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유희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4

정의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정선의 아라리.

내용

<정선아리랑>이라는 노래명은 통속민요 <아리랑>의 종목 중 하나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고, 향토민요로서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선 지역의 <아라리>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통속민요로서의 <정선아리랑>은 일명 <강원도 엮음아리랑>으로서 향토민요인 <엮음아라리>가 원천이다. 전문소리꾼들이 <엮음아라리>를 가져다 그들의 음악적 미감과 전문성에 알맞도록 다듬어낸 노래이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이라는 개념의 문헌 기록은 <아라리>를 대상으로 한 것이 먼저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선아리랑>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김지연이 『조선(朝鮮)』 1930년 6월호에 쓴 「조선민요 아리랑」이다. 이 글에서 김지연은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함께 <정선아리랑>의 가사도 소개하였다. 그 뒤 차상찬이 『별건곤』에 ‘정선 구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사 5수를 소개한 바 있고, 『동아일보』에도 ‘일천간장다녹이는 정선어러리’라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이것들은 모두 향토민요 <아리랑>을 두고 붙인 것으로 ‘정선에서 부르는 아리랑’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가 된 <정선아리랑>의 원래 명칭은 <아라리>이다. <아라리>는 정선뿐 아니라 강원도 거의 전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또한 경기, 충북, 충남, 경북, 전북 등에도 강원도의 인접지와 그 연장지에 해당하는 곳에 <아라리>가 분포한다. 요컨대 이 노래는 태백산맥을 축으로 뻗어나간 지맥들의 지세가 미치는 영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라리>가 기본적으로 강원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동부 지역 산간 지대의 문화 환경을 배경으로 전개된 노래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선에서 <아라리>는 산골에서 밭 매고, 나무하고, 나물 뜯으며 지내는 가운데 때로는 일판에서, 그리고 때로는 노래판에서 혼자 또는 여럿이 어울려 불러온 노래로 존재했다.

<아라리>는 여러 분포지 중에서도 산간 지대일수록 문화적 존재 비중이 높았다. 정선은 그러한 곳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 주민 거의 모두가 <아라리>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었다. <아라리>가 지역 사회의 기반 문화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정선에서는 1960대부터 <아라리>를 대상으로 한 사업과 활동이 시작되었다. 정선군은 1968년에 『정선아리랑가사집』을 냈고, 1970년에 <정선아리랑>이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민요 부문의 최우수상으로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타면서 전승을 위한 조치들이 구체화되었다. 이듬해인 1971년에 정선의 <아라리>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고 세 명의 기능보유자도 지정되었다. 이와 함께 ‘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1976년에는 ‘정선아리랑제’가 시작되면서 <정선아리랑> 전승에 대한 구심축이 마련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 안팎으로 <정선아리랑>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저변을 넓히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37회째 계속된 정선아리랑제를 통해 전수자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었고, 또 외지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참여하여 <정선아리랑>의 시연을 감상해왔다. 그리고 정선아리랑전수회를 통해 전수 교육이 지속되고, <정선아리랑> 창극, 정선 오일장 장터 공연, <정선아리랑> 인형극 등 <정선아리랑>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되어 관람물도 한결 다채로워졌다. <정선아리랑>의 전수, 대중화, 현재화의 작업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계의 관심도 높아져 1982년부터 10년에 걸친 학술 조사를 통해 8700여 수의 <정선아리랑>이 담긴 가사집 『정선의 아라리』, 또 현지 주민들이 부른 <정선아라리> 6500여 수를 수록한 CD 열 장 분량의 『한국아리랑의 원형 정선아리랑』(강원도민일보, 2008) 등 방대한 자료집이 나오고, <정선아리랑> 또는 <아라리> 연구 또한 민요 생태론·연행론·가사론·음악론·문화 소비론·전승 및 활용론 등 다각도의 논의가 축적되어 있다. 민요의 개별 노래에 대한 자료 축적과 연구 성과로는 가장 다양하고 방대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특징 및 의의

정선의 <아라리>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정선아리랑>이 되고, 또 창극이 되고 인형극이 되는 등 진화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의 문화적 진화는 종래 <아리랑> 전반의 양상과 다른 면을 지닌다. 그간 <아리랑>의 진화가 각 문화 주체들이 문화주의에 따라 전개한 것이라면, <정선아리랑>의 문화적 진화는 지역 사회가 주체가 되어 지역주의에 의해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간에 <아라리>를 비롯한 향토민요 <아리랑>의 전승지에는 해당 <아리랑>에 지역명을 붙이고 관련 활동을 하는 곳이 거듭 생겨나고 있다. 지역주의에 의한 <아리랑>의 문화적 전개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선아리랑>은 지역주의 <아리랑> 문화를 형성하면서 <아리랑>의 문화적 진화에 새로운 국면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아리랑의 존재양상과 국면의 이해(강등학, 민속원, 2011), 정선아라리의 연구(강등학, 집문당, 1988), <정선아라리>의 민요생태와 문화적 의미(강등학, 한국민요학23, 한국민요학회, 2008), <정선아리랑>의 존재양상과 연구시각(강등학, 정선군, 2007), 정선의 아라리(김시업,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3).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유희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4

정의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정선의 아라리.

