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화혼식(佛敎花婚式)

불교화혼식

한자명

佛敎花婚式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불교신자들이 사찰 등에서 불교식으로 행하는 혼례.

역사

현재 전승되는 불교식 혼례는 근대 초기에 처음 만들어져 수정・보완된 것이다. 불교 의례의 생활화에 관심이 많던 불교사학자 이능화李能和가 1917년 『의정불식화혼법擬定佛式花婚法』이라는 불교 혼례를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불교계에 보급되었다. 이듬해 이 화혼법에 따라 경성의 각황사覺皇寺에서 치른 최초의 불교혼례에는 1천 명의 관람객이 몰렸고, 1927년에 ‘화혼식’이라는 찬불가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당시의 월간지 『불교』에서는 불교계 소식을 전하는 난에 전국에서 치르는 불교 혼례를 계속 소개하는 등 1920~1930년대에 불교 혼례가 어느 정도 활기를 띠고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927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인 승려 백용성白龍城이 『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을 펴내면서 불교 혼례의 유래와 함께 수정한 내용을 실었고, 1935년에는 불교 의례를 근대적으로 집대성한 승려 안진호安震湖가 『석문의범釋門儀範』에 다시 수정・보완한 혼례내용을 제시하였다. 1917년─1927년─1935년에 이르기까지 10년 남짓의 간격을 두고 근대불교 선각자들에 의해 지속적인 첨삭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다가 서구식 혼례가 확산되고 전문예식장이 등장하면서 불교 혼례는 점차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되었고, 산업화・서구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1960년대 이후부터는 전통혼례 또한 서구식 혼례에 자리를 내주면서 혼례풍속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마을마다 예식장이 들어서지 않았던 1980년대까지 전통혼례는 물론 불교식 혼례를 치르는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불교 혼례가 남아있던 1970년대 무렵 속리산 법주사 아랫마을의 양상을 보면, 불교 혼례의 세부지침을 따르기보다는 불전에서 승려의 주례로 의식을 치르는 데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불교 혼례에서는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게 되어 있지만, 의식용 꽃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대였기에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례복도 1960~1970년대까지는 일반한복을 입다가 이후부터 신랑은 양복, 신부는 드레스를 입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1990년대 무렵 예식장에서 기계처럼 부부를 찍어내는 혼인문화에 싫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다시 전통혼례를 찾는 등 혼례의 다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불교 혼례와 함께 사찰 경내를 혼례장소로 개방하는 추세도 늘고 있다. 또, 사찰에서는 다문화가정 등을 위해 무료 합동전통혼례를 불교식으로 치러주는가 하면, 불교적 가르침으로 가정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있도록 혼인준비를 위한 강좌도 개최하고 있다.

내용

이능화는 『의정불식화혼법』을 만들 때 석가모니본생담인 선혜선인善慧仙人의 설화를 비롯해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위덕태자와 묘덕동녀가 혼인하여 부처님에게 예배드린 설화, 태국의 불교 혼례 등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불식화혼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주례법사가 신랑・신부를 인도하여 부처를 향해 꿇어앉게하며, 신랑・신부의 양옆에는 각기 들러리에 해당하는 배도陪導가 따른다. ②신랑・신부는 오분향五分香을 각각 사른다. ③주례법사가 삼귀의三歸依를 부르고, 신랑・신부도 따라 부른 뒤 부처님에게 삼배한다. ④주례법사가 혼인을 고하며 부처님에게 증명을 청하는 설송說頌을 범음梵音으로 외운다. ⑤신랑이 다섯 송이의 꽃을 부처님에게 바치고, 신부가 두 송이의 꽃을 신랑의 손을 거쳐 부처님에게 바치면 주례법사가 모두 불단의 꽃병에 꽂고 나서 신랑・신부는 부처님에게 삼배한다. ⑥주례는 신부・신랑에게 각기 혼인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묻고, 신부와 신랑은 이에 답함으로써 혼인서약을 한다. ⑦신랑이 신부에게 화관花冠을 씌워주고 홍상紅裳을 입혀준 다음 신랑・신부가 부처님에게 삼배한다. ⑧대중이 다함께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사홍서원四弘誓願・찬불게讚佛偈를 읊는다.

