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파(流派)

한자명

流派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용어

집필자 최동현(崔東現)

정의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전승 계보에 따라 보이게 되는 음악적 특성에 의한 차이.

내용

유파(流派)를 판소리 용어로는 ‘제(制)’라고 한다. ‘제’는 ‘법제(法制)’ 또는 ‘제작(製作)’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소릿제’라고 하며, 이를 줄여 ‘제’라고 한다. ‘제’는 대가닥이라고도 하며, 보통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눈다. 판소리에서 ‘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제’는 고수관제 <사랑가>와 같이 ‘더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송만갑제 <춘향가(春香歌)>와 같이 ‘바디’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설렁제·호령제·서름제·강산제 등과 같이 ‘조(調)’를 가리키기도 하며, 동편제·서편제·중고제와 같이 ‘유파’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이 중에서 유파를 뜻하는 쓰임새가 이 용어의 기본적인 용법이다.

유파를 뜻하는 ‘제’는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1940)에 처음 등장한다. 19세기의 중요한 두 판소리 이론가인 신재효(申在孝)와 정현석(鄭顯奭)의 기록에 ‘제’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용어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노식은 ‘제’를 동편제·서편제·중고제와 호걸(궐)제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창법·소리 표준·전승 지역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면, ‘제’는 복잡하고 다양해진 판소리를 몇 개의 종류로 구분하여 간편하게 인식하고자 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정노식이 『조선창극사』에서 ‘제’에 대해 설명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제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호걸제
법제 창법 1) 우조 주장(호령조가 많음):웅건청담 1) 계면조 주장 :연미부화
2) 발성 초가 진중 2) 구절 끝 마침을 질르를 하게 끔
3) 구절 끝 마침을 되게 함 3) 진진연 육미적, 만수화란격
4) 담담연 채소적, 천봉월출격
소리표준 송흥록 박유전 염계달, 김성옥
전승 지역 운봉, 구례, 순창, 흥덕 등지 이쪽 광주, 나주, 보성 등지 저쪽 경기·충청간

‘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일 먼저 제시된 것은 창법이다. 창법은 노래를 부르는 방법이다. 창법에서 동편제 소리는 ‘우조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우조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는 ‘우조를 잘 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웅건청담’은 ‘크고 힘차며, 깨끗하고 담백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웅건청담하게 한다.’라는 말은 ‘크고, 힘차며,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수하게 부른다.’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보면 동편제 판소리는 우조를 추구하여 크고, 힘차게, 그리고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수하게 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발성의 시작이 ‘진중’하다는 말은 처음 소리를 낼 때 무게 있고 점잖게 낸다는 뜻이다. 구절 끝마침을 ‘되게’ 한다는 말은 발성의 뒷부분을 빨리 끊어내어 마무리를 빠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서편제 소리는 ‘계면조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될 수 있으면 계면조로 부르고, 또 계면조를 잘 부른다는 뜻이다. ‘연미부화하게 한다.’라는 것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결국 동편제 소리는 담백해서 채소와 같으며(담담연 채소적), 서편제 소리는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은 육류와 같고(진진연 육미적), 동편제 소리가 수많은 산 위에 떠오르는 달과 같은 격조(천봉월출격)라면, 서편제 소리는 수많은 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한 격조(만수화란격)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중고제에 대해서는 동편제도 아니고 서편제도 아닌 그 중간인데(비동비서), 비교적 동편제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실제에 적용해서 중고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그래서 ‘제’에 관한 논의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판소리 제를 가르는 두 번째 기준으로 든 것이 소리 표준이다. 동편제는 송흥록(宋興祿), 서편제는 박유전(朴裕全)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중고제와 호걸제에 대해서는 ‘염계달과 김성옥의 법제를 많이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법제’는 ‘표준으로 삼는 양식’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법제를 잘 계승했는지는 전승 계보를 통해 확인된다. 판소리는 구비전승되는 예술이어서 전승 계보 외에는 법제의 계승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전승 계보는 전승의 외형일 뿐 내용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법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창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법제’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내용은 전승 계보와 창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제’는 미학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창법, 창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중고제와 호걸제 판소리의 창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 둘의 특성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따라서 중고제와 호걸제는 개념적으로는 독자성을 갖지 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판소리 ‘제’를 가르는 기준으로 세 번째로 제시된 것이 전승 지역이다. 동편제는 ‘운봉, 구례, 순창, 흥덕 등지 이쪽’, 서편제는 ‘광주, 나주, 보성 등지 저쪽’이라고 하고, 중고제와 호걸제는 ‘경기·충청간에서 대부분 유행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지역의 표준을 떠나서 소리의 법제만을 표준하여 분파되었다.’라고 함으로써, 이미 지역은 ‘제’를 가르는 기준으로서는 실효성을 상실하고 소리의 법제만을 따라서 판소리의 ‘제’를 가른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를 가르는 지역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유기룡은 전라좌도와 전라우도라는 행정 구역을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의 전승 지역에 대입했다. 정병욱은 초기 유파의 성립 과정에서는 지역적 구분이 가능했다고 하면서, 그 구분의 기준으로 지리산 또는 섬진강을 들었다. 지리산 주변에 전승된 판소리는 지리산을 닮은 웅장한 동편제 판소리이고, 지리산 이외의 지역, 즉 대체로 평야 지역의 판소리가 서편제 판소리라고 하였다. 또는 섬진강 동쪽 지역에 전승된 소리는 동편제 판소리이고, 섬진강 서쪽 지역에 전승된 소리는 서편제 판소리라고 하였다.

