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

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장정룡(張正龍)

정의

강원도 강릉 사천면 하평리에서 음력 2월 6일에 마을 다리를 밟으며 풍년을 점치는 민속놀이.

개관

사천면 하평리는 강릉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8㎞ 떨어진 농촌 마을이다. 인근 바다를 접한 진리와는 다리를 경계로 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한 해 동안 우환이 생기지 않고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뜻에서 매년 음력 2월 초엿새 좀상날이 되면 다리밟기와 횃불놀이를 즐겼다. 6일 날 저녁이 되면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다리에 모여서 농사가 잘되기를 빌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다리밟기농악이 전승된다. ‘좀상’은 좀성・좀생이・조무생이라고도 부르는 이십팔수 가운데 하나인 묘성昴星이다. ‘좀’은 작다는 뜻으로 폴리아데스라 불리는 작은 별자리들이 모여 있다. 육안으로는 6~14개, 망원경으로는 100여 개 이상, 사진으로는 2천 개 이상이 촬영된다. 좀생이는 지역에 따라 송진이, 송싱이, 조무싱이, 소무생이, 송생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김매순金邁淳이 1819년에 작성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2월 6일 농가에서는 초저녁에 묘성과 달의 멀고 가까움을 보아 한 해 운수를 점친다. 둘이 같이 가거나 한 치 못되는 거리를 두고 앞서가면 한 해가 길하고 만약 앞이나 뒤로 한 치 이상 멀리 떨어져 가면 그 해는 흉년이 들어 어린 것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징험해 보면 자못 들어맞는다.”라고 하였다.

음력 2월 6일 저녁 7시쯤이 되면 이 좀생이와 초생달과의 거리를 보고 그 해 풍흉을 점친다. 좀생이의 거리가 접근되어 있으면 흉년이라 하고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좀생이 잘 따라 간다.”라고 하며 풍년들 것을 예측한다. 좀생이가 달을 마치 고삐를 쥐고 끌고 가듯하면 대풍이 들고, 달과 평행으로 가면 평년작, 달보다 뒤떨어져 가면 흉년이 든다고 점친다. 또 좀생이의 빛깔이 너무 붉으면 가뭄이 들고, 물을 머금은 듯 약간 투명하면 비가 많이 와서 곡식이 잘된다고 한다.

내용

강릉 지역에서는 좀상날 여러 마을에서 다리굿, 다리밟기, 쇠절금, 돌싸움, 횃불싸움 등을 행하고 있다. 특히 송정과 초당마을, 사천 하평마을과 진리의 답교놀이는 유명하다. 하평마을에는 예전에 농악대의 다리걸립이 자주 있었다. 마을 앞에 개울에 나무다리가 놓였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동해선 철길 위에 다리를 놓아서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 놓였던 나무다리는 주변 방동리, 산대월리, 수포리, 저동 등 여덟 개 마을이 이용하였으며 이곳을 통해서 장을 보러 다녔다. 사천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하평마을과 진리는 예전부터 좀상날에 다양한 민속놀이 경합을 통해서 풍년 기원행사를 치러 왔다.

하평 답교놀이의 구성은 먼저 마을에서 다리 입구에 높이 5m 정도로 송아리(소나무가지)를 엮어서 만든 솔문을 세워 놓고 다리굿을 친다. 솔문은 주술적인 상징물로 액막이 기능을 한다. 다리밟기나 횃불놀이꾼들은 반드시 이 솔문을 통과하여 놀이에 참가하게 된다. 하평마을 농악은 계절별로 다양하게 진행되는데, 정월에는 잡귀를 쫓고 복을 비는 걸립굿마당밝기・망월굿을 치고, 2월에는 좀상날 답교다리굿・기맞이굿을 하였다. 5월과 6월 농번기에는 단오굿 모내기농악을 치고, 7~8월에는 김매기를 끝내고 쉬는 때이므로 두레굿・백중놀이・추석놀이로 위안을 삼았다.

