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한국세시풍속사전 > 월별 > 1월 
월별
가래떡 이전 표제어목록 보기다음 표제어글씨 크게 보기글씨 작게 보기인쇄하기(새창으로 열림)
가래떡
궁중음식연구원
크게보기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 > 절식

집필자김상보(金尙寶)

영문명Garaetteok

갱신일 2010년 11월 11일

정의
멥쌀가루를 찐 다음 안반에 놓고 친 후 둥글려서 길고 가늘게 만든 흰떡. 떡국[餠湯]의 재료로 쓰인다.

가래떡과 떡국
중국 한대(漢代)의 『방언(方言)』에 의하면, 이(餌)에는 고(糕, 가루떡·시루떡)와 자(餈, 인절미·흰떡)가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떡이 언제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과 같이 당시에 이미 쌀농사가 행해지고 있었던 우리나라에도 이 시기부터 떡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떡을 깨물어 그 잇자국으로 왕위에 유리가 올랐다는 기록은 흰떡일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산동(山東)의 태수 가사협(賈思勰)이 439년에서 525년 사이에 저술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밀가루로 만든 병(餠)을 분류하였는데, 여기에는 탕병(湯餠)이 있어서 수인병(水引餠)·기자면(碁子麵)·혼돈(餛飩)·박탁(餺飥)을 탕병의 항목에 넣고 있다. 수인병은 밀가루 반죽을 가는 막대모양으로 비벼 만들어 얇게 눌러서 삶아낸 것으로, 당대(唐代)에 불탁(不托)의 칼국수로 발전하였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칼국수를 더욱더 가늘고 길게 만들어 장수면(長壽麵)이라 하였다.
기자면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가래떡처럼 둥근 막대모양으로 만들어서 이것을 얇게 썰어서 건조시켜 두었다가 끓여먹는 소위 밀가루 떡국이다. 한반도에서의 밀은 중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귀한 곡식이었기 때문에 밀가루 대신에 쌀가루로 만든 떡을 한반도에서는 병(餠)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하여 기자면의 재료였던 밀가루 대신에 멥쌀가루를 채택하여 생겨난 것이 소위 가래떡이며, 이것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이 탕병이다.
조선조의 서울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리는데 권모(拳摸)라 한다. …… 제석(除夕)에 권모를 엽전 모양으로 잘게 썰어 넣은 뒤 ……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것을 떡국[餠湯]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먹는 그릇 수에 비유하기도 한다[添歲餠]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가래떡을 백병(白餠)이라 적고,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병탕이라고 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 세신(歲神, 수명장수와 농작물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에게 올렸던 가래떡을 역시 세신에게 올렸던 육류와 합하여 하나의 냄비에 담아 끓인 다음, 식구 모두 음복(飮福)하여 복을 받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 제석에 떡국 먹는 풍습이며, 설날 아침에도 떡국을 끓여 먼저 조상신께 예축의례의 하나로 올리고, 식구 모두가 음복하는 것이 바로 병탕인 떡국이다. 조선왕조에서도 섣달 그믐날 돌아오는 해의 맹춘(孟春) 대길(大吉)을 기원하는 납향(臘享) 대제를 치러 만물의 영(靈)을 불러 모아 은혜에 감사하였음은 물론 양기(陽氣)가 신장하는 대길을 축하하였다.
양(陽)을 상징하는 가래떡을 길고 가늘게 만들어 식구들 개개인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면서 돌아오는 맹춘 대길을 기원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方言, 三國史記, 洌陽歲時記, 齊民要術
料理の起源 (中尾佐, NHKBook, 1993)
陰陽五行思想으로 본 朝鮮王朝의 祭祀飮食文化 (金尙寶, 修學社, 1996)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金尙寶, 광문각, 1997)

관련 멀티미디어

사진(1)
가래떡
가래떡
더보기




 
english site open 모바일 앱 다운로드 함초롬체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