내용 가운데 특히 오늘날의 혼인서약에 해당하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부부가 서로 지켜야 할 덕목을 보면, 봉건사회의 의식에 깊이 젖어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게 한다. 신부에게는 남편과 부모・스승・친족에 대한 의무, 가난한 이에 대한 자비, 삼세공불三世供佛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인간의 덕목을 요구하였지만, 신랑에게는 다른 여자를 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1927년에 백용성이 발표한 불교 혼례에서 주목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에게 혼인을 고하고 증명을 청하는 절차 대신에 계戒를 받도록 함으로써 혼례를 계기로 불자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다룬 점이다. 둘째, 의례 속에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의 혼인서약이 봉건사회의 가부장적 남녀차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면 남녀 구별없이 부부간의 도리와 맹세를 지키는 내용으로 구성하였고, 신부의 꽃은 신랑의 손을 거쳐 부처님에게 바치도록 하던 것을 신부가 직접 바치도록 함으로써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인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1935년에 안진호가 『석문의범』에 수정 제시한 화혼의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구식혼례가 확산되면서 불교 혼례에도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화동・화녀의 등장, 신랑・신부에 대한 소개, 예물교환에 해당하는 신물교환, 주례사에 해당하는 유고諭告, 내빈축사, 축전낭독 등이 등장함으로써 의례의 절차와 요소가 현대화되고 다양해졌다. 둘째, 전반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고 상세한 설명으로 실용적 지침이 되도록 노력했다는 점이다. 예물 교환에서 반지보다 염주를 권장하고, 혼례복은 불교 예복이 나올 때까지 일반 한복으로 하되 신랑은 양복도 무방하도록 열어놓았으며, 헌화에 쓰는 꽃은 조화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또 불전에는 간략하게 반배례半拜禮하도록 하고, 주례사에 해당하는 유고를 생략해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셋째, 음악과 이벤트 요소를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화동・화녀가 꽃을 흩뿌리며 식장에 들어오고, 내빈착석과 신랑・신부 입장 및 불전에 배례할 때마다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울리게 하며, 개식할 때 종을 다섯 번 치거나 폭죽을 울리도록 함으로써 축제 분위기와 장엄함을 돋보이도록 하였다.

현재 불교 혼례는 이러한 안진호의 『석문의범』을 참조하는 가운데 사찰마다 다양하게 치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통일법요집』에 소개된 혼인의식을 보면 신물 교환과 내빈축사・축사낭독을 없애고 혼인서약을 남녀 구분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대체한 점을 제외하고 『석문의범』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특징 및 의의

불교 혼례의 가장 큰 특징은 신랑과 신부가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으로 부부의 전생 인연과 구도의 다짐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석가모니의 전생을 담은 〈연등불수기〉 설화 내용 가운데 선혜선인이 연등불燃燈佛에게 바칠 연꽃을 애타게 구하던 중 구리선녀俱夷仙女와 내생의 혼인언약을 맺고 연꽃공양을 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선혜선인은 자신의 다섯 송이와 구리선녀의 두 송이 꽃을 연등불에게 바치고 아득한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화혼식花婚式이라 부르며, 부처님에게 고하는 고불문告佛文에서도 “두 사람은 부처님의 옛 고사를 본받아 위없는 도를 성취하기를 다짐하였고, 일곱 송이 꽃을 바쳐 영원한 인연을 약속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담게 된다.

이처럼 신랑・신부가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고 삼귀의・반야심경・사홍서원 등을 염송하는 가운데 혼례를 치르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혼례를 올리는 부부는 단순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전생의 깊은 인연으로 맺어지게 된 것임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둘째, 석가모니의 행적을 본받는 가운데 부처를 지향하는 중생의 뜻을 다짐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연등불수기〉 설화의 선혜선인처럼 전생의 인연을 현세에서 꽃피우며 지극한 불심으로 부처를 이룰 것을 이끄는 의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석문의범(안진호, 보련각, 1968), 조선불교통사-근대(이능화, 이병두 역, 혜안, 2003), 조선여속고(이능화, 김상억 역, 동문선, 1990), 통일법요집(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조계종출판사, 2004), 한국불교 의례자료총서4(박세민, 삼성암, 1993),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

불교화혼식

불교화혼식
한자명

佛敎花婚式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불교신자들이 사찰 등에서 불교식으로 행하는 혼례.

