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딜방아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구

집필자 이한길(李漢吉)

정의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주술적 도구.

내용

디딜방아는 절구에서 나왔다. 흔히 절구는 손방아, 디딜방아는 발방아라고 일컫는다. 디딜방아는 벼농사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디딜방아는 중국 한나라 초기에 등장하여 우리나라는 4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디딜방아는 외다리방아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개량하여 두다리방아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민속이만들어졌다. 디딜방아를 만들고 나서 흔히 몸체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조작’이라고 쓰기도 한다.액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또한 디딜방아는 민요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

디딜방아 민속신앙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조사 내용이 일부 차이를 보인다. 때로는 상충된 내용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상충이라기보다는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딜방아는 주술적으로도 사용되는데 그중 하나가 액막이 의례이다. 천연두, 홍역 같은 돌림병이 돌면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강구된다. 그 대책 가운데하나가 다른 마을의 디딜방아를 한밤중에 몰래 훔쳐 와서 제사를 올리는 일이다. 이 주술적 액막이 의례는 대개 1950년대까지는 전국적으로 행하여졌다. 오늘날 이 놀이는 전라도 일원에서 주로 행하여지고 있으며 충청도 지역에서도 전승되고 있다.

우선 부녀자들은 어느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 올 것인지를 논의한다. 어느 마을에 크고 좋은 디딜방아가 있는지, 또는 어느 마을의 것을 비교적 쉽게 훔칠 수 있는지 등을고려한다. 간혹 마을의 여러 일을 단골처럼 보아 주는 무당이 “언제 어느 방위의 마을에서 훔쳐 와야 효험이 있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다음에는 누가 훔치러 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대개는 기운이 센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20~30명으로 구성한다. 때로는 남자들이 일부 포함되기도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러 떠날 때 부녀자들은 하얀 소복을 갖추어 입고 상여를 준비하기도 하고,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숨을 죽이며 갔다. 반드시 소복을 입거나 상여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디딜방아는 한밤중에 몰래 훔쳐 오는데, 어떤 때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서 싸우거나 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돌림병을막기 위한 ‘뱅이(주술적인 방어의례)’에 쓴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기 때문에 순순히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그 마을 어귀를 무사히 빠져 나오면 그곳 사람들도 더 이상 반환을 요구하지 못하였다.

훔친 디딜방아는 상여 위에 놓고, 그 위에 흰 광목천을 덮어서 마치 죽은 시신을 모시듯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는 것은 다른 마을의 여자 시체를 가지고 오는 것을 뜻한다. 이때문에 자기 마을로 돌아올 때는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상여소리와 함께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거나 또는 “어흥! 어흥!” 하고 호랑이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돌림병의 종류에 따라서 “홍역 물리자! 홍역 물리자!” 하면서 돌아오기도 하였다. 전남에서는 축원가를 부르며 돌아오면서 마을의 남성들에게 자신들의 역량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마을 어귀나 마을 앞의 삼거리에 거꾸로 세워 놓고 금줄을 두르고 제상을 차려 제사를 모신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며 한바탕 흥겹게 논다. 여기저기에서 아낙네들은 벗은 속곳이나 준비해 온 속곳을 디딜방아의 Y 자형으로 벌어진 곳에 감기도 하고, 금줄 사이사이에 끼우기도 한다.

특히 경도혈이 묻은 속곳을 걸어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더욱 정성이 지극한 아낙네들은 자신의 속곳을 가지고 온 마을을 다니면서 다른 집의 대문에서 나뭇조각을 조금씩 떼어내기도 하고, 다른 집 흙을 속곳에다 문질러서 디딜방아에 걸기도 한다. 이런 속곳은 매우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는 팥죽을 쑤어서 속곳과 디딜방아에 뿌렸다. 이렇게 하면 돌림병이 마을로 들어오다가도디딜방아에 걸린 경도혈 묻은 속곳을 보고, “이 마을은 더러워서 못 쓰겠다” 하고 도망간다는 것이다. 디딜방아가 더러우면 돌림병이 물러나고, 깨끗하면 더 덤빈다는 말도전해 온다.

