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탈

발탈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인형극

집필자 허용호(許龍鎬)

정의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되는 구조의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재담을 중심으로 연행하는 전통예술.

개관

발탈은 발작난, 족탈, 족가면, 족무용, 발탈춤 등으로도 불린다. 이 명칭들은 모두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조종하는 연행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발탈은 가면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가면극이라 말할 수도 있다. 발탈이라는 연행 명칭 역시 탈, 곧 가면을 강조하고 있어서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가면극과 다른 점이 매우 많다. 가면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다른 가면극에서처럼 얼굴에 쓰는 것이 아니라 발에다 씌우는 것이며, 등장하는 인형 배우의 머리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로만 기능할 뿐이다. 인형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인형극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연한 인형극이라 할 수는 없다. 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처럼 인형 배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연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상반신만을 가진 기형적인 인형 배우와 정상적인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춤을 추기도 하고 한 치 양보도 없이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는 연행의 전개양상은 전통적인 재담과 닮았다.

발탈의 유래와 형성에 대해서는, ‘신라 진중陣中에서 놀던 것이 그 시초’, ‘고려 나례잡희에서 기원한 것’, ‘남사당패에 의해 비롯된 것’, ‘박춘재朴春載(1883∼1950)가 창작하여 궁중에서부터 놀던 것’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신라 진중놀이 유래설은 남사당패 연희자였던 남형우南亨祐(1907∼1978)의 증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신라 진중놀이 유래설은 뚜렷한 근거가 없다. 고려 나례잡희 기원설은 고려시대에 팔관회연말 궁중나례에서 온갖 놀이가 행해졌는데, 여기서부터 발탈이 기원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 역시 신라 진중놀이 유래설과 마찬가지로 그 근거가 막연하다. 남사당패 기원설은 발탈이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대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사당패가 발탈 혹은 발탈과 유사한 연행을 했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발탈이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광대패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발탈 관련 증언이나 기록에서 남사당패에서 기원했다는 언급이 없으며, 남사당패마저도 자신들의 고유 연행 종목으로 발탈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이 주장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한다.

발탈의 유래와 관련하여 비교적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 박춘재가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매일신보』나 『조선일보』를 보면, ‘박춘재의 기발한 발탈’이나 ‘박춘재의 장기인 발작난’ 등과 같이 박춘재가 발탈을 연행했음을 보여 주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술계 여러 원로의 증언을 통해서도 발탈과 박춘재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박춘재가 언제부터 발탈 연행을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략 1910년대를 전후해서 박춘재에 의해 발탈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록 발탈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매일신보』 기사는 1929년에 발견되지만, 1915년과 1916년에도 발탈 연행을 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매일신보』를 보면, 박춘재의 신기한 재주 중 하나로 ‘난장이 놀음’ 또는 ‘난장이 놀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발탈일 가능성이 높다. 발탈에서 유람객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외양이 상반신만 존재하기에 이를 보고 난장이 놀음 혹은 난장이 놀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의 기록을 보면 ‘박춘재의 별 이상한 놀음’이라는 언급도 나타나는데, 이 역시 발탈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손이 아닌 발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독특한 연행 방식과 등장하는 인형 배우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발탈은 대략 1910년대를 전후해서 박춘재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탈이 궁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가무별감歌舞別監을 했다는 박춘재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궁중에서부터 놀던 것이라는 견해가 피력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주장을 정리해 본다면, 결국 발탈의 기원이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910년대를 전후로 해서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움직이며 노래하고 재담하는 연행이 형성되어, 나름의 실험과 모색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노는 연행 방식은, 과거에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이 서로 재담 경연을 하며 연행을 전개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우희優戲나 재담 연행과 연결 지을 수 있다. 따라서 발탈은 조선시대 우희나 재담 연행 전통을 바탕으로,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노는 등의 독특한 인형 조종 방식을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희나 재담 연행 전통의 바탕 위에 발로 조종하는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의 재담 경연이라는 새로운 연행의 창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될 인물이 박춘재이다. 발탈이라는 새로운 연행 종목의 형성에는 박춘재라는 재능 많은 전통예술인의 역할이 돋보인다. 관련 구술이나 신문 기사에서 발탈과 박춘재는 거의 한 몸처럼 등장한다. 이로 보아 박춘재는 현전하는 발탈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발탈의 시작은 연행자 한 사람이 발 인형을 조종하는 연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점차 2인 연행, 나아가 2인 이상의 연행자가 등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춘재가 가지고 있던 전통재담과 소리 능력이 적절하게 발휘되었다. 특히 박춘재의 전통재담 능력과 초기 발탈의 결합은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공존하며 재담을 겨루는 발탈의 특징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발탈은 한 가지 계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박춘재 외에도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여러 광대패에서 주요 연행종목 중의 하나로 조금씩 다르게 연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움직이며 재담과 노래를 하는 기본적 연행 방식은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연행 방식은 조금씩 다른 발탈이 존재했던 것이다. 박춘재의 발탈과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광대패의 발탈 간 선후 관계나 영향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당대의 반응이나 이후의 전승양상으로 보아, 대략 박춘재에 의해 형성된 발탈이 유랑 광대패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발탈 역시 박춘재 계열의 것이며, 남사당패 계열은 그 전승이 단절된 상태이다.

