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질서(家禮疾書)

가례질서

한자명

家禮疾書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가례家禮에 관한 여러 학설을 모아서 당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새롭게 분석하고 해석한 예서禮書.

내용

『가례질서家禮疾書』는 필사본 3권 3책의 가례서이다. 제작 시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일명 『성호가례질서星湖家禮疾書』라고도 한다. ‘질서疾書’는 원래 송나라의 학자 장재張載가 “공부하다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밤중이라도 일어나서 빨리[疾] 기록[書]했다.”라고 한말에서 유래했다.

책머리에는 1731년(영조 7)에 저자가 쓴 「자서自序」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생전에 필사筆寫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서」에서 이익은 편찬 동기에 대해, “예禮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시의時宜에 맞도록 고칠 필요가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 18세기의 실학자였던 이익의 무실적務實的 예학사상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가례질서』의 본문은 도설圖說·통례通禮·관례冠禮·계례筓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도설, 즉 가례도家禮圖 1편·통례 31편·관례 17편·계례 5편·혼례 25편·상례 15편으로 되어 있고, 권2~3은 상례 134편·제례 38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사례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서도 상례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의 제설諸說에 대해서 비판적・실증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례질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가례도와 통례이다. 이익은 가례도(권1)에서 가례도가 주자의 『가례』의 본문과 다른 부분이 많고, 특히 그 안에 “1213년에 반시거潘時擧가 지은 지識”가 부록된 것으로 보아, 가례도가 주자朱子(1130~1200)의 『가례』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주자가 지은 도설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통례에서는 사당의 구조에 관한 설명에서 “신분의 귀천에 따라 그 규모가 다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당에 배속할 제전祭田의 면적에 관한 설명에서 “제사는 생활 정도에 따라 지내야 하므로 농민의 경우 배위당配位當 위토位土의 면적을 자기가 소유한 전토田土의 20분의 1범위 내에서 정할 것”을 말하고 있다.

예禮를 역사적인 관점과 실용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여 현실에 맞는 새로운 모형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가례질서』는 실학實學을 집성한 이익의 무실적 예학 성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예서라 할 수 있다.

가례질서

가례질서
한자명

家禮疾書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가례家禮에 관한 여러 학설을 모아서 당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새롭게 분석하고 해석한 예서禮書.

내용

『가례질서家禮疾書』는 필사본 3권 3책의 가례서이다. 제작 시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일명 『성호가례질서星湖家禮疾書』라고도 한다. ‘질서疾書’는 원래 송나라의 학자 장재張載가 “공부하다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밤중이라도 일어나서 빨리[疾] 기록[書]했다.”라고 한말에서 유래했다.

책머리에는 1731년(영조 7)에 저자가 쓴 「자서自序」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생전에 필사筆寫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서」에서 이익은 편찬 동기에 대해, “예禮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시의時宜에 맞도록 고칠 필요가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 18세기의 실학자였던 이익의 무실적務實的 예학사상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가례질서』의 본문은 도설圖說·통례通禮·관례冠禮·계례筓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도설, 즉 가례도家禮圖 1편·통례 31편·관례 17편·계례 5편·혼례 25편·상례 15편으로 되어 있고, 권2~3은 상례 134편·제례 38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사례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서도 상례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의 제설諸說에 대해서 비판적・실증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례질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가례도와 통례이다. 이익은 가례도(권1)에서 가례도가 주자의 『가례』의 본문과 다른 부분이 많고, 특히 그 안에 “1213년에 반시거潘時擧가 지은 지識”가 부록된 것으로 보아, 가례도가 주자朱子(1130~1200)의 『가례』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주자가 지은 도설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통례에서는 사당의 구조에 관한 설명에서 “신분의 귀천에 따라 그 규모가 다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당에 배속할 제전祭田의 면적에 관한 설명에서 “제사는 생활 정도에 따라 지내야 하므로 농민의 경우 배위당配位當 위토位土의 면적을 자기가 소유한 전토田土의 20분의 1범위 내에서 정할 것”을 말하고 있다.

예禮를 역사적인 관점과 실용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여 현실에 맞는 새로운 모형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가례질서』는 실학實學을 집성한 이익의 무실적 예학 성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예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