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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닫이"에 대한 검색결과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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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닫이 - 내용
반닫이는 와궤臥櫃라고도 한다. 궤에는 윗다지와 반닫이(앞다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천판(윗면)을 앞뒤로 절개해서 앞쪽을 문판으로 삼은 것을 위쪽에 문이 있다 하여 윗다지라고도 하고, 흔히 궤라고 부른다. 앞면을 상하로 이등분하여 위쪽을 문판으로 삼은 것은 반닫이 또는 앞다지라 한다.반닫이는 문(뚜껑)이 널판으로 되어 운두가 없으며, 문판에 붙은 경첩이 천판과 연결되어 포개 놓을 수 없다. 장이나 농을 구비하지 못한 서민 가정에서는 옷을 수장하기 위하여 반닫이가 필수 가구였으며, 서민의 기본혼수품이었다. 그러므로 서민들은 이 반닫이를 안채(또는 안방 <>)에 두고 사용하였으며, 천판 위에는 이불을 얹었다.반닫이 중 특이한 형태는 내부를 좌우로 칸을 나누고 문판을 두 개 나란히 단 원앙 반닫이와 문을 중앙에 작게 낸 개구멍 반닫이이다. 원앙 반닫이는 부부가 해로하라는 의미로서 결혼 예물로 만들며, 부유한 집에서는 나이든 노부부의수의壽衣를 보관하기 위하여 만들기도 한다. 개구멍 반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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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닫이 - 특징 및 의의
반닫이는 서민들의 의복을 간수하는 기본 가구였다. 과거 교통이 불편하던 시기에 각 지역에서는 산지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반닫이를 제작하였으므로 각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가구이다. 또 용도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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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함 - 내용
祭器函
제사에 사용되는 수저, 잔반, 밥그릇, 국그릇, 편대, 적대, 접시 등 각종 제사용 그릇과 모사기, 향로, 향합 등의 제기를 담아 두는 상자이다.주로 나무 상자인 반닫이가 사용되었다. 반닫이는 전면前面 상반부를 상하로 여닫는 문판門板(젖혀 열게된 문짝의 널)을 가진 장방형의 단층의류궤單層衣類櫃이다. 의류뿐만 아니라 귀중한 두루마리・서책・유기류鍮器類・제기류祭器類 등의 기물을 보관・저장하는 가구로도 사용하였다.주희朱熹의 『가례家禮』에서는 사당 밖에 주고廚庫를 세워 제기를 보관하며, 자물쇠를 채워 다른 목적에 사용하지 않도록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17세기의 향촌자료에는 “종가에서는 먼저 사당을 건립하고 사당 앞에 별도의 창고를 지어 여러 가지 제기를 저장하고 절대로 밖에 두지 말고 또한 사사로이 이용하지 말라宗子家, 先立祠堂, 堂前別建庫間, 入藏祭時所用各件器用, 切勿外置, 又勿私用.”는 표현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형편의 여의치 않아 대개 사당에 제기함을 두었다. 즉, 조선 중기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
벼락닫이창 - 개관
한옥에서 벼락닫이창은 창 윗부분에 돌쩌귀를 달아 문인방에 결속하여 창울거미 아랫부분을 들어서 밑에서 위로 밀어 열 수 있도록 한 창문이다. 손을 놓으면 벼락처럼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닫힌다는것때문에 벼락닫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벼락닫이창과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열리는반닫이 앞면의 문판 개폐 방식 또한 벼락닫이라 부르기도 하므로, 열리고 닫히는 방향보다 문짝이 떨어져 내린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사용되는 단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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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 내용
