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월촌입석(金堤月村立石)

김제월촌입석

한자명

金堤月村立石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신체

집필자 김성식(金盛湜)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 입석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신체(神體)인 당산할머니 입석(선돌). 1974년 9월 27일에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입석마을은 김제 시내에서 벽골제 가는 방향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마을은 본래 김제군 월산 지역에 속하였으며, 마을 어귀에 큰 돌이 서 있어서 선돌 또는 입석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산리·동두리·제남리의 각 일부와 대촌면의 진가리·반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입석리라 불렀다. 1990년에는 김제군이 김제시로 승격됨에 따라 입석동으로 구역 명칭이 바뀌었다. 입석마을은 현재 2010년 7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이 마을의 입석은 도로 맞은편 길가에 세워져 있다. 네모꼴 석주(石柱) 형태의 화강암으로 된 이 입석은 높이 210㎝, 둘레 62㎝이다. 세워진 연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만 벽골제를 쌓은 뒤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어떤 장수가 벽골제 돌을 옮겨 세운 장승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주민들은 이 입석을 당산신으로 모시면서 ‘할머니당산’ 또는 ‘미륵님’이라고 부른다.

본래 선돌이 있는 위치가 길가에 접해 있다 보니 줄다리기를 할 경우 자동차의 잦은 왕래로 인해 항상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1991년 12월 김제시에서 이곳으로부터 200여 m 위쪽으로 부지를 매입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현재의 입석과 쌍을 이루어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고 옛 민속을 오래도록 보존한다는 취지로 별도의 입석과 제단, 기념비문을 새긴 기념비, 팔각정자 등을 갖추었다. 이 공원에서 줄다리기 행사가 진행되며, 주민들은 이곳을 ‘행사장’이라고 부른다.

고고학에서는 입석의 유래를 신석기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선돌(menhir), 즉 거석(巨石)문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민속신앙적 측면에서의 입석은 형태와 기능이 훨씬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상물로서 관련된 민속의례가 수반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입석은 대부분 자연석 돌기둥, 즉 석주 형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하는 모습으로의 변형을 위해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입석의 기능은 크게 비보 역할을 하는 풍수적 기능과 마을공동체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종교적 기능으로 구분된다. 입석의 풍수적 기능은 외부로부터 오는 나쁜 기운을 차단하여 마을을 안전하게 방어, 보호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기능을 목적으로는 수구(水口)맥이, 수살(水殺)맥이, 화재맥이, 돛대바위, 성기(性器)바위 등이 있다.

또 입석은 종교적 기능을 지닌다. 종교적 기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체, 신격(神格), 의례(儀禮)가 필수적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입석은 곧 신체가 된다. 신격은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미륵’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의례는 개인신앙 차원에서 행하는 의례와 주민 일체가 합심으로 행하는 공동체신앙의례로 나뉜다. 이 가운데 마을공동체신앙은 당산제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매년 마을별로 정해진 날짜에 맞춰 제관 선정과 제비 마련에서부터 제물 구입 및 장만, 금기 엄수, 관련 의례 수행, 이튿날의 파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절차가 입석을 중심으로 종교적 엄숙함과 축제적 신명풀이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김제 입석줄다리기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내용

입석 당산제는 줄다리기와 병행한다는 특성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명칭도 당산제보다 줄다리기가 강조된 ‘입석줄다리기’라고 부른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줄다리기 주요 과정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입석 묵은 줄 제거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입석에 감겨 있는 묵은 줄을 제거한다. 일 년 가운데 입석의 신체가 드러나는 시간은 이날 하루뿐이다. 제거한 줄은 태운다. 과거에는 이 묵은 줄이 피부병에 좋다고 하여 주민들이 다투어 가져갔다고 한다.

나. 줄 제작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볏짚으로 줄을 제작한다. 과거에는 정초부터 농악을 치면서 가가호호 지신밟기 및 건립을 하여 당산제 비용과 볏짚을 해결했지만 현재는 김제시에서 지원하는 당산제 자금으로 구입한다. 줄은 마을 뒷산의 소나무 가지시렁 삼아 걸쳐 놓고 잡아당기면서 제작한다. 줄꼬기에는 일곱 명이 한 조가 된
다. 세 명이 한 가닥씩 잡고 줄을 꼬면, 다른 세 명은 그 옆에서 볏짚을 한 주먹씩 추려 메긴다. 나머지 한 명은 소나무 가지에 걸쳐 놓은 줄을 끌어당기며 줄의 길이를 가늠하고 팽팽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방식으로 3조가 동시에 줄을 제작한다.