디딜방아 액막이놀이는 주로 호남의 동부 산간지대에서 행해졌는데, 정월대보름에 당산제가 끝나면 여성들이 인근 마을에 디딜방아를 훔치러 갔다가 성공하여 돌아온 후에는 신명나게 풍물놀이를 하였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뱅이’를 끝낸 후에 돌려주기도 하였다. 이때 방아를 잃어버렸던 마을에서는 금방 찾아오면 그 마을의 액도 함께 가져오는 것이라 하여 몇 달 후나 한 해를 지낸 다음에 찾아갔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로 되찾아간 마을도 있었다. 또한 훔쳐 온 디딜방아는 자칫 잘못하면 부정을 탄다 하여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세워 둔 자리에서 썩어 없어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한소리의 주민들은 이웃 마을에 돌림병이 들어오면 물레방아의 공이만을 뽑아다가 붉은 흙칠을한 다음 마을 어귀에 거꾸로 박아 두었다. 훔쳐 왔던 디딜방아는 정월이 지나면 돌려주지만,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에서는 개울에 다리를 놓는 데 사용했다.

이와 같은 액막이 의례는 학자에 따라 액막이놀이, 액막이굿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디딜방아로 액을 막는 민속은 2000년 민속예술로도 탈바꿈하여 운곡대보름액막이굿(전남)이 대통령상을, 부남방앗거리놀이(전북)가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지역사례

디딜방아 액막이 의례와 관련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화순군의 양촌과 용호에서는 여자들이 훔친 디딜방아를 남자들이 메고 오기도 한다. 디딜방아가 무거워서 여자들이 운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강진군 덕동마을은 아예 남자들이 직접 디딜방아를 훔쳐 온다. 전승 주체가 여자에서 남자로 변경된 것이다. 디딜방아는 보통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오는데, 거리가 멀수록 효력이 크다고 믿기도 한다. 화순군 용호마을은 담양군에서, 진안군 종평마을은 장수군에서 훔쳐 온다.

디딜방아를 세우는 위치는 마을 어귀인데, 이곳은 장승을 세워 악귀와 역병을 막는 곳으로서, 디딜방아에서 한시적으로 장승과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 디딜방아를 하나같이 거꾸로 세우고 윗부분에 여자의 속곳을 거꾸로 씌우는데,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는 밀대 모자까지 씌워서 의인화하기도 한다. 속곳은 월경이 묻은 것이 주력이 강하다고 한다. 월경이 묻은 속곳이 없으면 황토를 칠하거나 붉은 물감을 칠하기도 한다.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울 때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경북 상주시 은척면에서는 이웃 마을에 돌림병이들었다는 소문이 돌면, 여럿이 다른 마을에 몰래 가서 방아를 훔쳐 가지고 “어이어이” 곡소리를 내며 돌아온다. 방아는 마을어귀에 다리가 위로 향하도록 세우고, 장가를 세 번 간 사람의 아내 속곳을 걸어 둔다. 이렇게 하면 돌림병이 더럽게 여겨서 달아난다는 것이다. 충남 아산시 온양에서는 여자들이 나서서 훔쳐 온다. 방아 가랑이에 개의 피를 바르고 주위에 왼새끼를 두른 다음 전나무 가지를 꽂아 둔다. 또 아낙네 단속곳을 방아머리에 씌우면서 “네가 여기에 와 있었구나” 하고 읊조린다. 1940년쯤 전북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서도 열병이 돌자 여자들이 이웃 마을의 디딜방아를 뽑아다가 서낭당 옆에 세웠다. 여자들이 훔친방아를 메고돌 때 남자들은 절대로 내다보지 않는다.

여자로 꾸민 남자들이 방아를 훔쳐 오는 고장도 있다. 돌림병의 귀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가리기도 한다. 여성은 디딜방아에 잠방이를 씌워서 세우고, 남성은 여자를 상징하는 짚신이나 수박 또는 호박을 잘라 문전에 달아맨다.

