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행깨마을고청제

강릉행깨마을고청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이한길(李漢吉)

정의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1리 행깨마을의 제의. 원래는 하늘에 제향하는 제의였지만 전승 과정에서 변화하여 서낭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역사

1910년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따르면, 오늘날의 향호리는 香湖里[행깨], 香洞[행골], 槐南洞[괴냄이], 古馬洞[괴밀]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후 1916년경 행정구역 통폐합을 거치면서 향호리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마을이 커지자 일제강점기 때 다시 향호리와 고마동은 향호1리로, 향동과 괴남동은 향호2리로 구분되었다. 향호1리의 마을 제의는 고청제라 하며, 향호2리의 마을 제의는 망월제라 한다.

향호1리는 2008년 현재 8개 반이 있다. 방가동(1반, 7반), 행깨(2반), 찬샘(寒泉洞)(3반), 강정(江亭)(4반), 새잇말(5반), 웃말(6반), 군인아파트(8반) 등이다. 이 가운데 행깨마을과 찬샘마을에서 행하는 마을제의가 고청제이다. 행깨는 ‘향호 호숫가’라는 뜻으로, 이를 사투리로 발음한 것이며, 갯가, 호변동, 향호동으로도 부른다. 찬샘은 마을에 차고 맑은 우물이 있어서 명명된 것이다.

행깨마을은 향호 호숫가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조선 숙종 때 인물인 이영부(李永敷)가 낙향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전의 이씨(全義 李氏) 집성촌이다. 이영부가 자리 잡은 집터는 오늘날 강릉의 8명당 중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그는 향호 호숫가에 취적정(取適亭)이란 정자를 짓고 음풍농월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의 마을 제의는 이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짐작되며, 서낭당은 취적정 뒤쪽에 있다.

내용

행깨마을 제의의 성격은 명확하지 않다. 이 마을 제의의 홀기에는 고청제(告淸祭)라 표기하였으나 문헌에는 ‘천제(天祭)’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성격은 천제인 것으로 짐작된다. 즉, 고청제는 고천제(告天祭)의 잘못된 표현인 것으로 여겨진다.

  1. 제의 일시 : 행깨마을의 제의는 본래 자시(子時)에 행하던 것이었지만, 8~9년 전부터 정월 초정(初丁)에 해가 지면 곧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본래는 3반의 서낭이 할아버지이고 2반의 서낭이 할머니여서 3반의 제사가 끝날 때쯤 비로소 2반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제의의 시간은 마을별로 제각기 독자적으로 지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 제당 : 행깨마을의 서낭당은 제단에 모셔진 돌로 만든 위패와 그것을 둘러싼 담장, 그 주위에 수령이 몇 백 년 됨직한 여러 그루의 소나무로 구성되어있다. 이 담장은 낡아서 2007년 취적정을 복원하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수령 34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소나무는 현재 강릉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돌로 만든 위패는 인근 석산 회사에서 기증(1998년)하였다. 위패 뒷면에는 영해 이씨(寧海 李氏) 동명공파 종회, 주문진 규사광업소, 보고석산에서 협찬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3. 신위 : 행깨마을의 신위는 성황지신, 토지지신, 여역지신이다. 성황, 토지, 여역의 3위를 모실 때에는 본시 성황을 주신(主神)으로 여기므로 성황을 제단의 중앙에 배치하는 것이 관례인데 행깨마을은 특이하게 토지지신을 중앙에 위치시켰다. 이에 관한 전승은 현재 중단되었기에 알 수 없다. 찬샘마을 서낭은 할아버지이고 행깨마을의 서낭은 할머니이며 두 서낭의 위치에서 3반의 서낭이 산 속에 있고, 2반의 서낭은 마을 어귀에 위치한다.

  4. 축문과 홀기 : 행깨마을의 축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첩에 적힌 인물들이 만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193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 전승되는 축문 이전에도 축문(고본)이 있었으나 축문 등 관련 자료들은 6•25전쟁의 와중에 모두 소실되었다. 홀기의 뒤편에 축문이 적혀 있다.

  5. 제관 : 본래 향호리 천제사의 제관으로는 남자만 참석하였으나,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주민이 참석한다. 제물 장만은 유사를 두 집 선정하여 담당토록 한다. 부부가 모두 생존해 있는 집은 정(正)유사가 되고, 할머니만 있는 집은 부(副)유사가 되어 함께 장만한다. 마을에 할머니만 있는 집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유사는 마을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한다. 이처럼 돌아가며 맡는 것을 ‘차지’라고 한다. 제관은 마을 주민들이 몇 가구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헌관, 축관, 집사 등을 법식대로 모두 선정하여 제의를 봉행한다.