줄은 암수로 나뉘는 쌍줄이다. 먼저 세 갈래씩 꼬아 가닥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가닥이 여섯 개며, 길이는 30m쯤 된다. 이어서 암줄과 수줄을 제작한다. 세 가닥을 다시 하나의 암줄과 수줄로 들이는 과정이다. 이때는 줄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인원이 힘을 합해 줄이 엉키지 않도록 같은 방향으로 돌리면서 줄을 하나씩 완성한다. 줄을 디리는 마지막 과정은 암줄과 수줄을 상징하는 ‘고’ 제작이다. 고는 줄 머리를 중심으로 5m 정도를 새끼줄로 촘촘히 감고, 이 부분을 둥그렇게 원형으로 만들어 제작한다. 수줄은 암줄에 비해고의 형태를 상대적으로 길쭉하게 만들고, 암줄은 수줄에 비해 둥그렇고 크게 만든다. 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고의 크기를 두고 음담패설을 섞어가며 옥신각신한다. 암줄고의 둘레가 “너무 작다”, “고가 작으면 약 먹으면 된다”, “거기에 참기름을 바르면 된다”, “큰 거보다 작은 게 낫다’는 등이 그것이다. 고 만들기를 끝으로 줄 제작은 마무리 되며, 줄의 굵기는 50㎝ 정도이다.

다. 풍물패 판굿 현재 입석줄다리기는 주민들이 주도 하지만 일부 공식행사는 김제시가 주관한다. 정월대보름날 오후에는 풍물패가 행사장에 도착하여 길놀이를 시작함으로써 당산제를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간다. 오후 5시쯤에 줄다리기할 줄을 암수 고가 마주보는 모양으로 광장에 늘어놓고, 풍물패는 줄을 앞뒤로 돌며 줄굿을 친다. 해질 무렵이 되면 풍물패의 판굿이 시작된다. 판굿 진행을 가락 명칭으로 개략하면 오채 우질굿(늦은 질굿, 빠른 질굿), 빠른 좌질굿, 풍년굿, 양산도, 삼채, 매도지, 휘모리, 오방진(동살풀이, 자진오방진, 삼채, 휘모리), 호허굿, 다루치기, 홑삼채, 매도지, 삼채가락 순이다.

라. 고놀이와 줄다리기 보름달이 떠오르면 남자들이 수줄을 어깨에 메고, 여자들은 암줄을 멘다. 이 상태에서 고놀이는 시작된다. 다만 암줄 머리에 있는 10여 명은 고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남자들이 여장을 하고 지원한다. 고놀이는 암줄과 수줄이 줄혼례를 위해 결합을 시도하며 즐기는 과정을 말한다. 수차례 결합을 시도하지만 암줄 고가 받아주지 않아서 번번이 실패하는 놀이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도 당연히 육담과 음담패설이 난무한다. 이윽고 수줄 고가 암줄에 삽입되면 어른 키만한 말목이 비녀처럼 꽂히면서 결합이 이루어지고, 징소리를 신호로 곧바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줄다리기는 세 판을 겨루며, 여성들의 승리로 귀결된다. 원래의 장소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에는 그곳이 고갯길의 오르막이어서 암줄은 아래쪽, 수줄은 위쪽에 각각 자리함으로써 암줄이 유리하다고 한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들은 여자편이 되고, 줄다리기 과정에서 싸리나무 회초리를 든 할머니들이 남자들의 손등을 때리거나 수줄을 잡고 흔드는등 암줄의 승리를 짐짓 유도하였다고 한다. 줄다리기 할 때에는 줄이 끊어져야 좋다는 속설도 전한다. 이 때문에 심지어 줄을 잡아당길 때 몰래 낫이나 칼로 줄을 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마. 당산 제사 줄다리기가 끝나면 수줄은 행사장 왼쪽에 새로 세운 입석으로 이동하여 줄감기를 하며, 동시에 암줄은 200여 m 떨어진 마을 어귀로 이동하여 주민 서너 명이 줄꼬리부터 입석에 줄을 감아올린다. 이를 ‘당산에 옷입힌다’고 한다. 줄감기 후에 제상이 차려지고, 당산 제사가 이어진다. 과거에는 깨끗하고 궂은 데 가지 않고 집안에 초상이나 임신부가 없는사람 가운데에서 제관을 선정하였으나 지금은 통장이 제주가 된다. 제사는 유식(儒式)으로 분향재배-강신재배-독축-계반삽시-시복반-헌주-음복-철상 순으로 진행된다. 제사가 끝나면 부녀자들이 잔에 술을 부어 입석에 헌주하고 비손하는 의식을 행한다. 입석 당산제 축문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
乙酉年甲子朔正月十五日戌寅 村長 (宋在九) 敢昭告于
立石堂山 土地之神 伏以本洞一村
今年運數 家家泰平人人安康 五穀登豊 六畜繁殖
祈願于神 謹以淸酌 脯果祗薦 于神
尙饗

