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석마리석마

고성석마리석마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신체

집필자 천진기(千鎭基)

정의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석마리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는 석마(石馬) 한 쌍. 1974년 2월 16일에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경남 고성군에서 창원시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마암면(馬岩面)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왼쪽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면사무소를 지나고 석마교를 건너면 석마리(石馬里)가 나온다. 석마는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옆에 있으며, 한 쌍의 두 마리 모두 마을 쪽을 향해 서 있다. ‘말바위’의 마암(馬岩), 즉 ‘돌 말’의 석마리 지명 유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석마는 이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까지 상당히 알려져 있다.

형태

석마는 화강암으로 깎아 만든 한 쌍의 말 조각상이다. 길이는 각각 150㎝와 210㎝이고, 높이는 45㎝와 50㎝이다. 오른쪽 석마는 목이 부러져 다른 석재를 덧대어 수리해서 왼쪽 석마보다 목이 더 길며, 뒷 엉덩이 일부가 결손되어 있다.

석마는 축대 위에 세워져 있고, 주위에 고풍스러운 팽나무 가지들이 드리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축대를 쌓으면서 석마 밑부분을 팠을 때 자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처음부터 석마는 한 쌍이었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목이 부러져 축대 밑에 따로 두었고, 한 마리만 서 있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마리 석마가 외로워 보여 작은 석마를 새롭게 만들어 세웠다. 그 후 목이 부러진 석마를 수리하여 원위치에 다시 세우면서 한동안은 마을 어귀에 석마가 세 마리였다. 최근 새로 만든 작은 석마를 도난당해 현재는 원래의 석마 한 쌍이 있다.

이 석마들은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만들었다. 머리부터 목, 잔등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체에 비해 다리는 짧은 편이며, 눈은 선각을 했다. 귀·코·입·꼬리 등은 단순하게 조각했다. 특히 코의 모양을 보아 분명히 말을 조각했음을 알 수 있는 토속적인 작품이다. 석마 자체 조각은 단순하고 투박하며 소박하다.

내용

돌로 만든 한 쌍의 석마리 석마는 마을 어귀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석마들이 제작된 동기는 호환(虎患)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호랑이가 마을에 자주 나타나 피해가 극심하자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 석마를 만들었다. 다른 지역의 마을신이 석마를 타고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구전 내용은 없다.

마을에서는 석마를 석신(石神) 또는 마장군(馬將軍)이라고 부르며,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정월 동제를 지냈다. 동제는 정월대보름날 새벽 1~2시에 지내며, 절차는 다른 지방의 마을 제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섣달그믐날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으로 제관(祭官)과 집사를 선정한다. 선발된 제관은 당일부터 제사 후 사흘까지 근신하고 금기해야 한다. 제사가 가까워지면 석마 주위와 마을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왼쪽으로 꼰 새끼의 금줄에 댓잎과 솔잎을 꽂는다. 제물로는 통닭 등을 사용한다. 이 제의에는 다른 마을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풍습이 있다. 섣달그믐날 밤 콩 한 말을 석마 앞에 공양하고 촛불을 밝혔다가 이튿날인 초하룻날에 걷어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마을에서 공동 제의를 거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암면 면민체육회 회장인 마암면장이 주관한다. 정월대보름날에 제물을 차리고 풍물을 친다. 그 후 마암면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걸립을 한다. 마을 단위보다는 면 단위 행사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고성군지 (고성군, 1980), 경남어촌민속지 (국립민속박물관, 2002), 다시보는 마문화유산(경남 함안 고성편) (최홍, 한국마사회, 굽소리 2001년 4월호), 한국동물민속론 (천진기, 민속원, 2003), 한국말민속론 (천진기,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2006),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천진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

고성석마리석마

고성석마리석마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신체

집필자 천진기(千鎭基)

정의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석마리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는 석마(石馬) 한 쌍. 1974년 2월 16일에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경남 고성군에서 창원시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마암면(馬岩面)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왼쪽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면사무소를 지나고 석마교를 건너면 석마리(石馬里)가 나온다. 석마는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옆에 있으며, 한 쌍의 두 마리 모두 마을 쪽을 향해 서 있다. ‘말바위’의 마암(馬岩), 즉 ‘돌 말’의 석마리 지명 유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석마는 이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까지 상당히 알려져 있다.

형태

석마는 화강암으로 깎아 만든 한 쌍의 말 조각상이다. 길이는 각각 150㎝와 210㎝이고, 높이는 45㎝와 50㎝이다. 오른쪽 석마는 목이 부러져 다른 석재를 덧대어 수리해서 왼쪽 석마보다 목이 더 길며, 뒷 엉덩이 일부가 결손되어 있다.

석마는 축대 위에 세워져 있고, 주위에 고풍스러운 팽나무 가지들이 드리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축대를 쌓으면서 석마 밑부분을 팠을 때 자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처음부터 석마는 한 쌍이었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목이 부러져 축대 밑에 따로 두었고, 한 마리만 서 있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마리 석마가 외로워 보여 작은 석마를 새롭게 만들어 세웠다. 그 후 목이 부러진 석마를 수리하여 원위치에 다시 세우면서 한동안은 마을 어귀에 석마가 세 마리였다. 최근 새로 만든 작은 석마를 도난당해 현재는 원래의 석마 한 쌍이 있다.

이 석마들은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만들었다. 머리부터 목, 잔등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체에 비해 다리는 짧은 편이며, 눈은 선각을 했다. 귀·코·입·꼬리 등은 단순하게 조각했다. 특히 코의 모양을 보아 분명히 말을 조각했음을 알 수 있는 토속적인 작품이다. 석마 자체 조각은 단순하고 투박하며 소박하다.

내용

돌로 만든 한 쌍의 석마리 석마는 마을 어귀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석마들이 제작된 동기는 호환(虎患)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호랑이가 마을에 자주 나타나 피해가 극심하자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 석마를 만들었다. 다른 지역의 마을신이 석마를 타고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구전 내용은 없다.

마을에서는 석마를 석신(石神) 또는 마장군(馬將軍)이라고 부르며,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정월 동제를 지냈다. 동제는 정월대보름날 새벽 1~2시에 지내며, 절차는 다른 지방의 마을 제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섣달그믐날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으로 제관(祭官)과 집사를 선정한다. 선발된 제관은 당일부터 제사 후 사흘까지 근신하고 금기해야 한다. 제사가 가까워지면 석마 주위와 마을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왼쪽으로 꼰 새끼의 금줄에 댓잎과 솔잎을 꽂는다. 제물로는 통닭 등을 사용한다. 이 제의에는 다른 마을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풍습이 있다. 섣달그믐날 밤 콩 한 말을 석마 앞에 공양하고 촛불을 밝혔다가 이튿날인 초하룻날에 걷어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마을에서 공동 제의를 거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암면 면민체육회 회장인 마암면장이 주관한다. 정월대보름날에 제물을 차리고 풍물을 친다. 그 후 마암면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걸립을 한다. 마을 단위보다는 면 단위 행사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고성군지 (고성군, 1980)
경남어촌민속지 (국립민속박물관, 2002)
다시보는 마문화유산(경남 함안 고성편) (최홍, 한국마사회, 굽소리 2001년 4월호)
한국동물민속론 (천진기, 민속원, 2003)
한국말민속론 (천진기,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2006)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천진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