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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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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이수자(李秀子)

갱신일 2010년 11월 11일

정의
군웅신(軍雄神)에 대한 근본내력을 설명하는 본풀이로서, 제주도의 무속에서 불렸던 신화. ‘군웅’은 용맹한 무장 가운데 영웅이 될 만한 존재를 일컫는 말이며, ‘본풀이’란 신의 근본을 풀거나 설명한다는 뜻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본풀이를 신화(神話)라는 말과 동궤로 사용하고 있다. 자료는 「조선무속의 연구(朝鮮巫俗の 硏究)」 제주도신가(濟州道神歌) 중 제15 군농본푸리[軍雄本解]에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군농은 ‘군웅’의 와음이다.

내용
군농하르방은 천황제석, 군농할망은 지황제석, 군농아방은 왕대조 왕장군, 군웅어멍은 희속에낭, 큰아들은 왕근, 둘째 아들은 왕빈, 막내아들은 왕사랑이다. 군농아방 왕장군은 홀아비로, 나무를 베어다 팔며 살고 있었다. 하루는 초립동이가 와서 “나는 동해용왕의 아들이라. 동해용왕과 서해용왕이 싸움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매양 싸움에 밀리니 장군을 청하러 왔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왕장군이 자기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지만 바닷물은 무서우니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고 하자 초립동이가 자기와 함께 가면 된다면서 왕장군을 업고 물 속으로 들어가니 바닷물에 길이 나서 용궁으로 들어갔다. 동해용왕은 기뻐하며 “내일 서해용왕하고 싸움을 할 텐데 그때 내가 짐짓 지는 것처럼 하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서해용왕이 물 위에서 이긴 듯할 테니 그때 화살로 쏘아 죽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접전 때 동해용왕이 말한 대로 스스로 물 속으로 들어가니 서해용왕이 물 위에서 이긴 것처럼 할 때 왕장군이 화살을 쏘아 죽였다. 동해용왕이 물에서 나와 크게 기뻐하며 “너를 무엇으로 상을 주리오”하니, 용왕의 아들 초립동이가 몰래 장군에게 “다른 것은 다 싫고 연갑을 달라”하라고 그러면서 연갑 속에 자기 누이가 있는데 그것을 얻으면 만사가 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장군이 원하는 것은 연갑이라고 말하니 용왕은 할 수 없이 그것을 주었다. 왕장군이 연갑을 인간 세상에 가지고 오니 밤이면 연갑 안에서 월궁선녀 같은 미인이 나왔다. 왕장군의 배필이 된 미인은 의복과 음식을 원하는 대로 가져 왔다. 삼 년이 지나 아들 삼형제를 낳았다. 첫째는 왕근, 둘째는 왕빈, 셋째는 왕사랑으로 각각 이름을 짓고 크게 부자로 잘 살았다. 하루는 용왕의 딸인 아내가 왕장군에게 자기는 인간이 아니어서 용궁으로 들어갈 것이니 당신들은 ‘군농’을 차지하여 잘 살라 하고 용궁으로 돌아갔다.

지역사례
제주도의 경우 「조선무속의 연구」에는 군농본푸리(군웅본해)가 있으며, 『한국의 민간신앙』에는 <군웅본풀이>가 채록되어 있다. 『제주도무속자료사전』에는 ‘5. 석살림’ 제차에서 군웅본판이 불리고 있고,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에는 ‘3. 군웅만판’에서 군웅만판ㆍ군웅노래ㆍ군웅풀이ㆍ고도채비군웅 등이 채록되어 있다. 한편 후자의 세 책에 나타나는 군웅 관련 자료를 보면 내용에 구체적인 서사구조가 나타나지 않고 여러 종류의 조상신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여러 자료에 군웅신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제주도굿에서 확실히 군웅신에 대한 제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현재는 군농본푸리 같은 것이 채록되지 않는다.
육지 무속에서도 군웅청배, 군웅굿, 군웅거리, 타살군웅 등과 같은 무속의례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구체적인 서사구조로 된 신화는 별로 발견할 수 없다. 경기도도당굿의 경우에는 무녀와 화랭이가 쌍군웅을 서는 것이 특징이다.