디딜방아는 또 기우제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를‘디딜방아 매기’라고도 불렀다. 가뭄이 계속되면 마을 부녀자들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물이 흘러나오는 강 상류의 마을에서 방아를 메고 와서 이것을 거꾸로 세워 두고 ‘장례식’을 치른다. 우선 디딜방아를 훔칠 집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훔칠 집으로는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집, 삼대가 함께 살던 집,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아나 또는 개인 방아를 갖고 있는 집을 조건으로 결정하며, 도둑맞는 집은 대개 정해져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부녀자들 중에서 남장을 한 상주와 선두에서 만가를 부를 사람을 정한다.

부인들은 장례식에서 하듯이 흰 옷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방아를 훔치러 간다. 도둑을 맞는 집 주인은 간섭할 수가 없다. 그냥 내버려 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거나 또는 큰 재앙을 만나서 몰락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 도둑을 맞는 집 주부가 방아 곁에서 장례식을 하듯이 곡을 하면 그 방아의 효험이 사라진다고 한다. 방아를 내오면확(방아에서 움푹 파인 곳)에다 물을 가득 채워 둔다. 훔친 디딜방아를 운반하려면 방아머리 부분에 기름을 짠 천을 씌운뒤 새끼줄로 디딜방아를 7곳으로 묶고, 그곳에 금줄처럼 한지를 끼운다. 그런 다음 창호지로 싸서 새끼줄로 디딜방아를 묶고 손잡이를 7개 만든다. 또 병에 물을 넣고 솔잎으로 입구를 막아 디딜방아에 매달아 두는데, 그렇게 하면 메고 올 때 물방울이 떨어진다. 운반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다음과 같다.

오호 방아야 이 방아를 메고
오호 방아야 서둘러 떠나자꾸나
오호 방아야 이 방아를 멨더니
오호 방아야 모래가 떨어졌다네
오호 방아야 남편이 오면
오호 방아야 좋은 일이 있다네
오호 방아야 여자들이 많지만 진심을 담아서
오호 방아야 오도산에서 물을 얻어온다

그런 다음 운반해 온 방아를 세우는데, 세우는 장소는 항상 강 나루터로 정해져 있다. 세울 때는 구멍을 파서 방아의 머리 부분이 땅에 묻히도록 거꾸로 박는다. 그것이 끝나면 참가한 부인들 가운데 월경 중인 사람이 피가 묻은 속곳을 벗어서 디딜방아의 공이에 걸쳐 놓고 비가 오기를 기원한다. 3일 이내에 비가 와서 디딜방아를 돌려주는 경우도있지만, 3일이 지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디딜방아와 속곳은 비에 떠내려갈 때까지 내버려 둔다.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은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부녀자들이 이웃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다가 강이나 모래사장에 거꾸로 세운다. 이것을 방아매기(매기는막이의 사투리)라 한다. 합천군 봉산면에서는 주인 몰래 옮겨온 방아를 앞산 높은 곳에 세우고 돼지를 잡아 고사를 지냈다. 또 방아가 마을 앞을 지날 때 사람들이 방아에 대고 “비가 내리게 해주소서”라고 축원하며 절을 하였다. 이 풍속은 가뭄을 돌림병과 한 가지로 보았다. 그리고 디딜방아의 가랑이를 여성의 음부로 여기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디딜방아는 액막이와 기우제 외에도 사용되었다. 디딜방아로 병을 고치기도 하였다. 경북 상주에서는 귓병이 생겼을 때 귀지를 후벼서 쌀개에 넣고 찧는다. 쌀개에 낀 귀지가가루가 되듯이 병도 그렇게 없어진다는 유감주술이다. 또 정월대보름 찰밥을 얻어다가 디딜방앗간에서 먹으면 버짐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아이들이 조리를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거둔 다음 디딜방앗간에서 먹었다. 이렇게 하면 일년 내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에서는 못 쓰게 된 방아일지라도 불에 태우거나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한다. 함부로 굴리면 방아귀신이 들러붙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딜방아와 관련한 민속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또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금산의 마을공동체 신앙 (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990), 한국민속제의와 음양오행 (김의숙, 집문당, 1993), 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기우제와 지역사회 (임장혁, 민속원, 1999), 디딜방아연구 (김광언, 지식산업사, 2001), 디딜방아액막이굿의 주술성과 오락화현상 (박진태, 비교민속학 31, 비교민속학회, 2006), 남도민속의 이해 (표인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7)

디딜방아

디딜방아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구

집필자 이한길(李漢吉)

정의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주술적 도구.

