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

광한루악부

한자명

廣寒樓樂府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집필자 류준경(柳浚景)

정의

윤달선(尹達善)이 1852년(철종 3)에 판소리 <춘향가(春香歌)>를 바탕으로 창작한 칠언절구 108수의 연작 한시.

내용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는 윤달선이 1852년에 판소리 춘향가를 칠언절구 108수로 노래한 연작 한시이다. 당시 대표적인 한시 작가인 신위(申緯, 1769~1845)가 칠언절구 12수의 「관극절구(觀劇絶句)」를 지어 판소리 향유의 경험을 노래한 바 있는데, 윤달선도 그를 본받아 서울의 승가사(僧伽寺)에서 병으로 요양하면서 판소리 춘향가를 한시로 노래하였다. 다만 윤달선은 신위의 「관극절구」가 소략한 점이 아쉬워, 판소리의 향유 경험만이 아니라 판소리 춘향가의 전체 내용까지 다루어 총 108수의 장편 연작시를 창작하였다.

「광한루악부」 연작시 각각의 첫머리에는 ‘要令’, ‘轉語’, ‘李生唱’, ‘香娘唱’, ‘總論’, ‘結局’ 등의 단어가 씌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창’이라고 하여 창자를 밝혀 주고 있지만, 1~2첩은 ‘요령(要令)’, 3첩은 ‘전어(轉語)’, 107첩은 ‘총론(總論)’, 108첩은 ‘결국(結局)’이라 씌어 있다. ‘요령’은 서사(序詞)에 해당되며, 3첩의 ‘전어’는 본사(本詞)의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이 진행됨을 의미하고, ‘총론’은 총평(總評)을, ‘결국’은 작품의 마무리에 해당된다. 이러한 요령, 전어, ‘○○창’ 등은 판소리의 극(劇)적인 특징을 한시 내부에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한루악부」 108수는 크게 서사·본사·결사로 나눌 수 있는데, 서사에 해당하는 1~2첩에서는 전체적인 내용이 소개되고, 본사인 3~106첩 중 3~40첩에서는 만남과 결연이, 41~70첩에서는 이별과 춘향의 수난이, 71~106첩에서는 과거급제, 어사출두 및 재회 등이 드러난다. 결사인 107~108첩에서는 작품의 저작 의도와 마무리가 나타난다. 이러한 전체적인 서사전개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이몽룡과 이별한 뒤에 겪는 춘향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면모는 「광한루악부」의 주제 의식과도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춘향전(春香傳)』은 춘향의 신분 의식이나 열녀적인 형상이 두드러지는데 비해, 「광한루악부」에서는 이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의 면모가 부각되어 나타난다.

이와 함께 「광한루악부」에서 주목되는 점은 판소리 춘향가의 주요 더늠이나 표현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수용한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는 판소리의 미감을 한시 작품 내부에서 환기하고, 동시에 이를 전통적인 한시의 문법으로 재생함으로써 새로운 미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전통적인 한시 내부에 새로운 민중 문예가 수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광한루악부」는 한시로 창작된 『춘향전』의 한 이본으로, 다양한 『춘향전』의 한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19세기 중엽 서울 지역 문인의 판소리 <춘향가>의 향유 태도 및 향유 양상의 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시로 된 ‘춘향전’의 이본은 「광한루악부」 외에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가 있다. 「만화본춘향가」는 충청도의 사족인 만화(晩華) 유진한(柳振漢)에 의해 1754년에 창작된 작품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춘향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동시에 상층 사대부의 입장에서 민중 예술인 판소리 춘향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면모가 드러난다. 이에 반해 「광한루악부」는 상층 사대부의 입장에서 하층의 민속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판소리로 향유하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상층 사대부로서 하층 예술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판소리의 예술성을 음미하며, 그 흥취를 한시로 나타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광한루악부」는 춘향가가 제기하는 신분 문제를 부각하지도 않고, ‘열 이념’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다만 재자가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면모를 두드러지게 형상화하여 춘향과 이몽룡의 낭만적인 사랑의 면모를 부각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중반 서울의 상층이 판소리 춘향가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음미하며, 동시에 그 내용에 있어서 도덕적인 ‘열’이나 신분적인 문제를 주목하기보다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광한루악부 연구(정선희, 이화어문논집16, 이화어문학회, 1998), 역주 광한루악부(김영봉 외, 열상고전연구24, 열상고전연구회, 2006), 판소리사 연구(김종철, 역사비평사, 1996), 한문본 춘향전의 작품세계와 문학사적 위상(류준경,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광한루악부

광한루악부
한자명

廣寒樓樂府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집필자 류준경(柳浚景)

정의

윤달선(尹達善)이 1852년(철종 3)에 판소리 <춘향가(春香歌)>를 바탕으로 창작한 칠언절구 108수의 연작 한시.

