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도당굿(都堂巫祭)

경기도도당굿

한자명

都堂巫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정의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 지역과 수원·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매년 혹은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하는 마을단위의 굿. 이 굿은 1990년 10월 10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무속의 역사적 관점에서 굿은 규모에 따라 집굿, 마을굿, 나라굿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집굿은 집안의 재수 또는 우환을 빌거나 물리칠 때 하는 굿이다. 재수굿, 병굿, 진오귀굿 등은 집안 단위의 집굿에서 행할 수 있는 굿이다.

마을굿은 동네굿이라고 하며, 마을 규모의 행사에서 하던 굿이다. 주로 마을 수호신의 내력을 말하고,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수복강녕을 빌던 굿이다. 나라굿은 나라 단위의 굿으로, 현재는 행하지 않고 고대에 국중대회 형식으로 거행되었다.

예전에는 굿의 규모에 따라 무당의 종류도 달랐다. 현재 이러한 구분은 무너졌으나 대개가 집굿은 개인무, 마을굿은 마을무, 나라굿은 나라무당이 각각 주관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이들 무당이 모두 해체되었다. 그런데 경기도 도당굿은 세습남무인 화랭이들이 거의 도맡아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광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굿은 크게 몇 가지의 하위 유형이 있다. 명칭에 의해 구분하면 흔히 도당굿, 성황제, 대동굿, 부군당굿이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도당굿과 부군당굿의 차별성이다. 명칭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 굿거리의 구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특별한 차이라기보다 굿에서의 강조점이 다르다. 경기도는 한강을 기점으로 하여 경기 이북과 경기 이남의 굿이 갈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체적인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경기도도당굿은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하는 굿이다. 마을 사람들이 대표자인 화주 또는 당주를 정하고 외지에서 무당을 초청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정기적인 의례가 곧 도당굿이다. 마을을 수호하는 마을 신, 즉 도당신이나 부군당신인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또는 부군할아버지와 부군할머니의 신이 있으므로 이들을 초청하여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고 마을 사람에게 복을 주는 것이 곧 마을굿의 진정한 목표가 된다. 경기도와 서울 일대의 굿을 일러서 이와는 다르게 곶창굿, 부군당굿, 도당굿 등 다양한 명칭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기도 일원의 마을굿은 정기적 의례이기 때문에 마을마다 다른 제일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 지역도 존재하고, 이와는 다르게 3월이나 4월에 제일이 있는 곳도 존재하며, 10월에 존재하는 지역도 있다. 이러한 제일에는 마을 전체의 대동굿이 존재한다. 대동굿에서는 유교식 제례와 마을단위의 대동굿이 존재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제일 이외에도 특정하게 여러 지역 제일이 병용되어 정월, 특정일, 10월 제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한 마을의 절기나 월별에 따라 당제나 당굿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유서 깊은 마을굿의 전통을 확인하게 된다.

경기도도당굿은 사제자인 무당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몇 가지 유형이 갖추어져 있다. 예사 무당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특징으로 마을단위의 도당굿판을 단골판으로 하는 무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세습무가 주체가 되어 도당굿을 맡아서 하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화랭이 또는 산이라는 인물로 미지인 무녀들과 협동해 마을굿인 도당굿을 연행한다. 둘째는 강신무인 만신들로, 이들이 일정한 도당굿판에 관여하면서 도당굿판을 주도하는 경우이다. 이들 관계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예사이다. 셋째는 이른바 악사당주가 그들이다. 악사당주의 사례로는 김순선의 아들인 김광수가 적절한 사례이다. 김광수가 자신이 악사당주라고 하면서 갈매리, 담터, 봉화산, 잣바위, 먹굴, 공덕굴, 상계동 등을 지명한 바 있다.

