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용호놀이

밀양 용호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경상남도 밀양 무안에서 해마다 정월 보름날 놀았던 용과 호랑이의 상박 놀이.

개관

밀양 용호놀이는 경남 밀양 무안면 무안리에서 행해 오던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 때 중단이 되었다. 그 후 1960년대에 와서 차츰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갈 때, 현지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 놀이를 재현하게 되었다. 무안은 원래 수안水安으로 부르다가 1922년부터 무안武安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역원과 사창·시장이 있었으며, 창녕·청도·창원 등지로 통하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옛날부터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다. 이러한 입지 환경에서 일찍부터 민중의 대동놀이였던 줄당기기, 용호놀이 등을 놀아 왔던 곳이다.

용호놀이의 원형은 줄당기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용호놀이는 조선 전기부터 놀아 왔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역사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고증할 방법은 없다. 용호놀이는 짚으로 용과 호랑이를 상징하는 큰 줄을 만들어 서로 상박하는 놀이인데, 이는 이곳의 진산이 서쪽은 백호 모양, 동쪽은 청룡 모양으로 앉아 있기 때문에 이를 상징화하여 놀게 된 것이 그 유래라 한다. 이 놀이는 처음에 양쪽 대장이 줄머리에 타고 서로 부닥쳐서 승부를 내거나, 대장끼리 접전하여 떨어뜨리거나, 양쪽 줄 위에 호랑이와 청룡을 각각 만들어 태우고 이를 먼저 빼앗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겨루었는데, 모두 너무 격렬하게 싸워서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청룡 줄에는 여의주로 분장한 소년이 타고, 백호 줄에는 금양金羊으로 분장한 소년이 타서 양쪽 줄이 접전할 때 이들이 상대방의 기를 빼앗는 것으로 싸움을 약화시켰다.

내용

용호놀이는 용龍과 호虎의 상징적인 싸움이다. 전해오는 풍수 사상에 의하면 명당은 사람이 양팔을 벌여 감싸듯 보한다고 여겼는데, 명당 둘레를 감싼 동쪽 산줄기를 좌청룡이라 하고, 서쪽 산줄기를 우백호라 한다. 산줄기를 신령한 동물인 청룡과 백호로 상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무안의 용호놀이를 청룡과 백호의 싸움으로 설정해 놓고, 짚으로 큰 줄을 만들어 동쪽을 청룡 줄, 서쪽을 백호 줄로 명명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승부 짓기를 해오다가 지금은 동부의 청룡 줄에는 대장과 용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여의주를 태우고, 서부의 백호 줄에는 대장과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금양을 태워서 서로 공격한다. 대장은 큰 칼을 빼들고 군사들을 독려하고, 접전할 때는 상대방 대장과 칼싸움을 벌인다.

용호놀이를 할 때 옛날에는 줄당기기에 쓰는 큰 줄을 이용했으나, 요즘에는 아예 용호놀이에 쓰는 머리가 큼직한 대형 줄을 따로 만들어 이를 이용하고 있다. 이 줄은 머리 쪽의 원형의 고가 앞쪽으로 향하여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 접전할 때 양편 줄이 부닥쳐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줄당기기 줄은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길이가 약 100m 정도 되는 큰 줄로서 보통 한 줄에 약 100명의 인원이 붙어서 둘러메고 다닌다. 줄이 나갈 때는 농악대와 응원하는 마을 사람들이 양편으로 에워싸고 춤을 추며 따른다.

용호놀이는 음력 정월 보름날 무안마을 앞의 넓은 논벌에서 놀았다. 용호놀이를 연행할 때 독자적으로 용호놀이만 노는 것이 아니라 용호놀이의 전후에 앞놀이와 뒷놀이를 연결하여 놀았다. 옛날에는 앞놀이를 14일에, 뒷놀이를 16일에 놀았다 한다. 앞놀이로는 길놀이와 지신밟기를 놀았고, 뒷놀이로는 줄당기기와 판굿놀이 등을 놀았는데, 요즘은 모두 정월 보름날 모아서 함께 놀고 있다.

용호놀이는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마당(전과장), 놀림 마당(농과장), 부름 마당(호과장), 비는 마당(고천과장), 싸움 마당(전과장), 뒷 마당(화동과장)이 그것이다.

앞마당에서는 동편과 서편이 각각 자기 진영을 정하고 동편에서는 청룡기를 세우고, 서편에서는 백호기를 세운다. 이것이 자기 진영의 표시이다. 기의 앞에는 각각 청룡 줄과 백호 줄이 대기를 한다. 대장과 중장, 소장이 앞에 나와 결전의 자세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지휘를 한다. 풍물이 질탕하게 흐르고, 한쪽에는 막걸리 독이 준비되어 있다. 풍물패도 마시고, 군사들도 한 잔씩 마신다. 얼큰한 기분이 되어야 더욱 신나게 싸움을 펼친다.