2월 좀상날 하평마을 다리밟기의 시작은 다리굿이다. 마을 농악대 상쇠가 마을 입구의 성황당에 가서 제물을 차려 놓고 절을 한 다음 “모십시다 모십시다 서낭님을 모십시다. 이월이라 좀상날에 국사서낭 모셔 놓고…….”라고 고사반을 치고 나서 마을의 다리로 이동한다. 지금은 새로 만든 다리에서 다리밟기를 하는데, 맨 앞에는 농기수가 등장하고, 다음에 태평소, 그리고 상쇠와 농악대가 대형을 이루고 나면 상쇠를 치면서 앞으로 나간다. 다리 입구에 도착하여 상쇠가 “술령수, 모년 이월 좀상에 이 다리 밟거든 영동의 대풍을 점지하소서.” 하고 크게 외치면 농악대와 횃꾼들이 모두 ‘와!’ 하고 소리를 지른 다음에, 제관들이 소머리와 제물 등을 동쪽을 향해 차려놓고 배례를 하고 주민들도 차례로 절을 한다. 다음에 상쇠가 쇠가락을 치면서 “앗다 이 다리 잘 놨다 술렁술렁 건너가세.” 하고 소리를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합창으로 함께 따라 부른다. 또한 농악대가 다리의 중간쯤에 도달하면 달을 향하여 “술령수 모년 이월 좀상날 이 다리를 밟고 금년 농사 대풍으로 이루어주시오.”라고 술령수를 치고 나서 다리밟기를 계속한다. 이때 주민들은 횃불을 들고 농악대를 따르고 다리를 밟으며 한 해 액운이 없기를 빌고, 신체의 다리가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두 번째 내용은 쇠절금이다. 이것은 ‘쇠겨룸’을 뜻하는데 하평과 진리 두 마을 상쇠들이 쇠를 치는 대결이다. 하평농악에서 사용하는 12채가락을 모두 사용하며, 자신들의 기량을 과시한다. 쇠가락은 일체,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구식길놀이 등이 있다. 리듬은 빠르면서도 모두 3분박, 4분박으로 단조롭지만 7~8조의 가락으로 구분되고 대부분 쇠가락은 외가락을 길게 반복한다. 세 번째는 돌싸움이다. 이것은 석전石戰이라고 하는데 편싸움 방식으로 투석전이다. 보통 정월 대보름날에 하지만 하평마을에서는 호두알 크기의 작은 돌을 던지면서 상무적尙武的 형태의 모의 승부를 냈다. 지금은 위험성 때문에 중단하고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돌싸움을 하다가 다치기도 하였다.

네 번째는 횃불싸움이다. 이 마을 청년들은 좀상날이 되면 대낮에 식구 수대로 싸리나 짚으로 횃대를 만든다. 저녁이 되면 농악대와 함께 들판으로 나가서 진을 친다. 달이 떠오를 무렵이 되면 어느 한 편의 주장이 먼저 상대편에게 ‘술령수’ 하면 상대가 ‘꼴래꼴래’라고 하면서 험담을 퍼붓는다. 그러면 얼마 동안 서로 욕설을 주고받다가 풍악이 울리면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횃대에 불을 붙여서 들고 나간다. ‘자, 오너라.’ 하면서 함성을 지르며 횃불을 휘두르면 상대편에서도 횃불을 들고 맞선다. 서로 횃불을 들고 때리고 넘어뜨리는데 이때 자연스레 한두 명씩 항복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항복한 사람이 많이 늘어난 편이 지게 된다. 이 놀이는 횃불을 끄면 끝나게 되는데, 청년들은 청년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도 한다. 이 놀이에서 진 마을은 그 해에 흉년이 들고 이긴 편은 풍년이 든다고 한다. 횃불싸움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두 마을 사람들이 다리를 밟는다. 다리밟기가 끝나면 사용했던 횃대 등은 황덕불을 피워 태운 다음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밤새워 논다. 좀상날 다음날부터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므로 농한기의 마지막 휴식과 놀이가 된다. 예전에는 좀상날에 ‘좀상주’라는 막걸리를 준비하여 농악대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 좀상주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립으로 거둔 쌀로 동네 주민들을 위해 만든 공동 흠향의 술이다. 과거에는 좀상날 농악대가 모여서 노는 ‘초군방’, ‘도방’이 있었으며, 좀상주는 부잣집에서 주관해서 만들었다.

