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절구(觀劇絶句)

관극절구

한자명

觀劇絶句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집필자 전신재(全信宰)

정의

본래 명칭은 「관극절구십이수(觀劇絶句十二首)」로, 조선 후기의 문인인 신위(申緯, 1769~1845)가 판소리 공연을 보고 그 느낌을 읊은 한시.

개관

신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시인·서예가·화가로, 호는 자하(紫霞)·경수당(警修堂)이다.

「동인론시절구삼십오수(東人論詩絶句三十五首)」, 『경수당전고(警修堂全稿)』, 『신자하시집(申紫霞詩集)』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여러 관직을 역임했지만 정치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다. 시서화 삼절이라고 불릴 만큼 예술의 각 장르에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였으며, 예술 작품 감식안이 높고 까다롭기로 유명하였다. 신위는 판소리 귀명창이기도 했으며, 특히 고수관(高壽寬) 명창과 교분이 두터워 그를 집으로 초청하여 함께 지내면서 판소리를 즐기고는 하였다(1825년, 1840년, 1843년). 그리고 관극시 다섯 편을 남겼다. 1826년(순조 26)에 지은 「관극절구십이수」는 그 다섯 편의 관극시(觀劇詩)들 중의 하나로서 『경수당전고』에 실려 있다.

내용

「관극절구(觀劇絶句)」는 칠언절구 12수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의 공연 순서에 맞추어 구성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관중이 공연장으로 모여드는 광경(제1수), 청관중 중 어떤 총각과 처녀가 서로 눈짓을 맞추는 정경(제2수), 창자가 허두가(단가(短歌))를 부르는 장면의 분위기와 정서(제3수), 고수관 명창이 <춘향가(春香歌)>를 부르는 기교에 대한 감탄(제4수), 당시 명창들의 열거 및 판소리 예술성의 매력(제5수), 청관중이 추임새를 하며 판소리에 몰입하는 정경(제6수), 창자가 소리를 자유자재로 엮어내는 기교에 대한 감탄(제7수), 창자와 고수의 호흡이 절묘하게 일치되는 연극술에 대한 감탄(제8수), 판소리를 들으면서 환상적 경지에 몰입하는 정경(제9수, 제10수), 청관중이 창자의 외모와 연극술에 매혹되어 있는 정경(제11수),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의 공허한 분위기(제12수)를 각각 서술하였다.

특징 및 의의

신위의 「관극절구」는 조선 후기 양반 계층의 판소리 수용 태도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판소리는 본래 서민적 비장미와 골계미가 풍부한 예술이다. 비장과 골계를 충돌시킴으로써 더욱 강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판소리 특유의 기법이다. 그런데 신위는 골계는 수용하지 않고 비장만 수용한다. 그리고 그 비장도 관조적인 비애로 바꾸어나간다. “가늘게 끄는 소리 하늘에 사무쳐 구름마저 한꺼번에 얼어붙는 듯”(제3수 전결구), “쓸쓸하고 차가운 곳에 활짝 핀 한 송이 꽃”(제10수 결구), “궁상(宮商)의 가냘픈 소리는 마디마디 애처롭다”(제11수 승구), “창우 떠난 마당은 물 뿌린 듯 고요한데 앵무소리 제비말만 쓸쓸히 뒹구네”(제12수 전결구) 등에서 이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판소리는 사실주의 정신이 강한 예술이다. 판소리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 내지 일상의 인정물태의 기미를 사실적으로 절묘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신위는 판소리의 사실주의 정신보다는 절묘한 표현 기법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신위는 자신의 예술 활동에서 예술 효용론의 관점에서는 도덕적 교훈보다는 탐미적 정서를 중시하고, 예술 창조론의 관점에서는 모방성보다는 표현성을 중시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판소리 수용에도 나타난다.

신위가 판소리에 대해서 가진 태도는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회화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유사하다. 신위와 김정희는 평소에 교분이 두터웠고 함께 청나라의 옹방강(翁方綱, 1735~1818)을 흠모했다. 완당은 철저한 귀족 취미를 가지고 그림에서 일체의 속기(俗氣)를 배제하고 고도의 교양과 날카로운 감상안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한 경지를 추구했는데, 이것은 당시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진경산수(眞景山水)와 속화(俗畵)라는 사실주의 화풍을 꺾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유사한 논리로 신위는 판소리를 귀족 취미에 알맞은 예술로 바꾸어나감으로써 모처럼 피어나기 시작한 판소리의 서민적·세속적 사실주의 정신을 꺾어버린 것이다.

참고문헌

警修堂全稿, 신위의 관극절구십이수론(윤광봉, 한국 연희시 연구, 이우출판사, 1985), 자하의 관극시판소리 미학(전신재, 고전시가의 이념과 표상, 대한, 1991).