‘제’를 전승 계보와 관련시켜 설명하려는 노력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고식화되면서 강화되었다. 『조선창극사』가 쓰이던 시대만 하더라도 계통에 관한 의식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박황은 김성옥·송흥록·박유전·정춘풍·신재효 등 5명을 정점으로 한 계통도를 작성하여, 전승 계보를 도식화하였다. 또한 박황은 김성옥계는 중고제로 6명, 송흥록계·정춘풍계·신재효계는 동편제로 송흥록계 37명·정춘풍계 7명·신재효계 14명, 박유전계는 서편제로 39명 등 총 103명의 창자들을 일관된 도식으로 도표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명창들을 다 포괄하지는 못했다. 이동근은 판소리 시창자로 알려진 하한담을 정점으로 해서 무려 190명의 창자의 전승 계보를 수목형으로 도식화하였다. 이동근이 만든 계통도는 판소리 계통도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동편제 판소리는 송흥록 계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김세종 계열과 정춘풍 계열이 따로 더 있다고 한다. 서편제 판소리도 모두가 박유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계통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창업 계통은 박유전 계통과는 다른 서편제 판소리라고 한다. 그 외에도 계통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소리꾼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계통이 등장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의 창법에 관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세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본래 『조선창극사』에는 없던 내용들이 추가되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편제 서편제
① 우조 평조를 많이 쓴다. ① 계면조를 많이 쓴다.
② 무거운 발성을 한다. ② 가벼운 발성을 한다.
③ 통성을 사용하며, 목으로 우기는 소리이다. ③ 부드러운 소리이다.
④ 남성적이다. ④ 여성적이다.
⑤ 소리를 들고 나가며, 소리 끝을 끊어서 낸다. ⑤ 소리를 뉘어 나가며, 소리 끝을 길게 뺀다.
⑥ 소리에 잔기교와 수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⑥ 소리에 잔기교와 수식이 많다.
⑦ 템포가 다소 빠르다. ⑦ 템포가 느리다.
⑧ 발림을 할 여유가 없다. ⑧ 발림을 할 기회가 많다.
부침새가 정대하다. (대마디대장단을 주로 사용한다.) ⑨ 부침새가 정교하다. (엇부침을 사용한다.)
⑩ 우조의 시김새가 좋다. ⑩ 계면조의 시김새가 좋다.
⑪ 정통적인 고졸한 판소리이다. ⑪ 정통 창법으로부터 해방된, 기술적으로 향상된 소리이다.

