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四十九齋)

사십구재

한자명

四十九齋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 유中有의 존재로 머무는 49일 동안에 치르는 천도재.

역사

불교의 내세관에 따르면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인간은 끊임없이 윤회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죽어서 바로 다음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중유・중음中陰의 존재로 머문다고 한다. 이 기간을 49일로 보는 것은 2세기 중엽의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에서 중음칠칠일설中陰七七日說을 처음 거론하면서부터이다. 이후에 저술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중유의 기간에 적절한 출생의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여러 차례 생生과 사死를 거듭하며 7일을 지나게 되는데, 그 최대기간이 7・7일이라고 하였다. 이 밖에, 중유 때 경전과 계율을 염송念誦하면 망자에게 그 복이 미쳐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음을 기록한 경전들도 등장하였다.

인도불교에서 중유의 존재와 그 기간에 대한 기본적 개념이 정립된 이후, 중국불교에 수용된 인도의 중유사상은 중국 고유의 조상숭배 사상과 결합하여 칠칠재七七齋로 정착되었다. 4세기경 칠칠재의 공덕에 대해 언급한 경전들이 번역되면서 중음법회가 널리 행해졌다. 그리고 6세기 이후 칠월 보름의 행사로 정착된 우란분재盂蘭盆齋는 칠칠재七七齋를 비롯한 천도재薦度齋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7세기에 명부신앙冥府信仰의 핵심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이 편찬되면서, 사후 49일 이내에 가족이 재齋 공양 등으로 복을 지어 망자를 구원해줄 것을 본격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당대唐代 말기에는 시왕사상[十王思想]이 성행하였는데, 사람이 죽으면 명부를 다스리는 열 명의 왕[十王]으로부터 차례대로 판결을 받는다고 보아, 일곱번의 칠칠재에 백일재百日齋・소상재小祥齋・대상재大祥齋까지 더하여 열 번의 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6~7세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칠칠재는 우리나라에도 이른 시기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 기록은 드문 편이나 7~8세기 무렵부터 지장신앙이 성행하였고, 8세기경 월명대사月明大師가 일찍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며 지은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전하듯이 망자를 위한 천도재가 신라시대에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구체적인 기록으로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眞鏡大師塔碑에는 923년(경명왕 7) 왕이 진경대사의 삼칠재三七齋에 사신을 파견해 부의와 물품을 보낸 내용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승려와 왕실은 물론 지배층에서 칠칠재를 널리 행하였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칠칠재가 확대되어 유교의 상례 시기를 수용한 10회의 천도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칠칠재는 종교적 필요성에 따라 계속되었다. 조선 초기에 왕실과 지배층에서 행한 칠칠재는 수륙재水陸齋와의 밀접한 관련 하에서 치러졌다. 1420년 (세종 2)에 “나라에 통하는 상제喪制는 수륙재만을 행하고 나머지 예절은 모두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거토록 하라.”라는 왕명으로 칠칠재가 수륙재로 대체 된 것이다. 수륙재는 특정 망자를 위한 재가 아니라, 천도되지 못한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고혼을 위해 개설하는 합동천도재로 ‘가장 공덕이 높은 법회’로 인식되었다. 수륙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모든 생활의례를 유교적 질서로 재편하고자 했으나 깊이 뿌리내린 불교 천도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반영한다. 유교국가임을 내세운 조선이었지만, 칠칠재와 수륙재를 모두 없애지 못하고 수륙재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종대에 폐지될 때까지 수륙재는 국가의 공식적인 상제로 거행되면서, 가뭄과 역질 등을 물리치기 위한 공동체의례로도 점차 그 역할을 확대하였다.

수륙재와 결합한 칠칠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전승된다. 그 가운데 일반 백성의 칠칠재는 유족이 참여하여 사찰에서 치르는 현재의 사십구재와 유사한 모습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지배층의 배척을 받은 불교가 기층문화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절실한 대중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 결과, 사후세계를 다루는 명부신앙은 조선시대에 와서 더욱 성행하게 되었던것이다.

내용

사십구재를 치르는 방식은 상주권공재・영산재・시왕각배재 등으로 구분된다.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는 기본형에 해당하는 소규모 재로 법당 안에서 염불 위주로 치른다. 규모가 큰 사십구재는 영산재靈山齋(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방식으로 지내는데, 의식승려들을 청하여 범패나비춤바라춤 등 영산작법과 함께 진행한다.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는 상주권공재에 시왕을 모시는 의식이 추가된 재로 근래에는 잘 지내지 않는다.

