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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당동당산 당집
경남 거창군 가조면 당동 | 9950년 20월 | 박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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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박종섭(朴鍾燮)

갱신일 2011년 10월 14일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당동마을에 위치한 신당.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당산제가 열린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이곳이 가야에 속해 있을 때 마을 서쪽 50m 지점에 솟대를 세워 신성한 곳으로 정하고 매년 음력 정월과 오월, 시월에 천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솟대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 1㎞ 이내는 모두 당산의 땅으로 신성시되었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현재 신당의 주변이 모두 잔디로 입혀져 있었으나 현재는 약 1,650㎡를 제외한 나머지 땅이 모두 개인 소유의 논밭으로 되어 있다.
삼국시대 때 이 소도지역에 당집을 흙과 돌로 짓고 대를 얹어 지붕을 하여 당신(堂神)을 해마다 모셨다고 한다. 1858년에 월포(月圃) 오조영(吳祖英)이 쓴 당집 안에 걸려 있는 중수기에 따르면 이 지방이 가소현으로 있을 때 당집은 국가에서 제를 주관하는 사직당(社稷堂)이었으며, 가소현이 혁폐된 뒤에는 후토사(后土社)로 정하여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매년 정월 초하룻날에 마을의 원로들이 모여 좋은 날을 택하여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중수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쪽으로 삼십리쯤 당동의 서북에 탕산(湯山) 신묘가 있다. 대개 가소현 때에는 사직당이었다. 본현이 혁폐된 후 본동의 상하촌이 수호로써 인연하여 당으로 인하여 마을 이름이 되었고, 매년 정월 초하루에 좋은 날을 정하여 치성을 드렸다.
삼가 생각건대 천지 간에 사람이 가장 귀하고 신은 가장 신령스러워 신이 있고 천령이 있는데 사람이 어찌 정성을 다함이 없겠는가. 이미 향화(香火)를 받듦이 있었는데 어찌 묘당을 만들지 않겠는가. 혹 지금 개건(改建)하는 공이 있어서 돌로 기둥을 만들어 완성하니 진실로 무궁하다. 혹시 허물어지는 환난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기와로 풀을 대신하였으니 광채가 배로 증가되었다. 토목공사가 끝나고 새로 화편(華扁)을 걸어 해의 장려함이 아니라 하더라도 역시 정밀하다. 곧 위로 장령(將嶺, 장군봉)의 방박(磅薄, 가득 차서 막힌 모양. 즉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는 뜻)함이 있고, 아래로는 유산(儒山, 박유산)을 누르는 인순함이 있다. 서쪽으로 구잠(龜岑, 금귀봉)을 당기고 동으로는 문수에 임한다. 이에 신사를 맺어 후토라고 이름을 걸고, 가조 일백여 리를 눌러 돌아 당동 십실과 다른 마을을 옹호하여 비바람은 순조롭고 신은 영이 있어서 천백년에 불린다.(후략)”
함풍 8년(1858) 무오 2월 12일 월포 오조영 근헌