과거 어느 해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볏짚을 구할 수 없어서 줄다리기를 못했으며 그해에 괴질이 들어 젊은 사람 일고여덟명이 죽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볏짚을 구해 줄을 당기고 입석에 옷을 입혔다고 한다. 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출장서장이 줄다리기를 못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정월대보름 직후에 출장서장이 주당을 맞아 갑자기 병을 얻었다. 게다가 출장서장 꿈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네 이놈! 네가 왜 내 옷을 못 입게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선몽을 했다. 그 꿈에 놀란 서장이 줄을 꼬게 허락해 그해 2월 볏짚을 구해 입석에 옷을 입혔다고 한다.

참고문헌

전남의 입석과 조탑에 관한 고찰 (표인주, 비교민속학 12, 비교민속학회, 1995), 충북의 민속문화 (이창식, 충청북도·忠北學硏究所, 2001), 전라북도 마을지킴이ㆍ정악 (전라북도, 2004), 한국의 마을신앙 상ㆍ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경기지역 선돌유적과 그 성격 (하문식, 고문화 72,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08)

김제월촌입석

김제월촌입석
한자명

金堤月村立石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신체

집필자 김성식(金盛湜)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 입석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신체(神體)인 당산할머니 입석(선돌). 1974년 9월 27일에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입석마을은 김제 시내에서 벽골제 가는 방향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마을은 본래 김제군 월산 지역에 속하였으며, 마을 어귀에 큰 돌이 서 있어서 선돌 또는 입석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산리·동두리·제남리의 각 일부와 대촌면의 진가리·반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입석리라 불렀다. 1990년에는 김제군이 김제시로 승격됨에 따라 입석동으로 구역 명칭이 바뀌었다. 입석마을은 현재 2010년 7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이 마을의 입석은 도로 맞은편 길가에 세워져 있다. 네모꼴 석주(石柱) 형태의 화강암으로 된 이 입석은 높이 210㎝, 둘레 62㎝이다. 세워진 연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만 벽골제를 쌓은 뒤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어떤 장수가 벽골제 돌을 옮겨 세운 장승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주민들은 이 입석을 당산신으로 모시면서 ‘할머니당산’ 또는 ‘미륵님’이라고 부른다.

본래 선돌이 있는 위치가 길가에 접해 있다 보니 줄다리기를 할 경우 자동차의 잦은 왕래로 인해 항상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1991년 12월 김제시에서 이곳으로부터 200여 m 위쪽으로 부지를 매입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현재의 입석과 쌍을 이루어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고 옛 민속을 오래도록 보존한다는 취지로 별도의 입석과 제단, 기념비문을 새긴 기념비, 팔각정자 등을 갖추었다. 이 공원에서 줄다리기 행사가 진행되며, 주민들은 이곳을 ‘행사장’이라고 부른다.

고고학에서는 입석의 유래를 신석기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선돌(menhir), 즉 거석(巨石)문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민속신앙적 측면에서의 입석은 형태와 기능이 훨씬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상물로서 관련된 민속의례가 수반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입석은 대부분 자연석 돌기둥, 즉 석주 형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하는 모습으로의 변형을 위해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입석의 기능은 크게 비보 역할을 하는 풍수적 기능과 마을공동체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종교적 기능으로 구분된다. 입석의 풍수적 기능은 외부로부터 오는 나쁜 기운을 차단하여 마을을 안전하게 방어, 보호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기능을 목적으로는 수구(水口)맥이, 수살(水殺)맥이, 화재맥이, 돛대바위, 성기(性器)바위 등이 있다.

