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내 게줄당기기

감내 게줄당기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경상남도 밀양 부북면 감천리(감내) 일대에서 전승되는, 게 모양의 줄을 어깨에 걸고 엎드려서 서로 등을 지고 끄는 줄싸움 형태의 놀이.

역사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에서 발원하여 남천강으로 흘러드는 강인 감내, 즉 감천甘川은 이웃 마을 제대리에서 김종직金宗直이 태어난 이후 냇물 맛이 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감천리 일대의 감내들을 관류하는 감천변甘川邊은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게[蟹]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이곳 상감・중감・하감 지역 주민들은 서로 좋은 게잡이 터를 차지하려고 잦은 싸움이 일어나 이웃끼리 반목이 생기는 등 인심이 나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을 어른들은 게 모양의 줄을 만들어 당겨 이긴 편이 먼저 터를 잡도록 권유하였고, 시합의 결과에 따라 구역을 할당하기로 했다. 이로 인하여 마을 사람끼리 반목하는 폐단이 사라졌는데, 이것이 동기가 되어 감내 게줄당기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게의 생산이 줄어들면서 게줄당기기는 1920년대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근대 이후 정월대보름과 칠월백중날 등의 농한기에 보湺나 농로를 고치기 위한 마을 공동 작업을 할 때 부역을 걸고 이 놀이를 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감내 게줄당기기는 1973년 5월 17일 밀양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제6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함으로써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1982년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밀양민속문화보존협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내용

게줄당기기는 현지에서 ‘끼줄땡기기’라고도 하는데, 이 놀이는 마주 보고 당기는 일반적인 줄다리기와 달리 줄을 어깨에 걸고 엎드려서 서로 등을 지고 끄는 점이 특이하다. 놀이에 쓰이는 줄의 형태도 일직선 형태의 줄다리기용 줄과 다르게 동그란 게 모양으로 만들고, 반지처럼 둥근 줄 주위에 게의 발처럼 곁줄(젖줄)이 길게 달려 있다. 줄은 질긴 새끼로 꼬는데 몸통 부분은 지름 2m 가량의 크기로 게의 등처럼 둥그렇고 굵게 감는다. 또 그것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게발 모양이 되게끔 12m, 10m, 8m 등의 길이로 곁줄을 길게 빼어 단다. 이 곁줄의 수는 놀이에 참가하는 놀이꾼의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 두 사람이 겨루는 소형 줄에서부터 세 사람씩 한 조가 되는 6인용 줄(3줄), 다섯 사람씩 나누어 겨루는 10인용 줄(5줄), 열 명씩 이루어지는 20인용(10줄) 등이 있다. 놀이를 준비하고 펼칠 때에 필요한 도구로는 위의 게줄을 비롯하여 줄을 드릴 때 받치는 용도로 쓰이는 작수바리, 춤판에서 흥을 돋우며 두들기는 나무구시(구유, 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악기의 구실을 하는 지게, 터빼앗기 싸움을 할 때 사용되는 대발, 그리고 양편의 깃발(상감은 용, 하감은 호랑이를 그린 기), ‘농자천하지대본’ 기 등이 있다.

놀이의 편 구성은 마을 동부 지역인 상감上甘과 서부 지역인 하감下甘의 놀이꾼들이 두 패로 나뉘어 이루어진다. 놀이의 절차는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1970년경부터 앞놀이, 본놀이(게줄당기기), 뒷놀이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앞놀이는 박씨할매당산제로 시작하여 터밟기─젓줄디리기─농발이놀이─판굿─터빼앗기─게줄어루기 순으로 진행된다. 이른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풍물꾼과 더불어 ‘박씨 할매사당’에 올라가 안녕과 번영을 축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그리고 줄다리기 장소인 장승백이로 가서 다시 제사를 올린 뒤 ‘오토 지신풀이’를 노래하면서 잡귀막이를 위한 터밟기를 한다. 이어서 밀양 덧배기의 춤판으로 흥을 고조시킨 다음 앞소리에 따라 젓줄(곁가지의 줄)을 드린다. 한편 마당 안에서는 줄다리기 장사를 뽑는 ‘농발이놀이’가 시작된다. 한 사람이 앉아서 두 사람을 옆으로 뉘어 양손으로 잡고 허리의 힘으로 일어나는 힘쓰기이다. 여기에서 뽑힌 가장 힘센 장사를 수농부首農夫로 삼고, 두 사람이 만든 손가마에 태워 돌거나 나무구시의 박자에 맞춰 <밀양아리랑> 등을 함께 부르며 한바탕 논다. 이때 놀이꾼들도 지게를 지고 막대기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는데 이를 ‘지게목발놀이’라 한다. 이렇게 한참 동안 놀고 난 뒤 게 잡는 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터빼앗기 싸움’을 시작한다. 이 놀이는 게줄당기기에 앞서 하는 놀이로서 줄다리기 때 유리한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기 위한 것인데, 수농부끼리 작은 2인용 줄을 목덜미에 걸어 당겨서 승부를 가린다.