마을굿을 하는 주체에 의한 세 부류는 현재 급격하게 궤멸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마을굿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분류는 마을굿의 사제자가 점유하고 있는 특성에 의해 분류가 가능하다. 마을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단골관계는 존속된다. 그러나 세 부류의 마을굿은 마을굿의 제의 절차, 음악, 무가 등에 의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화랭이굿과 선더러니굿이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들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곧 한강이다. 한강변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 곧 서울의 마을굿인 부군당굿이다. 부군당굿은 한강 이북과 한강변을 끼고 있는 이남 지역으로 대별된다. 부군당굿을 한강 이북과 이남으로 고정시켜서 놓고 보면 두 가지 양상이 동시에 일정한 원리에 의해 형성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일정한 원리는 강변을 끼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남•북으로 부군당굿인 마을굿을 행하는 곳이 갈라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리에 의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마을굿의 구조적인 관련성이 이 사례들의 명칭에 의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성황제, 도당굿, 부군당굿 등이 이러한 작용을 하는 용어이다. 또한 제의적 구성 인자에 의해서도 이 굿이 유형화된다. 유가적 제의와 무속식의 굿, 유가적 제의+농악대굿+무속식제의 등이 결합하는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문화적 차별성을 형성하는 요인이 곧 특정한 지역의 강이나 산맥이 된다. 이에 따라 한강은 중요한 도당굿 경계면의 준거이다. 한강변을 중심으로 부군당굿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이다. 부군당굿이 집중적으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으나 이 사실에 역사적 근거는 분명하다. 서울의 관원들이 역사적 인물과 결부시켜 신참례나 마을굿의 후원책으로 이를 조장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강의 운송 수단이 중요시되던 때에 물을 중심으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던 전통의 여파로 보인다. 동시에 문화적으로 북부와 남부의 차별적 면모가 동심원적으로 구현되어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면서 이러한 문화적 형성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마을굿의 제일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강 인근의 지리적 조건에 따라 내지와 외지로 갈라서 보면, 외지와 내지의 일정한 역학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 분명하게 마을굿의 제일이 세시력과 관련되는 점은 인정된다. 다른 지역에서 신을 모시는 일이 농경세시력을 비롯한 생업력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일정한 제일에 굿을 하는 경우와 고사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 년에 적어도 두 번 굿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는 한강 이북에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는 해도 일정하게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당이 많다는 사실이다. 본래의 마을 수호신이 중심이 되지 않고 특정한 역사적 인물과 결탁된 사실은 서울의 부군당굿이 어떠한 경로로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경기 북부 한강 이북 한강 이남 경기 남부
개성덕물산도당굿 답십리
(3월27-28일) 왕십리 수풀당 청수골도당
문산도당굿 진퍼리살군당(4월/10월1일) 작은한강부군당 새오개도당굿
양주유양리도당굿 금호동(무쇠막)부군당(10월) 화주당 영종도도당굿
파주도당굿 옥수2동부군당(10월) 신길2동방아고지부군당 무리섬도당굿
봉화산도당굿 한남동 큰한강 부군당(1월1일) (4월1일/7월1일/10월1일) 시흥군자봉성황제
담터도당굿 보광동부군당(1월1일) 신길3동신기리동당(10월3일) 안산잿머리성황제
먹골도당굿 동빙고동부군당(3월15일) 영등포상산부군당 평동도당굿(10월10일)
공덕굴도당굿 서빙고동부군당(1월1일) (7월1일/10월1일) 영동시장거북당굿(10월10일)
삼각산도당굿 창전동부군당(10월1일) 당산동부군당(10월1일) 고색동도당굿
구리갈매울도당굿 용문동부군당(4월1일/10월) 염창동부군당 천장말도당굿(10월10일)
정발산도당굿 마포불당(5월20일/10월20일) (7월1일/10월1일) 인천동막도당굿(3월1-3일)
권율장군도당굿 밤섬부군당(1월2일)

경기도도당굿은 마을굿이라는 점에서 동해안별신굿, 전라도 당산굿, 황해도 대동굿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마을의 공동체 신앙이다. 그러나 세습화랭이가 자신들의 연주 기량을 발휘하고 독창적인 사설을 주도해 부르는 것은 다른 지역의 마을굿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도당굿의 화랭이는 타악은 물론 삼현육각의 선율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궁극적인 음악형식으로 생각한다.

지역사례

동막도당굿은 1984년 4월 2일에서부터 4월 3일까지 행해졌다.

(1) 당주굿(서간난, 조한춘)
(2) 거리부정(서간난, 조한춘)
(3) 부정굿(서간난)
(4) 도당할아버지•할머니 모시기(서간난)
(5) 돌돌이(조한춘, 전은순)
(6) 시루말(이용우, 서간난)
(7) 제석굿(이용우, 서간난)
(8) 신장굿+손굿+공굿(산이들)
(9) 본향굿(조한춘)
(10) 터벌림(이용우, 조한춘, 이영수)
(11) 군웅굿(서간난, 조한춘, 이용우, 이영수)
(12) 도당할아버지•할머니 모시기(서간난, 조한춘)
(13) 중굿(조한춘)
(14) 뒷전(이용우, 조한춘, 이영수)

이 지역은 서간난과 조한춘의 단골판이다. 조한춘의 장모인 서간난의 단골판이 매개가 되어서 수원의 이용우와 인천의 이영수, 그리고 나머지 악사 잽이인 전태용, 김한국, 정일동 등이 참여해 도당굿을 진행했다. 실제 굿거리를 담당하는 장구잽이 화랭이로는 이용우와 조한춘을 들 수 있다. 나머지 산이들은 전악 구실만 했다.

산이와 미지가 함께 연행하는 제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이가 먼저 앉은 청배를 하고, 미지가 서서 청배를 하는 굿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1. 앉은 부정 - (2)2. 선 부정
(6)1. 시루청배 - (6)2.시루말
(7)1. 제석섭채 - (7)2. 제석청배

산이가 먼저 자기 스스로 장구를 치면서 앉은 부정, 시루청배, 제석섭채 등을 연주한다. 장단은 각기 차이가 있어서 부정장단과 섭채장단이 쓰인다. 이 장단에 맞춰서 산이가 마달을 주워 섬겨 나간다. 부정청배에서는 부정을 물리기 위한 치국잡기를 하고, 치국잡기 끝에 갖가지 부정을 물리기 위한 휘몰이장단으로 끝을 맺는다. 시루청배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청배한다. 제석섭채에서는 섭채 장단에 제석신을 청배하고 신을 맞이하는 본풀이를 불러나간다.

