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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안인진해령사 [江陵安仁津海靈祠] 이전으로목록보기다음으로글씨 크게 보기글씨 작게 보기인쇄하기(새창으로 열림)
강릉안인진해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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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장정룡(張正龍)

갱신일 2011년 10월 19일

정의
정의 강원도 강릉시 안인진(安仁津) 포구마을에서 어민들이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당.

어원
해령사(海靈祠)는 ‘바다신령의 사당’이라는 뜻이며 여랑사(女娘祠), 해랑당(海娘堂), 액신사(厄神祠) 등으로도 불린다.

역사
해령사 제의는 1500~1600년부터 행해졌다고 전해진다. 동해안 어촌마을의 풍요기원과 재액방지의 여신제의로서 남근 봉헌과 함께 전승되었으나 현재는 주민들이 제사만 지낸다. 제의와 목조남근 봉헌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도 조사되었다. 이후 1944년 최상수, 1962년 최선만, 1970~1980년대 김선풍•임석재•김경남•장정룡 등의 조사에서도 이곳 제의가 확인되고 아울러 다양한 화소의 설화가 채록되었다. 1933년에 간행된 강릉향토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를 보면 해상(海商) 중심으로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이며 이곳에서 빌었다는 언급으로 보면 해로상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형태의 당제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안인진 현장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어떤 미녀가 그네에서 실족하여 바다에 떨어져 숨졌다. 미녀의 영혼이 마을 사람의 꿈에 나타나서 소원하자 작은 사당을 짓고 나무로 남자의 성기를 만들어 걸어 놓았다고 하였다. 또한 이 음사(陰祠)가 창건됨으로 이후에 재앙이 없어지고, 어획량이 크게 증대하여 지금까지 성기를 걸어 놓고 복을 기원한다고 하였다.
이후 1944년 현지조사 자료와 1960년대 자료가 있다. 또 1967년 9월 21일자 「중앙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이곳에 파견된 군부대의 잦은 사고 원인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아’발생하였다는 주장과 ‘미신’이라는 지휘관들의 설전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마을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였다. 당시 현지주민 이태근(1940년생)에 따르면 해마다 정월대보름과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해랑사에서 나무로 신(腎)을 실물 크기로 깎아서 황토를 바른 다음 천장에 매달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장 김 모의 부인이 실성이 되어 설악산 김대부신과 해랑이 결혼했다고 말하여 마을에서 김대부신과 해랑의 결혼식을 치렀더니 부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별도로 남근 봉헌을 하지 않고 향나무 남근만 해랑지신과 김대부지신의 화상 옆에 세워 놓았다. 안인진해령사 제의는 목각남근을 바치는 성징(性徵)봉헌형으로 일정 기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전승집단의 의식과 설화를 담보하고 있는 대상이라 할 수있다.

