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

한자명

民謠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용어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전통 사회의 피지배 계급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불러온 하층 가요.

개관

민요는 민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민중은 근대 이전 사회의 피지배 계급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요는 본디 노래 담당층의 계급성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국가, 상층, 하층이 각자의 형편에 맞는 노래 문화의 영역을 마련해왔다. 그러기에 민요는 궁중 가요 및 상층 가요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하층 가요에 해당한다. 따라서 민요에 대한 문제의식의 본질은 민중이라는 계급성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시각에서 전문 소리꾼들의 노래인 통속민요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로 창작된 신민요는 양식에 기반을 둔 개념일 뿐 문화적으로는 하층 가요로서의 민요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호 혼동을 피하기 위해 통속민요, 신민요 등과 구별해서 민요를 말할 때 향토민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민요는 노래이며 구전물이다. 노래로 된 구전물은 민요 외에도 무가·판소리·잡가 등이 있으며, 가곡과 시조까지 이에 포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가는 무당에 의해 불리며, 판소리·잡가·가곡·시조 등은 광대 또는 가객에 의해 주로 불린다. 무당은 무의(巫儀)를 행하는 특수한 직업인이며, 광대와 가객은 전문적인 예능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노래는 전문적인 수련을 거쳐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 이에 반해 민요는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 보통이며, 수련을 거친다 해도 전문성은 약하다. 따라서 민요는 전문성이 없는 일반적인 민중의 노래라는 점에서 노래로 된 다른 구전물과 구별된다.

민요는 민중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온 노래다. 민요는 일을 하면서, 의식을 치르면서, 그리고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데, 일과 의식과 놀이는 모두 민중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민요는 창자들의 삶과 분리되지 않으며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이는 민요가 생활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존속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요는 민중들의 생활에 필요한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민요는 민중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부르는 노래다. 그러므로 민요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즐기고 만족하기 위해서 부른다. 무가와 판소리 같은 노래는 직업적인 창자가 있고, 이들은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노래한다. 그러므로 무당이나 광대의 구연은 남에게 봉사하는 일이 주된 것일 뿐이고 스스로 즐기는 일은 부차적이다. 그러나 민요는 듣는 이 없이 혼자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있는 경우에도 메기고 받는 과정을 통해 노래의 구연에 모두 참여할 수 있다. 혹은 여럿이 있으면서 한 사람씩 노래한다고 해도 창자와 청자의 관계가 미리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라도 노래하면 창자가 되고 나머지는 청자가 된다. 그러므로 민요의 구연은 스스로 즐기거나 함께 즐기는 것일 뿐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자족적인 동기에 의해 구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는 민족적으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계급적으로 그 고유성이 강하게 유지되는 노래이다. 기본적으로 구전 문학은 모두 민중의 문학이다. 그러나 민요는 민속극과 함께 민중만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구전 문학의 다른 장르와 구분된다. 설화는 전승과 구연에 지배층도 참여한다. 그리고 판소리는 광대에 의해 구연되지만 지배층도 청중에 포함된다. 또, 무가를 부르는 무당의 신분은 낮지만 무의(巫儀)의 소비가 꼭 민중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민요와 민속극의 전승과 연행에는 민중만이 참여한다. 그러기에 민요와 민속극에는 민중의 세계가 더욱 충실하게 담겨 있다. 그런데 민속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행해지며, 민요는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연행된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민요에는 이러한 부담이 적다. 누구나 스스로의 생각을 자신의 의도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민중의 생각을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는 민중만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는 생활의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존속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삶의 환경과 내용에 따라 민요의 종류는 달라진다. 이를테면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양태를 만들면서 부르는 노래 등은 그 고유의 생업과 함께 주로 제주도에서 전한다. 그리고 논이 거의 없는 강원도의 산간 지역에는 모심기나 논매기에 관한 노래가 잘 전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민요는 가락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면을 보인다. 이를테면 전라도에서 전해지는 민요는 육자배기조로 되어 있는 것이 많고, 강원도 지역의 민요는 대부분 메나리조로 되어 있다. 이처럼 민요가 지역에 따라 다른 면을 보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민중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요는 민중의 문학 중에서도 민족적 고유성을 다른 장르보다 더 잘 간직하고 있다. 민담은 민족 간에 유형이나 화소의 유동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무가는 외래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이에 반해 민요는 다른 민족의 영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받아들인다 해도 그 속도가 느리다. 민요는 민중의 기층적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그러한 삶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 속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민요는 구전물의 하나로서 비전문적인 민중이 삶의 필요에 따라 불러온 노래이다. 그러기에 민요는 기능적이고 자족적인 성격을 보이며, 또한 계급적·지역적·민족적인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무형 문화 중에서도 기층성이 가장 강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민요에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의 세 개 범주가 존재한다. 이 중 노동요는 민중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며,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는 민요이다. 의식요는 민중이 주도하여 치르는 의식에서 부르는 민요이다. 의식요는 민중이 부르는 것이므로, 그 의식 또한 비전문적인 것이어서 승려나 무당이 주도하는 의례에서 부르는 노래와 다르다. 유희요는 놀이로서, 또는 놀이의 진행을 돕기 위해 부르는 민요이다. 놀이는 어른도 하고, 아이도 하는 것이므로 유희요에는 동요도 포함된다. 민요는 민중이 생활의 필요에 따라 부르며, 민중의 생활은 일과 놀이와 의례가 대강을 이룬다. 민요가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의 세 개 범주로 존재하는 것도 민요가 민중의 생활을 따라 생성되고 존속되어왔기 때문이다.