미지는 부정과 시루말에서 동일한 장단에 청배를 거듭하고 춤사위를 섞어서 노래한다. 이에 견주어 제석청배는 다른 장단을 사용하면서 제석본풀이를 도살풀이장단에 불러나가게 된다. 그런데 도살풀이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장단이 빨라져서 도살풀이, 모리, 발뻐드레 등으로 마무리된다. 본풀이청배가 끝나면 제석의 춤사위도 있고, 이어서 제석노랫가락 등도 곁들여서 한다. 산이와 미지가 호흡을 맞춰 가면서 선굿을 연행한다.

이를 통해, 산이와 미지가 굿을 겹으로 짜나가고 있는 경기도 남부굿의 전통을 환기한다. 도당굿이 아닌 집굿에서는 이 밖에도 조상청배 또는 군웅청배에서 산이들이 전악과 가래조장단으로 조상청배를 한 뒤에 미지가 선굿으로 오니굿거리와 도살풀이로 조상청배를 반복한다. 이러한 굿거리는 도당굿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지와 산이가 대응하는 겹굿의 사례로 조상청배를 첨가할 수 있다.

경기도 남부굿을 산이와 미지가 겹으로 연행하는 것은 옥상 위에 집을 짓는 옥상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앉은굿과 선굿이 겹으로 진행되어 짜여지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겹으로 굿을 짜는 내림굿불림굿이 존재하므로 겹굿의 전통은 경기도 남부만의 독자적인 현상이 아니다. 동해안별신굿에서 신의 청배 과정에서 청보장단의 경우 화랭이와 지모의 주고받는 청배 역시 동일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경기도도당굿의 남부 지역적 특색은 산이가 먼저 굿을 하나 끊고 이어서 미지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굿을 해야 하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더구나 산이가 하는 굿을 다시금 미지가 반복하면서도 전혀 다른 각도에서 굿을 하고 굿거리를 진행하는 특색이 있는 사실이 주목된다. 산이가 앉아서 장구를 두드리면서 굿을 한다면 미지는 일어서서 무구인 부채와 방울을 들고 굿을 하는 점이 남다르다. 장단을 치면서 굿을 하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굿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굿이다. 산이와 미지가 독자적 굿거리의 미학을 창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미지와 산이가 앉아서 굿을 하고 이어서 서서 굿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미지가 먼저 청배를 하고 이어서 산이가 굿을 이어 나가는 특별한 굿거리도 존재한다. 이러한 굿거리가 곧 손굿과 군웅굿에 해당한다. 손굿에서 먼저 미지가 손님을 청배하고, 이를 잇달아 산이가 손님노정기를 이어나가게 되며, 동일한 사례로 군웅청배에 이어서 군웅노정기를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굿거리의 순서는 산이-미지의 순서로 진행되는 굿거리와 전혀 다른 것으로, 반대로 미지-산이의 순서로 진행된다. 미지-산이로 진행되는 굿거리는 둘 다 서서 하는 굿이기 때문에 서로 차별성을 띤다.

미지는 일어서서 부채와 방울을 가지고 장단에 맞추어 신을 청배하고, 이어서 산이에게 굿거리를 인계한다. 이러한 굿의 인계 과정에서 미지와 산이의 대무는 제상을 두고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곧 군웅굿에서 쌍군웅춤이고, 손님굿에서 쌍손님춤이라고 할 수 있다. 미지가 물러나고 산이가 독자적인 굿거리를 하게 된다. 이전까지 산이는 꽹과리를 들고 대무를 하다가 이어서 산이굿이 시작하게 되면 독자적으로 먼저 잽이와 함께 공수답을 한다.

공수답은 굿거리장단과 전혀 다르게 장구장단에 천지조판의 내력을 기술해 간다. 그러다가 장구장단이 북장단으로 바뀌면서 자진몰이 또는 덩덕궁이장단이 사라지고 북장단에 의한 공수답이 삼공잽이장단으로 느려지면서 노정기의 초앞으로 진행된다. 덩덕궁이장단에서 삼공잽이장단으로 바뀌는 현상은 산이가 들었던 꽹과리를 놓고 북장단에 맞춰서 부채를 드는 것과 일정한 함수관계를 맺는다. 이것은 판패개제 성음으로 하는 경기판소리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산이-미지의 순서가 미지-산이의 역순으로 구성되면서 굿거리 전체의 변형이 생겨난다. 단순하게 앉은굿과 선굿의 관계가 청산되고, 선굿-선굿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미지의 선굿과 전혀 다른 산이의 선굿이 등장하고, 선굿의 형태가 판소리의 형식으로 변질되는 기이한 비약이 이루어진다.
산이와 미지의 대립항에 따라 굿거리 비중이 다르게 짜이는 것은 경기도 남부의 굿에서 산이들이 별도로 자신들의 굿거리를 확보하고 있으면서 창조한 전통이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굿거리가 이에 해당한다.