승부가 나면 양편 사람들은 풍물꾼들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원형으로 주위를 한 바퀴 돌고 곧 본놀이인 게줄당기기로 들어간다. 게줄당기기는 심판격인 ‘줄도감’의 징소리를 신호로 시작되며, 이때 사용되는 게줄은 보통 20인용 줄이다. 양편에 각기 열 명씩 패를 구성한 뒤 각자 곁줄 속에 머리를 넣어 목덜미에 줄을 건다. 시작 신호와 함께 어깨와 허리에 힘을 주어 마치 소가 논갈이를 하듯 손과 발을 이용해 땅을 짚고 엎드려 기면서 앞으로 당긴다. 소요 시간은 대략 1에서 100까지 숫자를 셀 동안(약 3분 정도)이며, 승부는 중앙선에서 줄을 더 많이 끌어간 편이 이긴다. 한 판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세 판을 놀게 된다. 승패가 갈리면 뒷놀이로 이어지는데 이를 ‘화동놀이’라 한다. 이때 진 편은 모두 앉아 있고 이긴 편은 춤과 노래로 놀이판을 돌다가 진 편을 일으켜 세워 함께 어울려 화합의 춤을 추면서 대단원을 이룬다.

특징 및 의의

감내 게줄당기기는 원래 게를 잡기에 유리한 게잡이 터를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시작되었으나, 차츰 마을 사람들의 협동과 대동・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놀이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놀이에 앞서 당산제가 선행되고 잡귀막이 터밟기를 돌게 됨으로써 단순한 오락에서 벗어나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어 온 줄다리기는 일반적으로 외줄 혹은 쌍줄을 수십 명이 마주 서서 당기는 방식인데, 감내 게줄당기기는 소수의 인원으로 게줄을 목에 걸고 엎드려 당긴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감내 게줄당기기는 주민 화합과 인근 마을과의 불화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독창적인 민속놀이로서 겨루어 당기는 방식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도 소통과 화합의 대중적 오락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참고문헌

경남민속자료집(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남도지부, 1993), 미리벌의 얼(밀양군, 1983), 밀양민속자료집(밀양문화원, 1993), 향토의 민속문화(강용권,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1996).

감내 게줄당기기

감내 게줄당기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경상남도 밀양 부북면 감천리(감내) 일대에서 전승되는, 게 모양의 줄을 어깨에 걸고 엎드려서 서로 등을 지고 끄는 줄싸움 형태의 놀이.

역사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에서 발원하여 남천강으로 흘러드는 강인 감내, 즉 감천甘川은 이웃 마을 제대리에서 김종직金宗直이 태어난 이후 냇물 맛이 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감천리 일대의 감내들을 관류하는 감천변甘川邊은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게[蟹]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이곳 상감・중감・하감 지역 주민들은 서로 좋은 게잡이 터를 차지하려고 잦은 싸움이 일어나 이웃끼리 반목이 생기는 등 인심이 나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을 어른들은 게 모양의 줄을 만들어 당겨 이긴 편이 먼저 터를 잡도록 권유하였고, 시합의 결과에 따라 구역을 할당하기로 했다. 이로 인하여 마을 사람끼리 반목하는 폐단이 사라졌는데, 이것이 동기가 되어 감내 게줄당기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게의 생산이 줄어들면서 게줄당기기는 1920년대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근대 이후 정월대보름과 칠월백중날 등의 농한기에 보湺나 농로를 고치기 위한 마을 공동 작업을 할 때 부역을 걸고 이 놀이를 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감내 게줄당기기는 1973년 5월 17일 밀양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제6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함으로써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1982년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밀양민속문화보존협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내용

게줄당기기는 현지에서 ‘끼줄땡기기’라고도 하는데, 이 놀이는 마주 보고 당기는 일반적인 줄다리기와 달리 줄을 어깨에 걸고 엎드려서 서로 등을 지고 끄는 점이 특이하다. 놀이에 쓰이는 줄의 형태도 일직선 형태의 줄다리기용 줄과 다르게 동그란 게 모양으로 만들고, 반지처럼 둥근 줄 주위에 게의 발처럼 곁줄(젖줄)이 길게 달려 있다. 줄은 질긴 새끼로 꼬는데 몸통 부분은 지름 2m 가량의 크기로 게의 등처럼 둥그렇고 굵게 감는다. 또 그것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게발 모양이 되게끔 12m, 10m, 8m 등의 길이로 곁줄을 길게 빼어 단다. 이 곁줄의 수는 놀이에 참가하는 놀이꾼의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 두 사람이 겨루는 소형 줄에서부터 세 사람씩 한 조가 되는 6인용 줄(3줄), 다섯 사람씩 나누어 겨루는 10인용 줄(5줄), 열 명씩 이루어지는 20인용(10줄) 등이 있다. 놀이를 준비하고 펼칠 때에 필요한 도구로는 위의 게줄을 비롯하여 줄을 드릴 때 받치는 용도로 쓰이는 작수바리, 춤판에서 흥을 돋우며 두들기는 나무구시(구유, 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악기의 구실을 하는 지게, 터빼앗기 싸움을 할 때 사용되는 대발, 그리고 양편의 깃발(상감은 용, 하감은 호랑이를 그린 기), ‘농자천하지대본’ 기 등이 있다.