노래는 구석기 시대에 사냥이 잘되기를 바라는 주술적 심리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보이지만, 민요는 청동기를 배경으로 정복의 역사가 전개되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계급 문화가 형성되면서 자리 잡았다. 이때 땅 다지기, 목도하기, 노 젓기, 그물 당기기, 방아 찧기 등과 관련된 여러 노동요가 시차를 두고 출현하면서 점차 민요의 종류도 늘어나고,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논매는 소리>도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조 때 인물 강희맹(姜熙孟)도 『금양잡록(衿陽雜錄)』에서 신라의 <논매는 소리>는 끝에 반드시 “다농다리호지리다리(多農多利乎地利多利)”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민요는 거의 오늘날과 흡사한 상황으로 진화를 이룬다. 사록(司錄) 벼슬을 한 위제만(魏齊萬)이 진주기생 월정에게 빠져 지내자 부인이 근심하다 죽은 뒤 진주읍 사람들이 남편을 풍자해 불렀다는 <월정화(月精花)>와 <진주난봉가>의 내용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서사민요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려 말에는 <모심는 소리>의 존재도 확인된다. 14세기 인물인 박효수(朴孝修)는 그의 시에서 “들바람은 때로 삽앙가(揷秧歌)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청산별곡>·<서경별곡>·<쌍화점>·<만전춘> 등 고려가요에 연장체 노래가 많은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 채택할 정도로 이미 같은 양식의 민요가 다양하게 진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초기부터 중농 정책을 펴서 왕과 사대부들이 농요를 직접 듣기도 하는 등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강희맹은 농서 『금양잡록』에 <농구 14장(農謳十四章)>을 짓고 당시 <논매는 소리>에 ‘만조(慢調)’와 ‘촉조(促調)’가 있다며 해당 후렴을 각각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의 <논매는 소리>가 오늘과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전기에는 장례의식요도 확인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인조의 왕릉을 조성할 때 승군(僧軍)들이 묘를 다지며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서 상황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는 전기에 비해 사회 문화적 변동이 컸다. 농사에 있어서는 수리 시설의 미비로 그동안 억제했던 이앙법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모심는 소리>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이로써 기존 <논매는 소리>에 <모심는 소리>가 보완되어 논농사요가 한층 완성도 있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영조 때 인물인 이사질(李思質)이 <모심는 소리>로 부른 <상사소리>를 <어난난곡(於難難曲)>이라는 한시로 남겨 놓았다.

그런가 하면 민요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부각되거나 변화를 꾀한 문화에 자원으로 기능하였다. 판소리탈춤에 많은 민요가 수용되어 있고, 도시의 대중문화로 소통된 잡가와 민요 취향이 대두된 조선 후기의 한시들도 민요로부터 필요한 요소를 끌어다 활용했다. 영조 때 인물인 최성대(崔成大)가 <별 헤는 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다음의 <고잡곡(古雜曲)>도 그러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한시의 민요 수용과 함께 동요의 존재도 확인하게 해준다.