과거 하평마을 앞의 통다리에서 행했던 다리밟기와 횃불싸움은 인근 마을에서 참가했다. 위아래 마을에서 횃불을 밝히고 있다가 달이 떠오르는 시점에 ‘떴다.’라는 신호가 떨어지면 마을에서 힘 좋은 청년들이 다리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장작으로 때리고 몸을 밀치면서 다리를 점유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는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 행사이기 때문이다.

하평마을의 다리밟기는 대부분 지역의 정월 대보름날과 달리 2월 초엿새날인 좀생이날에 다리를 밟는다. 사천 하평 답교놀이는 지난 2003년 3월 21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으며, 명예 보유자 조규복, 보유자 박종명, 교육 조교 허남욱・용기원・허화욱・김관식 등이 지정되었다. 하평 답교놀이 보존회가 구성되었으며 보존회관이 건립되어 있다.

특징 및 의의

좀생이날의 풍흉점년의 의미는 자연력의 일종이다. 농경사회에서 달과 별의 거리 관측으로 풍흉을 점치는 것은 오랜 세시 풍속이다. 그러나 하평 답교놀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 민속놀이와 제의, 겨루기, 개인적 소망 발원 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놀이를 중심으로 남녀노소 마을 주민이 하나가 되어 어울려 공동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축제적 성격을 지녀 우리 민속놀이 전형성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강릉시 사천면 하평마을민속지(장정룡 외, 강릉문화원, 2001), 사천면지 사월(선일권, 사천면지발간위원회, 1994), 조선대세시기(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중세시풍속 및 가요연구(장정룡, 집문당, 1988).

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

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장정룡(張正龍)

정의

강원도 강릉 사천면 하평리에서 음력 2월 6일에 마을 다리를 밟으며 풍년을 점치는 민속놀이.

개관

사천면 하평리는 강릉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8㎞ 떨어진 농촌 마을이다. 인근 바다를 접한 진리와는 다리를 경계로 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한 해 동안 우환이 생기지 않고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뜻에서 매년 음력 2월 초엿새 좀상날이 되면 다리밟기와 횃불놀이를 즐겼다. 6일 날 저녁이 되면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다리에 모여서 농사가 잘되기를 빌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다리밟기농악이 전승된다. ‘좀상’은 좀성・좀생이・조무생이라고도 부르는 이십팔수 가운데 하나인 묘성昴星이다. ‘좀’은 작다는 뜻으로 폴리아데스라 불리는 작은 별자리들이 모여 있다. 육안으로는 6~14개, 망원경으로는 100여 개 이상, 사진으로는 2천 개 이상이 촬영된다. 좀생이는 지역에 따라 송진이, 송싱이, 조무싱이, 소무생이, 송생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김매순金邁淳이 1819년에 작성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2월 6일 농가에서는 초저녁에 묘성과 달의 멀고 가까움을 보아 한 해 운수를 점친다. 둘이 같이 가거나 한 치 못되는 거리를 두고 앞서가면 한 해가 길하고 만약 앞이나 뒤로 한 치 이상 멀리 떨어져 가면 그 해는 흉년이 들어 어린 것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징험해 보면 자못 들어맞는다.”라고 하였다.

음력 2월 6일 저녁 7시쯤이 되면 이 좀생이와 초생달과의 거리를 보고 그 해 풍흉을 점친다. 좀생이의 거리가 접근되어 있으면 흉년이라 하고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좀생이 잘 따라 간다.”라고 하며 풍년들 것을 예측한다. 좀생이가 달을 마치 고삐를 쥐고 끌고 가듯하면 대풍이 들고, 달과 평행으로 가면 평년작, 달보다 뒤떨어져 가면 흉년이 든다고 점친다. 또 좀생이의 빛깔이 너무 붉으면 가뭄이 들고, 물을 머금은 듯 약간 투명하면 비가 많이 와서 곡식이 잘된다고 한다.