내용

1900년대 전반까지의 발탈 연희자로 거론되는 이들로는 박춘재 이외에, 김덕순, 조갑철, 오명선, 남형우, 이동안李東安(1906∼1995) 등이 있다. 이 연희자들은 크게 남사당 계열과 박춘재 계열로 대별할 수 있다. 김덕순, 조갑철, 오명선, 남형우 등은 모두 남사당패 계열의 연행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에 박춘재와 이동안은 박춘재 계열이다. 이렇게 발탈은 크게 두 계열로 대별되어 존재했다. 그런데 남사당패 계열의 발탈은 현재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1967년 남형우가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발탈 연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박춘재 계열의 발탈은 이동안과 박해일朴海一(1923∼2007)에서 박정임朴貞任(1939∼)과 조영숙曺英淑(1934∼) 등으로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발탈의 예능 보유자로 이동안, 박해일, 박정임, 조영숙 등이 인정받았다.

박춘재 계열의 발탈에는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등장한다. 인형 배우는 한 명이 등장한다. 인간 배우는 한 명이 등장하기도 하고, 두 명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한 명의 인형 배우는 탈이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유람객 역할을 한다. 두 명의 인간 배우 중 한 명은 어릿광대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어물도가 주인 역할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여자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생선 장수 아낙네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생선 장수 아낙네는 일부 대목에만 잠깐 등장할 뿐이고, 발탈 연행의 전반적인 진행은 유람객과 어물도가 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발탈의 두 주요 인물인 유람객과 어릿광대는 재담, 소리, 춤을 동원하여 연행 내내 다툼을 벌인다. 얼굴 생김새, 시조창, 허튼타령 춤, 팔도 유람, 잡가, 먹는 것, 약, 조기 세는 흉내, 조기 장사 등의 삽화들을 중심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을 벌이는 것이 발탈의 내용이다.

그런데 발탈의 내용 전개는 그동안 채록된 연희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현재까지 정리된 발탈 연희본은 심우성 채록본, 무형문화재 조사본, 박해일 채록본, 허용호 채록본 등이 있다. 발탈 연희본들 사이에는 그 내용에 있어 공통적인 부분도 존재하지만, 차이도 존재한다. 연희본들의 내용 전개 양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발탈의 연희본별 내용 전개 양상

위에서 정리된 네 연희본의 내용 전개를 보면, 우선 내용을 구성하는 삽화의 순서가 일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삽화들 사이의 내적 연결 고리가 약해서 그 순서가 일정하지 않고, 특정 삽화의 생략이나 새로운 삽화의 첨가 양상이 나타난다. 이는 발탈 전승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연행 현장의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발탈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희본들의 내용 전개 순서가 고정적이지 않고 생략과 첨가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규칙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큰 틀 내에서만 생략과 첨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큰 틀은 ‘어물도가 주인과 유람객의 등장과 소리와 춤 대목’, ‘유람객의 팔도 유람과 관련된 대목’, ‘유람객과 어물도가 주인의 시비 중심 대목’, ‘관중을 위한 고사와 마무리 대목’ 등이다. 삽화들의 순서의 뒤바뀜이나 생략과 첨가 등이 이 네 가지 큰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네 가지 큰 틀은 발탈의 변하지 않은 기본 뼈대라 할 수 있다. 네 가지 틀이 공통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연희본은 나름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지역사례

