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화

김금화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인명

집필자 김인회(金仁會)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 호로 서해안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기·예능 보유자.

내용

1985년 2월 21일에 보유자로 지정받은 김금화(金錦花, 여)는 1931년에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 ‘안바꾸니’[朴厚里]에서 가난하게 살던 농부 김녕 김씨 택근과 이음전 부부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7세 때 황해도 옹진군(현재 인천시 옹진군) 흥미면 괴암리로 이사했고, 12세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17세 때 당시 큰 무당이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내림굿을 받고 굿 절차의 기본과 무당의 마음가짐, 처신하는 법 등 무당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적인 내용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관무당’과 방수덕 등 당시의 현역 무당들을 따라다니면서 굿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19세가 되던 해 정월에 옹진군 용호도의 대동굿을 의뢰받고 6박 7일에 걸친 큰 굿을 처음 도맡아 성공적으로 주재한 후부터 ‘당일만신’ ‘홍길동만신’ 등의 별호로 불릴 정도로 전문 무당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으로 피란하여 만석동과 부평동 등지를 전전하다가 1966년 서울 노량진, 1970년 석관동으로 이사한 후 얼마 있다가 다시 이문동으로 이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7년 10월 13일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연평노래’와 배연신굿 공연으로 개인상을 받으면서 신문•방송 등 언론에 처음 소개됐다. 김금화는 무속을 미신으로 취급하고 타파 대상으로 삼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당이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한 예로, 이문동으로 이사한 후 집에서 굿을 하던 중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함으로써 부득이 굿을 중단하고 북한산으로 자리를 옮겨서 굿 일정을 마쳐야만 했다. 그의 첫 번째 만수대탁굿 고난이었다.

전통 강신무로서의 김금화에 대한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황해도를 비롯한 서해안 지방의 주요 전통 무속의례인 철무리굿, 배연신굿, 대동굿, 내림굿, 진오기굿 등의 의례 절차와 기•예능의 내용은 물론 해박한 지식과 오랜 경험 및 뛰어난 기량을 겸비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많은 신딸단골을 거느리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큰무당으로서의 인품을 지녔다.

둘째로 1970년대 말부터 임석재, 로저 자넬리(Roger L. Janelli, 인디애나주립대 민속학 교수), 조자룡, 임동권, 이두현, 장주근, 최종민, 김인회, 황루시, 김수남 같은 한국무속 연구 전문가들의 현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자료를 제공하는 가운데 자신이 지닌 무속의례 관련 기•예능의 무형문화로서의 가치에 대해 일찍부터 자각하기 시작했다.

셋째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속 관련 기•예능 보유자 중 가장 많이 해외 초청 공연을 했다. 1982년 5월부터 7월까지 한미수교100주년기념 문화사절단으로 초청받아 미국, 녹스빌 국제박람회장, 로스앤젤레스 박물관, 뉴욕 한국문화원,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에서 3개월에 걸친 순회공연을 했다. 이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스페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중국, 이탈리아, 일본 등 외국의 대학, 박물관, 방송국, 국제회의, 국제문화축제행사 등에 초청받아 순회공연과 강의 등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굿이 지닌 종교적•예술적•문화적 내용과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레비 스트로스가 한국에 왔을 때 특별히 참관한 굿이 김금화의 만수대탁굿이었다. 국내에서의 초청공연, 학술강연 및 강의, 굿 시연 등의 활동 경력은 셀 수 없이 많다.

넷째로 무속 관련 지식과 기예의 방대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1995년에 문음사가 출판한 『김금화의 무가집-거므나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김금화는 앞에서 열거한 여섯 가지 굿 각각의 의미와 유래, 준비과정, 진행순서, 굿의 내용과 무가 가사 등을 현장성 있게 자세히 서술해 놓았다. 이 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굿에 사용되는 모든 장식과 도구에 대한 설명, 굿에서 사용되고 불리는 모든 노래가사와 음악가락 및 장단을 악보와 함께 실었다. 이 책 말고도 김금화는『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푸른숲, 1995), 『비단꽃 넘세-나라만신 김금화 자서전』(생각의나무, 2007) 등의 저서를 냈다. 김금화의 책이 나오기 이전의 무속 관련 자료집들은 모두 무속인이 아닌 학자나 전문 연구자들이 관찰•조사하고 채록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다섯째로 19세 때 첫 신딸을 맞은 이래 평생 동안 수많은 신딸과 신아들을 두었다. 김금화에게는 특히 외국인을 포함하여 국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딸이 많다.

여섯째로 2004년 3월 23일 강화도에 서해안풍어제 전수관 금화당(錦花堂)을 건립하고 ‘사단법인 서해안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존회’를 발족시켰다.

참고문헌

한국의 굿 10-옹진 배연신굿 (김수남·황루시, 열화당, 1986), 한국무속사상연구 (김인회, 집문당, 1988), 한국민속대사전 1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김금화의 무가집-거므나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 (김금화, 문음사, 1995), 황루시의 우리무당 이야기 (황루시, 도서출판풀빛, 2000), 한국의 굿 (하효길 외, 도서출판 民俗苑, 2002), 비단꽃 넘세-나라만신 김금화 자서전 (김금화, 생각의나무, 2007)

김금화

김금화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인명

집필자 김인회(金仁會)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 호로 서해안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기·예능 보유자.

