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명창

귀명창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용어

집필자 이태화(李泰華)

정의

판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들 가운데 단순한 애호가 수준을 넘어 소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

개관

귀명창은 ‘귀가 명창’이라는 의미, 즉 판소리를 할 줄은 모르더라도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판소리 명창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귀명창이 좋은 소리꾼을 낳는다.”라는 말이나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명창은 판소리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조력자이다.

19세기 후반부터는 판소리의 청중이 일반 백성으로부터 양반 좌상객(座上客)을 비롯한 지배 계층으로까지 확대되었고, 판소리의 연행 공간 또한 야외의 넓은 공간으로부터 실내의 폐쇄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연행 공간의 변화에 따라 귀명창의 역할과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내용

명창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귀명창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만큼 귀명창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귀명창은 단순히 판소리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수준을 넘어 판소리의 전통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식별력을 지닌 청중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의 사설·성음·장단 등을 명확히 인지할 뿐 아니라, 연창자가 이면(裏面)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가를 지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나아가 소리판에서의 상호 작용을 통해 연창자의 소리를 자기 내면의 소리와 조화시켜 대화함으로써 소리를 창조적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예술의 기호로 던져진 의미를 해독하여 소통함으로써 내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추임새를 발할 수 있어야 한다.

판소리는 사설로만 존재할 때에는 그 의미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하고, 현장의 연행을 통해 소통을 이루어야 온전한 맛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귀명창은 소리판 안에서 연창자·고수와 함께 상호 작용을 하여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로 재해석해낼 수 있는 청중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열린 귀와 비판적인 감상 능력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최종적으로는 연창자에게 조언이나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는 단계로 이어져야 한다. 이처럼 귀명창은 판소리 연창자에게는 새로운 소리의 형식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고, 자신에게는 관습화된 반응들을 스스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게 하는 역량을 지닌 이들이다.

판소리를 조금이라도 즐기는 사람이라면 판소리 작품들의 줄거리를 대강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그리는 소리의 미학적 깊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창자의 이면 해석과 그 미적 표현의 오묘한 깊이, 그것이 판소리 특유의 매력으로 잘 숙성되어 예술적인 멋을 성취하게 된 상태,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운치는 이것을 감상할 수 있는 높은 감식안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준 높은 미적 체험의 축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미적 체험의 축적이 귀명창이 되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끊임없는 독공으로도 명창이 되지 못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특징 및 의의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 가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명창을 가늠하는 기준 또한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귀명창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명창에 버금간다는 의미의 귀명창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을 보면 판소리의 미적 기준에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는 부르기도 어렵지만 듣는 것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명창 되기가 어려운 만큼 귀명창이 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참고문헌

다시 보는 판소리(백대웅, 어울림, 1996), 판소리 연구(최동현, 문학아카데미, 1991), 현대 판소리 수용자의 조사 연구(유미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귀명창

귀명창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용어

집필자 이태화(李泰華)

정의

판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들 가운데 단순한 애호가 수준을 넘어 소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

개관

귀명창은 ‘귀가 명창’이라는 의미, 즉 판소리를 할 줄은 모르더라도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판소리 명창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귀명창이 좋은 소리꾼을 낳는다.”라는 말이나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명창은 판소리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조력자이다.

19세기 후반부터는 판소리의 청중이 일반 백성으로부터 양반 좌상객(座上客)을 비롯한 지배 계층으로까지 확대되었고, 판소리의 연행 공간 또한 야외의 넓은 공간으로부터 실내의 폐쇄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연행 공간의 변화에 따라 귀명창의 역할과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내용

명창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귀명창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만큼 귀명창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귀명창은 단순히 판소리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수준을 넘어 판소리의 전통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식별력을 지닌 청중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의 사설·성음·장단 등을 명확히 인지할 뿐 아니라, 연창자가 이면(裏面)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가를 지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나아가 소리판에서의 상호 작용을 통해 연창자의 소리를 자기 내면의 소리와 조화시켜 대화함으로써 소리를 창조적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예술의 기호로 던져진 의미를 해독하여 소통함으로써 내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추임새를 발할 수 있어야 한다.

판소리는 사설로만 존재할 때에는 그 의미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하고, 현장의 연행을 통해 소통을 이루어야 온전한 맛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귀명창은 소리판 안에서 연창자·고수와 함께 상호 작용을 하여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로 재해석해낼 수 있는 청중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열린 귀와 비판적인 감상 능력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최종적으로는 연창자에게 조언이나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는 단계로 이어져야 한다. 이처럼 귀명창은 판소리 연창자에게는 새로운 소리의 형식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고, 자신에게는 관습화된 반응들을 스스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게 하는 역량을 지닌 이들이다.

판소리를 조금이라도 즐기는 사람이라면 판소리 작품들의 줄거리를 대강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그리는 소리의 미학적 깊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창자의 이면 해석과 그 미적 표현의 오묘한 깊이, 그것이 판소리 특유의 매력으로 잘 숙성되어 예술적인 멋을 성취하게 된 상태,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운치는 이것을 감상할 수 있는 높은 감식안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준 높은 미적 체험의 축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미적 체험의 축적이 귀명창이 되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끊임없는 독공으로도 명창이 되지 못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특징 및 의의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 가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명창을 가늠하는 기준 또한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귀명창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명창에 버금간다는 의미의 귀명창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을 보면 판소리의 미적 기준에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는 부르기도 어렵지만 듣는 것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명창 되기가 어려운 만큼 귀명창이 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참고문헌

다시 보는 판소리(백대웅, 어울림, 1996), 판소리 연구(최동현, 문학아카데미, 1991), 현대 판소리 수용자의 조사 연구(유미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