발탈은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발인형 연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발탈과 같이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사례가 다른 지역에서도 조사되어 주목할 만하다.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첫 번째 사례는 경기도 구리 아천동 우미내마을에서 조사된 구리 박첨지놀이이다. 정월대보름 전날 밤에 마을 여자들이 모여 노는 놀이 가운데 발로 인형을 놀리는 것이 조사되었다. 발에다 보자기를 씌우고 모자를 씌워 사람 머리 모양을 꾸미고, 두꺼운 종이에 사람 얼굴을 그려 붙이면 박첨지라고 불리는 인형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 박첨지를 놀리는 놀이가 구리 박첨지놀이이다. 박첨지 인형을 놀리는 이는 다락 위에 앉아서 이리 저리 발을 흔들면서 놀고, 관객들은 방바닥에 앉아서 이를 쳐다보며 발 놀리는 구경을 한다. “박첨지가 나온다. 박첨지가 나온다. 떼루와 떼루와 박첨지, 떼루와 떼루와 박첨지”라고 노래를 부르며 발을 놀리면,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구리 박첨지놀이는 사당패가 마을에 와서 하던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끼리 흉내 낸 것이라 한다. 우미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연행된 구리 박첨지놀이는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일정 기간 동안 토박이 연행 종목의 하나로 놀았다고 한다. 그 연행의 유래에 주목해 보면, 남사당패 계열의 발인형 연행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놀리는 두 번째 사례는 완도 발광대놀이이다. 완도 발광대놀이의 형성에는 구리 박첨지놀이와 유사하게 떠돌이 대패의 영향이 자리한다. 남도 남사당패의 발인형 연행을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자신들의 민속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완도 발광대놀이는 마을 당제 기간에 밤굿 또는 파방굿을 하면서 노는 것이다.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논다는 점에서 앞에서 살핀 구리 박첨지놀이와 유사하지만, 오락적인 목적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풍년을 빌고 새해의 번영을 축원하는 의미로 논다는 점이 다르다. 발탈의 오락 지향성과도 변별된다. 연행 내용 역시 완도 발광대놀이는 구리 박첨지놀이나 발탈과는 다르다. 발탈의 경우 다양한 소재에 걸친 유람객어물도가 주인 사이의 재담 싸움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구리 박첨지놀이는 노래에 맞춘 발인형의 단순한 움직임이 중심 내용이다. 그런데 완도 발광대놀이는 악사들의 풍물 반주와 농요에 맞추어 농사짓는 흉내를 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논농사의 핵심 과정인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등과 그 일에 참여하는 풍물패의 동작을 흉내 내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형의 외양 역시 완도 발광대놀이는 다른 두 발인형 연행과 변별된다. 완도 발광대놀이의 경우 종이 가면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귀 부분에 끈을 달아 발등에 묶어 고정시킨다. 종이 가면을 이용하는 방식은 구리 박첨지놀이와 유사하며, 발탈의 초기 모습과도 유사하다. 그런데 완도 발광대놀이는 발인형 연행자 발끝에 풍물패의 상모고깔을 씌운다. 두 발을 두툼하게 천으로 감고 거기에 탈과 상모를 고정시키고, 그 아래에 옷을 걸치고 양팔 부분에 막대기를 끼워 고정하면 발인형이 완성되는 것이다. 완도 발광대놀이는 발탈처럼 인형 연행자의 목소리 연기와 조종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형 연행자는 주로 조종에만 주력한다. 발광대꾼이 누운 채로 자신의 하체에 만들어진 인형을 놀리기만 하는 것이다. 인형 조종은 발로 머리짓을 하고 양손에 잡은 막대기로 손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 쓰인다. 이 조종 방식은 단지 발에 씌워진 인형만을 놀리는 구리 박첨지놀이와는 변별되지만, 대나무를 이용하여 인형의 팔을 움직이게 하는 발탈의 현재 조종 방식과 유사하다. 발탈이나 구리 박첨지놀이와 비교해 볼 때, 완도 발광대놀이만이 갖는 독특함은 발인형을 조종하는 이가 양발을 모두 쓴다는 것이다. 발탈이나 구리 박첨지놀이의 경우 한쪽 발에만 가면을 씌우고 외양을 꾸민다. 반면에 완도 발광대놀이에서는 양쪽 발을 모아서 그 위에 가면을 씌우고 외양을 꾸민다.