내용

디딜방아는 절구에서 나왔다. 흔히 절구는 손방아, 디딜방아는 발방아라고 일컫는다. 디딜방아는 벼농사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디딜방아는 중국 한나라 초기에 등장하여 우리나라는 4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디딜방아는 외다리방아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개량하여 두다리방아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민속이만들어졌다. 디딜방아를 만들고 나서 흔히 몸체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조작’이라고 쓰기도 한다.액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또한 디딜방아는 민요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

디딜방아 민속신앙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조사 내용이 일부 차이를 보인다. 때로는 상충된 내용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상충이라기보다는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딜방아는 주술적으로도 사용되는데 그중 하나가 액막이 의례이다. 천연두, 홍역 같은 돌림병이 돌면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강구된다. 그 대책 가운데하나가 다른 마을의 디딜방아를 한밤중에 몰래 훔쳐 와서 제사를 올리는 일이다. 이 주술적 액막이 의례는 대개 1950년대까지는 전국적으로 행하여졌다. 오늘날 이 놀이는 전라도 일원에서 주로 행하여지고 있으며 충청도 지역에서도 전승되고 있다.

우선 부녀자들은 어느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 올 것인지를 논의한다. 어느 마을에 크고 좋은 디딜방아가 있는지, 또는 어느 마을의 것을 비교적 쉽게 훔칠 수 있는지 등을고려한다. 간혹 마을의 여러 일을 단골처럼 보아 주는 무당이 “언제 어느 방위의 마을에서 훔쳐 와야 효험이 있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다음에는 누가 훔치러 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대개는 기운이 센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20~30명으로 구성한다. 때로는 남자들이 일부 포함되기도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러 떠날 때 부녀자들은 하얀 소복을 갖추어 입고 상여를 준비하기도 하고,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숨을 죽이며 갔다. 반드시 소복을 입거나 상여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디딜방아는 한밤중에 몰래 훔쳐 오는데, 어떤 때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서 싸우거나 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돌림병을막기 위한 ‘뱅이(주술적인 방어의례)’에 쓴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기 때문에 순순히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그 마을 어귀를 무사히 빠져 나오면 그곳 사람들도 더 이상 반환을 요구하지 못하였다.

훔친 디딜방아는 상여 위에 놓고, 그 위에 흰 광목천을 덮어서 마치 죽은 시신을 모시듯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는 것은 다른 마을의 여자 시체를 가지고 오는 것을 뜻한다. 이때문에 자기 마을로 돌아올 때는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상여소리와 함께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거나 또는 “어흥! 어흥!” 하고 호랑이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돌림병의 종류에 따라서 “홍역 물리자! 홍역 물리자!” 하면서 돌아오기도 하였다. 전남에서는 축원가를 부르며 돌아오면서 마을의 남성들에게 자신들의 역량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마을 어귀나 마을 앞의 삼거리에 거꾸로 세워 놓고 금줄을 두르고 제상을 차려 제사를 모신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며 한바탕 흥겹게 논다. 여기저기에서 아낙네들은 벗은 속곳이나 준비해 온 속곳을 디딜방아의 Y 자형으로 벌어진 곳에 감기도 하고, 금줄 사이사이에 끼우기도 한다.

특히 경도혈이 묻은 속곳을 걸어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더욱 정성이 지극한 아낙네들은 자신의 속곳을 가지고 온 마을을 다니면서 다른 집의 대문에서 나뭇조각을 조금씩 떼어내기도 하고, 다른 집 흙을 속곳에다 문질러서 디딜방아에 걸기도 한다. 이런 속곳은 매우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는 팥죽을 쑤어서 속곳과 디딜방아에 뿌렸다. 이렇게 하면 돌림병이 마을로 들어오다가도디딜방아에 걸린 경도혈 묻은 속곳을 보고, “이 마을은 더러워서 못 쓰겠다” 하고 도망간다는 것이다. 디딜방아가 더러우면 돌림병이 물러나고, 깨끗하면 더 덤빈다는 말도전해 온다.

