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는 소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못자리에서 뽑아온 모를 논에 심으며 부르는 소리.

내용

모를 따로 내어 옮겨 심는 이앙법의 역사는 늦어도 고려 말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다. 고려 말에 모심기에 대해 언급한 글과 시가 여럿 남아 있고, 14세기 인물인 박효수(朴孝修)의 시에 “들바람은 때로 삽앙가(揷秧歌)를 보낸다.”라는 구절이 있어서 <모심는 소리>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앙법을 법으로 금지했다. 비가 오지 않아 때를 놓치면 모내기가 불가능하여 수확을 전혀 할 수 없지만, 직파법은 비가 오지 않아도 일부는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앙법 금지 조치가 완화되었고, 이에 따라 <모심는 소리>도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되었다.

<모심는 소리>는 마을별로 보통 1종씩 존재하며, 더러 2종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논매는 소리>는 마을별로 최소 2~3종이 존재하며, 많게는 7~8종 이상 존재하는 곳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전국적으로 <모심는 소리>의 종류는 20여 종이 조금 넘을 뿐이지만, <논매는 소리>는 200종 이상이 확인되어 수적 차이가 확연하다. 논매기는 철마다 보통 3회 정도 하지만, 모심기는 1회로 그치는 작업상의 특징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이와 함께 <모심는 소리>의 종류가 <논매는 소리>보다 현저히 적은 더 직접적인 이유는 조선 후기의 이앙법 확산과 관련이 있다.

이앙법에 의한 농사는 직파법에 의한 농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확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앙법은 금지 조치가 풀리자마자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모심는 소리>의 수요 또한 갑자기 크게 생겨났다. 이에 따라 <모심는 소리>는 <논매는 소리>처럼 오랜 역사를 두고 곳곳에서 스스로의 일노래를 생성할 수 있는 겨를을 갖지 못한 채, 주변에서 먼저 불리기 시작한 <모심는 소리>를 유행처럼 받아들여 사용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모심는 소리>는 종류가 다양화되지 못했고, 그 대신 노래별 분포가 넓게 형성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마을의 <모심는 소리>가 2종인 경우 그 구성은 느리고 빠른 노래 체계를 이룬다. 그리고 <모심는 소리>의 느리고 빠른 노래 체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구성된다. 같은 노래에 속도를 달리하여 느리고 빠른 대응 관계를 만드는 것이 그 하나이며, 본래의 노래보다 빠른 노래를 가져와 역시 느리고 빠른 대응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를테면, <상사소리> 끝에 <자진상사소리>를 부르는 것(전남 고흥군 남양면 청담리)이 전자에 해당하며, <정자소리> 끝에 <조루자소리>를 부르는 것(경남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이 후자에 해당한다.

<모심는 소리>는 후렴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후렴이 있는 <모심는 소리>는 <상사소리>·<하나소리>·<둥기소리>·<아라리>·<자진아라리>·<아라송>·<아부레이수나소리> 등 여럿임에 반해, 후렴이 없는 <모심는 소리>는 <정자소리>·<미나리>·<열소리> 등에 불과하다. 다만 <아라리>와 <자진아라리>는 지역에 따라 후렴 없이 부르기도 하는데 <아라리>는 강원도에서, <자진아라리>는 강원도의 영서 지역에서 흔히 나타난다.

<모심는 소리>의 가창방식은 선후창·교환창·윤창 등이 대부분이며, 드물게는 복창도 나타난다. 이 중 <모심는 소리>의 가창방식으로 대표적인 것은 선후창이다. 선후창은 후렴이 있는 민요를 부르는 방식인데, <모심는 소리>는 후렴이 있는 노래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가 하면 선후창을 제외한 나머지는 후렴이 없는 <모심는 소리>를 부르는 방식인데, 노래에 따라 다른 면을 보인다. <정자소리>는 두 패가 가사를 반씩 나누어 부르는 교환창의 방식으로 부르며, 드물게는 선창을 그대로 따라하며 복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나리>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돌아가며 이어 부르는 윤창의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데, <아라리>와 <자진아라리>를 후렴 없이 부르는 곳에서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노래한다.

지역사례

<모심는 소리>로서 광역 분포를 이루고 있는 노래는 <하나소리>, <아라리>, <상사소리>, <정자소리>이다. 이것들은 경쟁력이 강한 노래로서, 각자의 중심 분포지에서 여타 노래들과의 경쟁을 통해 대표적 존재로 부상한 뒤 같은 과정을 겪은 다른 노래들과 더 큰 국면의 경쟁으로 나아간 존재들이다. 각 지역 <모심는 소리>의 판도와 국면은 광역 분포 노래들의 이와 같은 동향과 맞물려 형성되어 있다.

