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김용덕(金容德)

정의

등燈에 불을 밝혀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불교의 세시풍속.

역사

연등회燃燈會는 등을 공양한 공덕으로 성불의 수기를 받는다는 내용을 기록한 초기 경전인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을 비롯해 『불설시등공덕경佛說施燈功德經』・『현우경賢愚經』・『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弗華嚴經』・『잡보장경雜寶藏經』・『아도세왕수결경阿闍世王授決經』・『대보적경大寶積經』 등에 나타나 있다. 이들 경전의 내용은 연등의 유래, 연등 공덕의 위대함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인도에서 유래한 연등 풍속이 중국으로 건너와 토착신앙과 습합하여 상원上元에 등을 밝히는 정월 연등으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유입될 때 연등 풍속이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는 연등회는 신라 866년(경문왕 6)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서 간등看燈하고 백관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사가 처음이다(『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제11). 그리고 890년(진성여왕 4)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가서 연등을 구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연등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구체적인 문헌 기록이 없다. 다만 고구려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안악 3호분과 약수리 무덤의 벽화에는 등롱을 든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또, 덕흥리 고구려 무덤의 앞 칸 서벽과 천정 벽화에는 등롱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날아가는 선인과 옥녀가 그려져 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를 시행할 것을 유훈으로 남겼다. 정월 연등회는 성종 때 연등회와 팔관회로 인한 징발과 부역의 폐해를 지적한 최승로의 건의로 잠시 중단되었으나, 6년 뒤 이지백이 복원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고려사高麗史』 권93, 「열전列傳」 6 제신 최승로), 1009년(목종 12) 1월에 왕이 상정전詳政殿에서 관등했다는 기록이 있다(『고려사』 권3, 「세가世家」). 이때까지 궁궐에서 공식적인 연등회가 없었는데, 1011년(현종 2) 정월 연등회 대신 2월 연등회를 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1167년(의종 21)부터이다. 고려시대 연등회는 현종 대부터 인종 대까지 소회일과 대회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소회 연등회는 궁중 강안전의 층계 맞은편에 임시로 계단을 만들어 등롱燈籠을 계단 상하좌우에 진열하고 채산彩山을 궁중의 뜰에 만들며, 대궐에서 절문까지 좌우로 채붕을 설치하고, 길의 좌우로 등산과 화수를 설치하여 밤을 새워 백희연희를 베풀고 가무를 즐기니 불빛이 대낮과 같이 밝았다고 기록하고 있다(『고려사』 권9, 1073년(문종 27), 2월). 이처럼 초파일 연등회에서 화산·등수·채붕을 설치하고, 밤을 대낮처럼 밝히며, 백희잡희를 열어 연등회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백희잡기는 왕의 어가 행렬에서 행해졌다. 왕이 거둥할 때 가두 행렬에는 호위병을 비롯해 의장대와 악대, 안국기安國伎 등 매우 다채로운 잡기를 보여 주는 대규모 연희단이 위장衛仗 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고려 의종毅宗(재위 1146~1170)이 봉은사 진전으로 행차할 때 규정된 위장에 보면 1,000여 명의 호위병과 의장대가 행렬을 짓고, 인가교방악관 100여 명이 좌우로 갈라서며, 안국기와 잡기雜技 각각 40명이 좌우로 갈라선다. 취각군 16명이 좌우로 갈라서되 모두 수레 앞에 나서며, 취라 군사 24명은 수레 뒤에 따른다고 하였다(『고려사』 권72 지26). 밤이 깊어 연행이 끝나면 백희를 공연했는데, 줄타기솟대타기가 매우 기이하고 교묘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는 불교를 탄압하였으므로 연등회와 팔관회 같은 불교 관련 의례도 축소되거나 철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불교는 신라로부터 고려를 거쳐 이미 백성들의 종교로 뿌리를 내려 쉽게 혁파하지 못했다. 불교 배척은 신흥 유학자들의 주장이었을 뿐, 현실적으로는 궁궐에 내불당을 두는 등 예불을 온전히 단절시키지 못했다. 왕실에서는 관료들의 명분론을 앞세운 상소로 연등회가 일시 폐지되었으나, 민간의 명절 풍속으로 자리 잡은 초파일 연등은 왕의 명령으로 쉽게 단절되지 않았다.