初月上中閨 규중에 초승달 뜨자
女兒連袂出 계집아이들 어울려 나와
擧頭數天星 하늘 보고 별을 세는데
星七儂亦七 별 일곱 나 일곱

민요는 청동기시대 신분 분화와 함께 자리한 뒤 오랜 역사를 통해 필요한 노래를 생산하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농요의 경우 고려 말에 <모심는 소리>가 존재하여 일차적으로 현재와 같은 모양을 취한 뒤 조선 후기 이앙법의 허용과 함께 전국에 확산되면서 더욱 완성도 있게 보완되었다. 또 여러 정황 자료를 통해 수산노동요, 토건노동요, 제분정미요, 장례의식요, 서사민요, 동요 등 여타 부류의 민요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민요는 스스로의 진화와 함께 주변 문화 장르를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고려가요에 민요 양식이 수용된 것도 그렇지만,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띤 잡가·판소리·탈춤·한시에 상당히 기여했다. 따라서 민요는 민중의 생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우리 문화의 창작 원천으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민요는 주제가 개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부부, 시부모, 자녀, 동서, 며느리 등을 대상으로 한 가정 문제는 다른 노래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이것은 민요의 주제가 우리 생활 전반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민요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르는 일이 흔하고, 이미 있었던 가사도 필요에 따라 고쳐 부르는 일이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그러기에 민요의 언술에는 주체성이 살아 있다. 그런가 하면 민요는 합리적인 현실에는 순응하지만 불합리한 모순에는 강한 문제의식을 보이며 부정적 정서를 드러낸다. 예를 들면, 논매기 현장에서 “오뉴월에 흘린 땀이 구시월에 열매된다”라고 노래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식 건사하니 농사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도 노래한다. 긍정적 정서로 힘든 노동을 견디는 것이다. 이와 달리 시집가서 받는 부당한 대우에는 가출을 하거나 집안 식구를 모아놓고 항의한다.

주제가 개방되어 있다는 건 민요가 우리가 부딪치고 겪는 세상사를 모두 노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언술이 주체적이라는 건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생각과 정서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현실의 불합리를 줄여가며 삶의 진보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민요는 생활의 노래이자 자신의 노래이며, 동시에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시조와 잡가 등 우리 옛 노래들도 주제의 다양성, 언술의 주체성, 불합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민요만큼의 폭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민요가 문화적으로 매우 건강한 노래임을 확인하게 한다.

참고문헌

구비문학개설(장덕순 외, 일조각, 1971),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민요학의 논리와 시각(강등학, 민속원, 2006).

민요

민요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용어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전통 사회의 피지배 계급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불러온 하층 가요.