경기도의 <모심는 소리>는 동부와 남부 접경 지역에 <아라리>·<자진아라리>·<미나리>·<상사소리>·<방아소리> 등 외부 노래도 자리하고 있지만, <하나소리>·<열소리> 등 내부 노래가 큰 비중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2종의 경기도 내부 노래는 파주·김포·강화 등에 토대를 둔 <하나소리>와, 고양·파주·포천 등에 토대를 둔 <열소리>가 각각 동부와 남부로 나아가며 경쟁하는 양상을 빚어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나소리>는 안성·이천·여주 등 경기도 서남부로의 <열소리> 진출을 억제하고, 자신은 안성에 강한 거점을 구축한 뒤 충남 천안과 충북 진천 등의 외부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곳에 이른 뒤 <하나소리>의 동진(東進)과 남진(南進)은 서남쪽에서 올라온 <상사소리>와 동북쪽에서 내려온 <아라리>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대립 국면을 형성했다.

강원도의 <모심는 소리>는 <아라리>·<자진아라리>·<미나리> 등 내부 노래가 거의 전역에 걸쳐 지배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외부 노래는 <하나소리>가 철원에 진출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강원도 <모심는 소리>의 경쟁과 대립은 내부 노래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춘천·인제·홍천 서부 등 강원도 북서부에서 강세를 보인 <미나리>가 영동·평창·홍천 동부 등 강원도 동남부에서 강세를 보인 <아라리> 및 <자진아라리>와 대립하고, 또 이 두 노래는 자신의 강세 지역에서 서로 경쟁하는 양상을 빚어낸 것이다.

그런데 <미나리>의 남진과 <아라리> 및 <자진아라리>의 동진은 횡성 일대에 이르러 어느 하나가 절대적 우위를 보이지 못한 채 충돌하며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혼전을 치르는 동안 <미나리>의 에너지는 소진되어 더는 남진하지 못하고, 원주에는 <아라리>가 절대적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자진아라리>가 더러 공존하는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강원도 <모심는 소리>의 대표성을 획득한 <아라리>는 경기도 여주·충북 제천·음성·괴산·경북 문경 등에까지 나아가 <하나소리> 및 <정자소리>와 부딪쳐 대립하는 국면을 연출했다.

충남과 호남의 <모심는 소리>는 <상사소리>가 지배적 존재로 자리하고 있는바, 특히 전남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굳히고 있다. 딸림노래를 제외한 기본 노래로서 전남의 <모심는 소리>는 <상사소리>가 유일하다. 전남에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상사소리>는 북쪽으로 진출하여 전북과 충남에서도 강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북과 충남에서는 곳곳에서 강한 힘을 지닌 주변 <모심는 소리>들과 충돌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북과 충남의 <모심는 소리>는 전남의 경우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전북의 <모심는 소리>는 <상사소리>와 <정자소리>가 과점하고 있다. <상사소리>는 전북의 군산·익산·김제·부안·고창 등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순창·정읍·임실 등에 퍼져 있고, <정자소리>는 무주·진안·장수 등 산간 지대에 토대를 구축하고 <상사소리>와 대립 국면을 형성하면서 그 경계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다소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면이 남원에서는 더욱 두드러져서 북쪽에는 <정자소리>가, 남쪽에는 <상사소리>가 강세를 보이며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상사소리>는 전북의 동부 산간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채 서부 평야 지대를 거쳐 북진하고 말았다.

