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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1920~1930년대 경성의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서구적 외양·취미·언어·의식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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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 참고문헌
1920~1930년대 모던 세대의 형성과정(주창윤, 한국언론학보52-5, 한국언론학회, 2008), 근대를 보는 창 20(최규진, 서해문집, 2007), 불량소녀들(한민주, 휴머니스트, 2017), 식민지조선의 모던걸(서지영, 한국여성학22-3, 한국여성학회, 2006), 조선의 ‘이트'가 된 모던 걸(류수연, 민족문학사연구52,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3), 한국 모던 걸 패션의 미적 특성과 스타일링 연구(양정희·박혜원, 패션비즈니스19.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 201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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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 역사
‘신여성’과 혼용되어 사용된 모던걸이라는 용어는 1924년 일본 기타자와北澤秀一의 <모던걸의 출현モダンガールの青春>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일본과 거의 동시에조선에 소개되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new woman’으로, 일본은 이를 ‘新女子’로 번역하였고, 한자어 ‘新女性(신여성)’은 1910년대 말 중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번역어이다. 조선에서 ‘모던걸’이라는 말은 『신여성』 1925년6월호에 실린 김기진의 기사에서 ‘신여성’을 ‘모던걸’과 번갈아 쓰면서 처음 등장하였고, 1927년부터는 신문과 잡지에 모던걸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모던걸은 사치스러운의복을 입고 세상을 휩쓸고 다니는 여성을 칭하였고, 이는 신여성보다 훨씬 근대화된 여성들을 가리킨다. 조선 전체가 향학열이 만발하였던 1919년 무렵 모던걸, 즉 신여성이란 진보적인 시대의 선각자를 말하였다.하지만 1930년대에 와서 신여성은 짧은 치마에 뾰족구두를 신은 허영심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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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 특징 및 의의
서구 문화는 조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미의 척도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거기에 내포된 교환가치적 속성은 강한 거부반응 또한 불러일으켰다. 모던걸, 모던보이의 등장은 새로운 서구적 외양과 취미, 언어, 의식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하위문화로서 모던보이는 새로운 유행을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보면부정적 의미가 없지만, ‘모던보이’나 ‘모던걸’이 경멸과 조소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불량소녀 혹은 불량소년이라는 의미로도 통하는 시대였다. 1920~1930년대의 만화나 만평 속에 표현된 모던걸, 모던보이는 풍자적이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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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 특징 및 의의
포괄적으로 ‘모던걸’로 명명되었던 이들은 한편으로는 ‘못된 걸’, 즉 도덕적으로 ‘나쁜 여자’로 재현되었다. 외형적으로 서구적 외양과 취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섹슈얼리티와 젠더 질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당대 언론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이들은 패션과 스타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대담한 언행을 보였다. 1920년대에는 신여성과 여학생의 소비가 허영과 사치로 비판을 받았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신여성, 모던걸을 낭비적 소비의 주체로 인식하고 비난하였다. 시대의 첨단인 모던걸은 특히 이상, 박태원, 김기림 등 모더니스트들의 문학, 유진오의 『나비』, 이효석의 『장미 병들다』 등의소설에 영향을 미치면서 1930년대 한국 문학사에도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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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 내용
‘모던걸’이라는 말은 『신여성新女性』 1925년 6월호에 처음 등장하였고, 1927년부터는 신문과 잡지에 모던걸과 모던보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사전을 보면 ‘모던modern’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혹은 ‘근대적’이라고 표현하였다. ‘모던걸’이라면 ‘새로운 여자’ 혹은 ‘근대 여자’를 의미하였고, ‘모던보이’라면 같은 의미의 남자를 말한다. 이런 의미는 당시 시대 배경과 관련하여 형성되었다.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중반 사이 식민지 경성의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식민지조선의 인구학적 변화 및 생산성의 증대, 도시의 특정 장소를 매개로 한 소비문화의 확산, 서구적 스타일의 유행과 함께 새로운 문화가 나타났다.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 계획적으로 근대화된 진고개 중심의 남촌南村은 근대 상품과 화려한 건물,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근대 도시가 되었다. 1921년 조지아丁字屋백화점을 시작으로, 1922년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1926년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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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 내용
1920년 이후 활발한 민족운동과 함께 전개된 여성의 근대교육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여 신여성을 등장시켰다. 신여성은 주로 외국 유학생으로, 패션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1907년 동경에서 귀국한 김활란은 팜프도어(pompadour,챙머리) 헤어스타일에 발목 위까지 올라간 짧은통치마를 입고 귀국하여 화제가 되었다. 신여성들은 한복에도 서양 장신구를 착용하는 등 전통과 새로운 양식을 자연스럽게 혼용하면서 근대 패션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1920년대에 이르면단발머리에 흰저고리와 짧은 치마, 양산과 핸드백을 들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신여성의 상징으로자리 잡기도 하였다. 조선의 모던걸은 양장의 소품과 개량한복을 혼용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사실상 1920년대 초에 정착한 전형적인 신여성의 복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완전히 양장으로 변신하고 경제적 독립성을 갖는 여성 집단을 1920년대 후반 경성에서 찾기란 쉽지 않았기에, 조선 지식층은 트레머리,송곳 구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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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 - 참고문헌
三國史記, 근대적 패션의 풍경-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김주리, 살림출판사, 2005), 인쇄매체를 통해 고찰한 우리나라 근대 수편물(이정민,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한국여성양장변천사(유수경, 일지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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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 특징 및 의의
단발머리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유교적 윤리 속에 갇혀 살던 여성에게 그 굴레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나며, 이는 서구화에대한 동경으로 새로운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행위로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 사이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통치마를 입는 새로운 부류가 나오면서 ‘신여성’, ‘모던걸’이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나고,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가운데 차츰 이들의 차림은안방 여성에게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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