2000년 이후에 조사•보고된 두 사례를 통해서, 발탈과 유사한 연행이 존재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국을 무대로 한 떠돌이 광대패의 발인형 연행이 다양하게 벌어졌으며, 이를 마을 토박이들이 자신들 나름의 연행으로 바꾸기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조사된 한국의 발인형 연행 사례는 발탈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두 사례 모두에서 나타나듯이 사람들에게 발로 인형을 조종한다는 것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연행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징 및 의의

발탈은 가면을 이용하면서도 가면극과 다르고, 인형 배우가 등장하면서도 다른 인형극과는 변별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 명의 등장인물이 티격태격 다투는 전통적인 재담 연행의 전개 방식과 유사한 듯하면서도,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의 대결이라는 특이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되는 특이한 구조의 인형 배우와, 스스로 움직이고 말하는 인간 배우가 공존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독특한 양상의 전통 연행이 바로 발탈이다. 이러한 발탈의 독특함은 세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등장하는 배우와 그들이 연행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 측면’에서의 독특함과 가치, ‘전통연희사傳統演戲史 측면’에서의 의의, ‘연행 방식 측면’에서의 독특함 등이다.

발탈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가치는 등장하는 배우와 그들이 연행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 차원에서의 독특함에 주목한 것이다.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의 공존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발탈의 독특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발탈에는 스스로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인간 배우와 상반신만 있는 기형적인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한다. 인형 배우는 발탈꾼이라는 인간 연행자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 배우는 스스로 움직이고 말한다. 이들이 공존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독특한 양상의 전통연행이 바로 발탈이다. 이 배우들이 연행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스스로는 말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기형적인 인형 배우가 연행 속에서 맡는 역할은 유람객이다. 팔도를 유람하는 신명 많고 축제적인 자유인으로 형상화된다. 반면에 스스로 움직이며 말을 하는 인간 배우가 맡는 역할은 어물도가 주인이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상의 규칙에 얽매여 있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배우의 속성 차원에서 나타나는 정상/기형•생명 있음/생명 없음•인간/인형 등의 양항 대립과, 연행 속 역할 차원에서 나타나는 정착/유랑•정상/비정상•일상/축제•속박/자유•정규/일탈 등의 양항 대립이 서로 모순적으로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배우의 속성과는 어긋난, 어쩌면 잘못된 역할 부여라 할 수 있는 묘한 역설의 전통연행이 발탈이다.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범상치 않은 의미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발탈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발탈에서 주목할 만한 두 번째 가치는 전통연희사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배우가 등장하여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티격태격 다투는 연행 양상에 주목하여 우리의 재담 전통을 구성해낼 수 있다. 우리의 재담 전통은 14∼15세기 궁정에서 연행된 우희優戲, 18∼19세기 서울 시정의 재담 연행, 20세기 초반 발탈을 비롯한 박춘재의 재담 연행 활동, 1930년대 만담과 이후 방송 코미디물 등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재담 전통의 흐름 속에서 발탈을 위시한 박춘재의 일련의 재담 연행은 근대로 이행하는 급격한 변동의 시기에 재담 전통의 향방을 말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담 전통의 흐름 속에서 특히 발탈에 주목해 보면, 티격태격 방식의 재담 전통을 구성해 낼 수 있다. 발탈은 도목정사놀이로 대표되는 14∼15세기 궁중 우희에서 18∼19세기 시정 재담 연행으로 이어지던 티격태격 방식의 2인 재담 전통을 이어받은 동시에, 이러한 재담 전통을 1930년대 대화만담에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발탈에서 주목할 만한 세 번째 가치는 연행 방식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발을 이용한 인형 조종이라는 방식은 그 독특함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발탈꾼이 반등신半等身 인형을 조종하는 방식은 유별나다. 포장막 뒤에 앉아 포장막 사이로 내민 발에는 탈이 씌워져 있고, 손에는 반등신 인형의 팔로 기능하는 대나무가 쥐어져 있다. 발탈꾼의 발과 양손이 움직임으로써, 반등신 인형의 얼굴과 양팔이 움직이게 된다. 그야말로 온 몸을 이용하는 조종 방식이다. 발탈꾼의 이러한 조종 방식, 특히 발을 이용한 조종 방식은 다른 전통연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참고문헌

박해일 국악재담(박해일, 미간행 개인 문서, 1987), 발탈(허용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발탈 연희고(심우성, 문화재12,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9), 인형연행의 문화전통 연구(허용호, 민속원, 2014), 태평무와 발탈(무형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149,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2), 한•일 발인형연행의 양상 비교와 그 형성 과정(허용호, 비교민속학36, 비교민속학회, 2008).