내용

강릉 지역에서는 좀상날 여러 마을에서 다리굿, 다리밟기, 쇠절금, 돌싸움, 횃불싸움 등을 행하고 있다. 특히 송정과 초당마을, 사천 하평마을과 진리의 답교놀이는 유명하다. 하평마을에는 예전에 농악대의 다리걸립이 자주 있었다. 마을 앞에 개울에 나무다리가 놓였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동해선 철길 위에 다리를 놓아서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 놓였던 나무다리는 주변 방동리, 산대월리, 수포리, 저동 등 여덟 개 마을이 이용하였으며 이곳을 통해서 장을 보러 다녔다. 사천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하평마을과 진리는 예전부터 좀상날에 다양한 민속놀이 경합을 통해서 풍년 기원행사를 치러 왔다.

하평 답교놀이의 구성은 먼저 마을에서 다리 입구에 높이 5m 정도로 송아리(소나무가지)를 엮어서 만든 솔문을 세워 놓고 다리굿을 친다. 솔문은 주술적인 상징물로 액막이 기능을 한다. 다리밟기나 횃불놀이꾼들은 반드시 이 솔문을 통과하여 놀이에 참가하게 된다. 하평마을 농악은 계절별로 다양하게 진행되는데, 정월에는 잡귀를 쫓고 복을 비는 걸립굿・마당밝기・망월굿을 치고, 2월에는 좀상날 답교다리굿・기맞이굿을 하였다. 5월과 6월 농번기에는 단오굿 모내기농악을 치고, 7~8월에는 김매기를 끝내고 쉬는 때이므로 두레굿・백중놀이・추석놀이로 위안을 삼았다.

2월 좀상날 하평마을 다리밟기의 시작은 다리굿이다. 마을 농악대 상쇠가 마을 입구의 성황당에 가서 제물을 차려 놓고 절을 한 다음 “모십시다 모십시다 서낭님을 모십시다. 이월이라 좀상날에 국사서낭 모셔 놓고…….”라고 고사반을 치고 나서 마을의 다리로 이동한다. 지금은 새로 만든 다리에서 다리밟기를 하는데, 맨 앞에는 농기수가 등장하고, 다음에 태평소, 그리고 상쇠와 농악대가 대형을 이루고 나면 상쇠를 치면서 앞으로 나간다. 다리 입구에 도착하여 상쇠가 “술령수, 모년 이월 좀상에 이 다리 밟거든 영동의 대풍을 점지하소서.” 하고 크게 외치면 농악대와 횃꾼들이 모두 ‘와!’ 하고 소리를 지른 다음에, 제관들이 소머리와 제물 등을 동쪽을 향해 차려놓고 배례를 하고 주민들도 차례로 절을 한다. 다음에 상쇠가 쇠가락을 치면서 “앗다 이 다리 잘 놨다 술렁술렁 건너가세.” 하고 소리를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합창으로 함께 따라 부른다. 또한 농악대가 다리의 중간쯤에 도달하면 달을 향하여 “술령수 모년 이월 좀상날 이 다리를 밟고 금년 농사 대풍으로 이루어주시오.”라고 술령수를 치고 나서 다리밟기를 계속한다. 이때 주민들은 횃불을 들고 농악대를 따르고 다리를 밟으며 한 해 액운이 없기를 빌고, 신체의 다리가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두 번째 내용은 쇠절금이다. 이것은 ‘쇠겨룸’을 뜻하는데 하평과 진리 두 마을 상쇠들이 쇠를 치는 대결이다. 하평농악에서 사용하는 12채가락을 모두 사용하며, 자신들의 기량을 과시한다. 쇠가락은 일체,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구식길놀이 등이 있다. 리듬은 빠르면서도 모두 3분박, 4분박으로 단조롭지만 7~8조의 가락으로 구분되고 대부분 쇠가락은 외가락을 길게 반복한다. 세 번째는 돌싸움이다. 이것은 석전石戰이라고 하는데 편싸움 방식으로 투석전이다. 보통 정월 대보름날에 하지만 하평마을에서는 호두알 크기의 작은 돌을 던지면서 상무적尙武的 형태의 모의 승부를 냈다. 지금은 위험성 때문에 중단하고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돌싸움을 하다가 다치기도 하였다.

