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구산리입석(求禮九山里立石)

구례구산리입석

한자명

求禮九山里立石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신체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있는 칠성신앙, 기자신앙, 성신앙 등 민속신앙의 신체. 1984년 2월 29일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구산리입석은 지리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내린 평지성 구릉 위에 있다. 완만한 언덕 위에 있는 이 입석은 거대한 자연석을 세워 놓은 것으로,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이 입석 바로 옆에 지석묘 2기가 있다. 지석묘는 묘표석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석은 거대한 판상석을 세워 놓은 것이며, 전체적으로 네모지고 두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측면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앞뒷면은 고르지 않다. 크기는 높이 240㎝, 너비 100~120㎝, 두께 25~33㎝이다.

내용

입석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소원을 빌고 액운 퇴치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1916년 11월 11일 유형업의 일기에 따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해 가을걷이가 끝난 뒤 날을 받아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구산리는 개성 왕씨가 개척하였으며, 김해 김씨와 전주 이씨가 산세와 수세가 좋다 하여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장수를 누린다는 덕은천이 흐르고, 경로당 부근에 입석과 고인돌이 있다. 입석은 선돌이라고도 하며, 고인돌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태양숭배사상 등과 같은 원시신앙과 관련 있는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져 묘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한 것이다.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어귀에 세워져 벽사나 경계 등 기능을 하거나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장수를 비는 칠성바위의 신앙이 되기도 하였다.

암석을 신앙의 신체(神體)로 하는 신앙이 암석신앙이다. 다시 말하면 암석신앙은 바위 그 자체 또는 인공적으로 다듬은 바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신앙을 말한다. 암석 그 자체가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바위의 불변하는 영속성 때문에 인식되는 종교적 심성이 작용하여 신격화된 것이고, 이것이 하나의 신앙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암석신앙은 고인돌과 선돌을 축조한 고대의 천신숭배로부터 분화되어 전승된 것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암석이 천신의 정주처이기도 하고 강신수단이기도 하면서 하나의 신성물로 인식됨으로써 암석을 신체로 한 다양한 신앙 형태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암석이 신앙적 대상으로 다양하게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암석을 성기석으로 인식하거나 생산의 상징으로 인식하여 행해지는 성신앙과 기자신앙, 암석을 수명장수 또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식하는 거북신앙과 칠성신앙, 암석을 공동체신앙의 신체로 활용하는 마을신앙 등이 그것이다.

구산리입석은 본래 지석묘와 함께 축조되면서 묘역의 경계표시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후대에 마을 사람들의 칠성신앙이나 기자신앙 등 다양한 신앙적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구산리입석은 본래 묘역의 경계 표시로 축조되었지만 후대에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입석이 마을신앙, 칠성신앙, 기자신앙 등의 대상이 되면서 입석의 중층적인 기능이 형성된 것이다. 입석이 민속신앙의 신체로 활용되면서 암석문화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민속문화적 자료로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마을유래지 (구례군, 1989), 구례군의 문화유적 (구례군, 1994), 섬진강유역사연구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1997)

구례구산리입석

구례구산리입석
한자명

求禮九山里立石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신체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있는 칠성신앙, 기자신앙, 성신앙 등 민속신앙의 신체. 1984년 2월 29일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구산리입석은 지리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내린 평지성 구릉 위에 있다. 완만한 언덕 위에 있는 이 입석은 거대한 자연석을 세워 놓은 것으로,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이 입석 바로 옆에 지석묘 2기가 있다. 지석묘는 묘표석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석은 거대한 판상석을 세워 놓은 것이며, 전체적으로 네모지고 두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측면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앞뒷면은 고르지 않다. 크기는 높이 240㎝, 너비 100~120㎝, 두께 25~33㎝이다.

내용

입석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소원을 빌고 액운 퇴치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1916년 11월 11일 유형업의 일기에 따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해 가을걷이가 끝난 뒤 날을 받아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구산리는 개성 왕씨가 개척하였으며, 김해 김씨와 전주 이씨가 산세와 수세가 좋다 하여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장수를 누린다는 덕은천이 흐르고, 경로당 부근에 입석과 고인돌이 있다. 입석은 선돌이라고도 하며, 고인돌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태양숭배사상 등과 같은 원시신앙과 관련 있는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져 묘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한 것이다.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어귀에 세워져 벽사나 경계 등 기능을 하거나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장수를 비는 칠성바위의 신앙이 되기도 하였다.

암석을 신앙의 신체(神體)로 하는 신앙이 암석신앙이다. 다시 말하면 암석신앙은 바위 그 자체 또는 인공적으로 다듬은 바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신앙을 말한다. 암석 그 자체가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바위의 불변하는 영속성 때문에 인식되는 종교적 심성이 작용하여 신격화된 것이고, 이것이 하나의 신앙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암석신앙은 고인돌과 선돌을 축조한 고대의 천신숭배로부터 분화되어 전승된 것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암석이 천신의 정주처이기도 하고 강신수단이기도 하면서 하나의 신성물로 인식됨으로써 암석을 신체로 한 다양한 신앙 형태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암석이 신앙적 대상으로 다양하게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암석을 성기석으로 인식하거나 생산의 상징으로 인식하여 행해지는 성신앙과 기자신앙, 암석을 수명장수 또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식하는 거북신앙과 칠성신앙, 암석을 공동체신앙의 신체로 활용하는 마을신앙 등이 그것이다.

구산리입석은 본래 지석묘와 함께 축조되면서 묘역의 경계표시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후대에 마을 사람들의 칠성신앙이나 기자신앙 등 다양한 신앙적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구산리입석은 본래 묘역의 경계 표시로 축조되었지만 후대에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입석이 마을신앙, 칠성신앙, 기자신앙 등의 대상이 되면서 입석의 중층적인 기능이 형성된 것이다. 입석이 민속신앙의 신체로 활용되면서 암석문화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민속문화적 자료로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마을유래지 (구례군, 1989)
구례군의 문화유적 (구례군, 1994)
섬진강유역사연구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