발탈

발탈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인형극

집필자 허용호(許龍鎬)

정의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되는 구조의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재담을 중심으로 연행하는 전통예술.

개관

발탈은 발작난, 족탈, 족가면, 족무용, 발탈춤 등으로도 불린다. 이 명칭들은 모두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조종하는 연행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발탈은 가면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가면극이라 말할 수도 있다. 발탈이라는 연행 명칭 역시 탈, 곧 가면을 강조하고 있어서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가면극과 다른 점이 매우 많다. 가면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다른 가면극에서처럼 얼굴에 쓰는 것이 아니라 발에다 씌우는 것이며, 등장하는 인형 배우의 머리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로만 기능할 뿐이다. 인형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인형극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연한 인형극이라 할 수는 없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처럼 인형 배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연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상반신만을 가진 기형적인 인형 배우와 정상적인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춤을 추기도 하고 한 치 양보도 없이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는 연행의 전개양상은 전통적인 재담과 닮았다.

발탈의 유래와 형성에 대해서는, ‘신라 진중陣中에서 놀던 것이 그 시초’, ‘고려 나례잡희에서 기원한 것’, ‘남사당패에 의해 비롯된 것’, ‘박춘재朴春載(1883∼1950)가 창작하여 궁중에서부터 놀던 것’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신라 진중놀이 유래설은 남사당패 연희자였던 남형우南亨祐(1907∼1978)의 증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신라 진중놀이 유래설은 뚜렷한 근거가 없다. 고려 나례잡희 기원설은 고려시대에 팔관회나 연말 궁중나례에서 온갖 놀이가 행해졌는데, 여기서부터 발탈이 기원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 역시 신라 진중놀이 유래설과 마찬가지로 그 근거가 막연하다. 남사당패 기원설은 발탈이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광대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사당패가 발탈 혹은 발탈과 유사한 연행을 했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발탈이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광대패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발탈 관련 증언이나 기록에서 남사당패에서 기원했다는 언급이 없으며, 남사당패마저도 자신들의 고유 연행 종목으로 발탈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이 주장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한다.

발탈의 유래와 관련하여 비교적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 박춘재가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매일신보』나 『조선일보』를 보면, ‘박춘재의 기발한 발탈’이나 ‘박춘재의 장기인 발작난’ 등과 같이 박춘재가 발탈을 연행했음을 보여 주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술계 여러 원로의 증언을 통해서도 발탈과 박춘재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박춘재가 언제부터 발탈 연행을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략 1910년대를 전후해서 박춘재에 의해 발탈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록 발탈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매일신보』 기사는 1929년에 발견되지만, 1915년과 1916년에도 발탈 연행을 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매일신보』를 보면, 박춘재의 신기한 재주 중 하나로 ‘난장이 놀음’ 또는 ‘난장이 놀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발탈일 가능성이 높다. 발탈에서 유람객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외양이 상반신만 존재하기에 이를 보고 난장이 놀음 혹은 난장이 놀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의 기록을 보면 ‘박춘재의 별 이상한 놀음’이라는 언급도 나타나는데, 이 역시 발탈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손이 아닌 발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독특한 연행 방식과 등장하는 인형 배우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발탈은 대략 1910년대를 전후해서 박춘재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탈이 궁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가무별감歌舞別監을 했다는 박춘재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궁중에서부터 놀던 것이라는 견해가 피력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주장을 정리해 본다면, 결국 발탈의 기원이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910년대를 전후로 해서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움직이며 노래하고 재담하는 연행이 형성되어, 나름의 실험과 모색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노는 연행 방식은, 과거에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이 서로 재담 경연을 하며 연행을 전개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우희優戲나 재담 연행과 연결 지을 수 있다. 따라서 발탈은 조선시대 우희나 재담 연행 전통을 바탕으로,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노는 등의 독특한 인형 조종 방식을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희나 재담 연행 전통의 바탕 위에 발로 조종하는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의 재담 경연이라는 새로운 연행의 창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될 인물이 박춘재이다. 발탈이라는 새로운 연행 종목의 형성에는 박춘재라는 재능 많은 전통예술인의 역할이 돋보인다. 관련 구술이나 신문 기사에서 발탈과 박춘재는 거의 한 몸처럼 등장한다. 이로 보아 박춘재는 현전하는 발탈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발탈의 시작은 연행자 한 사람이 발 인형을 조종하는 연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점차 2인 연행, 나아가 2인 이상의 연행자가 등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춘재가 가지고 있던 전통재담과 소리 능력이 적절하게 발휘되었다. 특히 박춘재의 전통재담 능력과 초기 발탈의 결합은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공존하며 재담을 겨루는 발탈의 특징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발탈은 한 가지 계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박춘재 외에도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여러 광대패에서 주요 연행종목 중의 하나로 조금씩 다르게 연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움직이며 재담과 노래를 하는 기본적 연행 방식은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연행 방식은 조금씩 다른 발탈이 존재했던 것이다. 박춘재의 발탈과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광대패의 발탈 간 선후 관계나 영향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당대의 반응이나 이후의 전승양상으로 보아, 대략 박춘재에 의해 형성된 발탈이 유랑 광대패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발탈 역시 박춘재 계열의 것이며, 남사당패 계열은 그 전승이 단절된 상태이다.