(5) 돌돌이
(8) 공굿
(9) 본향굿
(10) 터벌림
(13) 중굿
(14) 뒷전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가 있고, 산이가 둘 이상이 모여서 연행하는 굿거리가 있다.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에서는 돌돌이, 본향굿, 중굿 등이 있다. 산이 여럿이 하는 굿거리에는 공굿, 터벌림, 뒷전 등이 있다. 돌돌이는 다른 고장에서 하는 세경돌기•유가 등과 맥락이 닿는 굿거리로, 마을의 경계와 구성원들의 집을 돌면서 마을의 안녕과 축원을 비는 굿거리이다.

고사소리는 장구장단에 맞추어 하지만 미지들이 하는 것과 다르게 덩덕궁이장단에 천지조판의 내력과 치국잡기의 내용을 길게 구연하는 것이다. 광대들이 고사소리를 하는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돌돌이에서 산이가 하는 고사소리의 전통은 미지의 그것과 다른 독자적인 소리제를 지니고 있다. 고사소리의 쓰임새가 마을의 축원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셈이다.

공굿은 공짜로 보는 굿이라고 하여 이른바 공거리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따로 돈을 쓰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산이들의 장기자랑이다. 산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으나 토막소리나 꽹과리를 들고서 방수밟기를 하는 반설음장단의 놀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도당굿에서는 공거리가 가장 다양한 놀음새를 보여주던 굿거리였음이 확인된다. 이 거리에서 줄타기, 땅재주 넘기, 갖가지 소리 등을 입체적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전통이 사라지고 현재는 굿거리가 소멸했다.

본향굿은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이며, 본향이라고 하는 것은 마을이 터전을 잡게 된 내력을 밝혀주는 것을 말한다. 산이가 혼자서 세상이 생긴 내력을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그것을 덩덕궁이장단에 주워섬기는 것은 미지의 굿과 명백하게 다른 현상으로 이해된다. 본향굿에서 도당굿의 특징인 마을의 여러 본향 터전을 주워섬기면서 굿을 한다.

터벌림은 산이가 여러 사람으로 등장해 꽹과리를 치면서 하는 굿거리이다. 터벌림을 터잽이, 공거리, 그루백이 등 여러 이칭으로 불린다. 마을굿을 담당하는 쪽에서 아무런 제상도 차리지 않으므로 공거리라고 했으며, 터잽이•그루백이•터벌림 등은 산이가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터벌림은 산이들이 여럿이 나와서 흥미로운 놀이를 벌이는 굿거리이다.

터벌림은 터벌림장단에 터벌림춤을 추는 것이다. 터벌림춤은 꽹과리를 가지고 사방으로 방수를 밟는 것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가는 동작이 서로 다르며 방수밟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산이들의 기량을 평가받는 굿거리이다. 그런데 터벌림의 굿거리적 본디 기능은 산이들이 맡아서 하는 큰굿거리를 하기 위한 예비적 거리의 성격이다. 좁아진 굿판을 정리하면서 관객에게 짚과 흙을 끼얹으며 방수밟기를 하고 터를 넓게 벌린 다음에 군웅상을 갖다놓고 군웅굿의 쌍군웅춤을 추기 위한 준비의 굿거리가 터벌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터벌림이 정식적인 굿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산이들은 이 굿거리를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미학적 제차를 확보하고 있다.

중굿은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이다. 중굿은 중이 굿판에 내려온 내력을 말하는 것으로, 장구잽이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중을 놀리는 굿이다. 이 굿거리는 다른 지역의 중도둑잽이굿과도 성격이 상통하며, 중이 내려와서 복을 주고 축원하는 굿이므로 잔을 내리면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빈다. 산이가 중의 복색을 하고서 잽이와 함께 재담을 하는 것은 탈춤노장 과장과도 성격이 상통한다.

뒷전은 산이 2명, 북잽이 1명 등이 어울려서 재담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재담 중간 중간에 장단이 구분되고 변화되는 소리를 하면서 연극적인 놀이를 전개하는 독창적인 굿거리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굿에 따라 수비들을 풀어먹이는 뒷전을 하면서 만신과 잽이가 재담과 소리를 주고받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 굿의 변형이 곧 뒷전이라고 할 수 있다.

뒷전은 먼저 깨낌으로 시작한다. 깨낌은 손굿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제의적인 씨름놀이다. 굿꾼은 붙박이로 있는 존재이고 깨낌꾼은 떠돌이로 돌아다니는 존재이다.