형태
1500년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해령봉(海靈峰)’이라고 기록된 이곳에는 ‘해랑사’와 봉수대가 있었다. 안인진 포구를 내려다보는 야트막한 봉우리 정상에 세워진 해령사는 사방 1m 안팎의 기와 한 칸 한옥으로, 주변은 낮게 돌담을 돌려 쌓았다. 1930년대 이곳 해랑신과 김대부신을 합배한 이후 ‘해랑지신위(海娘之神位)’와 ‘김대부지신위(金大夫之神位)’라고 쓴 위패를 세워 놓았다. 무속인 단체에서 머리를 땋고 녹의홍상을 한 해랑신과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김대부신의 모습을 그린 화상을 걸어 놓았으며, 남근 봉헌은 현재 행하지 않는다. 안인진 마을제당은 봉화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두 칸의 성황당과 봉화산 정상에 대관령을 향해 있는 한 칸의 해령사 두 곳이다. 봉화산 중턱의 성황당은 토지신, 성황신, 여역신 등 세 신위를 모시고 정월대보름과 중양절에 제를 지내고 있다. 해령사는 음력 2월 초에 해랑신과 김대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해령사 제의는 음력 정월대보름과 중양절 두 차례 진행되었으나 현재는 봄철에만 도가에서 택일하여 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단오 때 이곳에서 굿을 하기도 하였다. 사방 1m 정도의 좁은 제당 내부 사정상 제단 위에 주과포, 메 등을 비교적 간단하게 차린다. 제사를 주관하는 어촌계장 및 이장 등 제관들은 철저히 금기를 지킨다. 이곳은 동해안의 군사보호 구역인 관계로 군부대의 허가를 얻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제의 진행은 먼저 제물을 정성껏 차린 다음 가지고 온 술을 올리고 두 번 절 한다. 제물은 그해 처음 잡은 어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잘 말렸다가 쪄서 사용하고 메와 떡, 탕과 나물을 놓는다. 제관이 과거에는 도포를 입었으나 지금은 일상복을 깨끗하게 입는다. 축문은 별도로 없으며, 입으로만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고 나서 각 가정의 대주 이름을 부르며 소지를 올린다. 소지가 잘 타서 올라가면 풍어가 든다고 믿는다. 수십 년 전에는 이곳 해령사 제의가 유명하여 인근 정동, 강문, 사천, 연곡리 등 10개 지역 어민들도 참석하여 돼지머리를 놓고 풍어굿을 했다고 한다.

