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동호동천제단(東海東湖洞天祭壇)

동해동호동천제단

한자명

東海東湖洞天祭壇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김태수(金泰水)

정의

강원도 동해시 동호동 주민들이 매년 정월초하룻날에 동제(洞祭)를 올리는 제단. 동해시 발한동 513-12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우리나라의 천제단은 산정이나 산기슭에 위치하며, 별도의 건물을 만들지 않고 하늘을 볼 수 있게 마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동호동의 천제단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천제단이 있는 곳은 ‘제궁등(제궁)’이라는 높지 않은 산등성이이다. 주민들은 ‘제궁등’이란 지명을 ‘제를 올리는 언덕’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천제단 주변에 큰 산이 없어서 사방이 탁 트여 아래에 있는 마을은 물론 멀리 바닷가 마을인 안묵호와 향로동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천제를 올린 다음 횃불로 알리는 신호를 보고 나서 안묵호의 제관들이 서낭고사를 올렸다고 한다.

대개의 천제단은 천신(天神) 한 분만 모시는데 동호동은 천지신(天地神)을 중심으로 좌우에 토지신(土地神)과 여역신(癘疫神)을 함께 모시고 있다. 이에 따라 제단도 세 개이다. 원래는 자연석 제단이었으나 2000년에 대리석으로 교체하였다. 제단의 크기는 가로 127㎝, 세로 84㎝, 높이 15㎝이다. 제단마다 앞쪽에 ‘천지지신(天地之神)’, ‘토지지신(土地之神)’, ‘여역지신(癘疫之神)’이란 신위명을 음각으로 새겨 두었다.

천제단 아래쪽에 작은 제단을 별도로 만들어 핏국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 그러나 2007년 11월 제단 주변 정화사업을 펼치면서 모두 없애고 핏국제사를 천제단에서 지낸다.

제단 뒤로 천제단의 신목인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동호동 주민들은 웅녀소나무라고 부르며, 2007년 6월 22일에 강원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신목 외에도 잘긴 소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다.

역사

동호동 주민들이 천제단에서 제사를 올리게 된 것이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을을 개척한 엄씨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순조(재위,1800~1834) 때 동호천 상류의황이미(황지미)에 터를 잡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주민들에 의해 마을행사로 맥을 이어 오던 천제단 제사가 외부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7년부터이다. 그해 4월 동호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천제단 제사에 주목하고 민속학자들을 초청하여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로 인해 천제단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킬 다양한 방안이 도출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웅녀제놀이의 발굴과 민속예술화였다. 천제단과 연관되는 웅녀제놀이를 발굴하여 동해시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고, 마침내 동해시의 대표 민속놀이로 선정되어 강원민속예술축제에서 강원도민들에게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의 결속력이 한층 강화되고, 동해시의 지원을 받아 천제단 주변 정화사업을 추진하였다. 2007년 11월부터 2010년까지 연차적으로 이루어진 정화사업으로 인해 기물고·도살처·제단의 위치가 변경되고, 대지의 경계 지점에 울타리가 설치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용

천제단의 부지는 약 396.7㎡이다. 경내에는 신목(神木), 제단, 기물고, 도살처가 있다. 제단과 기물고 사이에는 2010년 10월 웅녀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 지어진다. 신목은수령이 300~400년 된 소나무이다. 주민들은 웅녀소나무로 부르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이 마을에서 사는 한 촌로의 꿈에 웅녀(단군의 어머니)가 나타나 “내가 소나무로 환생하여 마을의 뒷산에 있으니 동호마을로 옮겨와 모셔 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산의 그 소나무를 마을의 언덕 위로 옮겨 심고 정성껏 보살폈다. 그때부터 신목에 대한 주민들의 마음가짐이 남달랐고, 매년 이 소나무에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태백산에서 왔고, 제물을 수놈으로 바치며, 제단 주위를쑥으로 정화하던 전통에 미루어 동호동천제단에 모셔지는 신격이 여신(女神) 가운데에서도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熊女)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23회 강원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한 ‘웅녀제(熊女祭) 물지게싸움놀이’도 이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이 신목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랫동안 이 마을의 노인회장을 지낸 고 심상백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대 어른의 꿈 속에 어디 소나무를 신목으로 하면 좋다고 하여 옮겨 심었는데 그 소나무가 있던 자리는 심동로의 묘소가 있는 산이었다”고 한다. 고려 말기의 큰 학자이자 정치가로 말년에 낙향하여 후진 양성하다 삶을 마친 심동로의 묘소가 바로 천제단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다. 큰 학자의 혼이 서린 소나무여서 주민들도 신령스럽게 생각하지만 이 신목이 얼마나 영험한지 정초가 되면 인근의 무당들이 자주 찾아와 빌고 간다. 이 신목은 2009년 고사(枯死) 위기에 처해 전문가의 처방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살리지 못하였다. 천제단 곁에서 신목답게 장엄한 모습으로서 있지만 죽은 상태이다. 주민들은 이 신목을 그대로 둘 것인지 잘라서 제기(祭器)를 만들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제단은 2000년에 새로 마련한 대리석 제단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2007년 11월 정화작업으로 위치와 방향이 바뀌었다. 원래의 위치보다 동쪽으로 10m 정도 옮겼고, 방향도 서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변경되었다. 서남쪽으로 삼척의 근산과 태백산이 위치하여 천제문화권의 제사 유형을 이어오다가 그쪽으로 연립주택이 들어서면서 앞이 막히자 방향을 바꾸었다.