놀림 마당에서는 한쪽 편이 다른 쪽 편 가까이 가서 놀리는 말을 퍼부어 약을 올린다. 말하자면 너희는 약자이니 싸움에 이길 수 없다고 무시하는 것이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상대편 진지에 가서 야유와 욕설을 퍼붓는다. 이때 풍물은 최고로 고조된다. 이렇게 하여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고 돌아오면 이번에는 저쪽 편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저쪽 편에서도 꼭 같은 행위로 도전을 한다. 이러한 놀림의 도전이 몇 차례 오가게 된다.

부름 마당은 싸울 자 있으면 나오라고 불러내는 것이다. 이야말로 정식으로 도전하는 행위이다. 한쪽 편이 상대방 편으로 가서 “힘 센 장수 있으면 나오시오. 한 번 붙자.” 그러다가 미처 나오지 않으면, “겁에 질려 못 나오지. 추위 탔구나!” 하고 막말을 한다.

비는 마당에서는 이제 양 진영에서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대장이 줄 앞에 서서 간단한 음식과 술을 부어 놓고 제사를 올린다. 이제 곧 결전에 들어가니 하늘이 돌보시어 꼭 이기게 해 달라고 고천제를 올리는 것이다.

싸움 마당에서는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제 바야흐로 전운이 감돈다. 양편 군사들은 줄을 메고 상대방을 향하여 돌진한다. 옛날에는 줄 위에 대장·중장·소장이 탔으나, 요즘에는 대장과 여의주 혹은 금양만 탄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줄이 부닥치면 양쪽 대장은 장검을 빼어 들고 칼싸움을 벌인다. 그새 금양과 여의주가 상대방의 기를 먼저 빼앗아 오려고 날쌔게 설친다.

뒷 마당은 놀이의 마무리를 짓는 단계이다. 승패가 결정 나면 진 편은 놀이마당에 주저앉아 짚신을 벗어 들고 땅바닥을 치면서 눈물로 억울하다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다 함께 화동하여 풍물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겁게 논다. 이때에는 마을 사람들이나 관중들도 함께 모여서 춤추고 논다. 인생사 어려움을 잊은 채 즐거움을 만끽하며 순간을 즐긴다.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농민들은 마을의 태평과 풍농을 기원하며 새로운 활력소를 충전하는 것이다.

용호놀이가 끝났다고 모든 놀이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16일에 줄당기기를 하고, 판굿놀이를 한판 벌인 다음 모든 보름 놀이를 끝냈다.

특징 및 의의

경남 밀양의 무안은 오래된 산간벽지 마을이어서 그런지 옛날부터 내려오는 조상 전래의 고유한 민속놀이를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고장이다. 정월대보름에 다른 여러 곳에서도 행하는 줄당기기를 하면서도 또 다른 놀이인 용호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영산에서는 쇠머리대기를 하고, 안동에서는 차전놀이를 하지만 무안에서는 용과 호의 싸움인 용호놀이를 벌였다. 쇠머리대기는 소와 소의 싸움을 형상화 했고, 차전놀이는 수레와 수레가 서로 밀치는 싸움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용호놀이에서는 청룡과 백호의 싸움을 보여준다. 무안의 산세는 동편의 진등산과 서편의 질부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풍수 사상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용과 호의 싸움을 벌이는 민속놀이는 이곳 한 군데밖에 없다.

용호놀이는 대단히 상무적이어서 마치 군대가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격렬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보는 이들도 전율을 느낀다. 줄 위의 대장은 장검을 빼들고 군사들을 지휘하는데 전진의 속도, 줄을 공중으로 떠받치게 하는 것, 힘차게 나아가 상대와 충돌하게 하는 것 등을 몸짓과 칼짓으로 알린다. 접전을 할 때에는 줄에 탄 대장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몸싸움을 하기 때문에 다치거나 낙하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놀이 때에는 맹렬히 싸우지만 싸움이 끝나면 적대감을 씻고 모두가 한마당이 되어 화동하여 논다. 무안 사람들은 이러한 민속놀이를 치르면서 마을 사람들끼리의 화합을 다져 왔으며, 이제 새로 시작될 농사를 위한 새로운 힘을 비축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호놀이는 과거 즐길 거리가 없던 시절에 즐거운 마을 축제이기도 했지만, 농사의 준비를 기약하는 생산적인 행사가 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무안 용호놀이 연구(배도식, 한국민속학16, 한국민속학회, 1983), 한국민속의 현장(배도식, 집문당, 1993),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국립민속박물관, 2004).