또 입석은 종교적 기능을 지닌다. 종교적 기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체, 신격(神格), 의례(儀禮)가 필수적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입석은 곧 신체가 된다. 신격은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 ‘미륵’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의례는 개인신앙 차원에서 행하는 의례와 주민 일체가 합심으로 행하는 공동체신앙의례로 나뉜다. 이 가운데 마을공동체신앙은 당산제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매년 마을별로 정해진 날짜에 맞춰 제관 선정과 제비 마련에서부터 제물 구입 및 장만, 금기 엄수, 관련 의례 수행, 이튿날의 파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절차가 입석을 중심으로 종교적 엄숙함과 축제적 신명풀이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김제 입석줄다리기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내용

입석 당산제는 줄다리기와 병행한다는 특성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명칭도 당산제보다 줄다리기가 강조된 ‘입석줄다리기’라고 부른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줄다리기 주요 과정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입석 묵은 줄 제거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입석에 감겨 있는 묵은 줄을 제거한다. 일 년 가운데 입석의 신체가 드러나는 시간은 이날 하루뿐이다. 제거한 줄은 태운다. 과거에는 이 묵은 줄이 피부병에 좋다고 하여 주민들이 다투어 가져갔다고 한다.

나. 줄 제작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볏짚으로 줄을 제작한다. 과거에는 정초부터 농악을 치면서 가가호호 지신밟기 및 건립을 하여 당산제 비용과 볏짚을 해결했지만 현재는 김제시에서 지원하는 당산제 자금으로 구입한다. 줄은 마을 뒷산의 소나무 가지를 시렁 삼아 걸쳐 놓고 잡아당기면서 제작한다. 줄꼬기에는 일곱 명이 한 조가 된
다. 세 명이 한 가닥씩 잡고 줄을 꼬면, 다른 세 명은 그 옆에서 볏짚을 한 주먹씩 추려 메긴다. 나머지 한 명은 소나무 가지에 걸쳐 놓은 줄을 끌어당기며 줄의 길이를 가늠하고 팽팽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방식으로 3조가 동시에 줄을 제작한다.

줄은 암수로 나뉘는 쌍줄이다. 먼저 세 갈래씩 꼬아 가닥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가닥이 여섯 개며, 길이는 30m쯤 된다. 이어서 암줄과 수줄을 제작한다. 세 가닥을 다시 하나의 암줄과 수줄로 들이는 과정이다. 이때는 줄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인원이 힘을 합해 줄이 엉키지 않도록 같은 방향으로 돌리면서 줄을 하나씩 완성한다. 줄을 디리는 마지막 과정은 암줄과 수줄을 상징하는 ‘고’ 제작이다. 고는 줄 머리를 중심으로 5m 정도를 새끼줄로 촘촘히 감고, 이 부분을 둥그렇게 원형으로 만들어 제작한다. 수줄은 암줄에 비해고의 형태를 상대적으로 길쭉하게 만들고, 암줄은 수줄에 비해 둥그렇고 크게 만든다. 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고의 크기를 두고 음담패설을 섞어가며 옥신각신한다. 암줄고의 둘레가 “너무 작다”, “고가 작으면 약 먹으면 된다”, “거기에 참기름을 바르면 된다”, “큰 거보다 작은 게 낫다’는 등이 그것이다. 고 만들기를 끝으로 줄 제작은 마무리 되며, 줄의 굵기는 50㎝ 정도이다.

다. 풍물패 판굿 현재 입석줄다리기는 주민들이 주도 하지만 일부 공식행사는 김제시가 주관한다. 정월대보름날 오후에는 풍물패가 행사장에 도착하여 길놀이를 시작함으로써 당산제를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간다. 오후 5시쯤에 줄다리기할 줄을 암수 고가 마주보는 모양으로 광장에 늘어놓고, 풍물패는 줄을 앞뒤로 돌며 줄굿을 친다. 해질 무렵이 되면 풍물패의 판굿이 시작된다. 판굿 진행을 가락 명칭으로 개략하면 오채 우질굿(늦은 질굿, 빠른 질굿), 빠른 좌질굿, 풍년굿, 양산도, 삼채, 매도지, 휘모리, 오방진(동살풀이, 자진오방진, 삼채, 휘모리), 호허굿, 다루치기, 홑삼채, 매도지, 삼채가락 순이다.