내용
강릉안인진해령사 제의에는 구술상관물이 전승된다. 강원도 동해안 여신의 성적 결합 동기에는 신혼형(神婚型)과 성징봉헌형(性徵奉獻型)이 있다. 제의 형태로는 여성황신 숭배, 남녀 성황신위 합배(合配), 목각남근 봉헌(奉獻), 수소 공희(供犧) 등이 있다. 해령사 제의는 이러한 특징을 내포하고 있는 제의로 중요한 민간신앙 대상이다. 안인진의 남근 봉헌 설화는 해령사에서 행해진 제의와 연계된다. 해랑신이 풍어와 안녕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설정된 사실은 구전과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곳 해랑신으로 좌정하고 있는 기생 해랑 관련 설화는 왜구나 해적에 겁탈당한 사실을 용으로 미화해 구전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해랑신과 함께 봉안된 남자 신격인 김대부신을 조선시대 실존인물인 강릉 김씨 만호공(晩湖公) 김자락(金自洛)으로 상정하기도 한다.
해랑당 관련 설화가 전하는 곳은 정상의 해령사이다. 전승 설화의 중심적 화소는 첫 번째, 처녀(관기)가 미혼으로 죽자 그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제를 지냈다. 두 번째, 처녀가 현몽을 하거나 주민들이 풍어와 안녕을 위해 남근을 깎아 걸었다. 세 번째, 한 부인에게 신이 내려 김대부와 결혼시켜 달라 하여 두 신을 봉안하였다. 네 번째, 해랑신과 김대부신을 봉안한 이후로 남근 봉헌이 중지되어 행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이상의 중심 화소 가운데 치제(致祭)와 남근 봉헌의 경우 관장(官長)의 명에 의한 것과 현몽에 의한 것으로 나뉜다. 전자는 강릉부사에 의해 제사가 시작된 경우로, 1600년쯤 강릉부사가 이곳에 관기와 함께 놀러 왔다가 그네를 뛰던 관기가 바다에 떨어져 죽자 부사가 주민들에게 명하여 봄과 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기 사망-강릉부사 하명-마을 치제’의 방식으로 관에서 의뢰하여 제를 지낸 것이다. 구전에 따르면 “내가 데리구(관기를) 놀러 왔다가 죽으니 애석하니 돌무덤이라도 해놓고 춘추로 제사를 좀 지내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릉부사는 이 모씨로도 나타나며, “어느 때 누구인지 자세치 않음”이라 하였다.
후자는 억울하게 죽은 여성이 현몽하여 주민들이 제사를 시작한 경우이다. 처녀(미녀)가 그네에서 실족하여 떨어져 죽었거나 사모하던 청년이 돌아오지 않자 병들어 죽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즉 ‘여성 사망-현몽-치제’의 경우로 전자와 달리 현몽이라는 신비한 과정을 거쳐서 여자의 영혼이 마을 사람 꿈에 나타나 소원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근 봉헌과 관련된 화소는 해랑이 현몽하여 남근을 바치라고 한 자료와 주민 스스로 남근을 바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주민들 스스로 남근 봉헌을 행한 자발형이 이 설화의 선행형으로 보인다.
강릉부사 이 모씨와 관기의 관련 설화는 후자에 발생한 것으로, 이른바 관장 명령의 민간 치제 형식을 갖추는 설화적 형상화로 파악된다. 이것은 삼척시 원덕읍 신남마을의 경우와 유사한 바닷가 처녀 이야기나 우연히 해랑당에 소변을 보았는데 풍어가 되어 계속 남근을 깎아서 바쳤다는 유감주술형 자료에서도 유추된다. 신격 주인공인 해랑신은 미녀 또는 과년한 여성이고, 이후 전승되는 자료에서 강릉부 관기가 그네를 뛰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 석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라 하였다. 그러다가 여신 혼자이므로 남근을 바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풍어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 남근숭배(phallicism) 형태가 존속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강릉안인진해령사에 봉안된 여신은 주민들에 의해 마을해신제의 대상이 되었다. 특이한 점은 1930년경 이장 부인이 김대부신과 혼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해랑과 김대부신의 신혼(神婚) 이후에 정신이 혼미하던 마을 여성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영험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별도로 해랑신에게 남근을 바쳤다가 벌을 받아 죽었다는 신벌 화소가 첨가되면서 남녀 혼배 이후 남근 봉헌은 중지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미혼 여성이 사후에 혼배를 통해 결혼하고 안인진 해랑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혼배 과정도 동네의 한 부인에게 해랑신이 강림하여 “설악산 김대부신을 모셨으니 위패를 세우라”고 함으로써 영혼결혼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결국 이곳의 해랑신은 생생력(生生力)을 통해 풍요를 가져오는 여신이자 주민들의 경건한 제례를 통해 신화적인 인물로 환치되었고, 상징적인 신격으로 마을 제당에 안치되었다.
이에 따라 안인진해령사의 여신 관련 설화는 원사(寃死), 현몽(現夢), 영험(靈驗), 혼배(魂配), 신벌(神罰) 등 다양한 행위소가 발견된다. 전승구전 자료에는 영험 화소가 가장 많다. 이 밖에 원사 화소, 혼배 화소, 신벌 화소, 현몽 화소가 들어 있다. 이 설화의 중요한 핵심은 억울한 죽음으로 원혼이 된 신격이 풍어를 가져다 주는 능력을 발휘하는 영험성을 강조하고 있고, 나아가 혼배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였다. 결과적으로 ‘원혼’이 ‘해원’되는 설화 원형이 안인진해령사 여신설화의 중핵 화소이며, 부수적으로 영험함과 신벌 화소가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표피적 주제는 치제를 통한 풍어 추구이지만 이면적 주제는 재액 방지를 통한 마을의 안녕 유지라고 할 수 있다.