네 번째는 횃불싸움이다. 이 마을 청년들은 좀상날이 되면 대낮에 식구 수대로 싸리나 짚으로 횃대를 만든다. 저녁이 되면 농악대와 함께 들판으로 나가서 진을 친다. 달이 떠오를 무렵이 되면 어느 한 편의 주장이 먼저 상대편에게 ‘술령수’ 하면 상대가 ‘꼴래꼴래’라고 하면서 험담을 퍼붓는다. 그러면 얼마 동안 서로 욕설을 주고받다가 풍악이 울리면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횃대에 불을 붙여서 들고 나간다. ‘자, 오너라.’ 하면서 함성을 지르며 횃불을 휘두르면 상대편에서도 횃불을 들고 맞선다. 서로 횃불을 들고 때리고 넘어뜨리는데 이때 자연스레 한두 명씩 항복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항복한 사람이 많이 늘어난 편이 지게 된다. 이 놀이는 횃불을 끄면 끝나게 되는데, 청년들은 청년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도 한다. 이 놀이에서 진 마을은 그 해에 흉년이 들고 이긴 편은 풍년이 든다고 한다. 횃불싸움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두 마을 사람들이 다리를 밟는다. 다리밟기가 끝나면 사용했던 횃대 등은 황덕불을 피워 태운 다음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밤새워 논다. 좀상날 다음날부터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므로 농한기의 마지막 휴식과 놀이가 된다. 예전에는 좀상날에 ‘좀상주’라는 막걸리를 준비하여 농악대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 좀상주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립으로 거둔 쌀로 동네 주민들을 위해 만든 공동 흠향의 술이다. 과거에는 좀상날 농악대가 모여서 노는 ‘초군방’, ‘도방’이 있었으며, 좀상주는 부잣집에서 주관해서 만들었다.

과거 하평마을 앞의 통다리에서 행했던 다리밟기와 횃불싸움은 인근 마을에서 참가했다. 위아래 마을에서 횃불을 밝히고 있다가 달이 떠오르는 시점에 ‘떴다.’라는 신호가 떨어지면 마을에서 힘 좋은 청년들이 다리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장작으로 때리고 몸을 밀치면서 다리를 점유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는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 행사이기 때문이다.

하평마을의 다리밟기는 대부분 지역의 정월 대보름날과 달리 2월 초엿새날인 좀생이날에 다리를 밟는다. 사천 하평 답교놀이는 지난 2003년 3월 21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으며, 명예 보유자 조규복, 보유자 박종명, 교육 조교 허남욱・용기원・허화욱・김관식 등이 지정되었다. 하평 답교놀이 보존회가 구성되었으며 보존회관이 건립되어 있다.

특징 및 의의

좀생이날의 풍흉점년의 의미는 자연력의 일종이다. 농경사회에서 달과 별의 거리 관측으로 풍흉을 점치는 것은 오랜 세시 풍속이다. 그러나 하평 답교놀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 민속놀이와 제의, 겨루기, 개인적 소망 발원 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놀이를 중심으로 남녀노소 마을 주민이 하나가 되어 어울려 공동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축제적 성격을 지녀 우리 민속놀이 전형성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강릉시 사천면 하평마을민속지(장정룡 외, 강릉문화원, 2001), 사천면지 사월(선일권, 사천면지발간위원회, 1994), 조선대세시기(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중세시풍속 및 가요연구(장정룡, 집문당,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