의의
<군웅본풀이> 가운데 중요한 내용은 바닷속으로 들어간 왕장군이 동해용왕의 부탁을 받고 동해용왕과 서해용왕 간의 싸움에서 서해용왕을 죽여 주고 그 대가로 동해용왕의 딸을 부인으로 얻어 아들 셋을 얻고 부자로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장군은 바닷속에서도 살 수 있는 존재이며, 화살로 서해용왕을 쏘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영웅이기에 군웅이 되고 있다. 여기에 실려 있는 왕장군의 공업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거타지(居陀知)설화’나 『고려사(高麗史)』에 수록된 ‘작제건(作帝建) 설화’와 같은 유형의 설화라는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거타지 설화는 『삼국유사』 권 2 진성여대왕 거타지 조에 실려 있다.
신라 제51대 여왕인 진성여왕의 막내아들 아찬 양패(良貝)가 당나라로 갈 때 활을 잘 쏘는 군사 50명을 데리고 갔는데 배가 혹도에 닿자 풍랑이 일어 열흘이나 묵게 되었다. 점을 치니 신지(神池)에 제사를 해야 한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 그러자 밤새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을 섬에 남겨놓고 가라고 하여 거타지가 남게 되었다. 노인이 다시 거타지 앞에 나타나 자기는 서해바다 물귀신으로, 어떤 사미[중]가 다라니를 외며 하늘로부터 내려와 자기 가족을 다 죽여 이제 자기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를 화살로 쏘아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거타지가 그렇게 해주니 사미는 늙은 여우로 변해 죽었다. 노인은 고맙다고 하며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아주기를 요청하면서 딸을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그의 품 속에 간직하도록 했다. 거타지가 당나라로 갔다가 신라로 귀국하여 꽃을 꺼내었더니 꽃이 여자로 변해, 거타지는 그녀와 함께 잘 살았다.
작제건 설화는 김관의(金寬毅, 생몰년 미상)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작제건은 고려 태조 왕건의 조부[懿祖]이다. 작제건의 부친인 당의 숙종이 잠저시에 동유하여 송악군에 이르러 보육의 집에 머물렀을 때 보육의 막내딸인 진의(辰義)와 동침하여 작제건을 낳았다. 작제건은 육예를 겸비했을 뿐 아니라 활의 명수이기도 했다. 작제건은 모친으로부터 부친이 남겨 놓은 궁시(弓矢)를 받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당으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문득 한 노옹이 나타나 자기는 서해용왕이라면서 매일 여래상을 가장한 노호(老狐)가 나타나 괴롭혀서 못 견디겠으니 신궁으로 이를 제치해 달라고 간청했다.
작제건이 그대로 해 주니 서해용왕은 기뻐하며 그를 용궁으로 인도하여 “그대는 앞으로 당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주는 칠보를 가지고 동토에 가서 모친에게 효도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작제건이 동토에 가서 왕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니 서해용왕은 아직 왕이 될 시기가 아니고 자손에게서 왕이 난다고 하였다. 한 노구가 작제건에게 나타나 용왕의 딸을 아내로 달라 하라고 말해 주어 작제건이 용왕의 맏딸을 아내로 하고 칠보를 얻었다. 그런데 신부가 버드나무 지팡이와 돼지가 칠보보다 나으니 그것과 바꿔 달라 하라고 일러주었다. 용왕은 칠보에 돼지만을 더 주었다. 이후 작제건은 아들 넷을 낳았다. 장자는 용건으로, 곧 세조인 왕건의 부친이다. 작제건의 부인인 용녀는 자기가 목욕하는 것을 보지 말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나 남편이 이를 어기자 용궁으로 돌아가버렸다.
<군웅본풀이>에 나오는 존재들은 왕대조 왕장군, 왕근, 왕빈, 왕사랑 등 왕씨들이다. 군농어멍 희속에낭은 고려태조 왕건의 어머니인 위숙왕후(威肅王后)와 그 이름이 비슷하다. 또 군농의 큰아들 왕근과 고려태조 왕건의 이름도 유사하다. 이런 점을 중시하면 <군웅본풀이>가 거타지 설화보다 고려 시조들의 이야기인 작제건 설화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며, 이와 같은 관련성에 대해서는 이미 선학들에 의해 연구된 바 있다. 결국 <군웅본풀이>는 작제건 설화가 무가에 수용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이 신화는 설화와 서사무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신화는 악마퇴치형 설화와 서사적 구조가 상통하고 있어 우리 문학사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서사전통을 고찰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제주도의 무가가 채록된 여러 자료에 군웅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제주도 무속에서는 군웅신에 대한 제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육지의 무속에서도 군웅청배와 군웅굿 혹은 군웅거리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무속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웅신에 대한 제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의 <군웅본풀이>가 고려 시조 왕건의 세계(世系)를 설명하는 신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군웅신에 대한 제의는 국가의 건국시조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고려ㆍ조선을 통틀어 국가의 건국주는 뛰어난 무장으로서의 영웅신, 즉 군웅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육지 쪽에서는 군웅굿 혹은 군웅거리에 화살을 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곳이 많고, 타살군웅굿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 군웅이나 군웅할아버지들을 위로하고 대접하는 굿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朝鮮巫俗の硏究 上 (赤松智城ㆍ秋葉隆, 조선총독부, 1937)
한국의 신화 (장주근, 성문각, 1961)
서사무가연구 (서대석,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68)
韓國の民間信仰 (장주근, 도쿄:금화사, 1973)
제주도무속자료사전 (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진성기, 민속원, 1991)
김금화의 무가집 (김금화, 문음사, 1995)
한국설화문학연구 (장덕순, 박이정,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