과거 제단 옆에 위치한 콘크리트 슬래브건물이던 기물고는 현재 도로변에서 천제단 경내로 진입하는 출입문 옆쪽으로 옮겨 조립식 건물로 지어졌다. 기물고에는 돼지를 삶을때 쓰는 가마솥을 비롯하여 제관·집사·축관의 의관(衣冠) 7벌, 사각상 6개, 소반 큰 것 3개와 작은 것 3개, 자리 3개, 등 3개, 위패 3개, 제기(새옹메 그릇 3개, 잔과 잔대3개, 주전자 등), 칼, 도마 등이 보관되어 있다.

천제단에 모신 신위는 ‘천지지신’, ‘토지지신’, ‘여역지신’이다. 천제단 제사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 자정에 지내며, 제사 준비는 열흘 전부터 시작된다. 마을 대동회의에서 도가 한 명, 축관 한 명, 헌관 세 명, 집사 세 명을 선정한다. 제사 닷새 전 아침 일찍 제관과 집사 등은 천제단에 모여 제단 주변과 기물고를 청소하고, 부정을 막는 황토를 뿌리며, 금색(금줄)을 친 다음 제수 준비를 위한 장을 보러 간다. 제수의 대부분은 동네의 농산물시장에서 구입하지만 주된 제물인 돼지는 돼지 사육농가에 가서 고른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100㎏ 이하)의 수퇘지 가운데 건강한 놈으로 골라 표시해 두었다가 제사 당일 아침 천제단으로 끌고 와 현장에서 도살한다.

음력 섣달그믐날 새벽에 제관, 집사, 대동회 간부 등 관계자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오전 9시쯤 천제단에 모인다. 이때 표시해 둔 수퇘지를 끌고 와 천제단 입구(기물고 앞쪽)수도와 가마솥 등이 준비되어 있는 도살 터에서 집사들이 도살하고, 그 피를 삶아 핏국제사를 지낸다. 돼지핏국을 세 그릇에 나누어 담고, 초헌·아헌·종헌 등 세 명의 제관이 각각 담당한(천지신·토지신·여역신) 신위 앞 제단에 핏국을 올린 다음 삼배한다. 보통 오후 1~3시 사이에 행해지며, 이때 제관의 복장은 평상복이다. 제관과 참여자들이 음복하면 핏국제사가 끝난다. 점심식사 후 집사들은 제물로 사용할 꼬치를 만들고, 돼지고기는 부위별로 잘라 갈고리에 걸어 기물고 처마 끝에 매달아 둔다. 그리고 준비해 둔 제물을 내어 제기에 담아둔 다음 제사 시간까지 기물고와 제단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쉰다.