충남의 <모심는 소리>는 역시 <상사소리>가 지배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방아소리>·<하나소리>·<아라리>·<정자소리> 등이 일부 공간을 점하고 있다. <방아소리>는 충남 당진을 거점으로 서산·예산·경기 화성 등 인접하고 일부 지역에 존재하며 <상사소리>의 북진을 막아내고 스스로 소권역을 이루었다. 그리고 <하나소리>는 천안에, <아라리>는 공주와 대전에, <정자소리>는 금산과 대전에 진출하여 각각 <상사소리>와 대립하는 국면을 보였다. 결국 충남의 <모심는 소리>는 <상사소리>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주변 광역분포 노래가 충돌하며 거시적 국면을 연출하고, 동시에 스스로의 소권역도 형성하는 독자성을 보여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영남의 <모심는 소리>는 내부 노래 <정자소리>가 거의 독점하는 가운데, 역시 내부 노래로 보이는 <이여송소리>와 <아부레이수나소리> 등 2종이 경북 예천과 영주, 봉화의 일부 지역에 소권역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외부 노래는 경북 문경과 봉화 일부에 <아라리>가, 경남 남해·거제·통영에 <상사소리>가 진출해 있으나 분포 비중은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영남의 <모심는 소리>는 내부 노래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그중에서도 <정자소리>가 거의 독보적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남에 강한 토대를 구축한 <정자소리>는 북진(北進)과 서진(西進)을 통해 점유 공간을 확장해나갔다. 다만, 예천·봉화·영주 등 경북 북부는 독자적 경향을 강하게 보임에 따라 <정자소리>의 외부 진출은 상주를 경로로 하여 보은·옥천·영동 등 충북 남부에 강한 토대를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북으로 청원·괴산·단양에까지 나아가고, 서쪽으로는 충북 금산·대전·전북 무주·진안·장수·남원 등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충북 청주와 충남 및 전북에서는 <상사소리>의 저항을 받고, 또 충북 괴산과 단양에서는 <아라리>의 저항을 받으며 각각 해당 지역에서 대치 국면을 조성하게 되었다.

<모심는 소리>의 광역 분포 노래 4종이 모두 한곳에 모여 대치 국면을 빚은 곳은 진천, 괴산, 청원 등 충북 북부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하나소리>는 진천에, <아라리>는 괴산에, <상사소리>는 청원에, <정자소리>는 청원 남부에 각각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상대를 견제하는 국면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모심는 소리>의 거시적 국면은 <하나소리>·<아라리>·<상사소리>·<정자소리>가 각각 경기·강원·호남·영남 등에 토대를 두고 영역 확장을 꾀해 광역 분포를 이루며 남북과 동서로 대립하는 파동이 전개되었고, 그러한 파동의 역학이 결국은 충북의 진천·괴산·청원 등으로 방향을 잡아 이곳에서 모두 모이는 국면을 연출하게 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모심기는 논매기와 함께 논농사의 핵심적인 작업이다. 그러므로 <모심는 소리>와 <논매는 소리>는 논농사 지역이라면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이에 따라 <모심는 소리>는 <논매는 소리>와 더불어 농요 중 가장 넓은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모심는 소리>는 <논매는 소리>와 달리 배타적 속성을 보이며 다른 노래를 수용하는 일 없이 한 지역에 하나씩만 존재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그 결과 <모심는 소리>는 <하나소리>, <아라리>, <상사소리>, <정자소리> 등 경쟁력이 뛰어난 노래들이 광역 분포를 이루며 일정한 지역 구도를 지닌 채 대립하는 거대한 판도를 형성하였다.

문화 전반이 그러하듯이 민요의 공간 확장과 방어의 파동은 문화 지형 위에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모심는 소리>가 만들어낸 거대 판도는 기층의 문화 지형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모심는 소리>가 보여준 거시적이며 대립적인 판도와 지역 구도는 여타 부류의 민요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심는 소리>의 전국적 판도는 민요의 소통·분포의 기본 구도와 문화 지형의 기본 구도를 아울러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경기향토민요(강등학 외, 경기도 문화의 전당, 2007), <모심는 소리>와 <논매는 소리>의 전국적 판도 및 농요의 권역에 관한 연구(강등학, 한국민속학38, 한국민속학회, 2003), <정자소리>의 분포와 장르양상에 관한 연구(강등학, 한국민요학29, 한국민요학회, 2010),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구연민요-연구(한국구연민요연구회, 집문당, 1997).

음원

모심는 소리

모심는 소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9-01-03

정의

못자리에서 뽑아온 모를 논에 심으며 부르는 소리.