개관

민요는 민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민중은 근대 이전 사회의 피지배 계급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요는 본디 노래 담당층의 계급성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국가, 상층, 하층이 각자의 형편에 맞는 노래 문화의 영역을 마련해왔다. 그러기에 민요는 궁중 가요 및 상층 가요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하층 가요에 해당한다. 따라서 민요에 대한 문제의식의 본질은 민중이라는 계급성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시각에서 전문 소리꾼들의 노래인 통속민요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로 창작된 신민요는 양식에 기반을 둔 개념일 뿐 문화적으로는 하층 가요로서의 민요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호 혼동을 피하기 위해 통속민요, 신민요 등과 구별해서 민요를 말할 때 향토민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민요는 노래이며 구전물이다. 노래로 된 구전물은 민요 외에도 무가·판소리·잡가 등이 있으며, 가곡과 시조까지 이에 포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가는 무당에 의해 불리며, 판소리·잡가·가곡·시조 등은 광대 또는 가객에 의해 주로 불린다. 무당은 무의(巫儀)를 행하는 특수한 직업인이며, 광대와 가객은 전문적인 예능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노래는 전문적인 수련을 거쳐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 이에 반해 민요는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 보통이며, 수련을 거친다 해도 전문성은 약하다. 따라서 민요는 전문성이 없는 일반적인 민중의 노래라는 점에서 노래로 된 다른 구전물과 구별된다. 민요는 민중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온 노래다. 민요는 일을 하면서, 의식을 치르면서, 그리고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데, 일과 의식과 놀이는 모두 민중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민요는 창자들의 삶과 분리되지 않으며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이는 민요가 생활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존속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요는 민중들의 생활에 필요한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민요는 민중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부르는 노래다. 그러므로 민요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즐기고 만족하기 위해서 부른다. 무가와 판소리 같은 노래는 직업적인 창자가 있고, 이들은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노래한다. 그러므로 무당이나 광대의 구연은 남에게 봉사하는 일이 주된 것일 뿐이고 스스로 즐기는 일은 부차적이다. 그러나 민요는 듣는 이 없이 혼자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있는 경우에도 메기고 받는 과정을 통해 노래의 구연에 모두 참여할 수 있다. 혹은 여럿이 있으면서 한 사람씩 노래한다고 해도 창자와 청자의 관계가 미리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라도 노래하면 창자가 되고 나머지는 청자가 된다. 그러므로 민요의 구연은 스스로 즐기거나 함께 즐기는 것일 뿐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자족적인 동기에 의해 구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는 민족적으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계급적으로 그 고유성이 강하게 유지되는 노래이다. 기본적으로 구전 문학은 모두 민중의 문학이다. 그러나 민요는 민속극과 함께 민중만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구전 문학의 다른 장르와 구분된다. 설화는 전승과 구연에 지배층도 참여한다. 그리고 판소리는 광대에 의해 구연되지만 지배층도 청중에 포함된다. 또, 무가를 부르는 무당의 신분은 낮지만 무의(巫儀)의 소비가 꼭 민중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민요와 민속극의 전승과 연행에는 민중만이 참여한다. 그러기에 민요와 민속극에는 민중의 세계가 더욱 충실하게 담겨 있다. 그런데 민속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행해지며, 민요는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연행된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민요에는 이러한 부담이 적다. 누구나 스스로의 생각을 자신의 의도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민중의 생각을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는 민중만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는 생활의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존속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삶의 환경과 내용에 따라 민요의 종류는 달라진다. 이를테면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양태를 만들면서 부르는 노래 등은 그 고유의 생업과 함께 주로 제주도에서 전한다. 그리고 논이 거의 없는 강원도의 산간 지역에는 모심기나 논매기에 관한 노래가 잘 전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민요는 가락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면을 보인다. 이를테면 전라도에서 전해지는 민요는 육자배기조로 되어 있는 것이 많고, 강원도 지역의 민요는 대부분 메나리조로 되어 있다. 이처럼 민요가 지역에 따라 다른 면을 보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민중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요는 민중의 문학 중에서도 민족적 고유성을 다른 장르보다 더 잘 간직하고 있다. 민담은 민족 간에 유형이나 화소의 유동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무가는 외래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이에 반해 민요는 다른 민족의 영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받아들인다 해도 그 속도가 느리다. 민요는 민중의 기층적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그러한 삶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 속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민요는 구전물의 하나로서 비전문적인 민중이 삶의 필요에 따라 불러온 노래이다. 그러기에 민요는 기능적이고 자족적인 성격을 보이며, 또한 계급적·지역적·민족적인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무형 문화 중에서도 기층성이 가장 강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민요에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의 세 개 범주가 존재한다. 