사십구재는 장례를 치른 날 사찰 법당에 망자의 영정위패를 모시고 반혼재返魂齋를 치름으로써 입재入齋를 하게 된다. 이후 임종한 날로부터 7일째 되는 날 초재를 지내고 매 7일 째 되는 날마다 2재・3재・4재・5재・6재・7재를 지내면서 도합 일곱 번에 걸쳐 재를 치른다. 초재에서 6재까지는 간략하게 지내고, 마지막 7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7재 자체를 사십구재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이날은 유족뿐 아니라 친지들을 모시고, 이전의 모든 의식을 종합하고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로 의례를 치른다. 49일째 되는 날 치르는 사십구재의 과정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대령對靈: 법당에서 망혼을 맞이하는 단계이다. 영단靈壇에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먼 길을 온 망혼을 좌정시킨 다음, 간단한 요기로 대접하며 절을 올린다. 영산재를 치를 때는 사찰 입구에서부터 망혼을 모셔오는 시련侍輦을 치른 다음 대령을 행한다.

  2. 관욕灌浴: 망혼이 생전에 몸[身]과 입[口], 마음[意]으로 지은 업을 씻는 단계이다. 본래는 법당 바깥의 별도 공간에서 관욕을 한 뒤 법당에 들어오게 되나, 요즈음에는 영단 옆에 병풍을 쳐서 관욕단을 만들고 망자를 상징하는 지의紙衣를 태워 업을 씻는다. 이때 ‘씻음’이라는 상징성을 드러내고자 비누・칫솔・치약・수건 같은 세면도구를 진열해 놓고, 갈아입을 새 한복 한 벌도 갖추어 놓는다. 업을 씻어 청정한 상태가 된 이후에 망자는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3. 상단권공上壇勸供: 사십구재의 핵심이 되는 단계로, 상단인 불단佛壇에 재물齋物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망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평소 사시巳時(9시~11시)에 불보살에게 올리는 법식을 기본으로, 극락과 명부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 등에게 불공을 올리는 내용을 담는다. 상단의례가 끝나면 공양물을 중단인 신중단神衆壇으로 일부 옮겨놓고 신중에게도 간단히 불공을 올린다.

  4. 관음시식觀音施食: 망혼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유족・친지들이 절을 올리는 단계이다. 상단의 공양물을 하단인 영단으로 옮겨놓고 유족이 의례주체가 되어 제사를 지낸다. 승려들은 뒤에 앉아 이를 지켜보며 망혼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염불을 한다. 참석자들은 저승에서 쓸 노잣돈을 영단에 놓고 차례대로 절을 하는 것이 관례이다.

  5. 봉송奉送: 망혼을 다시 돌려보내는 단계이다. 의례에 참석한 모든 이가 불보살에게 절을 올리고 법당을 돈 다음, 바깥의 소대燒臺에서 망자의 옷과 사십구재에 사용된 물품을 태워 의례를 마친다. 이후 의례에 사용된 재물을 같이 먹고, 남은 음식은 참석자에게 골고루 주어 의례의 공덕을 나눈다.

특징 및 의의

사십구재는 세상을 떠난 망자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에서 머무는 동안 치르는 의례이다. 따라서 유족도 일상과 분리된 상중喪中에 머물다가 49일째 되는 날 7재를 치름으로써 망혼은 내세로, 유족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불교식 탈상의례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전통 상례가 위축되고 죽음과 관련된 의례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사십구재는 망자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종교의례인 동시에, 죽음에서 비롯된 남은 자들의 문제를 충족시켜주는 탈종교적 전통의례로 수용되고있어 주목된다. 이처럼 사십구재는 본래의 종교적 기능인 ‘천도’ 이외에도, 유교의 상례에서 담당해왔던 ‘탈상’이라는 사회적 기능과 무속의 넋굿에서 주로 담당해왔던 ‘해원解寃’이라는 심리적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따라서 상을 당한 유족들은 사십구재를 종교의례 이전에 탈상의례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십구재가 억울하게 죽은 망혼을 위로하고 산 자들의 슬픔을 해소하는 데 더욱 적합한 방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阿毘達磨俱舍論, 阿毘達磨大毘婆沙論, 瑜伽師地論, 地藏菩薩本願經, 불교의식각론2~6(심상현, 한국불교출판부, 2000~2001), 석문의범(안진호, 만상회, 1935),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김정희, 일지사, 1996),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구미래, 민속원, 2009).