연등 풍속이 얼마나 뿌리 깊은 민속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연산군이 관등한 기록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왕이 미복으로 잠행하여 경회루에 올라 만세산을 배설하고 관등하였다. 잔치를 끝낸 다음 승정원으로 하여금 들어와 보게 하였는데, 밤 2경이었다. 왕이 사약 황소로와 공효련에게 명하여 좌우부로 나누어 등을 만들게 했는데, 푸른 난새[靑鸞]와 붉은 봉황[紫鳳]을 비롯해 연꽃[蓮花]・모란[牧丹]・고소대姑蘇臺・봉래산蓬萊山・황금까마귀[金烏]・옥토끼[玉兔]・은붕어[銀鰂]・황룡黃龍 등을 만들어 천태만상으로 기교를 다하여 금・은・구슬・비취로 꾸몄다. 비용이 1만 냥이나 들었다. 이것들을 만세산에 달고 왕이 황룡주黃龍舟에 올라 구경하였다. 부용향芙蓉香 수백 다발을 태우고, 밀랍으로 만든 횃불[蠟炬] 1천 자루를 태워 밤이 낮처럼 밝았다. 흥청 수백 명이 늘어앉아 풍악을 연주하였다(『연산군일기』 12년 4월 신유).” 왕의 어가 행렬에는 역시 침향산붕沈香山棚을 만들고 여기女伎 담화기擔花伎 같은 가무와 기예단이 가요를 바쳤다고 한다(『단종실록』 2년 7월 16일).

이러한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가무백희가 전승되어 연행되었음을 알 수 있고, 궁중의 풍속이 민간에 전파되기 마련이므로 궁중의 나례 등에서 행해진 잡기들이 민간에서도 행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초파일은 큰 세시풍속이었으므로 이날 밤 연등을 밝히고 산대희, 줄타기, 솟대놀이 같은 기예를 행했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관등 풍속을 노래한 시문에서 많이 발견된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조수삼의 『세시기歲時記』, 최영년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도 초파일 연등 풍속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동국세시기』 등의 세시기에 의하면, 초파일날 만석중놀이나 주마등놀이, 호기놀이 같은 연극과 유희가 행해졌음도 확인할 수 있다.

기록 자료가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어서 실증적으로 고증이 가능한 연등회는 근세 100년이다. 이 시기는 오늘날의 연등회로 연결되는 중요한 전환기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일본의 식민 통치가 노골화한 직후에는 일본 정토종의 주관 아래서 불교 행사가 행해졌다. 연등회의 내용도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천황의 성수무강과 황군의 무운장수 및 전몰장병의 명복을 비는 축원문을 봉독한 다음에 기념 법회를 하는 등 철저히 종교까지 통제하였다. 광복 후에는 이전의 전통적인 봉축 행사로 복원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양력으로 지내던 초파일이 다시 음력으로 환원되고, 일본식 ‘경성화제봉찬회’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세존탄강경축회’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에 잠시 중단되었던 연등회는 1955년 초파일부터 연등회의 핵심인 제등 행렬이 현재의 모습으로 탄생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연등 축제기에 접어들어 연등회가 불교의 중심 행사이면서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는다. 연등회는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현재 연등회는 고려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는 뜻으로 ‘소회연등회’와 ‘대회연등회’로 나누어 설행한다. 연등회는 1988년부터 초파일 한 주 앞선 주간을 봉축 기간으로 정하여 토요일과 일요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관불의례와 법요식・연등 행렬・회향한마당을 토요일에 설행하고, 각종 문화마당은 일요일에 진행한다. 토요일 행사 내용은 어울림마당・관불의례・법요식・연등 행렬・회향한마당으로 구성된다. 일요일은 전통문화마당・공연마당・외국인 등 만들기 대회・연등놀이로 구성된다. 이와 별도로 연등회 전후 약 보름에 걸쳐 전통 등 전시회를 열고 있다.

연등회의 내용은 연등회의 의례 부분인 연등 법회, 연등회의 꽃이라고 할 연등 행렬, 연등회의 전통적 백희잡기를 잇는 불교문화마당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연등법회는 관불의식과 법회로 이루어진다. 관불의식은 탄생불을 관정灌頂하는 의식이다. 관불은 욕불浴佛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를 목욕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관불은 부처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례로서 아기 부처 불상의 정수리에 관정수를 붓는 의식이다. 관불 후에 법회가 이어진다. 법회는 명종,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개회사, 연등 행렬 출발의 순으로 진행된다.

