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붕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김은영(金恩英)

정의

다양하게 장식된 임시 누각 형태의 무대.

내용

『사원辭源』에 의하면, 채붕綵棚은 “나무를 엮어 비단 장막으로 덮은 것謂木張綵以爲覆蔽也”을 말한다. 보통 채붕綵棚이라고 쓰지만, 채붕을 구성하는 화려한 비단을 강조하기 위해 채붕彩棚이라 쓰기도 한다.

채붕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대山臺’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대는 산 모양으로 꾸민 구조물을 말하는데, 1798년(정조 22)에 이만영이 편찬한 유서類書 『재물보才物譜』를 보면, 산대는 산붕·오산·오붕과 동일한 것으로 “산처럼 붕을 엮어 그 안에서 놀이를 베푼다 ○山臺結棚如山設戲其中산山棚○鰲山.”라고 한 반면, 채붕은 “비단을 엮어 붕을 만든다 ○鰲棚仝綵棚結綵爲棚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채붕은 산대나 소형 산대와 다른 구조물임을 밝히고 있다.

① 평안 황해도 관찰사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지금 명明나라 사신을 맞이할 때에 산대나례山臺儺禮는 옛날 그대로 하게 하되, 만약 날짜가 임박하여 갑자기 준비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거든 다만 채붕나례彩棚儺禮만을 베풀도록 하라.” 하였다.
- 세조실록世祖實錄 15권 5장 세조 5년 3월 22일(갑진)

② 병조가 계하기를 “산대의 높낮이에 대하여 상세한 규정이 없으므로 산대를 맺을 때마다 좌변과 우변이 높이를 다투다가 혹 바람이 심하면 쓰러질까 우려됩니다. 이후로는 산대의 기둥이 땅위로 60척尺 이상 나오지 말 것을 원칙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世宗實錄 31권 22장 세종 8년 2월 28일(임진)

③ “좌우편에 각각 봄 산, 여름 산, 가을 산, 겨울 산[雪山]을 만드는데, 산마다 상죽上竹 석 대와 차죽次竹 여섯 대가 들어갑니다. 상죽은 길이가 각각 90척이고 차죽의 길이는 각각 80척인데 양쪽의 산대에 드는 것을 계산하면 들어가야 할 상죽이 스물넉 대, 차죽이 마흔여덟 대이며 그 밖에 들어가야 할 기둥나무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가장 짧은 나무라고 해도 20여 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없습니다.”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156권 1장 광해 12년 9월 3일(정축)

④ “채붕彩棚이 비록 폐법弊法이 되지마는, 그러나 경사慶事이므로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신 등이 삼가 채붕의 제도를 상고해 보건대, 큰 채붕은 길이가 75척이고 너비가 60척이며, 중간 채붕은 길이가 60척이고 너비는 40척이니, 청컨대 중간 채붕을 설치하여 다정茶亭을 장식하소서.” 하였다. 허후를 불러오도록 명하여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다만 중간 채붕을 설치하여 다정茶亭을 장식하면 되겠다.”
- 문종실록文宗實錄 12권 27장 문종 2년 3월 8일(신축)

①를 보면 채붕나례와 산대나례를 변별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③, ④의 기록을 통해 산대는 산 모양으로 너비와 길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크기를 잴 때 높이로 재고, 채붕은 평평한 단을 가진 무대이기 때문에 너비와 길이로 크기를 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낙성연도落成宴圖>에서 채붕이 실제로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확인된다.

⑤ 아래는 감결이라.
그리고 감독 이하 서울에서 온 일꾼들 및 각처에서 이끌고 온 하인들의 음식과 꼴이나 말먹이까지도 또한 따로 회계관을 정하여 날짜를 계산하여 마련하여 지급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근에서 구경 온 백성은 반드시 양식을 가지고 와서 모이도록 하기 바랍니다. 다만 군데군데 모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장님 단청 구경하는 격이 되어 정말로 무엇을 보고 왔는지 모를 것이고, 이런 사람들은 위로하고 기쁘게 할 수가 없을 것이므로 도청에서 경포교에게 이 뜻을 알려 약간 떨어지고 널찍한 곳에다 채붕을 설치하고 잡희를 벌여 상하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기 바랍니다.
- 화성성역의궤 부편附編 이二 감결甘結 병진년 10월 초7일