라. 고놀이와 줄다리기 보름달이 떠오르면 남자들이 수줄을 어깨에 메고, 여자들은 암줄을 멘다. 이 상태에서 고놀이는 시작된다. 다만 암줄 머리에 있는 10여 명은 고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남자들이 여장을 하고 지원한다. 고놀이는 암줄과 수줄이 줄혼례를 위해 결합을 시도하며 즐기는 과정을 말한다. 수차례 결합을 시도하지만 암줄 고가 받아주지 않아서 번번이 실패하는 놀이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도 당연히 육담과 음담패설이 난무한다. 이윽고 수줄 고가 암줄에 삽입되면 어른 키만한 말목이 비녀처럼 꽂히면서 결합이 이루어지고, 징소리를 신호로 곧바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줄다리기는 세 판을 겨루며, 여성들의 승리로 귀결된다. 원래의 장소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에는 그곳이 고갯길의 오르막이어서 암줄은 아래쪽, 수줄은 위쪽에 각각 자리함으로써 암줄이 유리하다고 한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들은 여자편이 되고, 줄다리기 과정에서 싸리나무 회초리를 든 할머니들이 남자들의 손등을 때리거나 수줄을 잡고 흔드는등 암줄의 승리를 짐짓 유도하였다고 한다. 줄다리기 할 때에는 줄이 끊어져야 좋다는 속설도 전한다. 이 때문에 심지어 줄을 잡아당길 때 몰래 낫이나 칼로 줄을 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마. 당산 제사 줄다리기가 끝나면 수줄은 행사장 왼쪽에 새로 세운 입석으로 이동하여 줄감기를 하며, 동시에 암줄은 200여 m 떨어진 마을 어귀로 이동하여 주민 서너 명이 줄꼬리부터 입석에 줄을 감아올린다. 이를 ‘당산에 옷입힌다’고 한다. 줄감기 후에 제상이 차려지고, 당산 제사가 이어진다. 과거에는 깨끗하고 궂은 데 가지 않고 집안에 초상이나 임신부가 없는사람 가운데에서 제관을 선정하였으나 지금은 통장이 제주가 된다. 제사는 유식(儒式)으로 분향재배-강신재배-독축-계반삽시-철시복반-헌주-음복-철상 순으로 진행된다. 제사가 끝나면 부녀자들이 잔에 술을 부어 입석에 헌주하고 비손하는 의식을 행한다. 입석 당산제 축문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
乙酉年甲子朔正月十五日戌寅 村長 (宋在九) 敢昭告于
立石堂山 土地之神 伏以本洞一村
今年運數 家家泰平人人安康 五穀登豊 六畜繁殖
祈願于神 謹以淸酌 脯果祗薦 于神
尙饗

과거 어느 해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볏짚을 구할 수 없어서 줄다리기를 못했으며 그해에 괴질이 들어 젊은 사람 일고여덟명이 죽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볏짚을 구해 줄을 당기고 입석에 옷을 입혔다고 한다. 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출장서장이 줄다리기를 못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정월대보름 직후에 출장서장이 주당을 맞아 갑자기 병을 얻었다. 게다가 출장서장 꿈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네 이놈! 네가 왜 내 옷을 못 입게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선몽을 했다. 그 꿈에 놀란 서장이 줄을 꼬게 허락해 그해 2월 볏짚을 구해 입석에 옷을 입혔다고 한다.

참고문헌

전남의 입석과 조탑에 관한 고찰 (표인주, 비교민속학 12, 비교민속학회, 1995)
충북의 민속문화 (이창식, 충청북도·忠北學硏究所, 2001)
전라북도 마을지킴이ㆍ정악 (전라북도, 2004)
한국의 마을신앙 상ㆍ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경기지역 선돌유적과 그 성격 (하문식, 고문화 72,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