사십구재

사십구재
한자명

四十九齋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 유中有의 존재로 머무는 49일 동안에 치르는 천도재.

역사

불교의 내세관에 따르면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인간은 끊임없이 윤회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죽어서 바로 다음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중유・중음中陰의 존재로 머문다고 한다. 이 기간을 49일로 보는 것은 2세기 중엽의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에서 중음칠칠일설中陰七七日說을 처음 거론하면서부터이다. 이후에 저술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중유의 기간에 적절한 출생의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여러 차례 생生과 사死를 거듭하며 7일을 지나게 되는데, 그 최대기간이 7・7일이라고 하였다. 이 밖에, 중유 때 경전과 계율을 염송念誦하면 망자에게 그 복이 미쳐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음을 기록한 경전들도 등장하였다.

인도불교에서 중유의 존재와 그 기간에 대한 기본적 개념이 정립된 이후, 중국불교에 수용된 인도의 중유사상은 중국 고유의 조상숭배 사상과 결합하여 칠칠재七七齋로 정착되었다. 4세기경 칠칠재의 공덕에 대해 언급한 경전들이 번역되면서 중음법회가 널리 행해졌다. 그리고 6세기 이후 칠월 보름의 행사로 정착된 우란분재盂蘭盆齋는 칠칠재七七齋를 비롯한 천도재薦度齋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7세기에 명부신앙冥府信仰의 핵심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이 편찬되면서, 사후 49일 이내에 가족이 재齋 공양 등으로 복을 지어 망자를 구원해줄 것을 본격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당대唐代 말기에는 시왕사상[十王思想]이 성행하였는데, 사람이 죽으면 명부를 다스리는 열 명의 왕[十王]으로부터 차례대로 판결을 받는다고 보아, 일곱번의 칠칠재에 백일재百日齋・소상재小祥齋・대상재大祥齋까지 더하여 열 번의 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6~7세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칠칠재는 우리나라에도 이른 시기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 기록은 드문 편이나 7~8세기 무렵부터 지장신앙이 성행하였고, 8세기경 월명대사月明大師가 일찍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며 지은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전하듯이 망자를 위한 천도재가 신라시대에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구체적인 기록으로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眞鏡大師塔碑에는 923년(경명왕 7) 왕이 진경대사의 삼칠재三七齋에 사신을 파견해 부의와 물품을 보낸 내용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승려와 왕실은 물론 지배층에서 칠칠재를 널리 행하였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칠칠재가 확대되어 유교의 상례 시기를 수용한 10회의 천도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칠칠재는 종교적 필요성에 따라 계속되었다. 조선 초기에 왕실과 지배층에서 행한 칠칠재는 수륙재水陸齋와의 밀접한 관련 하에서 치러졌다. 1420년 (세종 2)에 “나라에 통하는 상제喪制는 수륙재만을 행하고 나머지 예절은 모두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거토록 하라.”라는 왕명으로 칠칠재가 수륙재로 대체 된 것이다. 수륙재는 특정 망자를 위한 재가 아니라, 천도되지 못한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고혼을 위해 개설하는 합동천도재로 ‘가장 공덕이 높은 법회’로 인식되었다. 수륙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모든 생활의례를 유교적 질서로 재편하고자 했으나 깊이 뿌리내린 불교 천도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반영한다. 유교국가임을 내세운 조선이었지만, 칠칠재와 수륙재를 모두 없애지 못하고 수륙재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종대에 폐지될 때까지 수륙재는 국가의 공식적인 상제로 거행되면서, 가뭄과 역질 등을 물리치기 위한 공동체의례로도 점차 그 역할을 확대하였다.

수륙재와 결합한 칠칠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전승된다. 그 가운데 일반 백성의 칠칠재는 유족이 참여하여 사찰에서 치르는 현재의 사십구재와 유사한 모습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지배층의 배척을 받은 불교가 기층문화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절실한 대중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 결과, 사후세계를 다루는 명부신앙은 조선시대에 와서 더욱 성행하게 되었던것이다.

내용

사십구재를 치르는 방식은 상주권공재・영산재・시왕각배재 등으로 구분된다.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는 기본형에 해당하는 소규모 재로 법당 안에서 염불 위주로 치른다. 규모가 큰 사십구재는 영산재靈山齋(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방식으로 지내는데, 의식승려들을 청하여 범패・나비춤・바라춤 등 영산작법과 함께 진행한다.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는 상주권공재에 시왕을 모시는 의식이 추가된 재로 근래에는 잘 지내지 않는다.