<낙성연도>는 1794∼1796년(정조 18∼20) 경기도 화성에 성을 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일을 정리한 『화성성역의궤』에 수록된 그림이다. “상하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약간 떨어지고 널찍한 곳”에 세운 채붕은 <낙성연도>의 하단에 보이는 구조물처럼 평평한 단을 가진 다락[樓]임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이 또한 ‘산처럼’ 높아 단까지만 해도 사람 키의 세 배나 되며, 그 위에 꽂힌 나뭇가지 높이까지 합치면 어림잡아도 족히 여섯 배는 넘는다. 대개 채붕은 좌우 두 개를 설치하는데, 이 그림의 채붕 또한 좌우로 두 개를 설치했다.
이 그림에서 채붕 주위의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채붕 안을 가리키는가 하면, 채붕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채붕 안에 어떤 장식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마침 『고려사高麗史』에 이에 해당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⑥ 32년 4월 8일 최이崔怡가 연등회燃燈會를 하면서 채붕綵棚을 가설하고 기악伎樂과 온갖 잡희를 연출해 밤새도록 즐겁게 노니 …(중략)… 또 5월에는 종실의 사공司空 이상과 재추宰樞들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산처럼 높게 채붕을 가설하고 수단 장막과 능라 휘장을 둘러치고, 그 안에 비단과 채색 비단 꽃으로 장식된 그네를 매었으며, 은과 자개로 장식한 큰 분盆 네 개를 놓고 거기다가 얼음 봉우리를 만들었고, 또 큰 통 네 개에다가 10여 종의 이름난 생화들을 꽂아 놓아서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케 하였다. 그리고 기악과 온갖 잡희를 연출했는데, 팔방상공인八坊廂工人 1,350여 명이 모두 성대한 옷차림을 하고 뜰로 들어와서 주악奏樂하니 각종 악기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 고려사 129권 열전42 반역 최충헌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산처럼 높게 채붕을 만든 후, 그 안에 그네를 매고 얼음 봉우리[氷峯]를 만든 분과 생화를 꽂은 큰 통으로 장식했다. 또 채붕을 얽은 후 그 속에 다정茶亭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은 채붕을 설치하고 그 앞에 사람과 짐승 등 잡상을 벌려 세우고, 채붕 뒤에서 큰 통筒을 놓고 물을 부으면 물이 잡상의 입으로부터 흩어져 나와서 솟아오른다. 시속時俗에서 이것을 다정이라 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만든 구조물을 『성종실록成宗實錄』 16년 1월 17일(경자) 기사에서는 ‘다정산대茶亭山臺’로 칭하고 있다. 또한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60권 11년 12월 18일(무진)의 기록을 통해, 채붕에는 산 까마귀·까치가 각 50마리, 산 부엉이·꾀꼬리·산 매·산 따오기·솔개·비둘기·꿩이 각 20마리 등 살아 있는 생물까지 풀어 놓는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산대’와 ‘채붕’이 명확하게 변별되는 구조물인지를 놓고 학계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각 명칭이 쓰인 용례를 살펴보면, ‘산대’보다는 ‘채붕’과 관련된 용어가 훨씬 더 자주 보인다. 특히 산대 조설이 폐지된 인조 이후에는 실록에서 ‘산대’를 찾아볼 수 없으나, 사대부나 유생들이 사사롭게 설치한 사실에 대한 내용들에서 ‘채붕’이나 ‘산붕’이 발견된다. 즉 산대보다는 채붕이 훨씬 더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로써 채붕은 산대보다 더 포괄적인 구조물로 추측된다. 아울러 다만 관직의 명칭이라든가 관계 부서의 명칭에는 정전산대색庭殿山臺色, 산대도감山臺都監, 산대역군山臺役軍, 산대부장山臺部長, 산대목山臺木 등 ‘산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산대’가 ‘채붕’보다는 조직적인 동원을 통해 조성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채붕’도 기본적으로는 산의 형상을 꾀했다고 보이는데, 이러한 산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고 공연하는 문화는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과도 맥이 닿아 있다. 특히 한·중·일 세 나라에서 보이는 ‘신성한 산’의 조성과 연행은 군주의 권력과 왕조의 영속성을 과시하는 궁정 문화의 전례로 자리 잡았다. 이들 구조물은 당시 화려하고 풍부했던 연희 문화를 일면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사례이며, 서민의식의 대표 주자로 널리 인식되던 전통연희가 훨씬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연행되어 왔음을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동아시아 신성한 산 설행에 나타난 욕망과 이념(사진실, 공연문화연구12, 한국공연문화학회, 2006), 산대와 채붕(김은영, 산대와 채붕, 생활문물연구10, 국립민속박물관, 2003), 산대의 무대양식적 특성과 공연 방식(사진실, 구비문학연구7, 한국구비문학회, 1998),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

채붕

채붕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김은영(金恩英)

정의

다양하게 장식된 임시 누각 형태의 무대.