참고문헌

경기도 도당굿 무가의 현지 연구 (김헌선, 집문당, 1995)

경기도도당굿

경기도도당굿
한자명

都堂巫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정의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 지역과 수원·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매년 혹은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하는 마을단위의 굿. 이 굿은 1990년 10월 10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무속의 역사적 관점에서 굿은 규모에 따라 집굿, 마을굿, 나라굿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집굿은 집안의 재수 또는 우환을 빌거나 물리칠 때 하는 굿이다. 재수굿, 병굿, 진오귀굿 등은 집안 단위의 집굿에서 행할 수 있는 굿이다.

마을굿은 동네굿이라고 하며, 마을 규모의 행사에서 하던 굿이다. 주로 마을 수호신의 내력을 말하고,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수복강녕을 빌던 굿이다. 나라굿은 나라 단위의 굿으로, 현재는 행하지 않고 고대에 국중대회 형식으로 거행되었다.

예전에는 굿의 규모에 따라 무당의 종류도 달랐다. 현재 이러한 구분은 무너졌으나 대개가 집굿은 개인무, 마을굿은 마을무, 나라굿은 나라무당이 각각 주관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이들 무당이 모두 해체되었다. 그런데 경기도 도당굿은 세습남무인 화랭이들이 거의 도맡아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광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굿은 크게 몇 가지의 하위 유형이 있다. 명칭에 의해 구분하면 흔히 도당굿, 성황제, 대동굿, 부군당굿이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도당굿과 부군당굿의 차별성이다. 명칭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 굿거리의 구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특별한 차이라기보다 굿에서의 강조점이 다르다. 경기도는 한강을 기점으로 하여 경기 이북과 경기 이남의 굿이 갈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체적인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경기도도당굿은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하는 굿이다. 마을 사람들이 대표자인 화주 또는 당주를 정하고 외지에서 무당을 초청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정기적인 의례가 곧 도당굿이다. 마을을 수호하는 마을 신, 즉 도당신이나 부군당신인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또는 부군할아버지와 부군할머니의 신이 있으므로 이들을 초청하여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고 마을 사람에게 복을 주는 것이 곧 마을굿의 진정한 목표가 된다. 경기도와 서울 일대의 굿을 일러서 이와는 다르게 곶창굿, 부군당굿, 도당굿 등 다양한 명칭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기도 일원의 마을굿은 정기적 의례이기 때문에 마을마다 다른 제일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 지역도 존재하고, 이와는 다르게 3월이나 4월에 제일이 있는 곳도 존재하며, 10월에 존재하는 지역도 있다. 이러한 제일에는 마을 전체의 대동굿이 존재한다. 대동굿에서는 유교식 제례와 마을단위의 대동굿이 존재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제일 이외에도 특정하게 여러 지역 제일이 병용되어 정월, 특정일, 10월 제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한 마을의 절기나 월별에 따라 당제나 당굿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유서 깊은 마을굿의 전통을 확인하게 된다.

경기도도당굿은 사제자인 무당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몇 가지 유형이 갖추어져 있다. 예사 무당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특징으로 마을단위의 도당굿판을 단골판으로 하는 무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세습무가 주체가 되어 도당굿을 맡아서 하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화랭이 또는 산이라는 인물로 미지인 무녀들과 협동해 마을굿인 도당굿을 연행한다. 둘째는 강신무인 만신들로, 이들이 일정한 도당굿판에 관여하면서 도당굿판을 주도하는 경우이다. 이들 관계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예사이다. 셋째는 이른바 악사당주가 그들이다. 악사당주의 사례로는 김순선의 아들인 김광수가 적절한 사례이다. 김광수가 자신이 악사당주라고 하면서 갈매리, 담터, 봉화산, 잣바위, 먹굴, 공덕굴, 상계동 등을 지명한 바 있다.