관극절구

관극절구
한자명

觀劇絶句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집필자 전신재(全信宰)

정의

본래 명칭은 「관극절구십이수(觀劇絶句十二首)」로, 조선 후기의 문인인 신위(申緯, 1769~1845)가 판소리 공연을 보고 그 느낌을 읊은 한시.

개관

신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시인·서예가·화가로, 호는 자하(紫霞)·경수당(警修堂)이다.

「동인론시절구삼십오수(東人論詩絶句三十五首)」, 『경수당전고(警修堂全稿)』, 『신자하시집(申紫霞詩集)』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여러 관직을 역임했지만 정치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다. 시서화 삼절이라고 불릴 만큼 예술의 각 장르에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였으며, 예술 작품 감식안이 높고 까다롭기로 유명하였다. 신위는 판소리 귀명창이기도 했으며, 특히 고수관(高壽寬) 명창과 교분이 두터워 그를 집으로 초청하여 함께 지내면서 판소리를 즐기고는 하였다(1825년, 1840년, 1843년). 그리고 관극시 다섯 편을 남겼다. 1826년(순조 26)에 지은 「관극절구십이수」는 그 다섯 편의 관극시(觀劇詩)들 중의 하나로서 『경수당전고』에 실려 있다.

내용

「관극절구(觀劇絶句)」는 칠언절구 12수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의 공연 순서에 맞추어 구성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관중이 공연장으로 모여드는 광경(제1수), 청관중 중 어떤 총각과 처녀가 서로 눈짓을 맞추는 정경(제2수), 창자가 허두가(단가(短歌))를 부르는 장면의 분위기와 정서(제3수), 고수관 명창이 <춘향가(春香歌)>를 부르는 기교에 대한 감탄(제4수), 당시 명창들의 열거 및 판소리 예술성의 매력(제5수), 청관중이 추임새를 하며 판소리에 몰입하는 정경(제6수), 창자가 소리를 자유자재로 엮어내는 기교에 대한 감탄(제7수), 창자와 고수의 호흡이 절묘하게 일치되는 연극술에 대한 감탄(제8수), 판소리를 들으면서 환상적 경지에 몰입하는 정경(제9수, 제10수), 청관중이 창자의 외모와 연극술에 매혹되어 있는 정경(제11수),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의 공허한 분위기(제12수)를 각각 서술하였다.

특징 및 의의

신위의 「관극절구」는 조선 후기 양반 계층의 판소리 수용 태도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판소리는 본래 서민적 비장미와 골계미가 풍부한 예술이다. 비장과 골계를 충돌시킴으로써 더욱 강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판소리 특유의 기법이다. 그런데 신위는 골계는 수용하지 않고 비장만 수용한다. 그리고 그 비장도 관조적인 비애로 바꾸어나간다. “가늘게 끄는 소리 하늘에 사무쳐 구름마저 한꺼번에 얼어붙는 듯”(제3수 전결구), “쓸쓸하고 차가운 곳에 활짝 핀 한 송이 꽃”(제10수 결구), “궁상(宮商)의 가냘픈 소리는 마디마디 애처롭다”(제11수 승구), “창우 떠난 마당은 물 뿌린 듯 고요한데 앵무소리 제비말만 쓸쓸히 뒹구네”(제12수 전결구) 등에서 이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판소리는 사실주의 정신이 강한 예술이다. 판소리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 내지 일상의 인정물태의 기미를 사실적으로 절묘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신위는 판소리의 사실주의 정신보다는 절묘한 표현 기법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신위는 자신의 예술 활동에서 예술 효용론의 관점에서는 도덕적 교훈보다는 탐미적 정서를 중시하고, 예술 창조론의 관점에서는 모방성보다는 표현성을 중시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판소리 수용에도 나타난다.

신위가 판소리에 대해서 가진 태도는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회화에 대해서 가진 태도와 유사하다. 신위와 김정희는 평소에 교분이 두터웠고 함께 청나라의 옹방강(翁方綱, 1735~1818)을 흠모했다. 완당은 철저한 귀족 취미를 가지고 그림에서 일체의 속기(俗氣)를 배제하고 고도의 교양과 날카로운 감상안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한 경지를 추구했는데, 이것은 당시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진경산수(眞景山水)와 속화(俗畵)라는 사실주의 화풍을 꺾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유사한 논리로 신위는 판소리를 귀족 취미에 알맞은 예술로 바꾸어나감으로써 모처럼 피어나기 시작한 판소리의 서민적·세속적 사실주의 정신을 꺾어버린 것이다.

참고문헌

警修堂全稿, 신위의 관극절구십이수론(윤광봉, 한국 연희시 연구, 이우출판사, 1985), 자하의 관극시와 판소리 미학(전신재, 고전시가의 이념과 표상, 대한,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