내용

『사원辭源』에 의하면, 채붕綵棚은 “나무를 엮어 비단 장막으로 덮은 것謂木張綵以爲覆蔽也”을 말한다. 보통 채붕綵棚이라고 쓰지만, 채붕을 구성하는 화려한 비단을 강조하기 위해 채붕彩棚이라 쓰기도 한다.

채붕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대山臺’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대는 산 모양으로 꾸민 구조물을 말하는데, 1798년(정조 22)에 이만영이 편찬한 유서類書 『재물보才物譜』를 보면, 산대는 산붕·오산·오붕과 동일한 것으로 “산처럼 붕을 엮어 그 안에서 놀이를 베푼다 ○山臺結棚如山設戲其中산山棚○鰲山.”라고 한 반면, 채붕은 “비단을 엮어 붕을 만든다 ○鰲棚仝綵棚結綵爲棚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채붕은 산대나 소형 산대와 다른 구조물임을 밝히고 있다.

① 평안 황해도 관찰사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지금 명明나라 사신을 맞이할 때에 산대나례山臺儺禮는 옛날 그대로 하게 하되, 만약 날짜가 임박하여 갑자기 준비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거든 다만 채붕나례彩棚儺禮만을 베풀도록 하라.” 하였다.
- 세조실록世祖實錄 15권 5장 세조 5년 3월 22일(갑진)

② 병조가 계하기를 “산대의 높낮이에 대하여 상세한 규정이 없으므로 산대를 맺을 때마다 좌변과 우변이 높이를 다투다가 혹 바람이 심하면 쓰러질까 우려됩니다. 이후로는 산대의 기둥이 땅위로 60척尺 이상 나오지 말 것을 원칙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世宗實錄 31권 22장 세종 8년 2월 28일(임진)

③ “좌우편에 각각 봄 산, 여름 산, 가을 산, 겨울 산[雪山]을 만드는데, 산마다 상죽上竹 석 대와 차죽次竹 여섯 대가 들어갑니다. 상죽은 길이가 각각 90척이고 차죽의 길이는 각각 80척인데 양쪽의 산대에 드는 것을 계산하면 들어가야 할 상죽이 스물넉 대, 차죽이 마흔여덟 대이며 그 밖에 들어가야 할 기둥나무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가장 짧은 나무라고 해도 20여 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없습니다.”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156권 1장 광해 12년 9월 3일(정축)

④ “채붕彩棚이 비록 폐법弊法이 되지마는, 그러나 경사慶事이므로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신 등이 삼가 채붕의 제도를 상고해 보건대, 큰 채붕은 길이가 75척이고 너비가 60척이며, 중간 채붕은 길이가 60척이고 너비는 40척이니, 청컨대 중간 채붕을 설치하여 다정茶亭을 장식하소서.” 하였다. 허후를 불러오도록 명하여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다만 중간 채붕을 설치하여 다정茶亭을 장식하면 되겠다.”
- 문종실록文宗實錄 12권 27장 문종 2년 3월 8일(신축)

①를 보면 채붕나례와 산대나례를 변별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③, ④의 기록을 통해 산대는 산 모양으로 너비와 길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크기를 잴 때 높이로 재고, 채붕은 평평한 단을 가진 무대이기 때문에 너비와 길이로 크기를 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낙성연도落成宴圖>에서 채붕이 실제로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확인된다.

⑤ 아래는 감결이라.
그리고 감독 이하 서울에서 온 일꾼들 및 각처에서 이끌고 온 하인들의 음식과 꼴이나 말먹이까지도 또한 따로 회계관을 정하여 날짜를 계산하여 마련하여 지급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근에서 구경 온 백성은 반드시 양식을 가지고 와서 모이도록 하기 바랍니다. 다만 군데군데 모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장님 단청 구경하는 격이 되어 정말로 무엇을 보고 왔는지 모를 것이고, 이런 사람들은 위로하고 기쁘게 할 수가 없을 것이므로 도청에서 경포교에게 이 뜻을 알려 약간 떨어지고 널찍한 곳에다 채붕을 설치하고 잡희를 벌여 상하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기 바랍니다.
- 화성성역의궤 부편附編 이二 감결甘結 병진년 10월 초7일

