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설움타령

군사설움타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집필자 이기형(李起衡)

정의

<적벽가(赤壁歌)>에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조조가 잔치를 베푸는 장면에서 전쟁터에 끌려나온 이름 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설움을 토로하는 내용의 소리 대목.

개관

<군사설움타령>은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전쟁 준비를 마친 조조가 큰 배 위에서 장강 일대를 바라보면서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부분에 등장하는 사설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큰 배 위에 잔치를 벌여 모든 장졸이 모여 즐기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만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적벽가의 <군사설움타령>은 죽음을 앞에 둔 이름 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슬픔을 실감나게 담아내기 위해 민중들의 시선에서 새롭게 창작된 대목이다.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동편제 명창 박기홍의 더늠으로 <조조 군사 사향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여느 판소리 사설과 달리 적벽가는 원전이 존재한다. 조선 초기에 유입된 『삼국지연의』는 인기 있는 작품이었으며, 번역본 『삼국지』 외에도 일부분을 단편화한 많은 독서물을 파생시켰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가 수용되면서 한문 문어체가 국문 문어체로 전환하는 흐름 속에서 판소리의 개방적 성격이 작용하여 원전의 서사적 균열이 확대되고, 구조가 해체되면서 민중들의 언어로 전환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하여 창조된 작품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가 ‘적벽대전’이다. 적벽에서의 화공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존숭받는 인물인 관우가 조조를 놓아 보내는 데 단초가 되는 사건이다. 이러한 전개는 원본에 견인된 것이지만 적벽대전에서의 <군사설움타령>은 민중들의 생생한 삶의 언어로, 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낸 대목이다. 모든 창본과 창본 계열 필사본에 수용되어 있는 <군사설움타령>은 적벽가의 필수적인 화소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신재효(申在孝)의 적벽가에는 이 부분이 매우 확장되어 있다. 이는 이전에 만들어진 서사적 전개에 신재효가 개인적 의도를 반영하여 첨삭을 가한 것이다. 현재 불리는 <군사설움타령>은 19세기 후반에 활약한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의 더늠에 가까우나 이 또한 이전의 사설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적벽가의 <군사설움타령>은 적벽화전이 벌어지기 전에 등장하는 유형과 조조가 패주하여 화용도로 달아나다가 관우와 맞부딪히기 직전에 벌어지는 <군사점고> 사설에 이어지는 유형 두 가지가 있다. 적벽에서의 <군사설움타령>은 이름 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설움을 토로하는 데 비해, 화용도에서의 <군사설움타령>에는 설움을 토로하는 군사들의 군직이 제시되어 있다. 어느 자리에 놓이든 <군사설움타령>은 죽음을 앞둔 이름 없는 군사들의 한과 슬픔을 담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각 이본에 따라 <군사설움타령>에 등장하는 군사들은 차이가 많다. 박기홍의 더늠과 신재효본에도 아홉 군사가 등장하여 설움을 토해낸다. 이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창본과 필사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은 ‘부모 생각과 아내 생각, 자식 생각, 첫날밤 생각’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삶의 가장 중요한 정서이며, 첫날밤 생각은 전쟁에 끌려간 사내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의 표출이다. 전쟁은 지배자가 자신의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군사설움타령>은 권력의 야욕 앞에서 가족과 인간의 일상사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임방울 창본의 <군사설움타령>은 잔치판에서 군사들이 노는 모습을 ‘부모 생각(진양조장단)―자식 생각(자진모리장단)―아내 생각(늦은중모리장단)’으로 간단히 묘사하고 있다. 이선유 창본과 김연수 창본, 정응민바디로 알려진 정권진 창본은 ‘부모 생각(진양조장단)―자식 생각(중모리장단)―아내 생각(자진중모리장단)―첫날밤 생각(중모리장단)’으로 전개된다. 김채만제 적벽가로 알려진 한승호 창본에는 ‘부모 생각(진양조장단)―자식 생각―아내 생각(중중모리장단)’에 이어 <싸움타령>이 이어진다. 이에 비해 적벽가 필사본(화용도 포함)의 <군사설움타령>은 ‘조조의 설연―잔치 풍경―부모 생각―아내 생각―자식 생각―첫날밤 생각―까치 생각―돈 생각―형제 생각―죽을 걱정―싸움타령―함포고복―진충보국―군사 호기―참 설움―승상 욕―꿈 해몽’ 등의 여러 화소가 선택적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슬퍼하는 화소 외에 <싸움타령>이나 <군졸호기> 등의 부분적인 화소는 19세기 후반 이후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선유본을 제외한 모든 창본에 <싸움타령>이 들어 있고 필사본의 경우, 신재효본에는 <싸움타령>, 김종철 『화용도(華容道)』 40장본에는 <망국조>로 표기되어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필사된 작품에 유형화된 형태가 없음으로 볼 때, <싸움타령>은 20세기 이후에 일정한 유형으로 자리 잡은 듯싶다. <싸움타령>은 역대 전쟁사를 열거하는 유형과 군사들의 반응이 덧붙여지는 두 유형으로 가를 수 있다. 군사들의 반응은 싸움이 벌어졌을 때 패해도 죽고, 이겨도 죽는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 난(兩亂)을 겪으면서 민중들은 집권층들의 무능을 목격하였다. 또한 당쟁을 벌이고, 파벌을 만들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에 바쁘던 집권층을 바라보는 민중들의 시선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앞둔 군사들의 절망감과 다름이 없다.