내용

1900년대 전반까지의 발탈 연희자로 거론되는 이들로는 박춘재 이외에, 김덕순, 조갑철, 오명선, 남형우, 이동안李東安(1906∼1995) 등이 있다. 이 연희자들은 크게 남사당 계열과 박춘재 계열로 대별할 수 있다. 김덕순, 조갑철, 오명선, 남형우 등은 모두 남사당패 계열의 연행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에 박춘재와 이동안은 박춘재 계열이다. 이렇게 발탈은 크게 두 계열로 대별되어 존재했다. 그런데 남사당패 계열의 발탈은 현재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1967년 남형우가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발탈 연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박춘재 계열의 발탈은 이동안과 박해일朴海一(1923∼2007)에서 박정임朴貞任(1939∼)과 조영숙曺英淑(1934∼) 등으로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발탈의 예능 보유자로 이동안, 박해일, 박정임, 조영숙 등이 인정받았다.

박춘재 계열의 발탈에는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등장한다. 인형 배우는 한 명이 등장한다. 인간 배우는 한 명이 등장하기도 하고, 두 명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한 명의 인형 배우는 탈이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유람객 역할을 한다. 두 명의 인간 배우 중 한 명은 어릿광대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어물도가 주인 역할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여자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생선 장수 아낙네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생선 장수 아낙네는 일부 대목에만 잠깐 등장할 뿐이고, 발탈 연행의 전반적인 진행은 유람객과 어물도가 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발탈의 두 주요 인물인 유람객과 어릿광대는 재담, 소리, 춤을 동원하여 연행 내내 다툼을 벌인다. 얼굴 생김새, 시조창, 허튼타령 춤, 팔도 유람, 잡가, 먹는 것, 약, 조기 세는 흉내, 조기 장사 등의 삽화들을 중심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을 벌이는 것이 발탈의 내용이다.

그런데 발탈의 내용 전개는 그동안 채록된 연희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현재까지 정리된 발탈 연희본은 심우성 채록본, 무형문화재 조사본, 박해일 채록본, 허용호 채록본 등이 있다. 발탈 연희본들 사이에는 그 내용에 있어 공통적인 부분도 존재하지만, 차이도 존재한다. 연희본들의 내용 전개 양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정리된 네 연희본의 내용 전개를 보면, 우선 내용을 구성하는 삽화의 순서가 일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삽화들 사이의 내적 연결 고리가 약해서 그 순서가 일정하지 않고, 특정 삽화의 생략이나 새로운 삽화의 첨가 양상이 나타난다. 이는 발탈 전승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연행 현장의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발탈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희본들의 내용 전개 순서가 고정적이지 않고 생략과 첨가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규칙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큰 틀 내에서만 생략과 첨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큰 틀은 ‘어물도가 주인과 유람객의 등장과 소리와 춤 대목’, ‘유람객의 팔도 유람과 관련된 대목’, ‘유람객과 어물도가 주인의 시비 중심 대목’, ‘관중을 위한 고사와 마무리 대목’ 등이다. 삽화들의 순서의 뒤바뀜이나 생략과 첨가 등이 이 네 가지 큰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네 가지 큰 틀은 발탈의 변하지 않은 기본 뼈대라 할 수 있다. 네 가지 틀이 공통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연희본은 나름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지역사례