내용

모를 따로 내어 옮겨 심는 이앙법의 역사는 늦어도 고려 말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다. 고려 말에 모심기에 대해 언급한 글과 시가 여럿 남아 있고, 14세기 인물인 박효수(朴孝修)의 시에 “들바람은 때로 삽앙가(揷秧歌)를 보낸다.”라는 구절이 있어서 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앙법을 법으로 금지했다. 비가 오지 않아 때를 놓치면 모내기가 불가능하여 수확을 전혀 할 수 없지만, 직파법은 비가 오지 않아도 일부는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앙법 금지 조치가 완화되었고, 이에 따라 도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되었다. 는 마을별로 보통 1종씩 존재하며, 더러 2종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는 마을별로 최소 2~3종이 존재하며, 많게는 7~8종 이상 존재하는 곳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전국적으로 의 종류는 20여 종이 조금 넘을 뿐이지만, 는 200종 이상이 확인되어 수적 차이가 확연하다. 논매기는 철마다 보통 3회 정도 하지만, 모심기는 1회로 그치는 작업상의 특징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이와 함께 의 종류가 보다 현저히 적은 더 직접적인 이유는 조선 후기의 이앙법 확산과 관련이 있다. 이앙법에 의한 농사는 직파법에 의한 농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확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앙법은 금지 조치가 풀리자마자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의 수요 또한 갑자기 크게 생겨났다. 이에 따라 는 처럼 오랜 역사를 두고 곳곳에서 스스로의 일노래를 생성할 수 있는 겨를을 갖지 못한 채, 주변에서 먼저 불리기 시작한 를 유행처럼 받아들여 사용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는 종류가 다양화되지 못했고, 그 대신 노래별 분포가 넓게 형성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마을의 가 2종인 경우 그 구성은 느리고 빠른 노래 체계를 이룬다. 그리고 의 느리고 빠른 노래 체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구성된다. 같은 노래에 속도를 달리하여 느리고 빠른 대응 관계를 만드는 것이 그 하나이며, 본래의 노래보다 빠른 노래를 가져와 역시 느리고 빠른 대응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를테면, 끝에 를 부르는 것(전남 고흥군 남양면 청담리)이 전자에 해당하며, 끝에 를 부르는 것(경남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이 후자에 해당한다. 는 후렴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후렴이 있는 는 ······ 등 여럿임에 반해, 후렴이 없는 는 ·· 등에 불과하다. 다만 와 는 지역에 따라 후렴 없이 부르기도 하는데 는 강원도에서, 는 강원도의 영서 지역에서 흔히 나타난다. 의 가창방식은 선후창·교환창·윤창 등이 대부분이며, 드물게는 복창도 나타난다. 이 중 의 가창방식으로 대표적인 것은 선후창이다. 선후창은 후렴이 있는 민요를 부르는 방식인데, 는 후렴이 있는 노래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가 하면 선후창을 제외한 나머지는 후렴이 없는 를 부르는 방식인데, 노래에 따라 다른 면을 보인다. 는 두 패가 가사를 반씩 나누어 부르는 교환창의 방식으로 부르며, 드물게는 선창을 그대로 따라하며 복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돌아가며 이어 부르는 윤창의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데, 와 를 후렴 없이 부르는 곳에서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노래한다.