밤 11시 30분쯤 제물 준비를 모두 마치면 천제단의 세 개 제단에 촛불을 밝혀 둔다. 양초함은 유리상자처럼 만들어 바람이 불더라도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였다. 기물고 지붕과 주변 나뭇가지에 큰 등을 몇 개 달아 천제단 주변을 환하게 비추도록 한다. 집사 세 명은 각각의 새우(새옹)에 쌀을 담고 씻은 다음 화덕처럼 만든 받침대 위에 올리고가마솥을 데우는 불길 속에서 알불을 꺼내어 새우의 받침대 밑으로 모아 두고 새옹메를 짓는다. 행주를 가지고 뚜껑을 닦아 주는 동작을 계속한다. 행주가 더워지면 다시 찬물에 적셔 뚜껑을 닦아 낸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밥이 잘되고, 그래야 신께서 복을 내려 주신다고 믿는다. 그 무렵 제관들은 기물고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도포에 갓을 쓰고, 집사들은 청포에 유건 차림이다. 축관도 집사와 같은 차림이다. 11시 45분이 되면 집사들이 준비한 제물을 제단에 진설하고, 정월 초하룻날 자정이 되면 제관과 집사가 제단 앞에 서 있는 가운데 축관을 겸한 집례의 지시에 따라 홀기(笏記)대로 제의가 진행된다. 세 명의 헌관이 각각 ‘천지지신’,‘토지지신’, ‘여역지신’의 제단 앞에 서서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고 술잔을 올리면 축관은 축문을 읽는다. 그리고 메(밥) 뚜껑을 열어 숟가락을 꽂고 헌관과 집사는 두 번 절 한 다음 부복한다. 집사가 다시 술을올리면 헌관은 소지(燒紙)하면서 축원한다. 소지는 헌관 한 사람당 15장으로 나누었다. 이들은 동민들의 안녕과 대동회에 협찬금을 낸 사람들, 개인들의 소망을 차례로 기원한다. 이어 메 뚜껑을 닫고 숟가락을 내린 다음 헌관 이하 모두 두 번 절하고 음복례(飮福禮)를 행한 뒤 축문을 불사르고 예를 마친다.

참고문헌

원덕사람들의 삶과 문화 (김진순, 삼척문화원, 1999), 동해시사 (동해시, 2000), 동해시지명지 (박성종, 동해문화원, 2000), 국역 척주지 (배재홍, 삼척시립박물관, 2001), 신기사람들의 삶과 문화 (김진순, 삼척문화원, 2002), 동해안 어촌당신화연구 (이승철, 민속원, 2004),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동해시 동호마을의 역사와 문화 (동해시, 2007), 동호동 천제단 제사의 전승실태와 민속적 의의 (김태수, 강원민속학 21, 강원도민속학회, 2007)

동해동호동천제단

동해동호동천제단
한자명

東海東湖洞天祭壇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김태수(金泰水)

정의

강원도 동해시 동호동 주민들이 매년 정월초하룻날에 동제(洞祭)를 올리는 제단. 동해시 발한동 513-12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우리나라의 천제단은 산정이나 산기슭에 위치하며, 별도의 건물을 만들지 않고 하늘을 볼 수 있게 마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동호동의 천제단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천제단이 있는 곳은 ‘제궁등(제궁)’이라는 높지 않은 산등성이이다. 주민들은 ‘제궁등’이란 지명을 ‘제를 올리는 언덕’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천제단 주변에 큰 산이 없어서 사방이 탁 트여 아래에 있는 마을은 물론 멀리 바닷가 마을인 안묵호와 향로동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천제를 올린 다음 횃불로 알리는 신호를 보고 나서 안묵호의 제관들이 서낭고사를 올렸다고 한다.

대개의 천제단은 천신(天神) 한 분만 모시는데 동호동은 천지신(天地神)을 중심으로 좌우에 토지신(土地神)과 여역신(癘疫神)을 함께 모시고 있다. 이에 따라 제단도 세 개이다. 원래는 자연석 제단이었으나 2000년에 대리석으로 교체하였다. 제단의 크기는 가로 127㎝, 세로 84㎝, 높이 15㎝이다. 제단마다 앞쪽에 ‘천지지신(天地之神)’, ‘토지지신(土地之神)’, ‘여역지신(癘疫之神)’이란 신위명을 음각으로 새겨 두었다.

천제단 아래쪽에 작은 제단을 별도로 만들어 핏국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 그러나 2007년 11월 제단 주변 정화사업을 펼치면서 모두 없애고 핏국제사를 천제단에서 지낸다.

제단 뒤로 천제단의 신목인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동호동 주민들은 웅녀소나무라고 부르며, 2007년 6월 22일에 강원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신목 외에도 잘긴 소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다.