마을굿을 하는 주체에 의한 세 부류는 현재 급격하게 궤멸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마을굿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분류는 마을굿의 사제자가 점유하고 있는 특성에 의해 분류가 가능하다. 마을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단골관계는 존속된다. 그러나 세 부류의 마을굿은 마을굿의 제의 절차, 음악, 무가 등에 의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화랭이굿과 선더러니굿이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들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곧 한강이다. 한강변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 곧 서울의 마을굿인 부군당굿이다. 부군당굿은 한강 이북과 한강변을 끼고 있는 이남 지역으로 대별된다. 부군당굿을 한강 이북과 이남으로 고정시켜서 놓고 보면 두 가지 양상이 동시에 일정한 원리에 의해 형성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일정한 원리는 강변을 끼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남•북으로 부군당굿인 마을굿을 행하는 곳이 갈라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리에 의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마을굿의 구조적인 관련성이 이 사례들의 명칭에 의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성황제, 도당굿, 부군당굿 등이 이러한 작용을 하는 용어이다. 또한 제의적 구성 인자에 의해서도 이 굿이 유형화된다. 유가적 제의와 무속식의 굿, 유가적 제의+농악대굿+무속식제의 등이 결합하는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문화적 차별성을 형성하는 요인이 곧 특정한 지역의 강이나 산맥이 된다. 이에 따라 한강은 중요한 도당굿 경계면의 준거이다. 한강변을 중심으로 부군당굿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이다. 부군당굿이 집중적으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으나 이 사실에 역사적 근거는 분명하다. 서울의 관원들이 역사적 인물과 결부시켜 신참례나 마을굿의 후원책으로 이를 조장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강의 운송 수단이 중요시되던 때에 물을 중심으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던 전통의 여파로 보인다. 동시에 문화적으로 북부와 남부의 차별적 면모가 동심원적으로 구현되어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면서 이러한 문화적 형성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마을굿의 제일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강 인근의 지리적 조건에 따라 내지와 외지로 갈라서 보면, 외지와 내지의 일정한 역학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 분명하게 마을굿의 제일이 세시력과 관련되는 점은 인정된다. 다른 지역에서 신을 모시는 일이 농경세시력을 비롯한 생업력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일정한 제일에 굿을 하는 경우와 고사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 년에 적어도 두 번 굿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는 한강 이북에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는 해도 일정하게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당이 많다는 사실이다. 본래의 마을 수호신이 중심이 되지 않고 특정한 역사적 인물과 결탁된 사실은 서울의 부군당굿이 어떠한 경로로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경기 북부 한강 이북 한강 이남 경기 남부 개성덕물산도당굿 답십리 (3월27-28일) 왕십리 수풀당 청수골도당 문산도당굿 진퍼리살군당(4월/10월1일) 작은한강부군당 새오개도당굿 양주유양리도당굿 금호동(무쇠막)부군당(10월) 화주당 영종도도당굿 파주도당굿 옥수2동부군당(10월) 신길2동방아고지부군당 떼무리섬도당굿 봉화산도당굿 한남동 큰한강 부군당(1월1일) (4월1일/7월1일/10월1일) 시흥군자봉성황제 담터도당굿 보광동부군당(1월1일) 신길3동신기리동당(10월3일) 안산잿머리성황제 먹골도당굿 동빙고동부군당(3월15일) 영등포상산부군당 평동도당굿(10월10일) 공덕굴도당굿 서빙고동부군당(1월1일) (7월1일/10월1일) 영동시장거북당굿(10월10일) 삼각산도당굿 창전동부군당(10월1일) 당산동부군당(10월1일) 고색동도당굿 구리갈매울도당굿 용문동부군당(4월1일/10월) 염창동부군당 인천장말도당굿(10월10일) 정발산도당굿 마포불당(5월20일/10월20일) (7월1일/10월1일) 인천동막도당굿(3월1-3일) 권율장군도당굿 밤섬부군당(1월2일)

경기도도당굿은 마을굿이라는 점에서 동해안별신굿, 전라도 당산굿, 황해도 대동굿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마을의 공동체 신앙이다. 그러나 세습화랭이가 자신들의 연주 기량을 발휘하고 독창적인 사설을 주도해 부르는 것은 다른 지역의 마을굿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도당굿의 화랭이는 타악은 물론 삼현육각의 선율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궁극적인 음악형식으로 생각한다.

지역사례

동막도당굿은 1984년 4월 2일에서부터 4월 3일까지 행해졌다.

(1) 당주굿(서간난, 조한춘)
(2) 거리부정(서간난, 조한춘)
(3) 부정굿(서간난)
(4) 도당할아버지•할머니 모시기(서간난)
(5) 돌돌이(조한춘, 전은순)
(6) 시루말(이용우, 서간난)
(7) 제석굿(이용우, 서간난)
(8) 신장굿+손굿+공굿(산이들)
(9) 본향굿(조한춘)
(10) 터벌림(이용우, 조한춘, 이영수)
(11) 군웅굿(서간난, 조한춘, 이용우, 이영수)
(12) 도당할아버지•할머니 모시기(서간난, 조한춘)
(13) 중굿(조한춘)
(14) 뒷전(이용우, 조한춘, 이영수)

이 지역은 서간난과 조한춘의 단골판이다. 조한춘의 장모인 서간난의 단골판이 매개가 되어서 수원의 이용우와 인천의 이영수, 그리고 나머지 악사 잽이인 전태용, 김한국, 정일동 등이 참여해 도당굿을 진행했다. 실제 굿거리를 담당하는 장구잽이 화랭이로는 이용우와 조한춘을 들 수 있다. 나머지 산이들은 전악 구실만 했다.

산이와 미지가 함께 연행하는 제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이가 먼저 앉은 청배를 하고, 미지가 서서 청배를 하는 굿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1. 앉은 부정 - (2)2. 선 부정
(6)1. 시루청배 - (6)2.시루말
(7)1. 제석섭채 - (7)2. 제석청배

산이가 먼저 자기 스스로 장구를 치면서 앉은 부정, 시루청배, 제석섭채 등을 연주한다. 장단은 각기 차이가 있어서 부정장단과 섭채장단이 쓰인다. 이 장단에 맞춰서 산이가 마달을 주워 섬겨 나간다. 부정청배에서는 부정을 물리기 위한 치국잡기를 하고, 치국잡기 끝에 갖가지 부정을 물리기 위한 휘몰이장단으로 끝을 맺는다. 시루청배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청배한다. 제석섭채에서는 섭채 장단에 제석신을 청배하고 신을 맞이하는 본풀이를 불러나간다.