그런데 여기서 들고 있는 창법상의 특징들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동편제 판소리 창자인 송만갑과 서편제 판소리 창자인 김창환(金昌煥), 정정렬(丁貞烈)의 판소리 특징과 같다. 해방 후에 추가된 판소리 ‘제’의 개념 내용도 당시의 판소리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소리꾼들의 소리를 대상으로 해서 구성되었던 것이다. 이는 해방 이후의 소리들이 ‘제’의 규범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창법은 그 판소리의 심미적 지향점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동편제 판소리는 발성의 처음을 ‘무겁고 점잖게(진중)’ 낸다든가, ‘구절 끝마침을 되게’ 하는 것, 그리고 담담하게 부르는 것, 부침새가 정대하다는 것, 고졸(古拙,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음)하다는 평가 등은 절제·정대·검소 등에 대응된다. 이러한 가치들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추구하던 유교의 가치와 상통한다. 그래서 동편제 판소리는 양반들의 미의식의 표상으로 읽을 수 있다.

한편 서편제 판소리에서는 계면조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또 서편제 판소리에는 잔기교와 수식이 많다고 했다. 장단에서도 부침새가 정교하다고 하였다. 창법과 장단의 기교는 바로 소리를 화려하게 꾸미려는 의식의 소산이다. 그런가 하면 너름새도 자세하다고 하였다. 요컨대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면조를 주로 쓰는 서편제 판소리는 슬픔·진솔·활달 등으로 대표되는 서민적 미의식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동편제 판소리가 사대부의 미의식에 가깝고 서편제 판소리가 서민들의 미의식에 가깝다는 말은 절대적 척도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척도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둘 다 서민적 미의식 속에 포괄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중에서도 동편제 판소리는 사대부의 미의식 쪽에 있고, 서편제 판소리는 보다 서민적 미의식 쪽에 가까이 위치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것은 본래 서민적 기반에서 발생한 판소리가 양반 사대부들을 청중으로 끌어들이면서 양반의 미의식 쪽으로 다가갔기 때문이기도 하고, 판소리를 접촉하면서 양반 사대부들이 서민적 미의식 쪽으로 견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징 및 의의

판소리에 ‘제’라는 개념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개념은 박유전 이전의 판소리에도, 오명창 시대 이후의 판소리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명창 시대의 판소리에만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갈 뿐이다. 근대 이전에는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고 한 스승에게 배우는 경향이 강해서 대체로 지역적 특색이 판소리에서도 잘 유지되었으나, 근대 이후에는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촉진됨에 따라 소리꾼들이 대도시에 모여 같이 활동하면서 여러 스승한테 배움으로써 ‘제’의 고유한 특성을 잘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판소리를 다 ‘제’로 구분할 수도 없었다. 흔히 알려진 전승 계보도에 들어갈 수 없는 소리꾼들도 많다. 그러므로 ‘제’는 ‘판소리를 이해하는 참조의 틀(frame of reference)’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동편제서편제·중고제 소리는 ‘제’라는 개념에 근거해서 분류되고, 인식되지만, 그것은 오명창 시대에만 유용한 틀이다. ‘제’는 오명창 시대 이전의 판소리에도, 이후의 판소리에도 맞지 않는 틀이다.

현대의 판소리는 이제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개념으로 재단할 수 없다. 김연수바디 판소리나 보성소리는 현대 판소리의 중요한 두 줄기이지만,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개념으로는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서로 섞여 있다. 이제 현대 판소리는 새로운 개념의 틀로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 틀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인식의 지체 혹은 이론화의 지체 현상 때문이다. 잠정적으로 보성소리를 ‘성음 중심의 소리’라고 하고, 김연수바디 판소리를 ‘연극소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아직 시론에 불과할 뿐 광범위한 호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제’는 이제 실존하는 판소리를 분류하는 개념으로서는 유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판소리를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눌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제’가 판소리를 재단하는 중요한 틀이었기 때문에 판소리 이해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게 틀림없다. 문제는 그러한 틀을 특정한 시대에 통용되던 역사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통시대적으로 사용하려고 한 데 있다. 이제는 ‘제’를 나누었던 개념을 판소리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현대 판소리에 동편제나 서편제 판소리는 없다. 그러나 현대 판소리를 관류하는 흐름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심미적 가치의 범위 안에 있다.

참고문헌

판소리(강한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최동현, 민속원, 2010),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4), 판소리 전승에 대한 관견(이동근, 새터 강한영 교수 고희 기념 한국 판소리·고전문학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3), 판소리 제에 관한 연구(이보형, 한국음악학논문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81).