연등 행렬은 연등 위장을 구성하여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말한다. 행렬은 관불단에 모시는 아기 부처를 연輦의 중앙에 모시고, 각종 꽃과 전통 등으로 장엄莊嚴한다. 여기서 장엄의 의미는 불보살과 불교 세계를 아름답고 위엄 있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연등 행렬의 구성은 선두에 인로왕보살번을 비롯한 각종 번의 행렬이 있고, 이어서 탄생불을 모신 연을 중심으로 사천왕상을 비롯한 각종 보살상을 형상한 등의 행렬이 따른다. 불보살단 뒤에 여러 사찰에서 사부대중과 일반 시민, 외국인들이 각종 전통 등과 장엄 등을 들고 행진한다. 장엄 등 가운데는 창의성을 발휘한 등도 만들어 참가함으로써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 신심을 북돋고 보는 이 또한 즐겁게 하는 기능도 한다. 연등 행렬이 마감되면 참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축하 공연과 대동놀이를 벌여 꽃비를 맞으며 신명나는 회향마당으로 연등 행렬을 마무리한다.

불교문화마당은 전통문화 전시와 전통놀이로 구성된다. 시민과 외국인들이 참여하여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며, 다양한 프로그램이 전개된다. 전래놀이마당은 고려시대에 백희잡기를 놀았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호기놀이를 비롯한 여러 민속놀이를 청소년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외국인 등 만들기 마당은 해마다 많은 외국인이 직접 등을 만들어서 가지고 갈수 있게 한다. 이 마당은 해마다 인기가 있어서 미리 접수를 받아야 할 만큼 성황을 이루며, 연등회가 국제적인 축제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특히 국제 불교마당은 여러 나라의 불교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공연 무대에서 아시아 불교 국가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한다. 몽골・네팔・타이완・타이・스리랑카・라오스・캄보디아・티베트・방글라데시・일본 등 각 나라는 자기 나라의 전통문화와 불교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본국에서 전시물을 공수하여 전시하고 그 나라의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공연마당에서는 탈춤과 풍물 등 각종 볼거리를 통해 문화 교류의 장을 형성한다.

특징 및 의의

불교에서 등을 밝히는 이유는 불이 어둠을 밝히듯 번뇌와 무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주어, 뭇 중생이 모두 어둠[無明]으로부터 벗어나 밝음[明慧]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서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을 밝히는 또 다른 이유는 불이 스스로 몸을 태워 빛을 내듯, 희생과 봉사를 통해 자신은 물론 중생을 위하고 세상을 구원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등불로 삼으며[自燈明], 나아가 중생 제도를 서원하는[法燈明] 뜻으로 등을 공양하는 풍속이 생겼다. 이러한 연등 풍속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했으나 선조들은 연등 문화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전통문화로 승화하여 전승시켰다. 불교의 연등 문화를 창조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초파일 연등회는 전통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아 다른 나라의 초파일 풍속이나 등 풍속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개인이 손에 등을 들고 행렬하는 한국 연등회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연결되고, 함께 걸으며 마음을 열고 융합하는 문화 축제이다. 연등회는 불교문화를 넘어 전통을 잇고 발전시키는 한국 문화의 역동적 특성을 보여 주는 원형이라고 할 것이다. 연등회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서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지혜를 담는 일이다.

참고문헌

고려의 국가 불교의례와 문화(안지원,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5), 불교민속놀이(한국민속종합보고서30,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연등제의 역사와 전통(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문화부, 2008), 연등회의 문화재적 가치와 세계화 방안(김용덕, 남도민속학19, 남도민속학회, 2009), 연등회 장엄보고서(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문화부, 2009), 연등회의 종합적 고찰(불교민속학회, 민속원, 2013), 초파일행사100년(대한불교조계종 행사기획단, 2008), 한국 민속문화대사전(김용덕, 창솔, 2004), 한국 불교민속문화의 현장론적 고찰(김용덕, 민속원, 2014),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

연등회

연등회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김용덕(金容德)

정의

등燈에 불을 밝혀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불교의 세시풍속.