디딜방아 액막이놀이는 주로 호남의 동부 산간지대에서 행해졌는데, 정월대보름에 당산제가 끝나면 여성들이 인근 마을에 디딜방아를 훔치러 갔다가 성공하여 돌아온 후에는 신명나게 풍물놀이를 하였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뱅이’를 끝낸 후에 돌려주기도 하였다. 이때 방아를 잃어버렸던 마을에서는 금방 찾아오면 그 마을의 액도 함께 가져오는 것이라 하여 몇 달 후나 한 해를 지낸 다음에 찾아갔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로 되찾아간 마을도 있었다. 또한 훔쳐 온 디딜방아는 자칫 잘못하면 부정을 탄다 하여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세워 둔 자리에서 썩어 없어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한소리의 주민들은 이웃 마을에 돌림병이 들어오면 물레방아의 공이만을 뽑아다가 붉은 흙칠을한 다음 마을 어귀에 거꾸로 박아 두었다. 훔쳐 왔던 디딜방아는 정월이 지나면 돌려주지만,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에서는 개울에 다리를 놓는 데 사용했다.

이와 같은 액막이 의례는 학자에 따라 액막이놀이, 액막이굿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디딜방아로 액을 막는 민속은 2000년 민속예술로도 탈바꿈하여 운곡대보름액막이굿(전남)이 대통령상을, 부남방앗거리놀이(전북)가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지역사례

디딜방아 액막이 의례와 관련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화순군의 양촌과 용호에서는 여자들이 훔친 디딜방아를 남자들이 메고 오기도 한다. 디딜방아가 무거워서 여자들이 운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강진군 덕동마을은 아예 남자들이 직접 디딜방아를 훔쳐 온다. 전승 주체가 여자에서 남자로 변경된 것이다. 디딜방아는 보통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오는데, 거리가 멀수록 효력이 크다고 믿기도 한다. 화순군 용호마을은 담양군에서, 진안군 종평마을은 장수군에서 훔쳐 온다.

디딜방아를 세우는 위치는 마을 어귀인데, 이곳은 장승을 세워 악귀와 역병을 막는 곳으로서, 디딜방아에서 한시적으로 장승과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 디딜방아를 하나같이 거꾸로 세우고 윗부분에 여자의 속곳을 거꾸로 씌우는데,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는 밀대 모자까지 씌워서 의인화하기도 한다. 속곳은 월경이 묻은 것이 주력이 강하다고 한다. 월경이 묻은 속곳이 없으면 황토를 칠하거나 붉은 물감을 칠하기도 한다.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울 때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경북 상주시 은척면에서는 이웃 마을에 돌림병이들었다는 소문이 돌면, 여럿이 다른 마을에 몰래 가서 방아를 훔쳐 가지고 “어이어이” 곡소리를 내며 돌아온다. 방아는 마을어귀에 다리가 위로 향하도록 세우고, 장가를 세 번 간 사람의 아내 속곳을 걸어 둔다. 이렇게 하면 돌림병이 더럽게 여겨서 달아난다는 것이다. 충남 아산시 온양에서는 여자들이 나서서 훔쳐 온다. 방아 가랑이에 개의 피를 바르고 주위에 왼새끼를 두른 다음 전나무 가지를 꽂아 둔다. 또 아낙네 단속곳을 방아머리에 씌우면서 “네가 여기에 와 있었구나” 하고 읊조린다. 1940년쯤 전북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서도 열병이 돌자 여자들이 이웃 마을의 디딜방아를 뽑아다가 서낭당 옆에 세웠다. 여자들이 훔친방아를 메고돌 때 남자들은 절대로 내다보지 않는다.

여자로 꾸민 남자들이 방아를 훔쳐 오는 고장도 있다. 돌림병의 귀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가리기도 한다. 여성은 디딜방아에 잠방이를 씌워서 세우고, 남성은 여자를 상징하는 짚신이나 수박 또는 호박을 잘라 문전에 달아맨다.