유파

유파
한자명

流派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용어

집필자 최동현(崔東現)

정의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전승 계보에 따라 보이게 되는 음악적 특성에 의한 차이.

내용

유파(流派)를 판소리 용어로는 ‘제(制)’라고 한다. ‘제’는 ‘법제(法制)’ 또는 ‘제작(製作)’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소릿제’라고 하며, 이를 줄여 ‘제’라고 한다. ‘제’는 대가닥이라고도 하며, 보통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눈다. 판소리에서 ‘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제’는 고수관제 <사랑가>와 같이 ‘더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송만갑제 <춘향가(春香歌)>와 같이 ‘바디’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설렁제·호령제·서름제·강산제 등과 같이 ‘조(調)’를 가리키기도 하며, 동편제·서편제·중고제와 같이 ‘유파’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이 중에서 유파를 뜻하는 쓰임새가 이 용어의 기본적인 용법이다.

유파를 뜻하는 ‘제’는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1940)에 처음 등장한다. 19세기의 중요한 두 판소리 이론가인 신재효(申在孝)와 정현석(鄭顯奭)의 기록에 ‘제’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용어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노식은 ‘제’를 동편제·서편제·중고제와 호걸(궐)제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창법·소리 표준·전승 지역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면, ‘제’는 복잡하고 다양해진 판소리를 몇 개의 종류로 구분하여 간편하게 인식하고자 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정노식이 『조선창극사』에서 ‘제’에 대해 설명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제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호걸제 법제 창법 1) 우조 주장(호령조가 많음):웅건청담 1) 계면조 주장 :연미부화 2) 발성 초가 진중 2) 구절 끝 마침을 질르를 하게 끔 3) 구절 끝 마침을 되게 함 3) 진진연 육미적, 만수화란격 4) 담담연 채소적, 천봉월출격 소리표준 송흥록 박유전 염계달, 김성옥 전승 지역 운봉, 구례, 순창, 흥덕 등지 이쪽 광주, 나주, 보성 등지 저쪽 경기·충청간

‘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일 먼저 제시된 것은 창법이다. 창법은 노래를 부르는 방법이다. 창법에서 동편제 소리는 ‘우조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우조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는 ‘우조를 잘 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웅건청담’은 ‘크고 힘차며, 깨끗하고 담백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웅건청담하게 한다.’라는 말은 ‘크고, 힘차며,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수하게 부른다.’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보면 동편제 판소리는 우조를 추구하여 크고, 힘차게, 그리고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수하게 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발성의 시작이 ‘진중’하다는 말은 처음 소리를 낼 때 무게 있고 점잖게 낸다는 뜻이다. 구절 끝마침을 ‘되게’ 한다는 말은 발성의 뒷부분을 빨리 끊어내어 마무리를 빠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서편제 소리는 ‘계면조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될 수 있으면 계면조로 부르고, 또 계면조를 잘 부른다는 뜻이다. ‘연미부화하게 한다.’라는 것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결국 동편제 소리는 담백해서 채소와 같으며(담담연 채소적), 서편제 소리는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은 육류와 같고(진진연 육미적), 동편제 소리가 수많은 산 위에 떠오르는 달과 같은 격조(천봉월출격)라면, 서편제 소리는 수많은 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한 격조(만수화란격)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중고제에 대해서는 동편제도 아니고 서편제도 아닌 그 중간인데(비동비서), 비교적 동편제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실제에 적용해서 중고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그래서 ‘제’에 관한 논의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판소리 제를 가르는 두 번째 기준으로 든 것이 소리 표준이다. 동편제는 송흥록(宋興祿), 서편제는 박유전(朴裕全)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중고제와 호걸제에 대해서는 ‘염계달과 김성옥의 법제를 많이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법제’는 ‘표준으로 삼는 양식’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법제를 잘 계승했는지는 전승 계보를 통해 확인된다. 판소리는 구비전승되는 예술이어서 전승 계보 외에는 법제의 계승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전승 계보는 전승의 외형일 뿐 내용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법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창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법제’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내용은 전승 계보와 창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제’는 미학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창법, 창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중고제와 호걸제 판소리의 창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 둘의 특성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따라서 중고제와 호걸제는 개념적으로는 독자성을 갖지 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판소리 ‘제’를 가르는 기준으로 세 번째로 제시된 것이 전승 지역이다. 동편제는 ‘운봉, 구례, 순창, 흥덕 등지 이쪽’, 서편제는 ‘광주, 나주, 보성 등지 저쪽’이라고 하고, 중고제와 호걸제는 ‘경기·충청간에서 대부분 유행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지역의 표준을 떠나서 소리의 법제만을 표준하여 분파되었다.’라고 함으로써, 이미 지역은 ‘제’를 가르는 기준으로서는 실효성을 상실하고 소리의 법제만을 따라서 판소리의 ‘제’를 가른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를 가르는 지역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유기룡은 전라좌도와 전라우도라는 행정 구역을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의 전승 지역에 대입했다. 정병욱은 초기 유파의 성립 과정에서는 지역적 구분이 가능했다고 하면서, 그 구분의 기준으로 지리산 또는 섬진강을 들었다. 지리산 주변에 전승된 판소리는 지리산을 닮은 웅장한 동편제 판소리이고, 지리산 이외의 지역, 즉 대체로 평야 지역의 판소리가 서편제 판소리라고 하였다. 또는 섬진강 동쪽 지역에 전승된 소리는 동편제 판소리이고, 섬진강 서쪽 지역에 전승된 소리는 서편제 판소리라고 하였다.

