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향의(家禮鄕宜)

가례향의

한자명

家禮鄕宜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겸 관료 조익趙翼(1579~1655)이 지은 가례家禮에 대한 계몽적인 해설서.

내용

『가례향의家禮鄕宜』는 7권 2책의 필사본 예서이다. 이 책은 양반층이 기준으로 삼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양반용 『가례』와는 달리, 일반 민가民家에서 손쉽게 행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쉽고 간략하게 편집한 가례 실천서이다. 그러나 예절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게,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예제가 갖추어지도록 만들었다. 내용을 보면, 상례喪禮의 비중이 가장 크고, 관례・혼례・제례의 순서로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조선시대 양반과 일반 백성의 예절 실천은 그 생활정도와 사회적인 활동에 따라 차등을 두어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서민의 경제적 형편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예절의 실천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경제력이 약한 일반 백성은 『가례』의 조문을 준수하는 예절의 실천을 처음부터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조익은 일반 민가에서 가례를 소화하여 따를 수 있도록 계몽적인 성격의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그런데 조익의 서민 가례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1613년 계축화옥癸丑禍獄 이후 그가 수도권인 광주廣州를 떠나 호서의 신창현新昌縣으로 내려와 도고산道高山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은거하던 10여 년 동안, 호서의 박지계朴知誡, 권득기權得己 등과의 학술 토론을 통해서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권득기의 『가례참의家禮僭疑』에서도 이른바 빈부난제론貧富難齊論(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예를 동일하게 실천하기는 어렵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후일 실학자들에게 이어졌다. 18세기에 이익李瀷(1681~1763)이 ‘서인가례庶人家禮’를 별도로 만들어 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역설한 데에서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가례향의

가례향의
한자명

家禮鄕宜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겸 관료 조익趙翼(1579~1655)이 지은 가례家禮에 대한 계몽적인 해설서.

내용

『가례향의家禮鄕宜』는 7권 2책의 필사본 예서이다. 이 책은 양반층이 기준으로 삼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양반용 『가례』와는 달리, 일반 민가民家에서 손쉽게 행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쉽고 간략하게 편집한 가례 실천서이다. 그러나 예절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게,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예제가 갖추어지도록 만들었다. 내용을 보면, 상례喪禮의 비중이 가장 크고, 관례・혼례・제례의 순서로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조선시대 양반과 일반 백성의 예절 실천은 그 생활정도와 사회적인 활동에 따라 차등을 두어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서민의 경제적 형편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예절의 실천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경제력이 약한 일반 백성은 『가례』의 조문을 준수하는 예절의 실천을 처음부터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조익은 일반 민가에서 가례를 소화하여 따를 수 있도록 계몽적인 성격의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그런데 조익의 서민 가례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1613년 계축화옥癸丑禍獄 이후 그가 수도권인 광주廣州를 떠나 호서의 신창현新昌縣으로 내려와 도고산道高山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은거하던 10여 년 동안, 호서의 박지계朴知誡, 권득기權得己 등과의 학술 토론을 통해서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권득기의 『가례참의家禮僭疑』에서도 이른바 빈부난제론貧富難齊論(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예를 동일하게 실천하기는 어렵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후일 실학자들에게 이어졌다. 18세기에 이익李瀷(1681~1763)이 ‘서인가례庶人家禮’를 별도로 만들어 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역설한 데에서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