발탈은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발인형 연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발탈과 같이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사례가 다른 지역에서도 조사되어 주목할 만하다.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첫 번째 사례는 경기도 구리 아천동 우미내마을에서 조사된 구리 박첨지놀이이다. 정월대보름 전날 밤에 마을 여자들이 모여 노는 놀이 가운데 발로 인형을 놀리는 것이 조사되었다. 발에다 보자기를 씌우고 모자를 씌워 사람 머리 모양을 꾸미고, 두꺼운 종이에 사람 얼굴을 그려 붙이면 박첨지라고 불리는 인형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 박첨지를 놀리는 놀이가 구리 박첨지놀이이다. 박첨지 인형을 놀리는 이는 다락 위에 앉아서 이리 저리 발을 흔들면서 놀고, 관객들은 방바닥에 앉아서 이를 쳐다보며 발 놀리는 구경을 한다. “박첨지가 나온다. 박첨지가 나온다. 떼루와 떼루와 박첨지, 떼루와 떼루와 박첨지”라고 노래를 부르며 발을 놀리면,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구리 박첨지놀이는 남사당패가 마을에 와서 하던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끼리 흉내 낸 것이라 한다. 우미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연행된 구리 박첨지놀이는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일정 기간 동안 토박이 연행 종목의 하나로 놀았다고 한다. 그 연행의 유래에 주목해 보면, 남사당패 계열의 발인형 연행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놀리는 두 번째 사례는 완도 발광대놀이이다. 완도 발광대놀이의 형성에는 구리 박첨지놀이와 유사하게 떠돌이 광대패의 영향이 자리한다. 남도 남사당패의 발인형 연행을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자신들의 민속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완도 발광대놀이는 마을 당제 기간에 밤굿 또는 파방굿을 하면서 노는 것이다.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논다는 점에서 앞에서 살핀 구리 박첨지놀이와 유사하지만, 오락적인 목적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풍년을 빌고 새해의 번영을 축원하는 의미로 논다는 점이 다르다. 발탈의 오락 지향성과도 변별된다. 연행 내용 역시 완도 발광대놀이는 구리 박첨지놀이나 발탈과는 다르다. 발탈의 경우 다양한 소재에 걸친 유람객과 어물도가 주인 사이의 재담 싸움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구리 박첨지놀이는 노래에 맞춘 발인형의 단순한 움직임이 중심 내용이다. 그런데 완도 발광대놀이는 악사들의 풍물 반주와 농요에 맞추어 농사짓는 흉내를 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논농사의 핵심 과정인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등과 그 일에 참여하는 풍물패의 동작을 흉내 내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형의 외양 역시 완도 발광대놀이는 다른 두 발인형 연행과 변별된다. 완도 발광대놀이의 경우 종이 가면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귀 부분에 끈을 달아 발등에 묶어 고정시킨다. 종이 가면을 이용하는 방식은 구리 박첨지놀이와 유사하며, 발탈의 초기 모습과도 유사하다. 그런데 완도 발광대놀이는 발인형 연행자 발끝에 풍물패의 상모나 고깔을 씌운다. 두 발을 두툼하게 천으로 감고 거기에 탈과 상모를 고정시키고, 그 아래에 옷을 걸치고 양팔 부분에 막대기를 끼워 고정하면 발인형이 완성되는 것이다. 완도 발광대놀이는 발탈처럼 인형 연행자의 목소리 연기와 조종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형 연행자는 주로 조종에만 주력한다. 발광대꾼이 누운 채로 자신의 하체에 만들어진 인형을 놀리기만 하는 것이다. 인형 조종은 발로 머리짓을 하고 양손에 잡은 막대기로 손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 쓰인다. 이 조종 방식은 단지 발에 씌워진 인형만을 놀리는 구리 박첨지놀이와는 변별되지만, 대나무를 이용하여 인형의 팔을 움직이게 하는 발탈의 현재 조종 방식과 유사하다. 발탈이나 구리 박첨지놀이와 비교해 볼 때, 완도 발광대놀이만이 갖는 독특함은 발인형을 조종하는 이가 양발을 모두 쓴다는 것이다. 발탈이나 구리 박첨지놀이의 경우 한쪽 발에만 가면을 씌우고 외양을 꾸민다. 반면에 완도 발광대놀이에서는 양쪽 발을 모아서 그 위에 가면을 씌우고 외양을 꾸민다.