지역사례

로서 광역 분포를 이루고 있는 노래는 , , , 이다. 이것들은 경쟁력이 강한 노래로서, 각자의 중심 분포지에서 여타 노래들과의 경쟁을 통해 대표적 존재로 부상한 뒤 같은 과정을 겪은 다른 노래들과 더 큰 국면의 경쟁으로 나아간 존재들이다. 각 지역 의 판도와 국면은 광역 분포 노래들의 이와 같은 동향과 맞물려 형성되어 있다. 경기도의 는 동부와 남부 접경 지역에 ···· 등 외부 노래도 자리하고 있지만, · 등 내부 노래가 큰 비중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2종의 경기도 내부 노래는 파주·김포·강화 등에 토대를 둔 와, 고양·파주·포천 등에 토대를 둔 가 각각 동부와 남부로 나아가며 경쟁하는 양상을 빚어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는 안성·이천·여주 등 경기도 서남부로의 진출을 억제하고, 자신은 안성에 강한 거점을 구축한 뒤 충남 천안과 충북 진천 등의 외부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곳에 이른 뒤 의 동진(東進)과 남진(南進)은 서남쪽에서 올라온 와 동북쪽에서 내려온 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대립 국면을 형성했다. 강원도의 는 ·· 등 내부 노래가 거의 전역에 걸쳐 지배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외부 노래는 가 철원에 진출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강원도 의 경쟁과 대립은 내부 노래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춘천·인제·홍천 서부 등 강원도 북서부에서 강세를 보인 가 영동·평창·홍천 동부 등 강원도 동남부에서 강세를 보인 및 와 대립하고, 또 이 두 노래는 자신의 강세 지역에서 서로 경쟁하는 양상을 빚어낸 것이다. 그런데 의 남진과 및 의 동진은 횡성 일대에 이르러 어느 하나가 절대적 우위를 보이지 못한 채 충돌하며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혼전을 치르는 동안 의 에너지는 소진되어 더는 남진하지 못하고, 원주에는 가 절대적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가 더러 공존하는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강원도 의 대표성을 획득한 는 경기도 여주·충북 제천·음성·괴산·경북 문경 등에까지 나아가 및 와 부딪쳐 대립하는 국면을 연출했다. 충남과 호남의 는 가 지배적 존재로 자리하고 있는바, 특히 전남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굳히고 있다. 딸림노래를 제외한 기본 노래로서 전남의 는 가 유일하다. 전남에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는 북쪽으로 진출하여 전북과 충남에서도 강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북과 충남에서는 곳곳에서 강한 힘을 지닌 주변 들과 충돌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북과 충남의 는 전남의 경우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전북의 는 와 가 과점하고 있다. 는 전북의 군산·익산·김제·부안·고창 등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순창·정읍·임실 등에 퍼져 있고, 는 무주·진안·장수 등 산간 지대에 토대를 구축하고 와 대립 국면을 형성하면서 그 경계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다소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면이 남원에서는 더욱 두드러져서 북쪽에는 가, 남쪽에는 가 강세를 보이며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는 전북의 동부 산간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채 서부 평야 지대를 거쳐 북진하고 말았다. 충남의 는 역시 가 지배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 등이 일부 공간을 점하고 있다. 는 충남 당진을 거점으로 서산·예산·경기 화성 등 인접하고 일부 지역에 존재하며 의 북진을 막아내고 스스로 소권역을 이루었다. 그리고 는 천안에, 는 공주와 대전에, 는 금산과 대전에 진출하여 각각 와 대립하는 국면을 보였다. 결국 충남의 는 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주변 광역분포 노래가 충돌하며 거시적 국면을 연출하고, 동시에 스스로의 소권역도 형성하는 독자성을 보여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영남의 는 내부 노래 가 거의 독점하는 가운데, 역시 내부 노래로 보이는 와 등 2종이 경북 예천과 영주, 봉화의 일부 지역에 소권역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외부 노래는 경북 문경과 봉화 일부에 가, 경남 남해·거제·통영에 가 진출해 있으나 분포 비중은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영남의 는 내부 노래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그중에서도 가 거의 독보적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남에 강한 토대를 구축한 는 북진(北進)과 서진(西進)을 통해 점유 공간을 확장해나갔다. 다만, 예천·봉화·영주 등 경북 북부는 독자적 경향을 강하게 보임에 따라 의 외부 진출은 상주를 경로로 하여 보은·옥천·영동 등 충북 남부에 강한 토대를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북으로 청원·괴산·단양에까지 나아가고, 서쪽으로는 충북 금산·대전·전북 무주·진안·장수·남원 등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충북 청주와 충남 및 전북에서는 의 저항을 받고, 또 충북 괴산과 단양에서는 의 저항을 받으며 각각 해당 지역에서 대치 국면을 조성하게 되었다. 의 광역 분포 노래 4종이 모두 한곳에 모여 대치 국면을 빚은 곳은 진천, 괴산, 청원 등 충북 북부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는 진천에, 는 괴산에, 는 청원에, 는 청원 남부에 각각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상대를 견제하는 국면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의 거시적 국면은 ···가 각각 경기·강원·호남·영남 등에 토대를 두고 영역 확장을 꾀해 광역 분포를 이루며 남북과 동서로 대립하는 파동이 전개되었고, 그러한 파동의 역학이 결국은 충북의 진천·괴산·청원 등으로 방향을 잡아 이곳에서 모두 모이는 국면을 연출하게 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모심기는 논매기와 함께 논농사의 핵심적인 작업이다. 그러므로 와 는 논농사 지역이라면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이에 따라 는 와 더불어 농요 중 가장 넓은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는 와 달리 배타적 속성을 보이며 다른 노래를 수용하는 일 없이 한 지역에 하나씩만 존재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그 결과 는 , , , 등 경쟁력이 뛰어난 노래들이 광역 분포를 이루며 일정한 지역 구도를 지닌 채 대립하는 거대한 판도를 형성하였다. 문화 전반이 그러하듯이 민요의 공간 확장과 방어의 파동은 문화 지형 위에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가 만들어낸 거대 판도는 기층의 문화 지형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가 보여준 거시적이며 대립적인 판도와 지역 구도는 여타 부류의 민요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 전국적 판도는 민요의 소통·분포의 기본 구도와 문화 지형의 기본 구도를 아울러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경기향토민요(강등학 외, 경기도 문화의 전당, 2007), 와 의 전국적 판도 및 농요의 권역에 관한 연구(강등학, 한국민속학38, 한국민속학회, 2003), 의 분포와 장르양상에 관한 연구(강등학, 한국민요학29, 한국민요학회, 2010), 한국구비문학의 이해(강등학 외, 월인, 2000), 한국구연민요-연구(한국구연민요연구회, 집문당,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