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집람(家禮輯覽)

한자명

家禮輯覽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가례家禮에 관련된 여러 학자의 예설을 취사선택하고 고례古禮를 참작하여 『가례』의 각 조목에 주註를 달고 해설한 예서禮書.

내용

『가례집람家禮輯覽』은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본문을 기본으로 하여 여기에 고례와 여러 학자의 관련 예설을 주석으로 붙인 것이다. 권1은 통례通禮, 권2는 관례冠禮, 권3은 혼례婚禮, 권4~9는 상례喪禮, 권10은 제례祭禮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예서는 『사계전서沙溪全書』에는 본문 6권과 도설圖說 2권 등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1685년(숙종 11) 문인 송시열宋時烈이 「후서後序」를 붙여서 이 책을 간행할 때에는 10권 6책으로 분권分卷하였다. 현재 규장각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김장생은 『가례집람』의 「서序」에서 이 책이 친구 신의경申義慶과의 강론으로 시작된 것이고, 또 사문師門(여기서는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취정就正(도道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질정을 받음)을 거쳐서 제작된 것 임을 밝히고 있다. 후일 송시열은 「후서後序」에서 이 책이 특히 주자가 교정하지 못한 상제례에 집중적인 노력을 한 것을 지적하고, “선생이 상제喪祭 이례二禮에 깊이 공을 쏟아 물을 담아도 새지 않을 정도가 되게 했다.”라고 평하였다.

『가례집람』의 특색은 도설圖說과 예설의 체계적 집성에 있다. 도설은 독자들이 이 책을 참고하는데 편의를 주기 위한 시도로서 『가례』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또 『가례집람』에는 조선학자들의 예설과 국제國制 및 국속國俗이 160여 회나 수록되어 있어서 주목된다 . 여기에는 또한 80여 종의 인용서목을 적고 편목篇目을 밝혔으며, 자기 의견일 경우에는 ‘우愚’자나 ‘안按’자를 써서 구분하였다. 또 인용 예전禮典으로는 『오례의五禮儀』와 함께 『경국대전經國大典』, 『경제육전經濟六典』 등의 법전류法典類가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이 가례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조선적인 가례를 이루고자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록된 예설은 이황의 예설이 전체 인용 예설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비판적 수용이 주조를 이룬다. 『가례집람』이 단순히 기호畿湖의 예설만을 집성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기호・영남의 예설을 조화롭게 수용한 예서임을 보이는 측면이다.

『가례집람』은 광범한 예설의 집성과 철저한 고증으로 우리나라의 예학을 학문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표적 예서이고, 또한 조선의 예설과 예속禮俗을 광범하게 정리하여 ‘조선적 가례의 집성’을 이룬 예서이며, 그 계몽성과 정밀성으로 인하여 예의 사회화에 상당한 기여를 한 예서였다.

가례집람

가례집람
한자명

家禮輯覽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가례家禮에 관련된 여러 학자의 예설을 취사선택하고 고례古禮를 참작하여 『가례』의 각 조목에 주註를 달고 해설한 예서禮書.

내용

『가례집람家禮輯覽』은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본문을 기본으로 하여 여기에 고례와 여러 학자의 관련 예설을 주석으로 붙인 것이다. 권1은 통례通禮, 권2는 관례冠禮, 권3은 혼례婚禮, 권4~9는 상례喪禮, 권10은 제례祭禮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예서는 『사계전서沙溪全書』에는 본문 6권과 도설圖說 2권 등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1685년(숙종 11) 문인 송시열宋時烈이 「후서後序」를 붙여서 이 책을 간행할 때에는 10권 6책으로 분권分卷하였다. 현재 규장각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김장생은 『가례집람』의 「서序」에서 이 책이 친구 신의경申義慶과의 강론으로 시작된 것이고, 또 사문師門(여기서는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취정就正(도道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질정을 받음)을 거쳐서 제작된 것 임을 밝히고 있다. 후일 송시열은 「후서後序」에서 이 책이 특히 주자가 교정하지 못한 상제례에 집중적인 노력을 한 것을 지적하고, “선생이 상제喪祭 이례二禮에 깊이 공을 쏟아 물을 담아도 새지 않을 정도가 되게 했다.”라고 평하였다.

『가례집람』의 특색은 도설圖說과 예설의 체계적 집성에 있다. 도설은 독자들이 이 책을 참고하는데 편의를 주기 위한 시도로서 『가례』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또 『가례집람』에는 조선학자들의 예설과 국제國制 및 국속國俗이 160여 회나 수록되어 있어서 주목된다 . 여기에는 또한 80여 종의 인용서목을 적고 편목篇目을 밝혔으며, 자기 의견일 경우에는 ‘우愚’자나 ‘안按’자를 써서 구분하였다. 또 인용 예전禮典으로는 『오례의五禮儀』와 함께 『경국대전經國大典』, 『경제육전經濟六典』 등의 법전류法典類가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이 가례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조선적인 가례를 이루고자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록된 예설은 이황의 예설이 전체 인용 예설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비판적 수용이 주조를 이룬다. 『가례집람』이 단순히 기호畿湖의 예설만을 집성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기호・영남의 예설을 조화롭게 수용한 예서임을 보이는 측면이다.

『가례집람』은 광범한 예설의 집성과 철저한 고증으로 우리나라의 예학을 학문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표적 예서이고, 또한 조선의 예설과 예속禮俗을 광범하게 정리하여 ‘조선적 가례의 집성’을 이룬 예서이며, 그 계몽성과 정밀성으로 인하여 예의 사회화에 상당한 기여를 한 예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