역사

연등회燃燈會는 등을 공양한 공덕으로 성불의 수기를 받는다는 내용을 기록한 초기 경전인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을 비롯해 『불설시등공덕경佛說施燈功德經』・『현우경賢愚經』・『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弗華嚴經』・『잡보장경雜寶藏經』・『아도세왕수결경阿闍世王授決經』・『대보적경大寶積經』 등에 나타나 있다. 이들 경전의 내용은 연등의 유래, 연등 공덕의 위대함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인도에서 유래한 연등 풍속이 중국으로 건너와 토착신앙과 습합하여 상원上元에 등을 밝히는 정월 연등으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유입될 때 연등 풍속이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는 연등회는 신라 866년(경문왕 6)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서 간등看燈하고 백관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사가 처음이다(『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제11). 그리고 890년(진성여왕 4)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가서 연등을 구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연등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구체적인 문헌 기록이 없다. 다만 고구려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안악 3호분과 약수리 무덤의 벽화에는 등롱을 든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또, 덕흥리 고구려 무덤의 앞 칸 서벽과 천정 벽화에는 등롱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날아가는 선인과 옥녀가 그려져 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를 시행할 것을 유훈으로 남겼다. 정월 연등회는 성종 때 연등회와 팔관회로 인한 징발과 부역의 폐해를 지적한 최승로의 건의로 잠시 중단되었으나, 6년 뒤 이지백이 복원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고려사高麗史』 권93, 「열전列傳」 6 제신 최승로), 1009년(목종 12) 1월에 왕이 상정전詳政殿에서 관등했다는 기록이 있다(『고려사』 권3, 「세가世家」). 이때까지 궁궐에서 공식적인 연등회가 없었는데, 1011년(현종 2) 정월 연등회 대신 2월 연등회를 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1167년(의종 21)부터이다. 고려시대 연등회는 현종 대부터 인종 대까지 소회일과 대회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소회 연등회는 궁중 강안전의 층계 맞은편에 임시로 계단을 만들어 등롱燈籠을 계단 상하좌우에 진열하고 채산彩山을 궁중의 뜰에 만들며, 대궐에서 절문까지 좌우로 채붕을 설치하고, 길의 좌우로 등산과 화수를 설치하여 밤을 새워 백희연희를 베풀고 가무를 즐기니 불빛이 대낮과 같이 밝았다고 기록하고 있다(『고려사』 권9, 1073년(문종 27), 2월). 이처럼 초파일 연등회에서 화산·등수·채붕을 설치하고, 밤을 대낮처럼 밝히며, 백희잡희를 열어 연등회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백희잡기는 왕의 어가 행렬에서 행해졌다. 왕이 거둥할 때 가두 행렬에는 호위병을 비롯해 의장대와 악대, 안국기安國伎 등 매우 다채로운 잡기를 보여 주는 대규모 연희단이 위장衛仗 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고려 의종毅宗(재위 1146~1170)이 봉은사 진전으로 행차할 때 규정된 위장에 보면 1,000여 명의 호위병과 의장대가 행렬을 짓고, 인가교방악관 100여 명이 좌우로 갈라서며, 안국기와 잡기雜技 각각 40명이 좌우로 갈라선다. 취각군 16명이 좌우로 갈라서되 모두 수레 앞에 나서며, 취라 군사 24명은 수레 뒤에 따른다고 하였다(『고려사』 권72 지26). 밤이 깊어 연행이 끝나면 백희를 공연했는데, 줄타기와 솟대타기가 매우 기이하고 교묘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는 불교를 탄압하였으므로 연등회와 팔관회 같은 불교 관련 의례도 축소되거나 철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불교는 신라로부터 고려를 거쳐 이미 백성들의 종교로 뿌리를 내려 쉽게 혁파하지 못했다. 불교 배척은 신흥 유학자들의 주장이었을 뿐, 현실적으로는 궁궐에 내불당을 두는 등 예불을 온전히 단절시키지 못했다. 왕실에서는 관료들의 명분론을 앞세운 상소로 연등회가 일시 폐지되었으나, 민간의 명절 풍속으로 자리 잡은 초파일 연등은 왕의 명령으로 쉽게 단절되지 않았다.

