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건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정아(金廷兒)
갱신일 2018-10-29

정의

머리에 쓰는 남자 아이용 건巾으로 호랑이 모습으로 장식한 복건.

내용

호건虎巾은 조선 말기와 개화기 때부터 반가班家의 남자 아이들이 썼던 쓰개의 한 종류로 복건과 비슷한 형태이나 호랑이 얼굴의 모양이 나도록 장식한 특징이 있다.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나 돌 등에 남자 아이에게 두루마기전복 또는 사규삼을 입히고 호건을 씌웠는데, 보통 5~6세 정도까지 쓴다.
남자 아이에게 호건을 씌우는 것에는 호랑이의 용맹함과 지혜로움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는 호랑이가 많아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나 풍습들이 많았는데, 이를 살펴보면 호랑이는 많은 상징적 의미를 담는다. 경외와 공포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호랑이는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세 번째인 인寅에 해당하고 정월을 상징하는데, 설날에 벽이나 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 벽사辟邪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 사람들은 호랑이 꿈을 길몽으로 여겼다. 호랑이 꿈을 꾸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성장하여 무관으로 출세한다거나, ‘虎’라는 글자가 ‘好’자로 변해 만사에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믿었다.
호랑이가 사악한 기운을 막아 준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생활 곳곳에 호랑이와 관련된 물건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했다. 부적에 호랑이 그림을 그려 넣거나, 여성들은 호랑이 발톱으로 만든 노리개를 만들어 패용했다. 호박은 호랑이의 혼백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여 단추나 장신구 등 각종 복식의 소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그 밖에 선비의 소품인 필통·연적·벼루뿐 아니라 밥그릇과 빨랫방망이에도 호랑이 문양을 그려 넣었다. 특히 아이들은 각종 질병과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 아이들의 수호부적으로 호랑이 발톱노리개를 채우거나 조끼 같은 어린이의 의복이나 굴레, 호건 등의 소품에도 호랑이 문양을 수놓아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호건의 겉감은 주로 검정색 사紗나 주紬로 하고 안쪽에 남색이나 홍색의 안감을 댄다. 조선 말기 유물 중에는 감청색의 겉감 안에 소색의 안감을 넣어 만든 것도 있다. 호건의 이마 부분에는 흰색과 붉은 계열의 실로 호랑이의 눈썹·눈·수염·이빨을 수놓고 코 부분에는 흰 색 자수실로 술장식을 달아 준다. 정수리 부분에는 두 귀를 만들어 다는데 귀의 안감 색상은 좌우 양쪽을 홍색으로 하기도 하고, 홍색과 황색으로 한쪽씩 만들어 달기도 한다.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호랑이의 표정이 개성 있게 표현되며, 볼 부분을 따로 만들고 끈을 달아 복건과 같이 머리 뒤편에서 묶어준다. 호건의 가장자리와 끈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효孝·제弟·충忠· 신信 등의 덕담이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기원하는 길상어문吉祥語文을 금박하기도 했다.

특징 및 의의

호건은 복건과 유사한 형태의 쓰개 중 하나로 머리에 씌워지는 부분을 호랑이 모양으로 장식하였는데, 돌쟁이부터 5~6세까지 남아들에게 많이 씌웠다. 호랑이처럼 지혜롭고 용감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수놓거나 길상어문을 금박으로 장식하였는데, 집안에 따라 호랑이의 표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조선 후기 이후에도 일부 반가의 남아들이 착용하였고, 오늘날에는 남자 아이의 돌복에 함께 착용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1920~1950년대의 아동복식에 관한 연구(김정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근대 이전 호랑이 상징성 고찰(박은정, 온지논총53, 온지학회, 2016), 조선상식(최남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73), 조선상식문답(최남선, 동명사, 1946), 한국복식문화사전(김용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전통어린이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

호건

호건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정아(金廷兒)
갱신일 2018-10-29

정의

머리에 쓰는 남자 아이용 건巾으로 호랑이 모습으로 장식한 복건.

내용

호건虎巾은 조선 말기와 개화기 때부터 반가班家의 남자 아이들이 썼던 쓰개의 한 종류로 복건과 비슷한 형태이나 호랑이 얼굴의 모양이 나도록 장식한 특징이 있다.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나 돌 등에 남자 아이에게 두루마기와 전복 또는 사규삼을 입히고 호건을 씌웠는데, 보통 5~6세 정도까지 쓴다.남자 아이에게 호건을 씌우는 것에는 호랑이의 용맹함과 지혜로움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는 호랑이가 많아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나 풍습들이 많았는데, 이를 살펴보면 호랑이는 많은 상징적 의미를 담는다. 경외와 공포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호랑이는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세 번째인 인寅에 해당하고 정월을 상징하는데, 설날에 벽이나 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 벽사辟邪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 사람들은 호랑이 꿈을 길몽으로 여겼다. 호랑이 꿈을 꾸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성장하여 무관으로 출세한다거나, ‘虎’라는 글자가 ‘好’자로 변해 만사에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믿었다.호랑이가 사악한 기운을 막아 준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생활 곳곳에 호랑이와 관련된 물건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했다. 부적에 호랑이 그림을 그려 넣거나, 여성들은 호랑이 발톱으로 만든 노리개를 만들어 패용했다. 호박은 호랑이의 혼백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여 단추나 장신구 등 각종 복식의 소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그 밖에 선비의 소품인 필통·연적·벼루뿐 아니라 밥그릇과 빨랫방망이에도 호랑이 문양을 그려 넣었다. 특히 아이들은 각종 질병과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 아이들의 수호부적으로 호랑이 발톱노리개를 채우거나 조끼 같은 어린이의 의복이나 굴레, 호건 등의 소품에도 호랑이 문양을 수놓아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호건의 겉감은 주로 검정색 사紗나 주紬로 하고 안쪽에 남색이나 홍색의 안감을 댄다. 조선 말기 유물 중에는 감청색의 겉감 안에 소색의 안감을 넣어 만든 것도 있다. 호건의 이마 부분에는 흰색과 붉은 계열의 실로 호랑이의 눈썹·눈·수염·이빨을 수놓고 코 부분에는 흰 색 자수실로 술장식을 달아 준다. 정수리 부분에는 두 귀를 만들어 다는데 귀의 안감 색상은 좌우 양쪽을 홍색으로 하기도 하고, 홍색과 황색으로 한쪽씩 만들어 달기도 한다.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호랑이의 표정이 개성 있게 표현되며, 볼 부분을 따로 만들고 끈을 달아 복건과 같이 머리 뒤편에서 묶어준다. 호건의 가장자리와 끈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효孝·제弟·충忠· 신信 등의 덕담이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기원하는 길상어문吉祥語文을 금박하기도 했다.

특징 및 의의

호건은 복건과 유사한 형태의 쓰개 중 하나로 머리에 씌워지는 부분을 호랑이 모양으로 장식하였는데, 돌쟁이부터 5~6세까지 남아들에게 많이 씌웠다. 호랑이처럼 지혜롭고 용감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수놓거나 길상어문을 금박으로 장식하였는데, 집안에 따라 호랑이의 표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조선 후기 이후에도 일부 반가의 남아들이 착용하였고, 오늘날에는 남자 아이의 돌복에 함께 착용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1920~1950년대의 아동복식에 관한 연구(김정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근대 이전 호랑이 상징성 고찰(박은정, 온지논총53, 온지학회, 2016), 조선상식(최남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73), 조선상식문답(최남선, 동명사, 1946), 한국복식문화사전(김용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전통어린이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