놀이의 편 구성은 마을 동부 지역인 상감上甘과 서부 지역인 하감下甘의 놀이꾼들이 두 패로 나뉘어 이루어진다. 놀이의 절차는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1970년경부터 앞놀이, 본놀이(게줄당기기), 뒷놀이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앞놀이는 박씨할매당산제로 시작하여 터밟기─젓줄디리기─농발이놀이─판굿─터빼앗기─게줄어루기 순으로 진행된다. 이른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풍물꾼과 더불어 ‘박씨 할매사당’에 올라가 안녕과 번영을 축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그리고 줄다리기 장소인 장승백이로 가서 다시 제사를 올린 뒤 ‘오토 지신풀이’를 노래하면서 잡귀막이를 위한 터밟기를 한다. 이어서 밀양 덧배기의 춤판으로 흥을 고조시킨 다음 앞소리에 따라 젓줄(곁가지의 줄)을 드린다. 한편 마당 안에서는 줄다리기 장사를 뽑는 ‘농발이놀이’가 시작된다. 한 사람이 앉아서 두 사람을 옆으로 뉘어 양손으로 잡고 허리의 힘으로 일어나는 힘쓰기이다. 여기에서 뽑힌 가장 힘센 장사를 수농부首農夫로 삼고, 두 사람이 만든 손가마에 태워 돌거나 나무구시의 박자에 맞춰 <밀양아리랑> 등을 함께 부르며 한바탕 논다. 이때 놀이꾼들도 지게를 지고 막대기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는데 이를 ‘지게목발놀이’라 한다. 이렇게 한참 동안 놀고 난 뒤 게 잡는 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터빼앗기 싸움’을 시작한다. 이 놀이는 게줄당기기에 앞서 하는 놀이로서 줄다리기 때 유리한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기 위한 것인데, 수농부끼리 작은 2인용 줄을 목덜미에 걸어 당겨서 승부를 가린다.

승부가 나면 양편 사람들은 풍물꾼들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원형으로 주위를 한 바퀴 돌고 곧 본놀이인 게줄당기기로 들어간다. 게줄당기기는 심판격인 ‘줄도감’의 징소리를 신호로 시작되며, 이때 사용되는 게줄은 보통 20인용 줄이다. 양편에 각기 열 명씩 패를 구성한 뒤 각자 곁줄 속에 머리를 넣어 목덜미에 줄을 건다. 시작 신호와 함께 어깨와 허리에 힘을 주어 마치 소가 논갈이를 하듯 손과 발을 이용해 땅을 짚고 엎드려 기면서 앞으로 당긴다. 소요 시간은 대략 1에서 100까지 숫자를 셀 동안(약 3분 정도)이며, 승부는 중앙선에서 줄을 더 많이 끌어간 편이 이긴다. 한 판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세 판을 놀게 된다. 승패가 갈리면 뒷놀이로 이어지는데 이를 ‘화동놀이’라 한다. 이때 진 편은 모두 앉아 있고 이긴 편은 춤과 노래로 놀이판을 돌다가 진 편을 일으켜 세워 함께 어울려 화합의 춤을 추면서 대단원을 이룬다.

특징 및 의의

감내 게줄당기기는 원래 게를 잡기에 유리한 게잡이 터를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시작되었으나, 차츰 마을 사람들의 협동과 대동・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놀이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놀이에 앞서 당산제가 선행되고 잡귀막이 터밟기를 돌게 됨으로써 단순한 오락에서 벗어나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어 온 줄다리기는 일반적으로 외줄 혹은 쌍줄을 수십 명이 마주 서서 당기는 방식인데, 감내 게줄당기기는 소수의 인원으로 게줄을 목에 걸고 엎드려 당긴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감내 게줄당기기는 주민 화합과 인근 마을과의 불화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독창적인 민속놀이로서 겨루어 당기는 방식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도 소통과 화합의 대중적 오락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참고문헌

경남민속자료집(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남도지부, 1993), 미리벌의 얼(밀양군, 1983), 밀양민속자료집(밀양문화원, 1993), 향토의 민속문화(강용권,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