<낙성연도>는 1794∼1796년(정조 18∼20) 경기도 화성에 성을 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일을 정리한 『화성성역의궤』에 수록된 그림이다. “상하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약간 떨어지고 널찍한 곳”에 세운 채붕은 <낙성연도>의 하단에 보이는 구조물처럼 평평한 단을 가진 다락[樓]임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이 또한 ‘산처럼’ 높아 단까지만 해도 사람 키의 세 배나 되며, 그 위에 꽂힌 나뭇가지 높이까지 합치면 어림잡아도 족히 여섯 배는 넘는다. 대개 채붕은 좌우 두 개를 설치하는데, 이 그림의 채붕 또한 좌우로 두 개를 설치했다.
이 그림에서 채붕 주위의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채붕 안을 가리키는가 하면, 채붕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채붕 안에 어떤 장식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마침 『고려사高麗史』에 이에 해당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⑥ 32년 4월 8일 최이崔怡가 연등회燃燈會를 하면서 채붕綵棚을 가설하고 기악伎樂과 온갖 잡희를 연출해 밤새도록 즐겁게 노니 …(중략)… 또 5월에는 종실의 사공司空 이상과 재추宰樞들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산처럼 높게 채붕을 가설하고 수단 장막과 능라 휘장을 둘러치고, 그 안에 비단과 채색 비단 꽃으로 장식된 그네를 매었으며, 은과 자개로 장식한 큰 분盆 네 개를 놓고 거기다가 얼음 봉우리를 만들었고, 또 큰 통 네 개에다가 10여 종의 이름난 생화들을 꽂아 놓아서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케 하였다. 그리고 기악과 온갖 잡희를 연출했는데, 팔방상공인八坊廂工人 1,350여 명이 모두 성대한 옷차림을 하고 뜰로 들어와서 주악奏樂하니 각종 악기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 고려사 129권 열전42 반역 최충헌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산처럼 높게 채붕을 만든 후, 그 안에 그네를 매고 얼음 봉우리[氷峯]를 만든 분과 생화를 꽂은 큰 통으로 장식했다. 또 채붕을 얽은 후 그 속에 다정茶亭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은 채붕을 설치하고 그 앞에 사람과 짐승 등 잡상을 벌려 세우고, 채붕 뒤에서 큰 통筒을 놓고 물을 부으면 물이 잡상의 입으로부터 흩어져 나와서 솟아오른다. 시속時俗에서 이것을 다정이라 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만든 구조물을 『성종실록成宗實錄』 16년 1월 17일(경자) 기사에서는 ‘다정산대茶亭山臺’로 칭하고 있다. 또한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60권 11년 12월 18일(무진)의 기록을 통해, 채붕에는 산 까마귀·까치가 각 50마리, 산 부엉이·꾀꼬리·산 매·산 따오기·솔개·비둘기·꿩이 각 20마리 등 살아 있는 생물까지 풀어 놓는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산대’와 ‘채붕’이 명확하게 변별되는 구조물인지를 놓고 학계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각 명칭이 쓰인 용례를 살펴보면, ‘산대’보다는 ‘채붕’과 관련된 용어가 훨씬 더 자주 보인다. 특히 산대 조설이 폐지된 인조 이후에는 실록에서 ‘산대’를 찾아볼 수 없으나, 사대부나 유생들이 사사롭게 설치한 사실에 대한 내용들에서 ‘채붕’이나 ‘산붕’이 발견된다. 즉 산대보다는 채붕이 훨씬 더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로써 채붕은 산대보다 더 포괄적인 구조물로 추측된다. 아울러 다만 관직의 명칭이라든가 관계 부서의 명칭에는 정전산대색庭殿山臺色, 산대도감山臺都監, 산대역군山臺役軍, 산대부장山臺部長, 산대목山臺木 등 ‘산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산대’가 ‘채붕’보다는 조직적인 동원을 통해 조성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채붕’도 기본적으로는 산의 형상을 꾀했다고 보이는데, 이러한 산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고 공연하는 문화는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과도 맥이 닿아 있다. 특히 한·중·일 세 나라에서 보이는 ‘신성한 산’의 조성과 연행은 군주의 권력과 왕조의 영속성을 과시하는 궁정 문화의 전례로 자리 잡았다. 이들 구조물은 당시 화려하고 풍부했던 연희 문화를 일면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사례이며, 서민의식의 대표 주자로 널리 인식되던 전통연희가 훨씬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연행되어 왔음을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동아시아 신성한 산 설행에 나타난 욕망과 이념(사진실, 공연문화연구12, 한국공연문화학회, 2006), 산대와 채붕(김은영, 산대와 채붕, 생활문물연구10, 국립민속박물관, 2003), 산대의 무대양식적 특성과 공연 방식(사진실, 구비문학연구7, 한국구비문학회, 1998),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