  6. 제물 : 행깨마을의 제물 장만에 드는 비용은 약 30만 원이 매년 일정액을 주민들로부터 추렴하여 마을 제사용으로 적립한 기금으로 충당한다. 주요 희생으로 사용하는 것은 생(生)쇠고기이다. 기타 제물로 북어포(신위당 세 마리), 백설기(신위당 한 시루), 메(신위당 한 그릇)를 각각 올린다. 이 밖에 탕, 나물, 과일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과일을 사용한 것으로 문헌에 나와 있다. 제물 음식을 장만하는 과정에 남자와 여자가 모두 음식을 만질 수 있으나 메만은 반드시 남자가 짓는다. 제주는 약주를 구입하여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정종이라 알려져 있는 청주이다.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지만 제사 후 주민들이 먹으려고 도치를 사다가 탕을 만들어 놓는다. 이웃 마을인 3반 찬샘마을에서는 도치로 탕을 해 제상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로 보아 후대에 의미가 변해서 올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제물은 인근 주문진 읍내에 나가 구입한다.

  7. 제의 절차 : 제삿날이 다가오면 서낭당과 유사집에 금줄을 친다. 금줄은 물론 왼새끼를 꼬고 사이사이에 흰종이를 잘라 넣어 만든다. 그리고 황토를 구해와 유사집 문간 양쪽으로 벌려 놓아 잡인의 출입을 막는다. 서낭당에는 황토를 하지 않는다. 제삿날에는 제물을 장만하여 서낭당에서 홀기에 따라 제의를 진행한다. 예전에는 실과 종이를 서낭에 매달았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다.

  8. 행깨마을 서낭당의 전설 : 고목이 마을 서낭이다. 이 나무에 딱따구리가 집을 지어놓았다. 권씨 형제가 딱따구리 알을 빼먹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자 화가 나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날 저녁 호랑이가 나타나 권씨 형제네 집에 모래를 끼얹었다. 그리고 고목에 불을 놓은 사람은 정신이 나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또 그들은 어업을 하고 살았는데 그것도 모두 망했다.

  9. 기타 : 제복은 평상복이고, 제관과 축관은 건을 쓴다. 제기는 오래전에 마을기금으로 장만하여 놓았다. 마을 어귀 취적정이 있는 곳에 비석 세 개가 서 있다. 각기 신종계(愼終契), 목임계(睦任契), 성균관유도회 주문진유림기적비라 명명된 이들 비석은 향호가 문향(文香)의 고장임을 보여 주고 강릉지방에 특히 많은 계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어 흥미롭다.

참고문헌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1리 향호동(2반)의 고청제 (이한길, 제일강산, 강릉문화원, 2008강릉의 설화), 장정룡·이한길 (동녘 출판기획, 2003, 새말의 향기)

강릉행깨마을고청제

강릉행깨마을고청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이한길(李漢吉)

정의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1리 행깨마을의 제의. 원래는 하늘에 제향하는 제의였지만 전승 과정에서 변화하여 서낭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역사

1910년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따르면, 오늘날의 향호리는 香湖里[행깨], 香洞[행골], 槐南洞[괴냄이], 古馬洞[괴밀]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후 1916년경 행정구역 통폐합을 거치면서 향호리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마을이 커지자 일제강점기 때 다시 향호리와 고마동은 향호1리로, 향동과 괴남동은 향호2리로 구분되었다. 향호1리의 마을 제의는 고청제라 하며, 향호2리의 마을 제의는 망월제라 한다.

향호1리는 2008년 현재 8개 반이 있다. 방가동(1반, 7반), 행깨(2반), 찬샘(寒泉洞)(3반), 강정(江亭)(4반), 새잇말(5반), 웃말(6반), 군인아파트(8반) 등이다. 이 가운데 행깨마을과 찬샘마을에서 행하는 마을제의가 고청제이다. 행깨는 ‘향호 호숫가’라는 뜻으로, 이를 사투리로 발음한 것이며, 갯가, 호변동, 향호동으로도 부른다. 찬샘은 마을에 차고 맑은 우물이 있어서 명명된 것이다.

행깨마을은 향호 호숫가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조선 숙종 때 인물인 이영부(李永敷)가 낙향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전의 이씨(全義 李氏) 집성촌이다. 이영부가 자리 잡은 집터는 오늘날 강릉의 8명당 중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그는 향호 호숫가에 취적정(取適亭)이란 정자를 짓고 음풍농월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의 마을 제의는 이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짐작되며, 서낭당은 취적정 뒤쪽에 있다.

내용

행깨마을 제의의 성격은 명확하지 않다. 이 마을 제의의 홀기에는 고청제(告淸祭)라 표기하였으나 문헌에는 ‘천제(天祭)’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성격은 천제인 것으로 짐작된다. 즉, 고청제는 고천제(告天祭)의 잘못된 표현인 것으로 여겨진다.