내용
당동마을은 마을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장군봉 아래에 있다. 이 마을은 원래 마을 서북쪽의 300m 되는 지점에 마을이 위치해 있었다. 그러다가 해마다 마을에 화마(火魔)가 들이닥쳐 현재 마을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200m 되는 여시운이라는 논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여장군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여우들이 마을에 해를 끼쳐 할 수 없이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이 당집에 모시는 신은 우두산 신령이다. 전설에 따르면 우두산 신령은 일본에 건너가 천황가를 열어 일본을 개국하고, 다시 이곳으로 나와 우두산에 좌정하였다고 한다.
원래 동서남북, 즉 장군봉·금귀봉·박유산·문수산 쪽의 신에게 간략한 제를 지낸 다음 중앙의 당집에서 크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제관은 마을에서 부정이 타지 않은 가장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출입을 삼가고, 밤이 되면 조용한 계곡으로 올라가 찬물에 목욕을 하여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원래 제관은 한 사람이었으나 현재는 제관을 보조하는 사람을 더 선정한다.
당산제를 지낼 날짜가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도 정성을 들인다. 이들은 마을 어귀와 집 앞을 비롯해 마을의 위아래에 있는 공동우물에 금구줄(금줄)을 치고 황토를 좌우로 벌여 놓는다.
금구줄은 왼쪽으로 꼰 새끼 사이사이에 흰 한지나 천을 꽂아 놓는다. 이는 가장 신령하고 깨끗한 것을 의미하며, 공중으로부터 오는 모든 부정되고 잡된 것의 범접을 막기 위한 것이다.
공동우물 옆에는 수백 년 된 향나무가 있다. 이 향나무는 향이 잡귀를 쫓는다는 믿음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와 아울러 향나무의 향이 물과 어우러져 물맛을 좋게 한다고 한다.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샘물을 깨끗이 하고 아주까리기름과 같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여 불을 붙여 샘 안을 밝힌다.
제관에게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임신한 여인과 상주 등을 보지 않아야 하며, 다투는 사람이나 부정한 동물도 보면 안 되고, 잡된 소리를 들어서도 안 된다. 즉 일체의 부정한 사물이나 일은 봐서도 들어서도 안 된다.
제기는 원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것을 새로 구입하여 사용했으며, 제물을 구입할 때에도 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제물로는 메, 건어물, 돼지를 올린다. 옛날에는 당집에서 메를 지어 제에 올렸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쌀로 대치하고, 돼지도 머리만 사용하고 있다.
제를 지내기 전에 살아 있는 장닭의 목을 잘라 당집 둘레에 그 피를 뿌리고, 닭머리는 당집 앞에 묻는다. 닭은 잡귀가 가장 무서워하고 꺼리는 것이기 때문에 닭의 피로 당집 주위를 깨끗이 하기 위한 행위를 하며, 닭머리를 당집 앞에 묻음으로써 잡귀의 범접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제물로 쓸 닭은 일 년 전부터 마을에서 깨끗한 사람의 집에서 길러 이것을 제물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단출한 제물이 요즘은 딸기, 사과, 배 등과 같은 과일류가 더 첨가되어 제물상이 풍부하게 차려지고 있다.
음력 초아흐렛날 밤 11시쯤이 되면 제관은 제를 모시기 위해 당집으로 올라가 제물을 차려 놓고, 자정이 조금 지나면 제를 지낸다. 제관이 제를 지내는 동안 마을 사람들 역시 정결한 마음으로 정성을 들인다.
당제를 올릴 때 잔은 단잔이다. 첫잔에 술을 부어 잔을 씻고 이 빈 잔을 놓고 제관을 비롯해 모두 절을 한다. 그런 다음 제석자리를 펴고 주제주가 앉으면 한 사람은 주전자, 한 사람은 잔을 각각 들고 술을 따른 뒤 잔을 주제주에게 건넨다. 주제주는 받은 술잔을 신주 앞에 놓고 두 걸음 물러나서 절을 두 번 한다.
이때 축을 읽는다. 축을 읽은 축관은 제관의 왼쪽에 위치한다. 이어서 술잔을 들어 조금씩 세 번에 걸쳐 쏟아내고 다시 처음과 같이 잔을 놓고 일제히 절을 한다. 그런 다음 숟가락을 왼쪽으로 돌려 낙저(落箸)한 뒤 다시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리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날이 밝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하고 지신밟기를 한다.
당집 안에는 신주가 놓여 있다. 신주에 쓰여 있는 글자는 1500여 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대체로 후토지신(后土之神) 또는 후토대왕(后土大王)이라는 글자였을 것이라고 한다.
이 당집 앞으로는 부정 탄 모든 것은 지나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상여는 물론 가마도 지나지 못하였다. 상여가 이곳에 근접하면 상토꾼들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얼마 전 한 사람이 마을의 소를 둑질하여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밤이 새도록 당집 주변을 맴돌다가 날이 밝자 소를 놓아 두고 다른 길로 도망갔다고 한다.

특징
당동마을의 당산제에서 특기할 것은 첫째 옛날 당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당집의 역사가 1500여 년이나 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마을 당산제의 역사 또한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닭으로 희생의식을 치른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거창군의 마을신앙 (박종섭, 거창문화원, 2003)

관련 멀티미디어

사진(4)
거창당동당산 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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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당동당산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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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당동당산 당산제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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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당동당산 당집 내부
거창당동당산 당집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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