내용

1985년 2월 21일에 보유자로 지정받은 김금화(金錦花, 여)는 1931년에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 ‘안바꾸니’[朴厚里]에서 가난하게 살던 농부 김녕 김씨 택근과 이음전 부부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7세 때 황해도 옹진군(현재 인천시 옹진군) 흥미면 괴암리로 이사했고, 12세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17세 때 당시 큰 무당이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내림굿을 받고 굿 절차의 기본과 무당의 마음가짐, 처신하는 법 등 무당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적인 내용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관무당’과 방수덕 등 당시의 현역 무당들을 따라다니면서 굿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19세가 되던 해 정월에 옹진군 용호도의 대동굿을 의뢰받고 6박 7일에 걸친 큰 굿을 처음 도맡아 성공적으로 주재한 후부터 ‘당일만신’ ‘홍길동만신’ 등의 별호로 불릴 정도로 전문 무당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으로 피란하여 만석동과 부평동 등지를 전전하다가 1966년 서울 노량진, 1970년 석관동으로 이사한 후 얼마 있다가 다시 이문동으로 이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7년 10월 13일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연평노래’와 배연신굿 공연으로 개인상을 받으면서 신문•방송 등 언론에 처음 소개됐다. 김금화는 무속을 미신으로 취급하고 타파 대상으로 삼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당이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한 예로, 이문동으로 이사한 후 집에서 굿을 하던 중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함으로써 부득이 굿을 중단하고 북한산으로 자리를 옮겨서 굿 일정을 마쳐야만 했다. 그의 첫 번째 만수대탁굿 고난이었다.

전통 강신무로서의 김금화에 대한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황해도를 비롯한 서해안 지방의 주요 전통 무속의례인 철무리굿, 배연신굿, 대동굿, 내림굿, 진오기굿 등의 의례 절차와 기•예능의 내용은 물론 해박한 지식과 오랜 경험 및 뛰어난 기량을 겸비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많은 신딸과 단골을 거느리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큰무당으로서의 인품을 지녔다.

둘째로 1970년대 말부터 임석재, 로저 자넬리(Roger L. Janelli, 인디애나주립대 민속학 교수), 조자룡, 임동권, 이두현, 장주근, 최종민, 김인회, 황루시, 김수남 같은 한국무속 연구 전문가들의 현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자료를 제공하는 가운데 자신이 지닌 무속의례 관련 기•예능의 무형문화로서의 가치에 대해 일찍부터 자각하기 시작했다.

셋째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속 관련 기•예능 보유자 중 가장 많이 해외 초청 공연을 했다. 1982년 5월부터 7월까지 한미수교100주년기념 문화사절단으로 초청받아 미국, 녹스빌 국제박람회장, 로스앤젤레스 박물관, 뉴욕 한국문화원,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에서 3개월에 걸친 순회공연을 했다. 이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스페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중국, 이탈리아, 일본 등 외국의 대학, 박물관, 방송국, 국제회의, 국제문화축제행사 등에 초청받아 순회공연과 강의 등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굿이 지닌 종교적•예술적•문화적 내용과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레비 스트로스가 한국에 왔을 때 특별히 참관한 굿이 김금화의 만수대탁굿이었다. 국내에서의 초청공연, 학술강연 및 강의, 굿 시연 등의 활동 경력은 셀 수 없이 많다.

넷째로 무속 관련 지식과 기예의 방대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1995년에 문음사가 출판한 『김금화의 무가집-거므나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김금화는 앞에서 열거한 여섯 가지 굿 각각의 의미와 유래, 준비과정, 진행순서, 굿의 내용과 무가 가사 등을 현장성 있게 자세히 서술해 놓았다. 이 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굿에 사용되는 모든 장식과 도구에 대한 설명, 굿에서 사용되고 불리는 모든 노래가사와 음악가락 및 장단을 악보와 함께 실었다. 이 책 말고도 김금화는『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푸른숲, 1995), 『비단꽃 넘세-나라만신 김금화 자서전』(생각의나무, 2007) 등의 저서를 냈다. 김금화의 책이 나오기 이전의 무속 관련 자료집들은 모두 무속인이 아닌 학자나 전문 연구자들이 관찰•조사하고 채록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다섯째로 19세 때 첫 신딸을 맞은 이래 평생 동안 수많은 신딸과 신아들을 두었다. 김금화에게는 특히 외국인을 포함하여 국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딸이 많다.

여섯째로 2004년 3월 23일 강화도에 서해안풍어제 전수관 금화당(錦花堂)을 건립하고 ‘사단법인 서해안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존회’를 발족시켰다.

참고문헌

한국의 굿 10-옹진 배연신굿 (김수남·황루시, 열화당, 1986)
한국무속사상연구 (김인회, 집문당, 1988)
한국민속대사전 1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김금화의 무가집-거므나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 (김금화, 문음사, 1995)
황루시의 우리무당 이야기 (황루시, 도서출판풀빛, 2000)
한국의 굿 (하효길 외, 도서출판 民俗苑, 2002)
비단꽃 넘세-나라만신 김금화 자서전 (김금화, 생각의나무,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