밀양 용호놀이

밀양 용호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경상남도 밀양 무안에서 해마다 정월 보름날 놀았던 용과 호랑이의 상박 놀이.

개관

밀양 용호놀이는 경남 밀양 무안면 무안리에서 행해 오던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 때 중단이 되었다. 그 후 1960년대에 와서 차츰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갈 때, 현지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 놀이를 재현하게 되었다. 무안은 원래 수안水安으로 부르다가 1922년부터 무안武安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역원과 사창·시장이 있었으며, 창녕·청도·창원 등지로 통하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옛날부터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다. 이러한 입지 환경에서 일찍부터 민중의 대동놀이였던 줄당기기, 용호놀이 등을 놀아 왔던 곳이다.

용호놀이의 원형은 줄당기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용호놀이는 조선 전기부터 놀아 왔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역사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고증할 방법은 없다. 용호놀이는 짚으로 용과 호랑이를 상징하는 큰 줄을 만들어 서로 상박하는 놀이인데, 이는 이곳의 진산이 서쪽은 백호 모양, 동쪽은 청룡 모양으로 앉아 있기 때문에 이를 상징화하여 놀게 된 것이 그 유래라 한다. 이 놀이는 처음에 양쪽 대장이 줄머리에 타고 서로 부닥쳐서 승부를 내거나, 대장끼리 접전하여 떨어뜨리거나, 양쪽 줄 위에 호랑이와 청룡을 각각 만들어 태우고 이를 먼저 빼앗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겨루었는데, 모두 너무 격렬하게 싸워서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청룡 줄에는 여의주로 분장한 소년이 타고, 백호 줄에는 금양金羊으로 분장한 소년이 타서 양쪽 줄이 접전할 때 이들이 상대방의 기를 빼앗는 것으로 싸움을 약화시켰다.

내용

용호놀이는 용龍과 호虎의 상징적인 싸움이다. 전해오는 풍수 사상에 의하면 명당은 사람이 양팔을 벌여 감싸듯 보한다고 여겼는데, 명당 둘레를 감싼 동쪽 산줄기를 좌청룡이라 하고, 서쪽 산줄기를 우백호라 한다. 산줄기를 신령한 동물인 청룡과 백호로 상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무안의 용호놀이를 청룡과 백호의 싸움으로 설정해 놓고, 짚으로 큰 줄을 만들어 동쪽을 청룡 줄, 서쪽을 백호 줄로 명명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승부 짓기를 해오다가 지금은 동부의 청룡 줄에는 대장과 용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여의주를 태우고, 서부의 백호 줄에는 대장과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금양을 태워서 서로 공격한다. 대장은 큰 칼을 빼들고 군사들을 독려하고, 접전할 때는 상대방 대장과 칼싸움을 벌인다.

용호놀이를 할 때 옛날에는 줄당기기에 쓰는 큰 줄을 이용했으나, 요즘에는 아예 용호놀이에 쓰는 머리가 큼직한 대형 줄을 따로 만들어 이를 이용하고 있다. 이 줄은 머리 쪽의 원형의 고가 앞쪽으로 향하여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 접전할 때 양편 줄이 부닥쳐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줄당기기 줄은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길이가 약 100m 정도 되는 큰 줄로서 보통 한 줄에 약 100명의 인원이 붙어서 둘러메고 다닌다. 줄이 나갈 때는 농악대와 응원하는 마을 사람들이 양편으로 에워싸고 춤을 추며 따른다.

용호놀이는 음력 정월 보름날 무안마을 앞의 넓은 논벌에서 놀았다. 용호놀이를 연행할 때 독자적으로 용호놀이만 노는 것이 아니라 용호놀이의 전후에 앞놀이와 뒷놀이를 연결하여 놀았다. 옛날에는 앞놀이를 14일에, 뒷놀이를 16일에 놀았다 한다. 앞놀이로는 길놀이와 지신밟기를 놀았고, 뒷놀이로는 줄당기기와 판굿놀이 등을 놀았는데, 요즘은 모두 정월 보름날 모아서 함께 놀고 있다.

용호놀이는 모두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마당(전과장), 놀림 마당(농과장), 부름 마당(호과장), 비는 마당(고천과장), 싸움 마당(전과장), 뒷 마당(화동과장)이 그것이다.

앞마당에서는 동편과 서편이 각각 자기 진영을 정하고 동편에서는 청룡기를 세우고, 서편에서는 백호기를 세운다. 이것이 자기 진영의 표시이다. 기의 앞에는 각각 청룡 줄과 백호 줄이 대기를 한다. 대장과 중장, 소장이 앞에 나와 결전의 자세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지휘를 한다. 풍물이 질탕하게 흐르고, 한쪽에는 막걸리 독이 준비되어 있다. 풍물패도 마시고, 군사들도 한 잔씩 마신다. 얼큰한 기분이 되어야 더욱 신나게 싸움을 펼친다.

