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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최원오(崔元午)

갱신일 2010년 11월 11일

정의
함경도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시켜 주기 위해 하는 망묵굿 가운데 진가장굿에서 부르는 무가. 진가장이 이정승의 아들 삼형제를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은 죄 때문에 죽은 삼형제로부터 보복당하는 이야기이다. 짐가제굿이라고도 한다.

내용
진가장이란 사람이 노름을 좋아해 재산을 다 날렸다. 마침 이정승의 아들 삼형제가 글공부를 하고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진가장 부인이 어디 가는 나그네냐고 묻자 삼형제는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 나그네인데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만 쉬어가기를 청하였다. 진가장 부인이 승낙하여 삼형제가 진가장의 집에서 자고 있는데 진가장이 돌아와 어떤 애들이냐고 물었다. 부인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 나그네라고 하자 진가장은 저 아이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자고 하였다. 부인의 만류에도 진가장은 칼로 삼형제를 찔러 죽인 뒤 움구덩이에다 삼형제의 시체를 묻었다. 삼형제의 죽은 혼은 원수를 갚으려고 서로 궁리하였다. 결국 삼형제의 혼은 각기 금붕어, 황붕어, 청붕어가 되어 연못에 있다가 진가장 부인이 물을 길으러 와서 연못에 두레박을 내리면 거기에 들어가 원수를 갚자고 하였다.
한편 진가장은 계속 밤낮으로 노름질하러 다녔다. 어느 날 진가장 부인은 새벽에 조반을 짓기 위해 물을 길으러 갔다. 진가장 부인이 두레박으로 물을 뜨니 커다란 붕어 세 마리가 들어와서 여자는 물은 긷지 않고 붕어만 떠가지고 급히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진가장 부부는 그 붕어를 끓여 맛있게 먹었다. 그날부터 진가장 부인에게 태기가 있더니 열 달 만에 아들 삼형제를 낳게 되었다. 장성한 아들 삼형제는 공부를 모두 잘해 과거에 급제하였다.
진사와 암행어사가 된 삼형제가 집으로 돌아와 조상을 모신 사당에 술잔을 올리고 허배(虛拜)를 하더니 일어나지를 않았다. 진가장 부부가 삼형제를 일으켰으나 모두 입에 피를 가득 물고 죽어 있었다. 진가장은 아들들을 잡아간 귀신을 잡아오라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놀라 손님들은 다 가고 못나고 못난 사람이 하나 있다가 그 소리에 그만 넋이 나가서 자기가 잡아오겠다고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진가장이 어서 가서 잡아오라고 하자 이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깊은 근심에 빠졌다. 부인이 무슨 근심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이 근심하는 이유를 설명하니 그의 부인이 가만히 있지 왜 그렇게 대답했느냐고 책망하면서 매떡을 일곱 짝 만들어 주었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인가가 없어 사람이 다니지 않는 다리에 가서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밤낮으로 매떡을 하루에 한 짝만 먹고 기다리면 알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남자는 기척이 없는 다리에 들어가 부인의 말대로 하면서 이레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레째 밤이 되니 다리 위에서 이랴 이랴 하며 말 모는 소리와 함께 다리 아래에 있는 인간은 누구냐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였다. 그러자 귀신이 함께 가자고 하여 그 바보 같은 사나이는 귀신을 데리고 진가장네 집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 바보 같은 사람이 아들들을 잡아간 귀신을 데려왔다고 고하자 진가장이 나서며 요망한 귀신아, 내 아들 잡아간 귀신은 나서라며 벽력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귀신이 진가장에게 성명을 물은 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를 하라고 요구하였다. 진가장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항변하면서 이 세상에 나와 남에게 악한 일을 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였다. 귀신이 진가장에게 아직도 스스로의 죄를 모른다고 질책하며 집 뒤로 돌아가 그 움구덩이를 열어 보라고 말하였다. 진가장이 움구덩이를 열어보니 삼형제의 시체가 썩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귀신은 진가장의 혼을 빼내 목숨을 끊고 아이들의 시체를 들어내 놓고 원수를 갚아 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삼형제는 파란 나비, 노란 나비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이렇게 죄는 어디를 가나 그대로 남아서 부모의 죄가 자손에게까지 삼사 대를 이어내리는 법이 생겼다. 그리고 귀신을 잡아온 못나고 못난 인간은 허수아비처럼 다리 옆이나 길 옆에 서 있는 장승이 되었다.