미지는 부정과 시루말에서 동일한 장단에 청배를 거듭하고 춤사위를 섞어서 노래한다. 이에 견주어 제석청배는 다른 장단을 사용하면서 제석본풀이를 도살풀이장단에 불러나가게 된다. 그런데 도살풀이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장단이 빨라져서 도살풀이, 모리, 발뻐드레 등으로 마무리된다. 본풀이청배가 끝나면 제석의 춤사위도 있고, 이어서 제석노랫가락 등도 곁들여서 한다. 산이와 미지가 호흡을 맞춰 가면서 선굿을 연행한다.

이를 통해, 산이와 미지가 굿을 겹으로 짜나가고 있는 경기도 남부굿의 전통을 환기한다. 도당굿이 아닌 집굿에서는 이 밖에도 조상청배 또는 군웅청배에서 산이들이 전악과 가래조장단으로 조상청배를 한 뒤에 미지가 선굿으로 오니굿거리와 도살풀이로 조상청배를 반복한다. 이러한 굿거리는 도당굿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지와 산이가 대응하는 겹굿의 사례로 조상청배를 첨가할 수 있다.

경기도 남부굿을 산이와 미지가 겹으로 연행하는 것은 옥상 위에 집을 짓는 옥상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앉은굿과 선굿이 겹으로 진행되어 짜여지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겹으로 굿을 짜는 내림굿과 불림굿이 존재하므로 겹굿의 전통은 경기도 남부만의 독자적인 현상이 아니다. 동해안별신굿에서 신의 청배 과정에서 청보장단의 경우 화랭이와 지모의 주고받는 청배 역시 동일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경기도도당굿의 남부 지역적 특색은 산이가 먼저 굿을 하나 끊고 이어서 미지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굿을 해야 하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더구나 산이가 하는 굿을 다시금 미지가 반복하면서도 전혀 다른 각도에서 굿을 하고 굿거리를 진행하는 특색이 있는 사실이 주목된다. 산이가 앉아서 장구를 두드리면서 굿을 한다면 미지는 일어서서 무구인 부채와 방울을 들고 굿을 하는 점이 남다르다. 장단을 치면서 굿을 하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굿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굿이다. 산이와 미지가 독자적 굿거리의 미학을 창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미지와 산이가 앉아서 굿을 하고 이어서 서서 굿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미지가 먼저 청배를 하고 이어서 산이가 굿을 이어 나가는 특별한 굿거리도 존재한다. 이러한 굿거리가 곧 손굿과 군웅굿에 해당한다. 손굿에서 먼저 미지가 손님을 청배하고, 이를 잇달아 산이가 손님노정기를 이어나가게 되며, 동일한 사례로 군웅청배에 이어서 군웅노정기를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굿거리의 순서는 산이-미지의 순서로 진행되는 굿거리와 전혀 다른 것으로, 반대로 미지-산이의 순서로 진행된다. 미지-산이로 진행되는 굿거리는 둘 다 서서 하는 굿이기 때문에 서로 차별성을 띤다.

미지는 일어서서 부채와 방울을 가지고 장단에 맞추어 신을 청배하고, 이어서 산이에게 굿거리를 인계한다. 이러한 굿의 인계 과정에서 미지와 산이의 대무는 제상을 두고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곧 군웅굿에서 쌍군웅춤이고, 손님굿에서 쌍손님춤이라고 할 수 있다. 미지가 물러나고 산이가 독자적인 굿거리를 하게 된다. 이전까지 산이는 꽹과리를 들고 대무를 하다가 이어서 산이굿이 시작하게 되면 독자적으로 먼저 잽이와 함께 공수답을 한다.

공수답은 굿거리장단과 전혀 다르게 장구장단에 천지조판의 내력을 기술해 간다. 그러다가 장구장단이 북장단으로 바뀌면서 자진몰이 또는 덩덕궁이장단이 사라지고 북장단에 의한 공수답이 삼공잽이장단으로 느려지면서 노정기의 초앞으로 진행된다. 덩덕궁이장단에서 삼공잽이장단으로 바뀌는 현상은 산이가 들었던 꽹과리를 놓고 북장단에 맞춰서 부채를 드는 것과 일정한 함수관계를 맺는다. 이것은 판패개제 성음으로 하는 경기판소리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산이-미지의 순서가 미지-산이의 역순으로 구성되면서 굿거리 전체의 변형이 생겨난다. 단순하게 앉은굿과 선굿의 관계가 청산되고, 선굿-선굿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미지의 선굿과 전혀 다른 산이의 선굿이 등장하고, 선굿의 형태가 판소리의 형식으로 변질되는 기이한 비약이 이루어진다.
산이와 미지의 대립항에 따라 굿거리 비중이 다르게 짜이는 것은 경기도 남부의 굿에서 산이들이 별도로 자신들의 굿거리를 확보하고 있으면서 창조한 전통이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굿거리가 이에 해당한다.

