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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이해준(李海濬)

갱신일 2011년 10월 14일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의 진악산 물굴봉에서 날이 가물 때 기우제(무제)를 지내던 제당.

형태
진악산물굴봉기우제당은 금산읍 내에서 서쪽으로 3㎞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인삼의 발상지로 알려진 진악산은 해발 737m로 금산에서 최고봉을 이루며, 상봉이 속칭 물굴봉[水窟峰]이다. 제당 형태는 당집이나 신위를 모시지 않은 자연 제당으로, 이곳에는 커다란 바위굴[石穴] 속에 못이 있어 명주꾸리 한타래가 다 들어갈 정도라고 구전된다. 물굴은상탕과 하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탕은 기우제를 행하는 곳이고, 하탕은 제관들의 목욕 및 제수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또한 물굴 위에는 ‘호롱혈’ 또는 ‘등잔혈’로 불리는 천하 명당이 있어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암장한 시신을 파내며 비를 기원하는 풍속이 전승되었다.

역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3 금산군 산천조에 “진악산 동쪽 봉우리에 석혈(石穴)이있는데 너덧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전하는 말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 한다. 하늘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넣으면 응함이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한국지명총람』(충남편)에는 물굴에 대하여 “진악산에 석굴이 있는데 10m 들어가면 넓게 파진 곳에 물이 괴어 있고, 그 밑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이곳이 영험하다 하여 한재(旱災)가 있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굴 위의 지형이 호롱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시체는 용이 되어 승천하고 그 집안이 잘된다고 하여 가끔 몰래 묘를 쓰는 사람이 있다. 이곳에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해서 가뭄이 계속되는 때에는 이 부근의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모여 그 묘를 기어이 찾아서 파내고 만다”라고 소개되었다. 이상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진악산 물굴봉은 이미 조선 전기 이래 500여 년의 역사를 계승한 기우 제당임을 알 수 있고, 이 기우제 전통은 199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
물굴봉기우제에서 주목되는 점은 호랑이의 머리를 석굴 속으로 침수시키는 이른바‘침호두(沈虎頭)’의례가 내려왔다는 점이다. 본래 침호두는 흠향을 위해 준비되는 단순한 제물이 아니라 용호상박의 긴박한 적대관계를 촉발시키기 위한 자극물이었다. 이러한 침호두 기우법은 조선시대 국행 기우제의 하나로 정착된 것이다. 1474년(성종 5) 6월 예조에서 기우제 방법에 대하여 아홉 개의 항목을 정하고 실행하도록 하였다. 그 셋째 항목에는“한강의 양진에는 침호두를 행하고 또 도류(道流)로 하여금 용왕경을 읽게 하며, 박연(朴淵)에도 침호두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도 이와 동일한 기록이 보인다. 이와 비슷한 조선 전기에 침호두는 지방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 진악산물굴봉기우제가 바로 이러한 사례로 추측된다.
그러나 기우제에 쓸 호랑이를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전에 쓴 썩고 묵은 호두를 사용하다 비난을 받는 사례도 보인다. 또 1660년(현종 1)에는 제일이 임박했음에도 호랑이를 잡지 못하여 돼지머리를 대용하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로 호두를 구하는 것이 곤란하였다. 20세기에 전승된 물굴봉 기우제에는 줄곧 돼지머리를 넣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돼지머리로 바뀐 것은 호랑이의 머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아울러 호랑이 대신 돼지머리를 넣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도 애초와는 달리 물을 주관하는 용의 흠향(歆饗)을 위한 공양물 성격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내용
물굴봉기우제는 조선시대 군·현 단위에서 수령이 주관한 읍치 기우제의 전통이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 기우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극심한 한발이 지속되면 금산읍에 속한 대부분의 마을과 진악산을 끼고 있는 성곡리 주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성대한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하여 읍내에서 기우제를 지낸다는 소문이 돌면 마을마다 삽과 괭이를들고 풍장을 울리면서 진악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를 위해 하루 전날 집집마다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병에 물을 가득 담아 청솔가지를 끼워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제관은 부정하지 않은 정결한 사람을 선정하였으며, 비용은 집집마다 쌀과 돈을 갹출하여 충당하였다. 제물은 돼지머리, 떡, 삼색실과, 술 등이다. 제단에 제물이 진설되면 크게징을 쳐서 알린다. 이를 신호로 제관이“진악산 산신령님 강림하소서”하고 아뢰면 참제자 일동은 재배한다. 이어서 유교식 절차에 따라 술을 올리고 축문 낭독 및 소지를 올린다. 간단한 음복이 끝나면 제관은 희생으로 바친 돼지머리에 돌을 매달아 물굴 안으로 던진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돼지머리가 없어진다고 한다. 굴 안에 사는 용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무제를 마치면 물굴 위에 있는 호롱혈을 파서 암장한 시신을 찾아낸다. 예부터 이곳에는 자손의 발복을 위해 몰래 묘를 쓰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누군가 호롱혈에 시신을 매장하면 그 집안은 번창하지만 인근 마을에는 극심한 한발이 닥친다는 속설이 전한다. 어느 해인가는 호롱혈을 파 보니 여러 개의 송장이 겹겹이 나왔다고 한다. 그것은 시신이 발각되지 않도록 평장(平葬)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속설을 믿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투장(偸葬)하려는 사람과 이를 파내는 작업이 반복되다 보니 호롱혈 주변에는 풀이 잘 자라지 않고 흙도 붉다고 한다.

참고문헌
新增東國輿地勝覽. ?齋叢話 (국행기우제와 민간기우제의 비교연구, 최종성, 종교학연구 서울대학교 종교학연구회, 199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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