살림살이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명사적 의미로 ‘살림을 차려 사는 일’과 이를 위해 필요한 세간을 의미하고 동사적 의미로 ‘살림을 차려서 산다’는 뜻이 있다. 또 국어사전에서 ‘살림’에 대한 정의를 보면 “첫째,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둘째,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셋째,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살림살이는 세 번째 정의와 관련이 깊다. 세간은 집 안에서 쓰는 온갖 물건을 말한다. 가구, 가재家財 도구, 가재기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살림살이’의 옛말인 ‘살님사리’는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살님사리’는 ‘살님’과 ‘사리’가 결합한 말이다. ‘살님’은 ‘살리다’와 접미사 ‘-ㅁ’으로 분석되며, ‘사리’는 ‘살다’의 어근인 ‘살-’에 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말이다. 이러한 어휘적인 의미를 토대로 살펴보면 살림살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면서 이에 필요한 가재용품을 다 포괄하는 말이다. 즉 살림이란 집에서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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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 내용
한국 전통 옷장은 단층부터 여러 층으로 된 장과 농, 의걸이장, 반닫이장, 머릿장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옷장이라는 용어는 현재에 와서는 다양하고 많은 옷을 보관해야 하는 19세기 이후의 가구를 가리킨다. 장이나 농은 여성들이 사용하는안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반면에 의걸이장은 남성들이 사용하는사랑방에 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장과 농은 아름다운 목리, 화려한 화각이나 자개, 화려한 백동의 금속장식을 사용하였다. 반면에 의걸이장은 선비들의 청빈하고 검소한 정신을 보여 주고 자연의 목리를 소박하게 나타내었으며, 거멍쇠 금속장식 등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이러한 전통가구는 조선시대 말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이층으로 제작되어 하층에는 이단 서랍, 상층에는 여닫이문의 나전의걸이장 등을 각각 사용하였다. 사실상 의걸이장의 하단 서랍들은 일본의 단스나 서구의 서랍장 형태인 장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1920년대양복의 보급은 이러한 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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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걸이장 - 내용
의걸이는 개화기에 사용되기 시작한 가구 양식이다. 19세기 말부터는 외래 문물, 특히 서구 문물 유입으로 조선 왕실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갑신의제개혁으로, 관리의 복식 간소화와 문관의 예복으로양복을 착용하도록 하였다.우리나라의 전통한복은 남녀 공히 평면 재단을 하므로 옷은 접어서 장이나 농 등에 보관하여도 무관하였으나 양복은 입체 재단으로 제작하여 접어 둘수 없어 의걸이장이 생겨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성 복식 전용 의걸이가 만들어져 아래 공간에는목화木靴·혜鞋·구두를 넣고 위쪽 공간에는 횃대를 매어 두루마기를 걸쳐 두고, 양복은 옷걸이를 사용하여 횃대에 걸었다.사랑방에서 사용하는 의걸이장은 대부분 오동나무로 만들고, 문판에 사군자를 각하거나 시문을 각한다. 알갱이인 오동판은 인두로 지지고 짚으로 문질러서 나뭇결이 두드러지게 하고, 밀을 발라 서장書欌과 유사한 양식을 보인다. 의걸이장은 문을 열면 횃대가 걸려 있으며, 머름 <>칸까지 깊이가 있어 문보다 바닥이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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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 내용
『숙종실록肅宗實錄』(숙종 27, 9월 29일)에 “고비高飛란 종이를 벽에 붙이고 금단 따위의 물건을 그 사이에 끼워서 왕신을 받드는 것이다(所謂高飛, 以紙付壁, 錦段等物, 揷於其間, 以奉王神者也).”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실書室에 둔 고비가 나무나 종이로 앞뒤를 막고 그 사이를 몇 개의 층으로 나눠 문서류를 꽂아 보관하던 것과 비교하면 생김과 그 쓰임은 다르지만 벽에 설치하여 물건을 끼워 보관하는 방식은 같음을 알 수 있다. 『인선왕후국장도감의궤仁宣王后國葬都監儀軌』(1674)에서는 고비롱高飛籠이라는 용어와 그 도설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고비롱은 국가장례에서 부장용으로 마련되는 복식 일습인 복완服玩의 하나로 단지 모양의 작은 그릇이어서 벽에 설치하는 수납 용구와는 구별된다.즉 현전 유물을 지칭하는 고비考備의 어원이 명시된 기록은 찾지 못했으나 벽에 부착하고 그 틈 사이에 물건을 끼워 보관하는 용도로 ‘고비高飛’라는 것이 있었고, 고비롱과는 다른 것이며, 조선시대사전풀이로는 ‘書礻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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