민중들의 비판 의식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어 있는 것이 <군사호기>이다. <군사호기>는 다른 군사들은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피 우는데 어떤 군사가 자기는 공을 세우러 왔는데 왜 우느냐며 우는 군사들을 꾸짖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군사의 모습은 코삐뚤이나 언청이 등의 비정상적 외모로 만들어진 가면극의 양반탈 형상과 흡사하다. 비정상적 외모를 가진 군사가 영웅들이 할 수 있는 말을 하기에 괴리가 생기며 풍자의 정도가 심화된다. 이 군사의 말에 대한 다른 군사들의 반응은 맞대응이 아니라 외면이다. 호기를 부리는 군사의 말은 바로 위정자들의 의도와 다름이 없기에 맞대응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리판의 <군사설움타령>은 비극적 비애미와 희극적 골계미가 결합하여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깨달음을 이끌어 내고 있다. <군사설움타령>에는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에 끌려나온 민중들의 참혹한 현실과 조조로 대표되는 집권자들을 향한 군사들의 신랄한 비판 정신이 담겨 있다.

특징 및 의의

조선창극사』는 <군사설움타령>을 고종 이후에 활동한 박기홍의 더늠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재효적벽가와 초기 필사본인 정문연본 『화용도전』 24장본에도 이 대목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중반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군사설움타령>은 현전하는 모든 이본에 수용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군사설움타령>은 적벽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대목으로, 특정 창자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짧고 소략한 형태에서 사설이 점차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군사설움타령>의 전후에는 원본에 기대어 공명의 신출귀몰한 재주를 추켜세우는 내용이 등장한다. 공명이나 관우와 같은 영웅의 형상이 강화되는 현상은 19세기 중반부터 점차 증대되던 양반 식자층(識者層), 비가비 광대 등의 영향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참고문헌

19세기 후반 적벽가의 전환 양식과 시대정신(정출헌, 판소리연구27, 판소리학회, 2009), 적벽가 연구(최동현·김기형, 산아출판사, 2000), 적벽가의 민중 정서와 미적 성격(김종철, 판소리연구6, 판소리학회, 1995), 적벽가의 역사적 전개와 작품세계(김기형,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필사본 화용도 연구(이기형, 민속원, 2003).

군사설움타령

군사설움타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집필자 이기형(李起衡)

정의

<적벽가(赤壁歌)>에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조조가 잔치를 베푸는 장면에서 전쟁터에 끌려나온 이름 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설움을 토로하는 내용의 소리 대목.