내용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는 윤달선이 1852년에 판소리 춘향가를 칠언절구 108수로 노래한 연작 한시이다. 당시 대표적인 한시 작가인 신위(申緯, 1769~1845)가 칠언절구 12수의 「관극절구(觀劇絶句)」를 지어 판소리 향유의 경험을 노래한 바 있는데, 윤달선도 그를 본받아 서울의 승가사(僧伽寺)에서 병으로 요양하면서 판소리 춘향가를 한시로 노래하였다. 다만 윤달선은 신위의 「관극절구」가 소략한 점이 아쉬워, 판소리의 향유 경험만이 아니라 판소리 춘향가의 전체 내용까지 다루어 총 108수의 장편 연작시를 창작하였다.

「광한루악부」 연작시 각각의 첫머리에는 ‘要令’, ‘轉語’, ‘李生唱’, ‘香娘唱’, ‘總論’, ‘結局’ 등의 단어가 씌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창’이라고 하여 창자를 밝혀 주고 있지만, 1~2첩은 ‘요령(要令)’, 3첩은 ‘전어(轉語)’, 107첩은 ‘총론(總論)’, 108첩은 ‘결국(結局)’이라 씌어 있다. ‘요령’은 서사(序詞)에 해당되며, 3첩의 ‘전어’는 본사(本詞)의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이 진행됨을 의미하고, ‘총론’은 총평(總評)을, ‘결국’은 작품의 마무리에 해당된다. 이러한 요령, 전어, ‘○○창’ 등은 판소리의 극(劇)적인 특징을 한시 내부에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한루악부」 108수는 크게 서사·본사·결사로 나눌 수 있는데, 서사에 해당하는 1~2첩에서는 전체적인 내용이 소개되고, 본사인 3~106첩 중 3~40첩에서는 만남과 결연이, 41~70첩에서는 이별과 춘향의 수난이, 71~106첩에서는 과거급제, 어사출두 및 재회 등이 드러난다. 결사인 107~108첩에서는 작품의 저작 의도와 마무리가 나타난다. 이러한 전체적인 서사전개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이몽룡과 이별한 뒤에 겪는 춘향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면모는 「광한루악부」의 주제 의식과도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춘향전(春香傳)』은 춘향의 신분 의식이나 열녀적인 형상이 두드러지는데 비해, 「광한루악부」에서는 이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의 면모가 부각되어 나타난다.

이와 함께 「광한루악부」에서 주목되는 점은 판소리 춘향가의 주요 더늠이나 표현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수용한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는 판소리의 미감을 한시 작품 내부에서 환기하고, 동시에 이를 전통적인 한시의 문법으로 재생함으로써 새로운 미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전통적인 한시 내부에 새로운 민중 문예가 수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광한루악부」는 한시로 창작된 『춘향전』의 한 이본으로, 다양한 『춘향전』의 한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19세기 중엽 서울 지역 문인의 판소리 <춘향가>의 향유 태도 및 향유 양상의 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시로 된 ‘춘향전’의 이본은 「광한루악부」 외에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가 있다. 「만화본춘향가」는 충청도의 사족인 만화(晩華) 유진한(柳振漢)에 의해 1754년에 창작된 작품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춘향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동시에 상층 사대부의 입장에서 민중 예술인 판소리 춘향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면모가 드러난다. 이에 반해 「광한루악부」는 상층 사대부의 입장에서 하층의 민속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판소리로 향유하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상층 사대부로서 하층 예술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판소리의 예술성을 음미하며, 그 흥취를 한시로 나타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광한루악부」는 춘향가가 제기하는 신분 문제를 부각하지도 않고, ‘열 이념’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다만 재자가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면모를 두드러지게 형상화하여 춘향과 이몽룡의 낭만적인 사랑의 면모를 부각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중반 서울의 상층이 판소리 춘향가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음미하며, 동시에 그 내용에 있어서 도덕적인 ‘열’이나 신분적인 문제를 주목하기보다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광한루악부 연구(정선희, 이화어문논집16, 이화어문학회, 1998), 역주 광한루악부(김영봉 외, 열상고전연구24, 열상고전연구회, 2006), 판소리사 연구(김종철, 역사비평사, 1996), 한문본 춘향전의 작품세계와 문학사적 위상(류준경,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