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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대한 검색결과 42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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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朝鮮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월간지. 여기에 수록된 민속관련 논문들은 가정신앙 등 초기 민속 연구 상황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자료 -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
이능화(李能和)가 한국 무속 자료를 집대성하여 1927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 기관지 『계명(啓明)』 제19호에 발표한 글.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자료 -
조선의 민요
1949년 성경린·장사훈이 공동으로 펴낸 민요 모음집.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자료 -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한국의 무속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쓴 글로 1927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의 기관지 『계명 啓明』 제19호에 발표하였다.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문헌자료 -
조선건축
朝鮮建築
광복 직후 건축 관련 분야의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설립한 조선건축기술단에서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총 9집을 발간한 1940년대 건축 전문 잡지.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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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김치 - 참고문헌
攷事十二集, 是議全書, 增補山林經濟, 海東農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용기, 한흥서림, 1924), 조선요리법(조자호, 광한서림, 1938), 조선요리제법(방신영, 한성도서, 1942), 조선음식 만드는 법(방신영, 대양공사, 1946).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식생활 -
반친영 - 참고문헌
半親迎
조선의 혼속변천과 그 사회적 성격(김일미, 이화사학연구4, 이화사학연구소, 1969), 조선전기 혼인의례와 혼인에 대한 규제(장병인, 조선전기의혼인제와 성차별, 일지사, 1997), 조선중기 사대부의 혼례형태(장병인, 조선시대사학보45, 조선시대사학회, 2008), 조선중기 혼인제의 실상(장병인, 역사와현실58, 한국역사연구회, 2005), 조선 혼인의 주요 형태인 솔서혼속고(손진태, 조선 민족문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8), 한국의 전통혼례 연구(박혜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
남귀여가혼 - 참고문헌
男歸女家婚
가족제도(노명호, 한국사15, 국사편찬위원회, 1995), 조선 혼인의 주요 형태인 솔서혼속고(손진태, 조선 민족문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8), 조선전기 혼인의례와 혼인에 대한 규제(장병인, 조선전기의 혼인제와 성차별,일지사, 1997), 조선중기 사대부의 혼례형태(장병인, 조선시대사학보45, 조선시대사학회, 2008), 조선중기 혼인제의 실상(장병인, 역사와현실58, 한국역사연구회, 2005), 한국의 전통혼례 연구(박혜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혼례의 절차 및 의미에 대한 고찰(정종수, 민속학연구6, 국립민속박물관, 1999).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
이여송 - 분석
李如松
역사에서 이여송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병으로 조선에 와서 왜군을 물리치고 조선을 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구전설화에서는 조선에 트집을 잡거나 혈을 질러 인재를 없애려 한 인물이며, 결국 자기 조상의 혈까지 질러 망하게 한 부정적인 인물로 인식된다.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
이여송 - 역사
李如松
<이여송설화>는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조선에 파병되면서 생성되었으며, 『청구야담(靑丘野談)』, 『계서야담(溪西野談)』의 문헌설화 <>집에 수록되거나 『임진록(壬辰錄)』 같은 소설로 전승되기도 하였다. 문헌설화에는 이여송이 조선의 왕이 되려 했다가 이인(異人)에게 질책을 받아 물러난 이야기가 많다. 구비설화에서는 조선의 인재를 없애기 위해 혈을 지른 이야기가 주로 전승된다. 더 나아가 이여송이 본래 조선 사람으로 조상의 혈을 질러 자손이 끊겼다는 설화도 있다.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
조선표상화 - 내용
朝鮮表象化
조선은 호랑이의 나라로 불릴 만큼 호랑이가 많았다. 근대 이전 조선에서 호랑이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辟邪, 지켜주는 수호守護의 상징이었고, 신령神靈, 위용威容, 권위權威, 길상吉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호랑이가 많다는 것과 호랑이가 조선이라는 나라의 표상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근대 이전 호랑이 자료에서는 호랑이가 조선의 표상이라는 인식을 찾을 수 없다. 더하여 ‘표상表象’이라는 단어 자체가 근대 이전에는 없었다. 무엇을 드러낸다고 하여 ‘표表’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표상表象’ 즉 ‘드러내는 이미지’라는 개념이 조선에는 아예 없었다. 게다가 태양이 임금을 대신할 수는 있지만, 동물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도 근대 이전 조선에는 없었다. 프랑스의 땅 모양이 주전자를 닮았다거나 이탈리아의 땅 모양이 장화를 닮았다는 등 나라의 지형을 동물이나 사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도 19세기 말 서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그린 것은 20세기 초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
안태 - 참고문헌
安胎
국역 안태등록(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7), 민속의 지속과 변동-출신의례 중의 안태를 중심으로(이필영, 역사민속학13, 한국역사민속학회, 2001), 서삼릉 태실(국립문화재연구원, 1999), 조선시대 태실에 관한 일고찰(최호림, 한국학논총7,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85), 조선왕실의 안태와 태실 관련 의궤(김상환 역,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6), 조선왕실의 출산과 안태의 재조명(육수화, 민족문화논총35,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8), 조선의 왕(신명호, 가람기획, 1998), 조선의 태실1・2・3(전주이씨대동종약원, 1999), 조선 후기 안태 의례의 개선과 정비(윤진영, 조선시대사학보67, 조선시대사학회, 2013), 조선 후기 왕실의 출산풍경(김호, 조선의 정치와 사회, 집문당, 2002).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출생의례 -
이성계 - 역사
李成桂
이 설화는 조선 창업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이해 집단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고 이성계 씨족 집단의 역사적 이주 경로 및 조선 창업의 주도권 획득 과정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여말선초의 조선 창업 과정을 정치적·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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