지역사례
다른 이본(異本)에서는 죽은 삼형제가 김정승, 이정승, 박정승 등의 아들로 되어 있다. 또한 구경차 장사를 하며 강림골에 내려왔다가 짐가제 여편내의 꾐에 빠져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죽어서 묻힌 곳도 외양간 말판 밑이며, 붕어가 되는 것도 지부왕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도 관아에 소속된 손사령으로 되어 있고, 손사령이 아내의 지시에 따라 잡아온 이가 열시왕[十王] 사자로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사건이 해결된 후 손사령은 열시왕의 사령이 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제주도 <차사본풀이>의 과양생이 각시 이야기와 상당히 비슷하기에 <진가장무가>를 ‘강림도령형’ 무가라고 하여 <차사본풀이>와 같은 유형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한편 이 무가와 같은 설화로 충북 보은군에서 전승되는 <영동이 유래담>과 전라북도지에 있는 <흥덕현감설화(興德縣監說話)>가 있다.
<영동이 유래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산골에 부부가 한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흉년이 심하여 굶게 되자 아이를 시켜 외가에 가서 먹을 것을 얻어 오게 하였다. 아이는 외가에 가서 호박과 쌀 한 되를 얻어 오던 도중에 큰비를 만나 주막에서 자게 되었다. 주막집 주인 부부는 먹을 것을 빼앗으려고 그 아이를 죽여 말판 밑에 넣었다. 그 후 주막집 부부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가 자라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와서 갑자기 죽었다. 이에 주막집 주인은 억울한 사정을 관가에 호소했고, 원님은 사령인 영동이를 시켜 염라대왕을 잡아오게 했다. 영동이는 원님의 명대로 염라대왕을 모셔 와 주막집 주인의 죄를 밝히고 처형하였다. 염라대왕이 영동이를 저승사자로 데려가기를 원님에게 청하자 원님이 허락하였다. 원님은 영동이를 불러 소원을 물으니 경주 미림(삼백 석 지기) 가운데에 묘를 쓰고 비석을 세워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제(祭)를 지내 달라고 하였다. 영동이가 죽은 후 그대로 시행하였다. 그런데 영동제의 음식을 먼저 맛보는 사람은 모두 죽었고, 영동제를 지내면 무사하여 이후부터 모두 다투어 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 설화에서 <진가장무가>는 영동제의 유래담으로 변형되어 있으나 내용은 영동제와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영동제는 생업과 관련이 있는 비와 바람 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흥덕현감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16대 인종조(仁宗朝) 때 흥덕 현감(興德 縣監)으로 강씨 성(姓)의 한 인물이 부임하였다. 하루는 한 노인이 찾아와 사형제를 키워 자부(子婦)까지 보았는데 까닭 없이 며칠 내로 사형제가 모두 죽었으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상소하였다. 강 현감은 한참 생각하다가 사령 가운데 가장 용맹 있고 똑똑한 자를 골라 그날 밤 이경(二更)쯤에 정읍(井邑)으로 나가는 길가에 서 있으면 삼경쯤에 꽃가마가 지나갈 터이니 두 번째 꽃가마에 탄 사람을 불문곡직하고 잡아서 동헌으로 데려오도록 하였다. 그날 밤 현감은 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기다리고 있으니 삼경이 되자 사령이 과연 위풍이 늠름한 한 사람을 인도해 왔다. 이는 염라대왕이었다. 현감이 말하기를 대왕은 사람을 잡아갈 때 악한 자를 잡아가야 되지 않느냐고 하니 염라대왕은 그 노인의 이야기를 모두 하고는 사라졌다. 즉 그 노인의 여막 마방(馬房) 바닥에 깔린 널빤지를 들어 보면 수십 길이나 되는 푸른 물에 시체 네 구가 떠 있는데 이것은 그 노인이 돈에 탐욕이 발동하여 장사차 길을 떠나다 날이 저물어 들른 사람들을 죽인 것이며, 노인의 아들 사형제는 그 원귀가 재생한 것으로 사거(死去)하여 보복한 것이라고 하였다. 현감은 사령을 시켜 그 노인 집을 조사한 결과 과연 염라대왕의 말과 같았으므로 노인 부처를 사형시켰다.

의의
<진가장무가>의 내용은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차사본풀이>의 내용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한국의 북부인 함경도와 최남단인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무가가 등장인물의 명칭을 제외하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신화적 세계에서 볼 때 억울하게 죽으면 원령(怨靈)이 된다는 점, 원령은 단순한 혼령이 아니라 복수를 꿈꾸는 사회적 존재라는 점, 죽음은 저승 소관이라는 점 등의 유사성도 확인된다. 이를 근거로 하여 이들 지역은 상호 유사한 생사관과 영혼관을 공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주도 지역의 무가는 고형(古形)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고, 함경도 지역의 무가는 상대적으로 설화의 수용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많아 고형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이해되지만 무가가 내재하고 있는 세계관만큼은 유사하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진가장무가>는 함경도 무가와 제주도 무가에 보이는 신화적 세계관의 상동성(相同性)을 탐구하는 데 주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는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전라북도지 (향토문화연구회, 1960)
관북지방무가 추가본 (임석재ㆍ장주근, 문교부, 1966)
서사무가연구-설화ㆍ소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대석,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68)
한국무가집 3 (김태곤, 집문당, 1978)
한국민속대사전 1 (민족문화사, 1991)
차사본풀이 유형 무가의 구조와 의미 (최원오, 한국민속학 29, 한국민속학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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