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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에 대한 검색결과 28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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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
입춘 때 집안 곳곳에 경축과 벽사의 의미를 기원하며 붙인 문구.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
단오첩
端午帖
음력 5월 5일 단옷날 신하들이 단오절을 축하하는 시를 지어 궁중에 올린 첩자(帖子).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
추고
秋高
하늘이 높다는 뜻으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이 시기가 되면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하늘은 맑고 높으며 날씨는 화창하다.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의미에서 추고마비(秋高馬肥) 또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이칭 -
춘한
春寒
음력 2월을 달리 부르는 말. 겨울이 지났는데도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는 봄날의 추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꽃샘추위, 여한(餘寒)이라고도 한다.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2월 > 이칭 -
출인가
出引歌
각각 독립된 세 가지의 이야기가 후렴구와 함께 조화롭게 연결된 독특한 형태의 12잡가.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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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 - 역사
춘첩(春帖)은 봄에 붙이기에 얻어진 명칭이다. 대구(對句)를 이룬 문구를 붙이기에 춘련(春聯) 또는 대련(對聯), 입춘에 붙이기에 ‘입춘첩 <>’이라고도 부른다. 문에 붙이기 때문에 ‘문련(門聯)’, 문기둥에 붙이기에 ‘영련(楹聯)’, 일정한 크기에 표제(標題)를 적기에 ‘첩자(帖子)’라고도 한다.한편 조선시대 후기 문집에서는 ‘춘첩’과 ‘첩자’를 구분하였다. 춘첩은입춘날 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같은 글귀를 써 붙이는 것이다. 한 해의 무사태평과 풍농을 기원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뜻을 담은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첩자는 섣달그믐날에 붉은색 종이에다 좋은 의미의 구절을 짝이 맞게 대구로 써서 문 위에 붙이는 것이다. 다른 말로 대련, 문첩(門帖)이라고 한다. 문 앞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두 문신(門神)을 그린 판자를 세운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결국 춘첩과 첩자는 붙이는 시기와 목적이 다름을 나타낸 것이다.춘첩과 첩자는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
춘첩 - 의의
춘첩은 대문 이외에도 집안 곳곳에 붙이기도 하는데, 공간과 기능에 따라 다른 내용의 춘첩을 붙인다. 예를 들어 외양간에는 가축이 흥성하기를 기원하는 춘첩을 붙이고,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써서 붙인다.우리나라 춘첩 가운데 ‘입춘대길 건양다경’ 문구가 흔하게 보이지만 그 밖의 춘첩은 개인의 가풍과 원망(願望) 등에 따라 내용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
입춘축 - 정의
立春祝
입춘날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 입춘(立春)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자 봄을 맞는 날이므로 이날 봄의 형상에 적합한 축하·기원·경계 등의 글을 쓰는데, 이를 입춘축(立春祝)·춘축(春祝)이라 한다. 그리고 종이를 잘라 좋은 글을 쓰고 입춘일에 각 집마다대문이나 기둥 등에 붙인다고 하여, 입춘첩·춘첩·춘첩자(春帖子)·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문첩(門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立春)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문이나 기둥마다 대구의 글을 지어 붙인다고 하여, 춘련(春聯)·대련(對聯)·문대(門對)라고도 한다.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절기 -
입춘축 - 유래
立春祝
문첩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중국 황제(黃帝) 때 흉악한 귀신을 쫓기 위해 설날 도부(桃符)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의 형상을 그려 문에다 걸었다는 것에서, ‘신도울루(神荼鬱壘)’ 넉 자를 써서 붙인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춘련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입춘에 봄을 맞이하여 봄의 행운을 부른다는 ‘의춘(宜春)’ 두 자를 써서 문에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진운첨(陳雲瞻)의 『잠운루잡화(簪雲樓雜話)』에 의하면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섣달 그믐날 하루 전에 공경대부와 일반 서민들로 하여금대문 위에 춘련(春聯) 한 폭씩을 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우리나라에서 춘첩자는 고려시대부터 보이는데, 『동문선(東文選)』에는 김부식(金富軾)이 쓴 내전(內殿) 춘첩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송나라 서긍(徐兢)이 개경 광화문(廣化門)에 붙여져 있는 “눈 자취 아직도 삼운폐에 있는데(雪痕尙在三雲陛) 햇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절기 -
입춘축 - 인접국가사례
立春祝
중국에서는 춘첩으로 제석(除夕)에 ‘하도낙서(河圖洛書)’, ‘신도울루’, ‘인봉구학(麟鳳龜鶴)’ 등의 글을 써서 붙이거나, 정월 초하루에 붉은 종이에다 글을 써서 붙이기도 하며,상원(上元)에는 춘첩을 훔치는 풍속도 있었다.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절기 -
춘첩 - 내용
조선시대 이덕무(李德懋)의 시 <세시잡영(歲時雜詠)>에서는 당시 춘첩의 문구를 두보(杜甫)의 시를 비롯한 당시(唐詩)에서 인용하였다고 한다. 묵은해에 붙인 춘첩의 문구는 새해에도 변화가 없다고 적었다. 그의 말대로 춘첩의 문구나 붙인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당시 사서삼경 등의 시구 일부를 취해 춘첩의 문구로 삼는 것은 현재 우리보다 중국이 그러하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하회마을의 경우 『논어』, 『시경』, 『주역』의 내용 일부를 따와 춘첩을 지은 집이 많이 보인다.조선시대 상점에서도 춘첩은 돈을 들여서라도 명필가에게 글을 받아 문 밖 기둥에 붙였다. 이는 가게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 문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한 해 상서롭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우리나라에서 춘첩과 관련해서는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내용을 많이 인용한다. 한편 『동국세시기』의 내용은 먼저 발간된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와 같은 것으로 보아 홍석모가 『경도잡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
할미춤 - 정의
할미가 영감과 함께 추거나 첩과 대립하며 추는 춤으로, 검은색 탈을 쓰고 저고리와 치마를 몸통이 드러나도록 입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추는 춤.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
광한루악부 - 내용
廣寒樓樂府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는 윤달선이 1852년에 판소리 춘향가를 칠언절구 108수로 노래한 연작 한시이다. 당시 대표적인 한시 작가인 신위(申緯, 1769~1845)가 칠언절구 12수의 「관극절구(觀劇絶句)」를 지어 판소리 향유의 경험을 노래한 바 있는데, 윤달선도 그를 본받아 서울의 승가사(僧伽寺)에서 병으로 요양하면서 판소리 춘향가를 한시로 노래하였다. 다만 윤달선은 신위의 「관극절구」가 소략한 점이 아쉬워, 판소리의 향유 경험만이 아니라 판소리 춘향가의 전체 내용까지 다루어 총 108수의 장편 연작시를 창작하였다.「광한루악부」 연작시 각각의 첫머리에는 ‘要令’, ‘轉語’, ‘李生唱’, ‘香娘唱’, ‘總論’, ‘結局’ 등의 단어가 씌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창’이라고 하여 창자를 밝혀 주고 있지만, 1~2첩은 ‘요령(要令)’, 3첩은 ‘전어(轉語)’, 107첩은 ‘총론(總論)’, 108첩은 ‘결국(結局)’이라 씌어 있다. ‘요령’은 서사(序詞)에 해당되며, 3첩의 ‘전어’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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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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