역사

현재 전승되는 불교식 혼례는 근대 초기에 처음 만들어져 수정・보완된 것이다. 불교 의례의 생활화에 관심이 많던 불교사학자 이능화李能和가 1917년 『의정불식화혼법擬定佛式花婚法』이라는 불교 혼례를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불교계에 보급되었다. 이듬해 이 화혼법에 따라 경성의 각황사覺皇寺에서 치른 최초의 불교혼례에는 1천 명의 관람객이 몰렸고, 1927년에 ‘화혼식’이라는 찬불가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당시의 월간지 『불교』에서는 불교계 소식을 전하는 난에 전국에서 치르는 불교 혼례를 계속 소개하는 등 1920~1930년대에 불교 혼례가 어느 정도 활기를 띠고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927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인 승려 백용성白龍城이 『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을 펴내면서 불교 혼례의 유래와 함께 수정한 내용을 실었고, 1935년에는 불교 의례를 근대적으로 집대성한 승려 안진호安震湖가 『석문의범釋門儀範』에 다시 수정・보완한 혼례내용을 제시하였다. 1917년─1927년─1935년에 이르기까지 10년 남짓의 간격을 두고 근대불교 선각자들에 의해 지속적인 첨삭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다가 서구식 혼례가 확산되고 전문예식장이 등장하면서 불교 혼례는 점차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되었고, 산업화・서구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1960년대 이후부터는 전통혼례 또한 서구식 혼례에 자리를 내주면서 혼례풍속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마을마다 예식장이 들어서지 않았던 1980년대까지 전통혼례는 물론 불교식 혼례를 치르는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불교 혼례가 남아있던 1970년대 무렵 속리산 법주사 아랫마을의 양상을 보면, 불교 혼례의 세부지침을 따르기보다는 불전에서 승려의 주례로 의식을 치르는 데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불교 혼례에서는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게 되어 있지만, 의식용 꽃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대였기에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례복도 1960~1970년대까지는 일반한복을 입다가 이후부터 신랑은 양복, 신부는 드레스를 입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1990년대 무렵 예식장에서 기계처럼 부부를 찍어내는 혼인문화에 싫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다시 전통혼례를 찾는 등 혼례의 다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불교 혼례와 함께 사찰 경내를 혼례장소로 개방하는 추세도 늘고 있다. 또, 사찰에서는 다문화가정 등을 위해 무료 합동전통혼례를 불교식으로 치러주는가 하면, 불교적 가르침으로 가정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있도록 혼인준비를 위한 강좌도 개최하고 있다.

내용

이능화는 『의정불식화혼법』을 만들 때 석가모니본생담인 선혜선인善慧仙人의 설화를 비롯해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위덕태자와 묘덕동녀가 혼인하여 부처님에게 예배드린 설화, 태국의 불교 혼례 등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불식화혼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주례법사가 신랑・신부를 인도하여 부처를 향해 꿇어앉게하며, 신랑・신부의 양옆에는 각기 들러리에 해당하는 배도陪導가 따른다. ②신랑・신부는 오분향五分香을 각각 사른다. ③주례법사가 삼귀의三歸依를 부르고, 신랑・신부도 따라 부른 뒤 부처님에게 삼배한다. ④주례법사가 혼인을 고하며 부처님에게 증명을 청하는 설송說頌을 범음梵音으로 외운다. ⑤신랑이 다섯 송이의 꽃을 부처님에게 바치고, 신부가 두 송이의 꽃을 신랑의 손을 거쳐 부처님에게 바치면 주례법사가 모두 불단의 꽃병에 꽂고 나서 신랑・신부는 부처님에게 삼배한다. ⑥주례는 신부・신랑에게 각기 혼인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묻고, 신부와 신랑은 이에 답함으로써 혼인서약을 한다. ⑦신랑이 신부에게 화관花冠을 씌워주고 홍상紅裳을 입혀준 다음 신랑・신부가 부처님에게 삼배한다. ⑧대중이 다함께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사홍서원四弘誓願・찬불게讚佛偈를 읊는다.