제의 일시 : 행깨마을의 제의는 본래 자시(子時)에 행하던 것이었지만, 8~9년 전부터 정월 초정(初丁)에 해가 지면 곧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본래는 3반의 서낭이 할아버지이고 2반의 서낭이 할머니여서 3반의 제사가 끝날 때쯤 비로소 2반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제의의 시간은 마을별로 제각기 독자적으로 지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제당 : 행깨마을의 서낭당은 제단에 모셔진 돌로 만든 위패와 그것을 둘러싼 담장, 그 주위에 수령이 몇 백 년 됨직한 여러 그루의 소나무로 구성되어있다. 이 담장은 낡아서 2007년 취적정을 복원하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수령 34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소나무는 현재 강릉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돌로 만든 위패는 인근 석산 회사에서 기증(1998년)하였다. 위패 뒷면에는 영해 이씨(寧海 李氏) 동명공파 종회, 주문진 규사광업소, 보고석산에서 협찬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신위 : 행깨마을의 신위는 성황지신, 토지지신, 여역지신이다. 성황, 토지, 여역의 3위를 모실 때에는 본시 성황을 주신(主神)으로 여기므로 성황을 제단의 중앙에 배치하는 것이 관례인데 행깨마을은 특이하게 토지지신을 중앙에 위치시켰다. 이에 관한 전승은 현재 중단되었기에 알 수 없다. 찬샘마을 서낭은 할아버지이고 행깨마을의 서낭은 할머니이며 두 서낭의 위치에서 3반의 서낭이 산 속에 있고, 2반의 서낭은 마을 어귀에 위치한다.

축문과 홀기 : 행깨마을의 축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첩에 적힌 인물들이 만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193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 전승되는 축문 이전에도 축문(고본)이 있었으나 축문 등 관련 자료들은 6•25전쟁의 와중에 모두 소실되었다. 홀기의 뒤편에 축문이 적혀 있다.

제관 : 본래 향호리 천제사의 제관으로는 남자만 참석하였으나,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주민이 참석한다. 제물 장만은 유사를 두 집 선정하여 담당토록 한다. 부부가 모두 생존해 있는 집은 정(正)유사가 되고, 할머니만 있는 집은 부(副)유사가 되어 함께 장만한다. 마을에 할머니만 있는 집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유사는 마을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한다. 이처럼 돌아가며 맡는 것을 ‘차지’라고 한다. 제관은 마을 주민들이 몇 가구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헌관, 축관, 집사 등을 법식대로 모두 선정하여 제의를 봉행한다.

제물 : 행깨마을의 제물 장만에 드는 비용은 약 30만 원이 매년 일정액을 주민들로부터 추렴하여 마을 제사용으로 적립한 기금으로 충당한다. 주요 희생으로 사용하는 것은 생(生)쇠고기이다. 기타 제물로 북어포(신위당 세 마리), 백설기(신위당 한 시루), 메(신위당 한 그릇)를 각각 올린다. 이 밖에 탕, 나물, 과일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과일을 사용한 것으로 문헌에 나와 있다. 제물 음식을 장만하는 과정에 남자와 여자가 모두 음식을 만질 수 있으나 메만은 반드시 남자가 짓는다. 제주는 약주를 구입하여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정종이라 알려져 있는 청주이다.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지만 제사 후 주민들이 먹으려고 도치를 사다가 탕을 만들어 놓는다. 이웃 마을인 3반 찬샘마을에서는 도치로 탕을 해 제상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로 보아 후대에 의미가 변해서 올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제물은 인근 주문진 읍내에 나가 구입한다.

제의 절차 : 제삿날이 다가오면 서낭당과 유사집에 금줄을 친다. 금줄은 물론 왼새끼를 꼬고 사이사이에 흰종이를 잘라 넣어 만든다. 그리고 황토를 구해와 유사집 문간 양쪽으로 벌려 놓아 잡인의 출입을 막는다. 서낭당에는 황토를 하지 않는다. 제삿날에는 제물을 장만하여 서낭당에서 홀기에 따라 제의를 진행한다. 예전에는 실과 종이를 서낭에 매달았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다.

행깨마을 서낭당의 전설 : 고목이 마을 서낭이다. 이 나무에 딱따구리가 집을 지어놓았다. 권씨 형제가 딱따구리 알을 빼먹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자 화가 나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날 저녁 호랑이가 나타나 권씨 형제네 집에 모래를 끼얹었다. 그리고 고목에 불을 놓은 사람은 정신이 나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또 그들은 어업을 하고 살았는데 그것도 모두 망했다.

기타 : 제복은 평상복이고, 제관과 축관은 건을 쓴다. 제기는 오래전에 마을기금으로 장만하여 놓았다. 마을 어귀 취적정이 있는 곳에 비석 세 개가 서 있다. 각기 신종계(愼終契), 목임계(睦任契), 성균관유도회 주문진유림기적비라 명명된 이들 비석은 향호가 문향(文香)의 고장임을 보여 주고 강릉지방에 특히 많은 계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어 흥미롭다.

참고문헌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1리 향호동(2반)의 고청제 (이한길, 제일강산, 강릉문화원, 2008강릉의 설화)
장정룡·이한길 (동녘 출판기획, 2003, 새말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