놀림 마당에서는 한쪽 편이 다른 쪽 편 가까이 가서 놀리는 말을 퍼부어 약을 올린다. 말하자면 너희는 약자이니 싸움에 이길 수 없다고 무시하는 것이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상대편 진지에 가서 야유와 욕설을 퍼붓는다. 이때 풍물은 최고로 고조된다. 이렇게 하여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고 돌아오면 이번에는 저쪽 편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저쪽 편에서도 꼭 같은 행위로 도전을 한다. 이러한 놀림의 도전이 몇 차례 오가게 된다.

부름 마당은 싸울 자 있으면 나오라고 불러내는 것이다. 이야말로 정식으로 도전하는 행위이다. 한쪽 편이 상대방 편으로 가서 “힘 센 장수 있으면 나오시오. 한 번 붙자.” 그러다가 미처 나오지 않으면, “겁에 질려 못 나오지. 추위 탔구나!” 하고 막말을 한다.

비는 마당에서는 이제 양 진영에서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대장이 줄 앞에 서서 간단한 음식과 술을 부어 놓고 제사를 올린다. 이제 곧 결전에 들어가니 하늘이 돌보시어 꼭 이기게 해 달라고 고천제를 올리는 것이다.

싸움 마당에서는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제 바야흐로 전운이 감돈다. 양편 군사들은 줄을 메고 상대방을 향하여 돌진한다. 옛날에는 줄 위에 대장·중장·소장이 탔으나, 요즘에는 대장과 여의주 혹은 금양만 탄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줄이 부닥치면 양쪽 대장은 장검을 빼어 들고 칼싸움을 벌인다. 그새 금양과 여의주가 상대방의 기를 먼저 빼앗아 오려고 날쌔게 설친다.

뒷 마당은 놀이의 마무리를 짓는 단계이다. 승패가 결정 나면 진 편은 놀이마당에 주저앉아 짚신을 벗어 들고 땅바닥을 치면서 눈물로 억울하다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다 함께 화동하여 풍물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겁게 논다. 이때에는 마을 사람들이나 관중들도 함께 모여서 춤추고 논다. 인생사 어려움을 잊은 채 즐거움을 만끽하며 순간을 즐긴다.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농민들은 마을의 태평과 풍농을 기원하며 새로운 활력소를 충전하는 것이다.

용호놀이가 끝났다고 모든 놀이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16일에 줄당기기를 하고, 판굿놀이를 한판 벌인 다음 모든 보름 놀이를 끝냈다.

특징 및 의의

경남 밀양의 무안은 오래된 산간벽지 마을이어서 그런지 옛날부터 내려오는 조상 전래의 고유한 민속놀이를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고장이다. 정월대보름에 다른 여러 곳에서도 행하는 줄당기기를 하면서도 또 다른 놀이인 용호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영산에서는 쇠머리대기를 하고, 안동에서는 차전놀이를 하지만 무안에서는 용과 호의 싸움인 용호놀이를 벌였다. 쇠머리대기는 소와 소의 싸움을 형상화 했고, 차전놀이는 수레와 수레가 서로 밀치는 싸움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용호놀이에서는 청룡과 백호의 싸움을 보여준다. 무안의 산세는 동편의 진등산과 서편의 질부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풍수 사상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용과 호의 싸움을 벌이는 민속놀이는 이곳 한 군데밖에 없다.

용호놀이는 대단히 상무적이어서 마치 군대가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격렬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보는 이들도 전율을 느낀다. 줄 위의 대장은 장검을 빼들고 군사들을 지휘하는데 전진의 속도, 줄을 공중으로 떠받치게 하는 것, 힘차게 나아가 상대와 충돌하게 하는 것 등을 몸짓과 칼짓으로 알린다. 접전을 할 때에는 줄에 탄 대장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몸싸움을 하기 때문에 다치거나 낙하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놀이 때에는 맹렬히 싸우지만 싸움이 끝나면 적대감을 씻고 모두가 한마당이 되어 화동하여 논다. 무안 사람들은 이러한 민속놀이를 치르면서 마을 사람들끼리의 화합을 다져 왔으며, 이제 새로 시작될 농사를 위한 새로운 힘을 비축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호놀이는 과거 즐길 거리가 없던 시절에 즐거운 마을 축제이기도 했지만, 농사의 준비를 기약하는 생산적인 행사가 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무안 용호놀이 연구(배도식, 한국민속학16, 한국민속학회, 1983), 한국민속의 현장(배도식, 집문당, 1993),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국립민속박물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