사십구재는 장례를 치른 날 사찰 법당에 망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반혼재返魂齋를 치름으로써 입재入齋를 하게 된다. 이후 임종한 날로부터 7일째 되는 날 초재를 지내고 매 7일 째 되는 날마다 2재・3재・4재・5재・6재・7재를 지내면서 도합 일곱 번에 걸쳐 재를 치른다. 초재에서 6재까지는 간략하게 지내고, 마지막 7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7재 자체를 사십구재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이날은 유족뿐 아니라 친지들을 모시고, 이전의 모든 의식을 종합하고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로 의례를 치른다. 49일째 되는 날 치르는 사십구재의 과정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령對靈: 법당에서 망혼을 맞이하는 단계이다. 영단靈壇에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먼 길을 온 망혼을 좌정시킨 다음, 간단한 요기로 대접하며 절을 올린다. 영산재를 치를 때는 사찰 입구에서부터 망혼을 모셔오는 시련侍輦을 치른 다음 대령을 행한다.

관욕灌浴: 망혼이 생전에 몸[身]과 입[口], 마음[意]으로 지은 업을 씻는 단계이다. 본래는 법당 바깥의 별도 공간에서 관욕을 한 뒤 법당에 들어오게 되나, 요즈음에는 영단 옆에 병풍을 쳐서 관욕단을 만들고 망자를 상징하는 지의紙衣를 태워 업을 씻는다. 이때 ‘씻음’이라는 상징성을 드러내고자 비누・칫솔・치약・수건 같은 세면도구를 진열해 놓고, 갈아입을 새 한복 한 벌도 갖추어 놓는다. 업을 씻어 청정한 상태가 된 이후에 망자는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상단권공上壇勸供: 사십구재의 핵심이 되는 단계로, 상단인 불단佛壇에 재물齋物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망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평소 사시巳時(9시~11시)에 불보살에게 올리는 법식을 기본으로, 극락과 명부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 등에게 불공을 올리는 내용을 담는다. 상단의례가 끝나면 공양물을 중단인 신중단神衆壇으로 일부 옮겨놓고 신중에게도 간단히 불공을 올린다.

관음시식觀音施食: 망혼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유족・친지들이 절을 올리는 단계이다. 상단의 공양물을 하단인 영단으로 옮겨놓고 유족이 의례주체가 되어 제사를 지낸다. 승려들은 뒤에 앉아 이를 지켜보며 망혼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염불을 한다. 참석자들은 저승에서 쓸 노잣돈을 영단에 놓고 차례대로 절을 하는 것이 관례이다.

봉송奉送: 망혼을 다시 돌려보내는 단계이다. 의례에 참석한 모든 이가 불보살에게 절을 올리고 법당을 돈 다음, 바깥의 소대燒臺에서 망자의 옷과 사십구재에 사용된 물품을 태워 의례를 마친다. 이후 의례에 사용된 재물을 같이 먹고, 남은 음식은 참석자에게 골고루 주어 의례의 공덕을 나눈다.

특징 및 의의

사십구재는 세상을 떠난 망자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에서 머무는 동안 치르는 의례이다. 따라서 유족도 일상과 분리된 상중喪中에 머물다가 49일째 되는 날 7재를 치름으로써 망혼은 내세로, 유족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불교식 탈상의례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전통 상례가 위축되고 죽음과 관련된 의례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사십구재는 망자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종교의례인 동시에, 죽음에서 비롯된 남은 자들의 문제를 충족시켜주는 탈종교적 전통의례로 수용되고있어 주목된다. 이처럼 사십구재는 본래의 종교적 기능인 ‘천도’ 이외에도, 유교의 상례에서 담당해왔던 ‘탈상’이라는 사회적 기능과 무속의 넋굿에서 주로 담당해왔던 ‘해원解寃’이라는 심리적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따라서 상을 당한 유족들은 사십구재를 종교의례 이전에 탈상의례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십구재가 억울하게 죽은 망혼을 위로하고 산 자들의 슬픔을 해소하는 데 더욱 적합한 방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阿毘達磨俱舍論, 阿毘達磨大毘婆沙論, 瑜伽師地論, 地藏菩薩本願經, 불교의식각론2~6(심상현, 한국불교출판부, 2000~2001), 석문의범(안진호, 만상회, 1935),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김정희, 일지사, 1996),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구미래, 민속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