이 중 노동요는 민중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며,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는 민요이다. 의식요는 민중이 주도하여 치르는 의식에서 부르는 민요이다. 의식요는 민중이 부르는 것이므로, 그 의식 또한 비전문적인 것이어서 승려나 무당이 주도하는 의례에서 부르는 노래와 다르다. 유희요는 놀이로서, 또는 놀이의 진행을 돕기 위해 부르는 민요이다. 놀이는 어른도 하고, 아이도 하는 것이므로 유희요에는 동요도 포함된다. 민요는 민중이 생활의 필요에 따라 부르며, 민중의 생활은 일과 놀이와 의례가 대강을 이룬다. 민요가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의 세 개 범주로 존재하는 것도 민요가 민중의 생활을 따라 생성되고 존속되어왔기 때문이다. 노래는 구석기 시대에 사냥이 잘되기를 바라는 주술적 심리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보이지만, 민요는 청동기를 배경으로 정복의 역사가 전개되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계급 문화가 형성되면서 자리 잡았다. 이때 땅 다지기, 목도하기, 노 젓기, 그물 당기기, 방아 찧기 등과 관련된 여러 노동요가 시차를 두고 출현하면서 점차 민요의 종류도 늘어나고,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도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조 때 인물 강희맹(姜熙孟)도 『금양잡록(衿陽雜錄)』에서 신라의 는 끝에 반드시 “다농다리호지리다리(多農多利乎地利多利)”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민요는 거의 오늘날과 흡사한 상황으로 진화를 이룬다. 사록(司錄) 벼슬을 한 위제만(魏齊萬)이 진주기생 월정에게 빠져 지내자 부인이 근심하다 죽은 뒤 진주읍 사람들이 남편을 풍자해 불렀다는 와 의 내용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서사민요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려 말에는 의 존재도 확인된다. 14세기 인물인 박효수(朴孝修)는 그의 시에서 “들바람은 때로 삽앙가(揷秧歌)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 등 고려가요에 연장체 노래가 많은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 채택할 정도로 이미 같은 양식의 민요가 다양하게 진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초기부터 중농 정책을 펴서 왕과 사대부들이 농요를 직접 듣기도 하는 등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강희맹은 농서 『금양잡록』에 을 짓고 당시 에 ‘만조(慢調)’와 ‘촉조(促調)’가 있다며 해당 후렴을 각각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의 가 오늘과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전기에는 장례의식요도 확인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인조의 왕릉을 조성할 때 승군(僧軍)들이 묘를 다지며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서 상황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는 전기에 비해 사회 문화적 변동이 컸다. 농사에 있어서는 수리 시설의 미비로 그동안 억제했던 이앙법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이로써 기존 에 가 보완되어 논농사요가 한층 완성도 있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영조 때 인물인 이사질(李思質)이 로 부른 를 이라는 한시로 남겨 놓았다. 그런가 하면 민요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부각되거나 변화를 꾀한 문화에 자원으로 기능하였다. 판소리와 탈춤에 많은 민요가 수용되어 있고, 도시의 대중문화로 소통된 잡가와 민요 취향이 대두된 조선 후기의 한시들도 민요로부터 필요한 요소를 끌어다 활용했다. 영조 때 인물인 최성대(崔成大)가 를 바탕으로 만든 다음의 도 그러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한시의 민요 수용과 함께 동요의 존재도 확인하게 해준다. 初月上中閨 규중에 초승달 뜨자女兒連袂出 계집아이들 어울려 나와擧頭數天星 하늘 보고 별을 세는데星七儂亦七 별 일곱 나 일곱 민요는 청동기시대 신분 분화와 함께 자리한 뒤 오랜 역사를 통해 필요한 노래를 생산하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농요의 경우 고려 말에 가 존재하여 일차적으로 현재와 같은 모양을 취한 뒤 조선 후기 이앙법의 허용과 함께 전국에 확산되면서 더욱 완성도 있게 보완되었다. 또 여러 정황 자료를 통해 수산노동요, 토건노동요, 제분정미요, 장례의식요, 서사민요, 동요 등 여타 부류의 민요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민요는 스스로의 진화와 함께 주변 문화 장르를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고려가요에 민요 양식이 수용된 것도 그렇지만,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띤 잡가·판소리·탈춤·한시에 상당히 기여했다. 따라서 민요는 민중의 생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우리 문화의 창작 원천으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민요는 주제가 개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부부, 시부모, 자녀, 동서, 며느리 등을 대상으로 한 가정 문제는 다른 노래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이것은 민요의 주제가 우리 생활 전반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민요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르는 일이 흔하고, 이미 있었던 가사도 필요에 따라 고쳐 부르는 일이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그러기에 민요의 언술에는 주체성이 살아 있다. 그런가 하면 민요는 합리적인 현실에는 순응하지만 불합리한 모순에는 강한 문제의식을 보이며 부정적 정서를 드러낸다. 예를 들면, 논매기 현장에서 “오뉴월에 흘린 땀이 구시월에 열매된다”라고 노래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식 건사하니 농사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도 노래한다. 긍정적 정서로 힘든 노동을 견디는 것이다. 이와 달리 시집가서 받는 부당한 대우에는 가출을 하거나 집안 식구를 모아놓고 항의한다. 주제가 개방되어 있다는 건 민요가 우리가 부딪치고 겪는 세상사를 모두 노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언술이 주체적이라는 건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생각과 정서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현실의 불합리를 줄여가며 삶의 진보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민요는 생활의 노래이자 자신의 노래이며, 동시에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시조와 잡가 등 우리 옛 노래들도 주제의 다양성, 언술의 주체성, 불합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민요만큼의 폭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민요가 문화적으로 매우 건강한 노래임을 확인하게 한다.

참고문헌

구비문학개설(장덕순 외, 일조각, 1971),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민요학의 논리와 시각(강등학, 민속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