‘제’를 전승 계보와 관련시켜 설명하려는 노력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고식화되면서 강화되었다. 『조선창극사』가 쓰이던 시대만 하더라도 계통에 관한 의식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박황은 김성옥·송흥록·박유전·정춘풍·신재효 등 5명을 정점으로 한 계통도를 작성하여, 전승 계보를 도식화하였다. 또한 박황은 김성옥계는 중고제로 6명, 송흥록계·정춘풍계·신재효계는 동편제로 송흥록계 37명·정춘풍계 7명·신재효계 14명, 박유전계는 서편제로 39명 등 총 103명의 창자들을 일관된 도식으로 도표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명창들을 다 포괄하지는 못했다. 이동근은 판소리 시창자로 알려진 하한담을 정점으로 해서 무려 190명의 창자의 전승 계보를 수목형으로 도식화하였다. 이동근이 만든 계통도는 판소리 계통도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동편제 판소리는 송흥록 계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김세종 계열과 정춘풍 계열이 따로 더 있다고 한다. 서편제 판소리도 모두가 박유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계통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창업 계통은 박유전 계통과는 다른 서편제 판소리라고 한다. 그 외에도 계통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소리꾼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계통이 등장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의 창법에 관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세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본래 『조선창극사』에는 없던 내용들이 추가되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편제 서편제 ① 우조 평조를 많이 쓴다. ① 계면조를 많이 쓴다. ② 무거운 발성을 한다. ② 가벼운 발성을 한다. ③ 통성을 사용하며, 목으로 우기는 소리이다. ③ 부드러운 소리이다. ④ 남성적이다. ④ 여성적이다. ⑤ 소리를 들고 나가며, 소리 끝을 끊어서 낸다. ⑤ 소리를 뉘어 나가며, 소리 끝을 길게 뺀다. ⑥ 소리에 잔기교와 수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⑥ 소리에 잔기교와 수식이 많다. ⑦ 템포가 다소 빠르다. ⑦ 템포가 느리다. ⑧ 발림을 할 여유가 없다. ⑧ 발림을 할 기회가 많다. ⑨ 부침새가 정대하다. (대마디대장단을 주로 사용한다.) ⑨ 부침새가 정교하다. (엇부침을 사용한다.) ⑩ 우조의 시김새가 좋다. ⑩ 계면조의 시김새가 좋다. ⑪ 정통적인 고졸한 판소리이다. ⑪ 정통 창법으로부터 해방된, 기술적으로 향상된 소리이다.

