌍둥이 삼형제신의 이름은 본멩두, 신멩두, 살아살축 삼멩두인데, 굿의 제청에는 멩두를 걸고 굿을 하면서 이를 무조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참고문헌

朝鮮巫俗の硏究 上 (赤松智城ㆍ秋葉隆, 조선총독부, 1937)
제주도무속자료사전 (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한국무가의 연구 (서대석, 문학사상사, 1980)
한국무속연구 (김태곤, 집문당, 1981)
한국민속논고 (장주근, 계몽사, 1986)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진성기, 민속원, 1991)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무조신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무신도 삼불제석의 신적 성격과 형성배경 (이수자, 역사민속학 4, 한국역사민속학회, 1994)
제주도 무속신화-열두본풀이 자료집 (문무병, 칠머리당굿보존회, 1998)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 (장주근, 역락, 2001)
제주도 무속을 통해서 본 큰굿 열두거리의 구조적 원형과 신화 (이수자, 집문당, 2004)
이용옥 심방 <본풀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