개관

<군사설움타령>은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전쟁 준비를 마친 조조가 큰 배 위에서 장강 일대를 바라보면서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부분에 등장하는 사설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큰 배 위에 잔치를 벌여 모든 장졸이 모여 즐기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만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적벽가의 <군사설움타령>은 죽음을 앞에 둔 이름 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슬픔을 실감나게 담아내기 위해 민중들의 시선에서 새롭게 창작된 대목이다.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동편제 명창 박기홍의 더늠으로 <조조 군사 사향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여느 판소리 사설과 달리 적벽가는 원전이 존재한다. 조선 초기에 유입된 『삼국지연의』는 인기 있는 작품이었으며, 번역본 『삼국지』 외에도 일부분을 단편화한 많은 독서물을 파생시켰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가 수용되면서 한문 문어체가 국문 문어체로 전환하는 흐름 속에서 판소리의 개방적 성격이 작용하여 원전의 서사적 균열이 확대되고, 구조가 해체되면서 민중들의 언어로 전환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하여 창조된 작품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가 ‘적벽대전’이다. 적벽에서의 화공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존숭받는 인물인 관우가 조조를 놓아 보내는 데 단초가 되는 사건이다. 이러한 전개는 원본에 견인된 것이지만 적벽대전에서의 <군사설움타령>은 민중들의 생생한 삶의 언어로, 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낸 대목이다. 모든 창본과 창본 계열 필사본에 수용되어 있는 <군사설움타령>은 적벽가의 필수적인 화소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신재효(申在孝)의 적벽가에는 이 부분이 매우 확장되어 있다. 이는 이전에 만들어진 서사적 전개에 신재효가 개인적 의도를 반영하여 첨삭을 가한 것이다. 현재 불리는 <군사설움타령>은 19세기 후반에 활약한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의 더늠에 가까우나 이 또한 이전의 사설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적벽가의 <군사설움타령>은 적벽화전이 벌어지기 전에 등장하는 유형과 조조가 패주하여 화용도로 달아나다가 관우와 맞부딪히기 직전에 벌어지는 <군사점고> 사설에 이어지는 유형 두 가지가 있다. 적벽에서의 <군사설움타령>은 이름 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설움을 토로하는 데 비해, 화용도에서의 <군사설움타령>에는 설움을 토로하는 군사들의 군직이 제시되어 있다. 어느 자리에 놓이든 <군사설움타령>은 죽음을 앞둔 이름 없는 군사들의 한과 슬픔을 담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각 이본에 따라 <군사설움타령>에 등장하는 군사들은 차이가 많다. 박기홍의 더늠과 신재효본에도 아홉 군사가 등장하여 설움을 토해낸다. 이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창본과 필사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은 ‘부모 생각과 아내 생각, 자식 생각, 첫날밤 생각’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삶의 가장 중요한 정서이며, 첫날밤 생각은 전쟁에 끌려간 사내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의 표출이다. 전쟁은 지배자가 자신의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군사설움타령>은 권력의 야욕 앞에서 가족과 인간의 일상사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임방울 창본의 <군사설움타령>은 잔치판에서 군사들이 노는 모습을 ‘부모 생각(진양조장단)―자식 생각(자진모리장단)―아내 생각(늦은중모리장단)’으로 간단히 묘사하고 있다. 이선유 창본과 김연수 창본, 정응민바디로 알려진 정권진 창본은 ‘부모 생각(진양조장단)―자식 생각(중모리장단)―아내 생각(자진중모리장단)―첫날밤 생각(중모리장단)’으로 전개된다. 김채만제 적벽가로 알려진 한승호 창본에는 ‘부모 생각(진양조장단)―자식 생각―아내 생각(중중모리장단)’에 이어 <싸움타령>이 이어진다. 이에 비해 적벽가 필사본(화용도 포함)의 <군사설움타령>은 ‘조조의 설연―잔치 풍경―부모 생각―아내 생각―자식 생각―첫날밤 생각―까치 생각―돈 생각―형제 생각―죽을 걱정―싸움타령―함포고복―진충보국―군사 호기―참 설움―승상 욕―꿈 해몽’ 등의 여러 화소가 선택적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슬퍼하는 화소 외에 <싸움타령>이나 <군졸호기> 등의 부분적인 화소는 19세기 후반 이후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선유본을 제외한 모든 창본에 <싸움타령>이 들어 있고 필사본의 경우, 신재효본에는 <싸움타령>, 김종철 『화용도(華容道)』 40장본에는 <망국조>로 표기되어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필사된 작품에 유형화된 형태가 없음으로 볼 때, <싸움타령>은 20세기 이후에 일정한 유형으로 자리 잡은 듯싶다. <싸움타령>은 역대 전쟁사를 열거하는 유형과 군사들의 반응이 덧붙여지는 두 유형으로 가를 수 있다. 군사들의 반응은 싸움이 벌어졌을 때 패해도 죽고, 이겨도 죽는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 난(兩亂)을 겪으면서 민중들은 집권층들의 무능을 목격하였다. 또한 당쟁을 벌이고, 파벌을 만들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에 바쁘던 집권층을 바라보는 민중들의 시선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앞둔 군사들의 절망감과 다름이 없다.

민중들의 비판 의식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어 있는 것이 <군사호기>이다. <군사호기>는 다른 군사들은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피 우는데 어떤 군사가 자기는 공을 세우러 왔는데 왜 우느냐며 우는 군사들을 꾸짖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군사의 모습은 코삐뚤이나 언청이 등의 비정상적 외모로 만들어진 가면극의 양반탈 형상과 흡사하다. 비정상적 외모를 가진 군사가 영웅들이 할 수 있는 말을 하기에 괴리가 생기며 풍자의 정도가 심화된다. 이 군사의 말에 대한 다른 군사들의 반응은 맞대응이 아니라 외면이다. 호기를 부리는 군사의 말은 바로 위정자들의 의도와 다름이 없기에 맞대응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리판의 <군사설움타령>은 비극적 비애미와 희극적 골계미가 결합하여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깨달음을 이끌어 내고 있다. <군사설움타령>에는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에 끌려나온 민중들의 참혹한 현실과 조조로 대표되는 집권자들을 향한 군사들의 신랄한 비판 정신이 담겨 있다.

특징 및 의의

『조선창극사』는 <군사설움타령>을 고종 이후에 활동한 박기홍의 더늠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재효본 적벽가와 초기 필사본인 정문연본 『화용도전』 24장본에도 이 대목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중반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군사설움타령>은 현전하는 모든 이본에 수용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군사설움타령>은 적벽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대목으로, 특정 창자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짧고 소략한 형태에서 사설이 점차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군사설움타령>의 전후에는 원본에 기대어 공명의 신출귀몰한 재주를 추켜세우는 내용이 등장한다. 공명이나 관우와 같은 영웅의 형상이 강화되는 현상은 19세기 중반부터 점차 증대되던 양반 식자층(識者層), 비가비 광대 등의 영향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참고문헌

19세기 후반 적벽가의 전환 양식과 시대정신(정출헌, 판소리연구27, 판소리학회, 2009), 적벽가 연구(최동현·김기형, 산아출판사, 2000), 적벽가의 민중 정서와 미적 성격(김종철, 판소리연구6, 판소리학회, 1995), 적벽가의 역사적 전개와 작품세계(김기형,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필사본 화용도 연구(이기형, 민속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