내용 가운데 특히 오늘날의 혼인서약에 해당하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부부가 서로 지켜야 할 덕목을 보면, 봉건사회의 의식에 깊이 젖어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게 한다. 신부에게는 남편과 부모・스승・친족에 대한 의무, 가난한 이에 대한 자비, 삼세공불三世供佛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인간의 덕목을 요구하였지만, 신랑에게는 다른 여자를 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1927년에 백용성이 발표한 불교 혼례에서 주목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에게 혼인을 고하고 증명을 청하는 절차 대신에 계戒를 받도록 함으로써 혼례를 계기로 불자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다룬 점이다. 둘째, 의례 속에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의 혼인서약이 봉건사회의 가부장적 남녀차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면 남녀 구별없이 부부간의 도리와 맹세를 지키는 내용으로 구성하였고, 신부의 꽃은 신랑의 손을 거쳐 부처님에게 바치도록 하던 것을 신부가 직접 바치도록 함으로써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인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1935년에 안진호가 『석문의범』에 수정 제시한 화혼의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구식혼례가 확산되면서 불교 혼례에도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화동・화녀의 등장, 신랑・신부에 대한 소개, 예물교환에 해당하는 신물교환, 주례사에 해당하는 유고諭告, 내빈축사, 축전낭독 등이 등장함으로써 의례의 절차와 요소가 현대화되고 다양해졌다. 둘째, 전반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고 상세한 설명으로 실용적 지침이 되도록 노력했다는 점이다. 예물 교환에서 반지보다 염주를 권장하고, 혼례복은 불교 예복이 나올 때까지 일반 한복으로 하되 신랑은 양복도 무방하도록 열어놓았으며, 헌화에 쓰는 꽃은 조화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또 불전에는 간략하게 반배례半拜禮하도록 하고, 주례사에 해당하는 유고를 생략해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셋째, 음악과 이벤트 요소를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화동・화녀가 꽃을 흩뿌리며 식장에 들어오고, 내빈착석과 신랑・신부 입장 및 불전에 배례할 때마다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울리게 하며, 개식할 때 종을 다섯 번 치거나 폭죽을 울리도록 함으로써 축제 분위기와 장엄함을 돋보이도록 하였다.

현재 불교 혼례는 이러한 안진호의 『석문의범』을 참조하는 가운데 사찰마다 다양하게 치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통일법요집』에 소개된 혼인의식을 보면 신물 교환과 내빈축사・축사낭독을 없애고 혼인서약을 남녀 구분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대체한 점을 제외하고 『석문의범』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특징 및 의의

불교 혼례의 가장 큰 특징은 신랑과 신부가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으로 부부의 전생 인연과 구도의 다짐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석가모니의 전생을 담은 〈연등불수기〉 설화 내용 가운데 선혜선인이 연등불燃燈佛에게 바칠 연꽃을 애타게 구하던 중 구리선녀俱夷仙女와 내생의 혼인언약을 맺고 연꽃공양을 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선혜선인은 자신의 다섯 송이와 구리선녀의 두 송이 꽃을 연등불에게 바치고 아득한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화혼식花婚式이라 부르며, 부처님에게 고하는 고불문告佛文에서도 “두 사람은 부처님의 옛 고사를 본받아 위없는 도를 성취하기를 다짐하였고, 일곱 송이 꽃을 바쳐 영원한 인연을 약속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담게 된다.

이처럼 신랑・신부가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고 삼귀의・반야심경・사홍서원 등을 염송하는 가운데 혼례를 치르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혼례를 올리는 부부는 단순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전생의 깊은 인연으로 맺어지게 된 것임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둘째, 석가모니의 행적을 본받는 가운데 부처를 지향하는 중생의 뜻을 다짐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연등불수기〉 설화의 선혜선인처럼 전생의 인연을 현세에서 꽃피우며 지극한 불심으로 부처를 이룰 것을 이끄는 의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석문의범(안진호, 보련각, 1968), 조선불교통사-근대(이능화, 이병두 역, 혜안, 2003), 조선여속고(이능화, 김상억 역, 동문선, 1990), 통일법요집(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조계종출판사, 2004), 한국불교 의례자료총서4(박세민, 삼성암, 1993),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