역사

동호동 주민들이 천제단에서 제사를 올리게 된 것이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을을 개척한 엄씨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순조(재위,1800~1834) 때 동호천 상류의황이미(황지미)에 터를 잡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주민들에 의해 마을행사로 맥을 이어 오던 천제단 제사가 외부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7년부터이다. 그해 4월 동호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천제단 제사에 주목하고 민속학자들을 초청하여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로 인해 천제단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킬 다양한 방안이 도출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웅녀제놀이의 발굴과 민속예술화였다. 천제단과 연관되는 웅녀제놀이를 발굴하여 동해시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고, 마침내 동해시의 대표 민속놀이로 선정되어 강원민속예술축제에서 강원도민들에게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의 결속력이 한층 강화되고, 동해시의 지원을 받아 천제단 주변 정화사업을 추진하였다. 2007년 11월부터 2010년까지 연차적으로 이루어진 정화사업으로 인해 기물고·도살처·제단의 위치가 변경되고, 대지의 경계 지점에 울타리가 설치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용

천제단의 부지는 약 396.7㎡이다. 경내에는 신목(神木), 제단, 기물고, 도살처가 있다. 제단과 기물고 사이에는 2010년 10월 웅녀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 지어진다. 신목은수령이 300~400년 된 소나무이다. 주민들은 웅녀소나무로 부르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이 마을에서 사는 한 촌로의 꿈에 웅녀(단군의 어머니)가 나타나 “내가 소나무로 환생하여 마을의 뒷산에 있으니 동호마을로 옮겨와 모셔 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산의 그 소나무를 마을의 언덕 위로 옮겨 심고 정성껏 보살폈다. 그때부터 신목에 대한 주민들의 마음가짐이 남달랐고, 매년 이 소나무에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태백산에서 왔고, 제물을 수놈으로 바치며, 제단 주위를쑥으로 정화하던 전통에 미루어 동호동천제단에 모셔지는 신격이 여신(女神) 가운데에서도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熊女)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23회 강원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한 ‘웅녀제(熊女祭) 물지게싸움놀이’도 이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이 신목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랫동안 이 마을의 노인회장을 지낸 고 심상백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대 어른의 꿈 속에 어디 소나무를 신목으로 하면 좋다고 하여 옮겨 심었는데 그 소나무가 있던 자리는 심동로의 묘소가 있는 산이었다”고 한다. 고려 말기의 큰 학자이자 정치가로 말년에 낙향하여 후진 양성하다 삶을 마친 심동로의 묘소가 바로 천제단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다. 큰 학자의 혼이 서린 소나무여서 주민들도 신령스럽게 생각하지만 이 신목이 얼마나 영험한지 정초가 되면 인근의 무당들이 자주 찾아와 빌고 간다. 이 신목은 2009년 고사(枯死) 위기에 처해 전문가의 처방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살리지 못하였다. 천제단 곁에서 신목답게 장엄한 모습으로서 있지만 죽은 상태이다. 주민들은 이 신목을 그대로 둘 것인지 잘라서 제기(祭器)를 만들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제단은 2000년에 새로 마련한 대리석 제단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2007년 11월 정화작업으로 위치와 방향이 바뀌었다. 원래의 위치보다 동쪽으로 10m 정도 옮겼고, 방향도 서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변경되었다. 서남쪽으로 삼척의 근산과 태백산이 위치하여 천제문화권의 제사 유형을 이어오다가 그쪽으로 연립주택이 들어서면서 앞이 막히자 방향을 바꾸었다.

과거 제단 옆에 위치한 콘크리트 슬래브건물이던 기물고는 현재 도로변에서 천제단 경내로 진입하는 출입문 옆쪽으로 옮겨 조립식 건물로 지어졌다. 기물고에는 돼지를 삶을때 쓰는 가마솥을 비롯하여 제관·집사·축관의 의관(衣冠) 7벌, 사각상 6개, 소반 큰 것 3개와 작은 것 3개, 자리 3개, 등 3개, 위패 3개, 제기(새옹메 그릇 3개, 잔과 잔대3개, 주전자 등), 칼, 도마 등이 보관되어 있다.

