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놀이

기차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이상호(李相昊)

정의

새끼줄이나 긴 줄을 이용해 기차를 만들어 그 안에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차 탄 흉내를 내는 놀이.

내용

신기한 것을 따라 해 보려고 하는 아이들의 마음에서 생긴 놀이로 가마타기나 말타기와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놀이이다. 구한말 기차가 들어오게 되고 이를 모방하여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널리 행해졌다. 우리나라에 기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9년 9월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이 만들어지면서이다. 그 이듬해 한강철교가 놓여 경인선이 완공되고 이어 1905년 경부선, 1906년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1914년 경원(산)선과 호남선이 개통됨으로써 기차가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따라서 기차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중반까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이 놀이와 유사한 꼬리따기(꼬리잡기)에 재미를 느끼던 터라 기차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하나의 놀이로 정착된다. 따라서 구체적인 시작은 오래지 않고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보면 충청북도 지방에서 행해지는 기차놀이가 간단히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다.

5~6세 되는 어린아이 대여섯이 짝을 지어 새끼 양끝을 매어 그 속에 일렬로 늘어서서 ‘뛰뛰 칙칙 폭폭’ 하면서 ‘여기는 서울입니다. 내릴 손님은 빨리 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머물렀다 또 떠나곤 한다.

그 밖에 최상수에 의해 1962년에 정리된 『경기도지』에는 놀이 방법까지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놀이 인원이 3인에서 수십 명’이라 한 것을 보면 어린아이뿐 아니라 꽤 큰 아이들도 함께 놀았던 것 같다. 1994년 발간된 『금산의 민속놀이』에 실린 것을 보면 근래까지 이어진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새끼줄이나 빨래줄, 줄넘기 줄을 이은 것으로 길게 타원형을 만든다. 술래는 없고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이 기관사(운전사)가 되고, 이후 기관사 역할은 차례로 한다. 기차를 타는 요령은 기관사가 새끼줄을 배꼽 부분에 걸치고 양손으로 줄을 잡고 있으면 나머지 아이들도 한 사람씩 그 안으로 들어와서 줄만 잡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가장 늦게 타는 아이는 줄이 팽팽하게 되도록 등에 줄을 걸친다. 이때 너무 촘촘히 타면 걷기가 불편하여 넘어지므로 약간의 간격을 둔다. 준비가 되면 앞으로 가고 나머지는 줄이 팽팽해지도록 양손으로 줄을 잡고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빽” 하고 소리를 내면서 따라 간다. 이 놀이는 온 동네가 놀이터가 된다. 골목 구석구석에 실제 정거장처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정거장을 만들어 놓고 이리 저리 골목을 누비다가 기관사가 정거장에 서서 “~역 입니다. 내리실 분 내리세요.”라고 하면 손님이 내리는 것처럼 한두 사람 내린다. 각 지점을 돌아 출발점에 다다르면 다시 기관사를 뽑아 위와 같이 되풀이한다.

특징 및 의의

단순한 이 놀이가 아이들에게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까지 행해지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줄이라는 매개로 여럿을 묶어 함께 이동하며 느끼는 재미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작은 변화에 재미를 느끼는 어린아이들에게 기차놀이는 충분히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참고문헌

경기도지(경기도지 편찬위원회, 1962), 금산의 민속놀이(강성복, 금산문화원, 1994),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1~13(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1982).

기차놀이

기차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이상호(李相昊)

정의

새끼줄이나 긴 줄을 이용해 기차를 만들어 그 안에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차 탄 흉내를 내는 놀이.

내용

신기한 것을 따라 해 보려고 하는 아이들의 마음에서 생긴 놀이로 가마타기나 말타기와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놀이이다. 구한말 기차가 들어오게 되고 이를 모방하여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널리 행해졌다. 우리나라에 기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9년 9월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이 만들어지면서이다. 그 이듬해 한강철교가 놓여 경인선이 완공되고 이어 1905년 경부선, 1906년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1914년 경원(산)선과 호남선이 개통됨으로써 기차가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따라서 기차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중반까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이 놀이와 유사한 꼬리따기(꼬리잡기)에 재미를 느끼던 터라 기차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하나의 놀이로 정착된다. 따라서 구체적인 시작은 오래지 않고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보면 충청북도 지방에서 행해지는 기차놀이가 간단히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다.

5~6세 되는 어린아이 대여섯이 짝을 지어 새끼 양끝을 매어 그 속에 일렬로 늘어서서 ‘뛰뛰 칙칙 폭폭’ 하면서 ‘여기는 서울입니다. 내릴 손님은 빨리 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머물렀다 또 떠나곤 한다.

그 밖에 최상수에 의해 1962년에 정리된 『경기도지』에는 놀이 방법까지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놀이 인원이 3인에서 수십 명’이라 한 것을 보면 어린아이뿐 아니라 꽤 큰 아이들도 함께 놀았던 것 같다. 1994년 발간된 『금산의 민속놀이』에 실린 것을 보면 근래까지 이어진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새끼줄이나 빨래줄, 줄넘기 줄을 이은 것으로 길게 타원형을 만든다. 술래는 없고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이 기관사(운전사)가 되고, 이후 기관사 역할은 차례로 한다. 기차를 타는 요령은 기관사가 새끼줄을 배꼽 부분에 걸치고 양손으로 줄을 잡고 있으면 나머지 아이들도 한 사람씩 그 안으로 들어와서 줄만 잡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가장 늦게 타는 아이는 줄이 팽팽하게 되도록 등에 줄을 걸친다. 이때 너무 촘촘히 타면 걷기가 불편하여 넘어지므로 약간의 간격을 둔다. 준비가 되면 앞으로 가고 나머지는 줄이 팽팽해지도록 양손으로 줄을 잡고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빽” 하고 소리를 내면서 따라 간다. 이 놀이는 온 동네가 놀이터가 된다. 골목 구석구석에 실제 정거장처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정거장을 만들어 놓고 이리 저리 골목을 누비다가 기관사가 정거장에 서서 “~역 입니다. 내리실 분 내리세요.”라고 하면 손님이 내리는 것처럼 한두 사람 내린다. 각 지점을 돌아 출발점에 다다르면 다시 기관사를 뽑아 위와 같이 되풀이한다.

특징 및 의의

단순한 이 놀이가 아이들에게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까지 행해지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줄이라는 매개로 여럿을 묶어 함께 이동하며 느끼는 재미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작은 변화에 재미를 느끼는 어린아이들에게 기차놀이는 충분히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참고문헌

경기도지(경기도지 편찬위원회, 1962), 금산의 민속놀이(강성복, 금산문화원, 1994),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1~13(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