연등 풍속이 얼마나 뿌리 깊은 민속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연산군이 관등한 기록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왕이 미복으로 잠행하여 경회루에 올라 만세산을 배설하고 관등하였다. 잔치를 끝낸 다음 승정원으로 하여금 들어와 보게 하였는데, 밤 2경이었다. 왕이 사약 황소로와 공효련에게 명하여 좌우부로 나누어 등을 만들게 했는데, 푸른 난새[靑鸞]와 붉은 봉황[紫鳳]을 비롯해 연꽃[蓮花]・모란[牧丹]・고소대姑蘇臺・봉래산蓬萊山・황금까마귀[金烏]・옥토끼[玉兔]・은붕어[銀鰂]・황룡黃龍 등을 만들어 천태만상으로 기교를 다하여 금・은・구슬・비취로 꾸몄다. 비용이 1만 냥이나 들었다. 이것들을 만세산에 달고 왕이 황룡주黃龍舟에 올라 구경하였다. 부용향芙蓉香 수백 다발을 태우고, 밀랍으로 만든 횃불[蠟炬] 1천 자루를 태워 밤이 낮처럼 밝았다. 흥청 수백 명이 늘어앉아 풍악을 연주하였다(『연산군일기』 12년 4월 신유).” 왕의 어가 행렬에는 역시 침향산붕沈香山棚을 만들고 여기女伎 담화기擔花伎 같은 가무와 기예단이 가요를 바쳤다고 한다(『단종실록』 2년 7월 16일).

이러한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가무백희가 전승되어 연행되었음을 알 수 있고, 궁중의 풍속이 민간에 전파되기 마련이므로 궁중의 나례 등에서 행해진 잡기들이 민간에서도 행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초파일은 큰 세시풍속이었으므로 이날 밤 연등을 밝히고 산대희, 줄타기, 솟대놀이 같은 기예를 행했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관등 풍속을 노래한 시문에서 많이 발견된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조수삼의 『세시기歲時記』, 최영년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도 초파일 연등 풍속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동국세시기』 등의 세시기에 의하면, 초파일날 만석중놀이나 주마등놀이, 호기놀이 같은 연극과 유희가 행해졌음도 확인할 수 있다.

기록 자료가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어서 실증적으로 고증이 가능한 연등회는 근세 100년이다. 이 시기는 오늘날의 연등회로 연결되는 중요한 전환기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일본의 식민 통치가 노골화한 직후에는 일본 정토종의 주관 아래서 불교 행사가 행해졌다. 연등회의 내용도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천황의 성수무강과 황군의 무운장수 및 전몰장병의 명복을 비는 축원문을 봉독한 다음에 기념 법회를 하는 등 철저히 종교까지 통제하였다. 광복 후에는 이전의 전통적인 봉축 행사로 복원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양력으로 지내던 초파일이 다시 음력으로 환원되고, 일본식 ‘경성화제봉찬회’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세존탄강경축회’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에 잠시 중단되었던 연등회는 1955년 초파일부터 연등회의 핵심인 제등 행렬이 현재의 모습으로 탄생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연등 축제기에 접어들어 연등회가 불교의 중심 행사이면서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는다. 연등회는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현재 연등회는 고려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는 뜻으로 ‘소회연등회’와 ‘대회연등회’로 나누어 설행한다. 연등회는 1988년부터 초파일 한 주 앞선 주간을 봉축 기간으로 정하여 토요일과 일요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관불의례와 법요식・연등 행렬・회향한마당을 토요일에 설행하고, 각종 문화마당은 일요일에 진행한다. 토요일 행사 내용은 어울림마당・관불의례・법요식・연등 행렬・회향한마당으로 구성된다. 일요일은 전통문화마당・공연마당・외국인 등 만들기 대회・연등놀이로 구성된다. 이와 별도로 연등회 전후 약 보름에 걸쳐 전통 등 전시회를 열고 있다.