천제단에 모신 신위는 ‘천지지신’, ‘토지지신’, ‘여역지신’이다. 천제단 제사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 자정에 지내며, 제사 준비는 열흘 전부터 시작된다. 마을 대동회의에서 도가 한 명, 축관 한 명, 헌관 세 명, 집사 세 명을 선정한다. 제사 닷새 전 아침 일찍 제관과 집사 등은 천제단에 모여 제단 주변과 기물고를 청소하고, 부정을 막는 황토를 뿌리며, 금색(금줄)을 친 다음 제수 준비를 위한 장을 보러 간다. 제수의 대부분은 동네의 농산물시장에서 구입하지만 주된 제물인 돼지는 돼지 사육농가에 가서 고른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100㎏ 이하)의 수퇘지 가운데 건강한 놈으로 골라 표시해 두었다가 제사 당일 아침 천제단으로 끌고 와 현장에서 도살한다.

음력 섣달그믐날 새벽에 제관, 집사, 대동회 간부 등 관계자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오전 9시쯤 천제단에 모인다. 이때 표시해 둔 수퇘지를 끌고 와 천제단 입구(기물고 앞쪽)수도와 가마솥 등이 준비되어 있는 도살 터에서 집사들이 도살하고, 그 피를 삶아 핏국제사를 지낸다. 돼지핏국을 세 그릇에 나누어 담고, 초헌·아헌·종헌 등 세 명의 제관이 각각 담당한(천지신·토지신·여역신) 신위 앞 제단에 핏국을 올린 다음 삼배한다. 보통 오후 1~3시 사이에 행해지며, 이때 제관의 복장은 평상복이다. 제관과 참여자들이 음복하면 핏국제사가 끝난다. 점심식사 후 집사들은 제물로 사용할 꼬치를 만들고, 돼지고기는 부위별로 잘라 갈고리에 걸어 기물고 처마 끝에 매달아 둔다. 그리고 준비해 둔 제물을 내어 제기에 담아둔 다음 제사 시간까지 기물고와 제단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쉰다.

밤 11시 30분쯤 제물 준비를 모두 마치면 천제단의 세 개 제단에 촛불을 밝혀 둔다. 양초함은 유리상자처럼 만들어 바람이 불더라도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였다. 기물고 지붕과 주변 나뭇가지에 큰 등을 몇 개 달아 천제단 주변을 환하게 비추도록 한다. 집사 세 명은 각각의 새우(새옹)에 쌀을 담고 씻은 다음 화덕처럼 만든 받침대 위에 올리고가마솥을 데우는 불길 속에서 알불을 꺼내어 새우의 받침대 밑으로 모아 두고 새옹메를 짓는다. 행주를 가지고 뚜껑을 닦아 주는 동작을 계속한다. 행주가 더워지면 다시 찬물에 적셔 뚜껑을 닦아 낸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밥이 잘되고, 그래야 신께서 복을 내려 주신다고 믿는다. 그 무렵 제관들은 기물고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도포에 갓을 쓰고, 집사들은 청포에 유건 차림이다. 축관도 집사와 같은 차림이다. 11시 45분이 되면 집사들이 준비한 제물을 제단에 진설하고, 정월 초하룻날 자정이 되면 제관과 집사가 제단 앞에 서 있는 가운데 축관을 겸한 집례의 지시에 따라 홀기(笏記)대로 제의가 진행된다. 세 명의 헌관이 각각 ‘천지지신’,‘토지지신’, ‘여역지신’의 제단 앞에 서서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고 술잔을 올리면 축관은 축문을 읽는다. 그리고 메(밥) 뚜껑을 열어 숟가락을 꽂고 헌관과 집사는 두 번 절 한 다음 부복한다. 집사가 다시 술을올리면 헌관은 소지(燒紙)하면서 축원한다. 소지는 헌관 한 사람당 15장으로 나누었다. 이들은 동민들의 안녕과 대동회에 협찬금을 낸 사람들, 개인들의 소망을 차례로 기원한다. 이어 메 뚜껑을 닫고 숟가락을 내린 다음 헌관 이하 모두 두 번 절하고 음복례(飮福禮)를 행한 뒤 축문을 불사르고 예를 마친다.

참조

동해동호동천제단제

참고문헌

원덕사람들의 삶과 문화 (김진순, 삼척문화원, 1999)
동해시사 (동해시, 2000)
동해시지명지 (박성종, 동해문화원, 2000)
국역 척주지 (배재홍, 삼척시립박물관, 2001)
신기사람들의 삶과 문화 (김진순, 삼척문화원, 2002)
동해안 어촌당신화연구 (이승철, 민속원, 2004)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동해시 동호마을의 역사와 문화 (동해시, 2007)
동호동 천제단 제사의 전승실태와 민속적 의의 (김태수, 강원민속학 21, 강원도민속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