특징
안인진해령사 전승설화의 내용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면 억울한 여성의 영혼을 풀어주어 안녕을 기구하는 해원형, 여성 신격을 향한 남근 봉헌으로 풍요관을 추구하는 봉헌형, 여성신과 남성신의 결합을 통해 화해를 초래하는 결합형, 신격의 신통력과 영험함에 따라 제의성을 유지하는 영험형, 여성신격의 신성성을 유지하기 위해 형벌을 내리는 신벌형의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와 같이 동해안 어촌 마을 제의 가운데 강릉시 안인진해령사와 해령산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되는 곳이다.
해령산은 ‘바다신령’이 깃든 산이라는 의미로 지금부터 1500년대 사료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다양한 여성신화가 전하고 있다. 해령산 아래 바닷가 암석에는 명선문(溟仙門)이라고 쓴 것이 있다. 이곳은 동해바다 용궁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한다. 또한 인근 정동진도 용궁의 동쪽 입구라고 전해진다. 등명낙가사 구전설화에도 쌀을 뜬 물이 동해용궁으로 흘러가서 임금의 안질이 생겼으며, 이로 인해 폐찰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해령산에서 정동진 일대는 용궁설화가 전승되고 있으며, 강릉 김씨 파보에 기록된 김자락도 꿈에 동해용왕의 초청을 받고 이곳에서 강릉부사와 뱃놀이를 하다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해령사의 남근 봉헌은 1930년대 기록에서 확인되며, 오래전부터 이곳 어부들이 뱃길을 떠날 때 정성껏 빌면 풍어와 안전을 보장받는 제장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신성제의로 파악된다. 안인진해령사 전승설화의 중심 화소는 ‘치제-남근 봉헌-남녀 신격 결혼-남근 봉헌 중지’로 나타나며, 치제와 남근 봉헌의 경우에 있어서 관장의 하명에 의한 것과 현몽에 의한 것으로 나뉜다.
현재까지 구전되는 안인진해령사 설화의 핵심은 미혼 여성이 억울하게 죽은 뒤에 제사를 지내다가 신격의 혼배를 통해 안인진 신격이 되고 풍어를 가져다 주는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혼배 과정도 동네의 한 부인에게 해랑신이 강림하여 설악산 김대부신과 영혼결혼식을 치러 주민주도형 마을 제의라는 구체적인 전승 실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배 이후 신벌 화소가 등장하면서 사실상의 남근 봉헌은 소멸되었다. 이러한 점은 현재까지 전승되는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와 고성군 죽왕면 문암1리의 해신당 전승설화에 나타난‘원사-해원’ 등 단선적 구조에 따른 남근 치제와는 다른 복합적 형태로 전승된 사례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지역 마을설화에 나타난 것과 같이 남근 봉헌은 중단되었다 하더라도 해랑신은 혼배 이후에도 여전히 풍요와 안녕을 가져오는 바다신격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주민들의 제례의식을 통해 신화적인 인물로 좌정하고 있다. 해령사 제의는 동해안 어촌신앙의 여성신격 중심체로 전승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사례
동해안 어촌의 여성신격 제의와 남근 봉헌 복합형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현재도 고성군 문암 백도마을과 삼척시 원덕읍 신남마을에서는 어촌 제의로 행하고 있다. 남근 봉헌은 하지 않고 여신제만 지내는 지역은 고성에서부터 강릉, 삼척에 이르는 동해안 어촌 여러 곳으로, 풍어제와 함께 지내고 있다.

의의
강릉안인진해령사는 과거 바다 상인들이 뱃길로 장사를 떠날 때 풍어와 안전을 빌면 이것을 보장받는 효험을 지닌 제장이라 할 수 있다. 어민들도 매년 바닷일을 시작하거나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정성껏 제물을 차려 이곳에서 빌었다. 또한 처음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제물로 사용하고, 제관의 목욕재계와 금기가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안인진해령사 어촌신앙은 전승이 오래되었으며, 특히 여신에 제사지내는 해랑제와 목조남근 봉헌이 함께 이뤄진 형태라는 점에서 동해안 어촌 제의의 한 특징을 지닌다.

참고문헌
南冥先生別集, 昭和 十六年 刑公 第 310號 (事件番號 昭和16年刑第936號, 遊太白山記, 遊黃池記, 立齋遺稿, 崔先生文集道源記書, 姜時元)
강릉의 역사변천과 문화 (최선만, 강릉관광협회, 1962)
강원도 서낭신앙의 유형적 연구 (장정룡, 한국민속학회, 1989)
강릉의 서낭당 (김경남, 강릉문화원, 1999)
강원도민속연구 (장정룡, 국학자료원, 2002)
강릉의 설화 (장정룡·이한길, 동녘출판기획,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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