디딜방아는 또 기우제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를‘디딜방아 매기’라고도 불렀다. 가뭄이 계속되면 마을 부녀자들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물이 흘러나오는 강 상류의 마을에서 방아를 메고 와서 이것을 거꾸로 세워 두고 ‘장례식’을 치른다. 우선 디딜방아를 훔칠 집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훔칠 집으로는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집, 삼대가 함께 살던 집,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아나 또는 개인 방아를 갖고 있는 집을 조건으로 결정하며, 도둑맞는 집은 대개 정해져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부녀자들 중에서 남장을 한 상주와 선두에서 만가를 부를 사람을 정한다.

부인들은 장례식에서 하듯이 흰 옷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방아를 훔치러 간다. 도둑을 맞는 집 주인은 간섭할 수가 없다. 그냥 내버려 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거나 또는 큰 재앙을 만나서 몰락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 도둑을 맞는 집 주부가 방아 곁에서 장례식을 하듯이 곡을 하면 그 방아의 효험이 사라진다고 한다. 방아를 내오면확(방아에서 움푹 파인 곳)에다 물을 가득 채워 둔다. 훔친 디딜방아를 운반하려면 방아머리 부분에 기름을 짠 천을 씌운뒤 새끼줄로 디딜방아를 7곳으로 묶고, 그곳에 금줄처럼 한지를 끼운다. 그런 다음 창호지로 싸서 새끼줄로 디딜방아를 묶고 손잡이를 7개 만든다. 또 병에 물을 넣고 솔잎으로 입구를 막아 디딜방아에 매달아 두는데, 그렇게 하면 메고 올 때 물방울이 떨어진다. 운반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다음과 같다.

오호 방아야 이 방아를 메고
오호 방아야 서둘러 떠나자꾸나
오호 방아야 이 방아를 멨더니
오호 방아야 모래가 떨어졌다네
오호 방아야 남편이 오면
오호 방아야 좋은 일이 있다네
오호 방아야 여자들이 많지만 진심을 담아서
오호 방아야 오도산에서 물을 얻어온다

그런 다음 운반해 온 방아를 세우는데, 세우는 장소는 항상 강 나루터로 정해져 있다. 세울 때는 구멍을 파서 방아의 머리 부분이 땅에 묻히도록 거꾸로 박는다. 그것이 끝나면 참가한 부인들 가운데 월경 중인 사람이 피가 묻은 속곳을 벗어서 디딜방아의 공이에 걸쳐 놓고 비가 오기를 기원한다. 3일 이내에 비가 와서 디딜방아를 돌려주는 경우도있지만, 3일이 지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디딜방아와 속곳은 비에 떠내려갈 때까지 내버려 둔다.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은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부녀자들이 이웃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다가 강이나 모래사장에 거꾸로 세운다. 이것을 방아매기(매기는막이의 사투리)라 한다. 합천군 봉산면에서는 주인 몰래 옮겨온 방아를 앞산 높은 곳에 세우고 돼지를 잡아 고사를 지냈다. 또 방아가 마을 앞을 지날 때 사람들이 방아에 대고 “비가 내리게 해주소서”라고 축원하며 절을 하였다. 이 풍속은 가뭄을 돌림병과 한 가지로 보았다. 그리고 디딜방아의 가랑이를 여성의 음부로 여기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디딜방아는 액막이와 기우제 외에도 사용되었다. 디딜방아로 병을 고치기도 하였다. 경북 상주에서는 귓병이 생겼을 때 귀지를 후벼서 쌀개에 넣고 찧는다. 쌀개에 낀 귀지가가루가 되듯이 병도 그렇게 없어진다는 유감주술이다. 또 정월대보름 찰밥을 얻어다가 디딜방앗간에서 먹으면 버짐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아이들이 조리를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거둔 다음 디딜방앗간에서 먹었다. 이렇게 하면 일년 내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에서는 못 쓰게 된 방아일지라도 불에 태우거나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한다. 함부로 굴리면 방아귀신이 들러붙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딜방아와 관련한 민속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또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금산의 마을공동체 신앙 (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990)
한국민속제의와 음양오행 (김의숙, 집문당, 1993)
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기우제와 지역사회 (임장혁, 민속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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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민속의 이해 (표인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