내용

이라는 노래명은 통속민요 의 종목 중 하나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고, 향토민요로서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선 지역의 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통속민요로서의 은 일명 으로서 향토민요인 가 원천이다. 전문소리꾼들이 를 가져다 그들의 음악적 미감과 전문성에 알맞도록 다듬어낸 노래이다. 그러나 이라는 개념의 문헌 기록은 를 대상으로 한 것이 먼저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김지연이 『조선(朝鮮)』 1930년 6월호에 쓴 「조선민요 아리랑」이다. 이 글에서 김지연은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함께 의 가사도 소개하였다. 그 뒤 차상찬이 『별건곤』에 ‘정선 구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사 5수를 소개한 바 있고, 『동아일보』에도 ‘일천간장다녹이는 정선어러리’라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이것들은 모두 향토민요 을 두고 붙인 것으로 ‘정선에서 부르는 아리랑’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가 된 의 원래 명칭은 이다. 는 정선뿐 아니라 강원도 거의 전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또한 경기, 충북, 충남, 경북, 전북 등에도 강원도의 인접지와 그 연장지에 해당하는 곳에 가 분포한다. 요컨대 이 노래는 태백산맥을 축으로 뻗어나간 지맥들의 지세가 미치는 영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 기본적으로 강원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동부 지역 산간 지대의 문화 환경을 배경으로 전개된 노래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선에서 는 산골에서 밭 매고, 나무하고, 나물 뜯으며 지내는 가운데 때로는 일판에서, 그리고 때로는 노래판에서 혼자 또는 여럿이 어울려 불러온 노래로 존재했다. 는 여러 분포지 중에서도 산간 지대일수록 문화적 존재 비중이 높았다. 정선은 그러한 곳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 주민 거의 모두가 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었다. 가 지역 사회의 기반 문화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정선에서는 1960대부터 를 대상으로 한 사업과 활동이 시작되었다. 정선군은 1968년에 『정선아리랑가사집』을 냈고, 1970년에 이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민요 부문의 최우수상으로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타면서 전승을 위한 조치들이 구체화되었다. 이듬해인 1971년에 정선의 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고 세 명의 기능보유자도 지정되었다. 이와 함께 ‘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1976년에는 ‘정선아리랑제’가 시작되면서 전승에 대한 구심축이 마련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 안팎으로 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저변을 넓히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37회째 계속된 정선아리랑제를 통해 전수자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었고, 또 외지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참여하여 의 시연을 감상해왔다. 그리고 정선아리랑전수회를 통해 전수 교육이 지속되고, 창극, 정선 오일장 장터 공연, 인형극 등 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되어 관람물도 한결 다채로워졌다. 의 전수, 대중화, 현재화의 작업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계의 관심도 높아져 1982년부터 10년에 걸친 학술 조사를 통해 8700여 수의 이 담긴 가사집 『정선의 아라리』, 또 현지 주민들이 부른 6500여 수를 수록한 CD 열 장 분량의 『한국아리랑의 원형 정선아리랑』(강원도민일보, 2008) 등 방대한 자료집이 나오고, 또는 연구 또한 민요 생태론·연행론·가사론·음악론·문화 소비론·전승 및 활용론 등 다각도의 논의가 축적되어 있다. 민요의 개별 노래에 대한 자료 축적과 연구 성과로는 가장 다양하고 방대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특징 및 의의

정선의 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이 되고, 또 창극이 되고 인형극이 되는 등 진화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의 문화적 진화는 종래 전반의 양상과 다른 면을 지닌다. 그간 의 진화가 각 문화 주체들이 문화주의에 따라 전개한 것이라면, 의 문화적 진화는 지역 사회가 주체가 되어 지역주의에 의해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간에 를 비롯한 향토민요 의 전승지에는 해당 에 지역명을 붙이고 관련 활동을 하는 곳이 거듭 생겨나고 있다. 지역주의에 의한 의 문화적 전개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은 지역주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의 문화적 진화에 새로운 국면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아리랑의 존재양상과 국면의 이해(강등학, 민속원, 2011), 정선아라리의 연구(강등학, 집문당, 1988), 의 민요생태와 문화적 의미(강등학, 한국민요학23, 한국민요학회, 2008), 의 존재양상과 연구시각(강등학, 정선군, 2007), 정선의 아라리(김시업,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