그런데 여기서 들고 있는 창법상의 특징들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동편제 판소리 창자인 송만갑과 서편제 판소리 창자인 김창환(金昌煥), 정정렬(丁貞烈)의 판소리 특징과 같다. 해방 후에 추가된 판소리 ‘제’의 개념 내용도 당시의 판소리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소리꾼들의 소리를 대상으로 해서 구성되었던 것이다. 이는 해방 이후의 소리들이 ‘제’의 규범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창법은 그 판소리의 심미적 지향점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동편제 판소리는 발성의 처음을 ‘무겁고 점잖게(진중)’ 낸다든가, ‘구절 끝마침을 되게’ 하는 것, 그리고 담담하게 부르는 것, 부침새가 정대하다는 것, 고졸(古拙,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음)하다는 평가 등은 절제·정대·검소 등에 대응된다. 이러한 가치들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추구하던 유교의 가치와 상통한다. 그래서 동편제 판소리는 양반들의 미의식의 표상으로 읽을 수 있다.

한편 서편제 판소리에서는 계면조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또 서편제 판소리에는 잔기교와 수식이 많다고 했다. 장단에서도 부침새가 정교하다고 하였다. 창법과 장단의 기교는 바로 소리를 화려하게 꾸미려는 의식의 소산이다. 그런가 하면 너름새도 자세하다고 하였다. 요컨대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면조를 주로 쓰는 서편제 판소리는 슬픔·진솔·활달 등으로 대표되는 서민적 미의식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동편제 판소리가 사대부의 미의식에 가깝고 서편제 판소리가 서민들의 미의식에 가깝다는 말은 절대적 척도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척도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둘 다 서민적 미의식 속에 포괄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중에서도 동편제 판소리는 사대부의 미의식 쪽에 있고, 서편제 판소리는 보다 서민적 미의식 쪽에 가까이 위치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것은 본래 서민적 기반에서 발생한 판소리가 양반 사대부들을 청중으로 끌어들이면서 양반의 미의식 쪽으로 다가갔기 때문이기도 하고, 판소리를 접촉하면서 양반 사대부들이 서민적 미의식 쪽으로 견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징 및 의의

판소리에 ‘제’라는 개념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개념은 박유전 이전의 판소리에도, 오명창 시대 이후의 판소리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명창 시대의 판소리에만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갈 뿐이다. 근대 이전에는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고 한 스승에게 배우는 경향이 강해서 대체로 지역적 특색이 판소리에서도 잘 유지되었으나, 근대 이후에는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촉진됨에 따라 소리꾼들이 대도시에 모여 같이 활동하면서 여러 스승한테 배움으로써 ‘제’의 고유한 특성을 잘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판소리를 다 ‘제’로 구분할 수도 없었다. 흔히 알려진 전승 계보도에 들어갈 수 없는 소리꾼들도 많다. 그러므로 ‘제’는 ‘판소리를 이해하는 참조의 틀(frame of reference)’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동편제나 서편제·중고제 소리는 ‘제’라는 개념에 근거해서 분류되고, 인식되지만, 그것은 오명창 시대에만 유용한 틀이다. ‘제’는 오명창 시대 이전의 판소리에도, 이후의 판소리에도 맞지 않는 틀이다.

현대의 판소리는 이제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개념으로 재단할 수 없다. 김연수바디 판소리나 보성소리는 현대 판소리의 중요한 두 줄기이지만,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개념으로는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서로 섞여 있다. 이제 현대 판소리는 새로운 개념의 틀로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 틀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인식의 지체 혹은 이론화의 지체 현상 때문이다. 잠정적으로 보성소리를 ‘성음 중심의 소리’라고 하고, 김연수바디 판소리를 ‘연극소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아직 시론에 불과할 뿐 광범위한 호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제’는 이제 실존하는 판소리를 분류하는 개념으로서는 유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판소리를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눌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제’가 판소리를 재단하는 중요한 틀이었기 때문에 판소리 이해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게 틀림없다. 문제는 그러한 틀을 특정한 시대에 통용되던 역사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통시대적으로 사용하려고 한 데 있다. 이제는 ‘제’를 나누었던 개념을 판소리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현대 판소리에 동편제나 서편제 판소리는 없다. 그러나 현대 판소리를 관류하는 흐름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심미적 가치의 범위 안에 있다.

참고문헌

판소리(강한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최동현, 민속원, 2010),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4), 판소리 전승에 대한 관견(이동근, 새터 강한영 교수 고희 기념 한국 판소리·고전문학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3), 판소리 제에 관한 연구(이보형, 한국음악학논문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