연등회의 내용은 연등회의 의례 부분인 연등 법회, 연등회의 꽃이라고 할 연등 행렬, 연등회의 전통적 백희잡기를 잇는 불교문화마당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연등법회는 관불의식과 법회로 이루어진다. 관불의식은 탄생불을 관정灌頂하는 의식이다. 관불은 욕불浴佛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를 목욕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관불은 부처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례로서 아기 부처 불상의 정수리에 관정수를 붓는 의식이다. 관불 후에 법회가 이어진다. 법회는 명종,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개회사, 연등 행렬 출발의 순으로 진행된다.

연등 행렬은 연등 위장을 구성하여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말한다. 행렬은 관불단에 모시는 아기 부처를 연輦의 중앙에 모시고, 각종 꽃과 전통 등으로 장엄莊嚴한다. 여기서 장엄의 의미는 불보살과 불교 세계를 아름답고 위엄 있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연등 행렬의 구성은 선두에 인로왕보살번을 비롯한 각종 번의 행렬이 있고, 이어서 탄생불을 모신 연을 중심으로 사천왕상을 비롯한 각종 보살상을 형상한 등의 행렬이 따른다. 불보살단 뒤에 여러 사찰에서 사부대중과 일반 시민, 외국인들이 각종 전통 등과 장엄 등을 들고 행진한다. 장엄 등 가운데는 창의성을 발휘한 등도 만들어 참가함으로써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 신심을 북돋고 보는 이 또한 즐겁게 하는 기능도 한다. 연등 행렬이 마감되면 참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축하 공연과 대동놀이를 벌여 꽃비를 맞으며 신명나는 회향마당으로 연등 행렬을 마무리한다.

불교문화마당은 전통문화 전시와 전통놀이로 구성된다. 시민과 외국인들이 참여하여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며, 다양한 프로그램이 전개된다. 전래놀이마당은 고려시대에 백희잡기를 놀았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호기놀이를 비롯한 여러 민속놀이를 청소년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외국인 등 만들기 마당은 해마다 많은 외국인이 직접 등을 만들어서 가지고 갈수 있게 한다. 이 마당은 해마다 인기가 있어서 미리 접수를 받아야 할 만큼 성황을 이루며, 연등회가 국제적인 축제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특히 국제 불교마당은 여러 나라의 불교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공연 무대에서 아시아 불교 국가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한다. 몽골・네팔・타이완・타이・스리랑카・라오스・캄보디아・티베트・방글라데시・일본 등 각 나라는 자기 나라의 전통문화와 불교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본국에서 전시물을 공수하여 전시하고 그 나라의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공연마당에서는 탈춤과 풍물 등 각종 볼거리를 통해 문화 교류의 장을 형성한다.

특징 및 의의

불교에서 등을 밝히는 이유는 불이 어둠을 밝히듯 번뇌와 무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주어, 뭇 중생이 모두 어둠[無明]으로부터 벗어나 밝음[明慧]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서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을 밝히는 또 다른 이유는 불이 스스로 몸을 태워 빛을 내듯, 희생과 봉사를 통해 자신은 물론 중생을 위하고 세상을 구원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등불로 삼으며[自燈明], 나아가 중생 제도를 서원하는[法燈明] 뜻으로 등을 공양하는 풍속이 생겼다. 이러한 연등 풍속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했으나 선조들은 연등 문화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전통문화로 승화하여 전승시켰다. 불교의 연등 문화를 창조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초파일 연등회는 전통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아 다른 나라의 초파일 풍속이나 등 풍속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개인이 손에 등을 들고 행렬하는 한국 연등회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연결되고, 함께 걸으며 마음을 열고 융합하는 문화 축제이다. 연등회는 불교문화를 넘어 전통을 잇고 발전시키는 한국 문화의 역동적 특성을 보여 주는 원형이라고 할 것이다. 연등회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서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지혜를 담는 일이다.

참고문헌

고려의 국가 불교의례와 문화(안지원,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5), 불교민속놀이(한국민속종합보고서30,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연등제의 역사와 전통(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문화부, 2008), 연등회의 문화재적 가치와 세계화 방안(김용덕, 남도민속학19, 남도민속학회, 2009), 연등회 장엄보고서(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문화부, 2009), 연등회의 종합적 고찰(불교민속학회, 민속원, 2013), 초파일행사100년(대한불교조계종 행사기획단, 2008), 한국 민속문화대사전(김용덕, 창솔, 2004), 한국 불교민속문화의 현장론적 고찰(김용덕, 민속원, 2014),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