(5) 돌돌이
(8) 공굿
(9) 본향굿
(10) 터벌림
(13) 중굿
(14) 뒷전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가 있고, 산이가 둘 이상이 모여서 연행하는 굿거리가 있다.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에서는 돌돌이, 본향굿, 중굿 등이 있다. 산이 여럿이 하는 굿거리에는 공굿, 터벌림, 뒷전 등이 있다. 돌돌이는 다른 고장에서 하는 세경돌기•유가 등과 맥락이 닿는 굿거리로, 마을의 경계와 구성원들의 집을 돌면서 마을의 안녕과 축원을 비는 굿거리이다.

고사소리는 장구장단에 맞추어 하지만 미지들이 하는 것과 다르게 덩덕궁이장단에 천지조판의 내력과 치국잡기의 내용을 길게 구연하는 것이다. 광대들이 고사소리를 하는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돌돌이에서 산이가 하는 고사소리의 전통은 미지의 그것과 다른 독자적인 소리제를 지니고 있다. 고사소리의 쓰임새가 마을의 축원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셈이다.

공굿은 공짜로 보는 굿이라고 하여 이른바 공거리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따로 돈을 쓰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산이들의 장기자랑이다. 산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으나 토막소리나 꽹과리를 들고서 방수밟기를 하는 반설음장단의 놀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도당굿에서는 공거리가 가장 다양한 놀음새를 보여주던 굿거리였음이 확인된다. 이 거리에서 줄타기, 땅재주 넘기, 갖가지 소리 등을 입체적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전통이 사라지고 현재는 굿거리가 소멸했다.

본향굿은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이며, 본향이라고 하는 것은 마을이 터전을 잡게 된 내력을 밝혀주는 것을 말한다. 산이가 혼자서 세상이 생긴 내력을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그것을 덩덕궁이장단에 주워섬기는 것은 미지의 굿과 명백하게 다른 현상으로 이해된다. 본향굿에서 도당굿의 특징인 마을의 여러 본향 터전을 주워섬기면서 굿을 한다.

터벌림은 산이가 여러 사람으로 등장해 꽹과리를 치면서 하는 굿거리이다. 터벌림을 터잽이, 공거리, 그루백이 등 여러 이칭으로 불린다. 마을굿을 담당하는 쪽에서 아무런 제상도 차리지 않으므로 공거리라고 했으며, 터잽이•그루백이•터벌림 등은 산이가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터벌림은 산이들이 여럿이 나와서 흥미로운 놀이를 벌이는 굿거리이다.

터벌림은 터벌림장단에 터벌림춤을 추는 것이다. 터벌림춤은 꽹과리를 가지고 사방으로 방수를 밟는 것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가는 동작이 서로 다르며 방수밟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산이들의 기량을 평가받는 굿거리이다. 그런데 터벌림의 굿거리적 본디 기능은 산이들이 맡아서 하는 큰굿거리를 하기 위한 예비적 거리의 성격이다. 좁아진 굿판을 정리하면서 관객에게 짚과 흙을 끼얹으며 방수밟기를 하고 터를 넓게 벌린 다음에 군웅상을 갖다놓고 군웅굿의 쌍군웅춤을 추기 위한 준비의 굿거리가 터벌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터벌림이 정식적인 굿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산이들은 이 굿거리를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미학적 제차를 확보하고 있다.

중굿은 산이 혼자서 하는 굿거리이다. 중굿은 중이 굿판에 내려온 내력을 말하는 것으로, 장구잽이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중을 놀리는 굿이다. 이 굿거리는 다른 지역의 중도둑잽이굿과도 성격이 상통하며, 중이 내려와서 복을 주고 축원하는 굿이므로 잔을 내리면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빈다. 산이가 중의 복색을 하고서 잽이와 함께 재담을 하는 것은 탈춤의 노장 과장과도 성격이 상통한다.

뒷전은 산이 2명, 북잽이 1명 등이 어울려서 재담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재담 중간 중간에 장단이 구분되고 변화되는 소리를 하면서 연극적인 놀이를 전개하는 독창적인 굿거리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굿에 따라 수비들을 풀어먹이는 뒷전을 하면서 만신과 잽이가 재담과 소리를 주고받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 굿의 변형이 곧 뒷전이라고 할 수 있다.

뒷전은 먼저 깨낌으로 시작한다. 깨낌은 손굿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제의적인 씨름놀이다. 굿꾼은 붙박이로 있는 존재이고 깨낌꾼은 떠돌이로 돌아다니는 존재이다.

참고문헌

경기도 도당굿 무가의 현지 연구 (김헌선, 집문당,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