2000년 이후에 조사•보고된 두 사례를 통해서, 발탈과 유사한 연행이 존재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국을 무대로 한 떠돌이 광대패의 발인형 연행이 다양하게 벌어졌으며, 이를 마을 토박이들이 자신들 나름의 연행으로 바꾸기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조사된 한국의 발인형 연행 사례는 발탈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발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두 사례 모두에서 나타나듯이 사람들에게 발로 인형을 조종한다는 것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연행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징 및 의의

발탈은 가면을 이용하면서도 가면극과 다르고, 인형 배우가 등장하면서도 다른 인형극과는 변별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 명의 등장인물이 티격태격 다투는 전통적인 재담 연행의 전개 방식과 유사한 듯하면서도,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의 대결이라는 특이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되는 특이한 구조의 인형 배우와, 스스로 움직이고 말하는 인간 배우가 공존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독특한 양상의 전통 연행이 바로 발탈이다. 이러한 발탈의 독특함은 세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등장하는 배우와 그들이 연행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 측면’에서의 독특함과 가치, ‘전통연희사傳統演戲史 측면’에서의 의의, ‘연행 방식 측면’에서의 독특함 등이다.

발탈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가치는 등장하는 배우와 그들이 연행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 차원에서의 독특함에 주목한 것이다.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의 공존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발탈의 독특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발탈에는 스스로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인간 배우와 상반신만 있는 기형적인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한다. 인형 배우는 발탈꾼이라는 인간 연행자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 배우는 스스로 움직이고 말한다. 이들이 공존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독특한 양상의 전통연행이 바로 발탈이다. 이 배우들이 연행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스스로는 말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기형적인 인형 배우가 연행 속에서 맡는 역할은 유람객이다. 팔도를 유람하는 신명 많고 축제적인 자유인으로 형상화된다. 반면에 스스로 움직이며 말을 하는 인간 배우가 맡는 역할은 어물도가 주인이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상의 규칙에 얽매여 있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배우의 속성 차원에서 나타나는 정상/기형•생명 있음/생명 없음•인간/인형 등의 양항 대립과, 연행 속 역할 차원에서 나타나는 정착/유랑•정상/비정상•일상/축제•속박/자유•정규/일탈 등의 양항 대립이 서로 모순적으로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배우의 속성과는 어긋난, 어쩌면 잘못된 역할 부여라 할 수 있는 묘한 역설의 전통연행이 발탈이다.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범상치 않은 의미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발탈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발탈에서 주목할 만한 두 번째 가치는 전통연희사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배우가 등장하여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티격태격 다투는 연행 양상에 주목하여 우리의 재담 전통을 구성해낼 수 있다. 우리의 재담 전통은 14∼15세기 궁정에서 연행된 우희優戲, 18∼19세기 서울 시정의 재담 연행, 20세기 초반 발탈을 비롯한 박춘재의 재담 연행 활동, 1930년대 만담과 이후 방송 코미디물 등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재담 전통의 흐름 속에서 발탈을 위시한 박춘재의 일련의 재담 연행은 근대로 이행하는 급격한 변동의 시기에 재담 전통의 향방을 말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담 전통의 흐름 속에서 특히 발탈에 주목해 보면, 티격태격 방식의 재담 전통을 구성해 낼 수 있다. 발탈은 도목정사놀이로 대표되는 14∼15세기 궁중 우희에서 18∼19세기 시정 재담 연행으로 이어지던 티격태격 방식의 2인 재담 전통을 이어받은 동시에, 이러한 재담 전통을 1930년대 대화만담에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발탈에서 주목할 만한 세 번째 가치는 연행 방식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발을 이용한 인형 조종이라는 방식은 그 독특함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발탈꾼이 반등신半等身 인형을 조종하는 방식은 유별나다. 포장막 뒤에 앉아 포장막 사이로 내민 발에는 탈이 씌워져 있고, 손에는 반등신 인형의 팔로 기능하는 대나무가 쥐어져 있다. 발탈꾼의 발과 양손이 움직임으로써, 반등신 인형의 얼굴과 양팔이 움직이게 된다. 그야말로 온 몸을 이용하는 조종 방식이다. 발탈꾼의 이러한 조종 방식, 특히 발을 이용한 조종 방식은 다른 전통연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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