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윤양노(尹良老)
갱신일 2018-10-16

정의

전통과 문화가 담긴 우리 옷의 총칭.

개관

고구려 고분벽화 속 많은 인물이 입은 옷은 신체 보호 기능 목적을 넘어 사회와 문화, 주변 국가와의 관계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 기능과 미의식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옷의 형태와 착장 방식을 기본으로 한 우리 옷은 역사와 함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변화·발전하여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통복식으로 입고 있다.

내용

  1.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많은 인물의 옷차림은 우리 옷의 원형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벽화 속 남녀 인물은 하의는 바지[袴]를, 상의는 엉덩이를 덮을 정도의 긴 저고리[襦]를 좌임 또는 우임으로 여며 입었다. 성인 여자는 바지 위에 치마[裳, 裙]를 더 입었는데, 쌍영총과 수산리 고분벽화에서는 주름치마와 색동치마의 유행도 엿볼 수 있다. 기본 복식 위에는 긴 포袍를 입고 허리에 대를 띠어 여몄다. 거의 모든 옷의 가장자리에는 선두름을 하여 선단 부분의 보강과 동시에 배색과 문양을 통해 미적 효과를 높였다.
  2. 통일신라시대: 중국 문화가 적극 수용되면서 서역풍이 반영된 이른바 당풍唐風이 유입되어 이국풍의 옷차림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외국산을 선호하며 사치가 심해지자 834년(흥덕왕 9)에는 관모인 복두幞頭를 비롯하여 단령포團領袍·고袴·단의短衣·내상內裳·표상表裳·반비半臂·배당褙襠·표裱·요대腰帶·요반䙅襻·말襪·말요襪袎· 화靴·화대靴帶·빗梳·옷감의 색과 직물의 품질을 나타내는 승수乘數 등 21개의 복식 품목에 대해 신분에 따른 규제를 내용으로 한 복식금제를 내려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한편 이러한 당풍의 옷차림은 특히 여자 옷의 착장 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본래 우리 옷은 하의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상의를 입는다. 반면 당풍은 반대로 윗옷인 저고리를 먼저 입고 그 위로 치마를 겨드랑이 밑까지 높이 올려 입고 가슴 위치에서 치마끈을 묶어 앞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또 그 위에는 짧은 반비를 입고 긴 스카프[裱]를 목에 걸어 앞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3. 고려시대: 고려 귀부인들은 감람橄欖으로 물들인 늑건을 허리에 매고 금방울과 향주머니를 차며 흰 모시포를 입는데 남자의 것과 같다. 또 공경귀인公卿貴人의 처는 외출할 때 생명주로 넉넉하게 안을 받친 무늬 있는 비단으로 만든 넓은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머리에는 몽수蒙首를 써서 몸을 가린다. 신분이 낮은 관리의 부인은 여덟 폭으로 된 치마를 겨드랑이까지 끌어 올려 자락을 돌려 입고 묶는데, 여러 번 휘감을수록 고상하게 여겼다. 이러한 착장은 고려 전기의 모습으로 일부는 통일신라시대의 잔존이었다. 고려 후기에는 정치적으로 원나라와 국혼 관계를 맺으면서, 개체 변발과 요선오자 등 원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왕에서 서민 남녀까지 흰색 모시옷을 입었고,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 안에서 나온 직령포·자의·중의·장수의 등을 보면 내면적으로는 우리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다.
  4. 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에서 이어진 구습을 개혁하려는 시도와 중국 명나라의 제도를 따르자는 의견이 함께 거론되는 가운데 폐단이 있는 것은 조금씩 바꿔 가며 자주적인 정책을 펼쳤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선사회는 밖에서 활동이 많은 반가班家 남자들의 겉옷과 쓰개류가 발달했던 반면, 밖의 출입에 제한을 받았던 여자들은 머리 치장으로 미적 욕구를 해소했다. 특히 머리 치장에 사용한 가체는 사치와 사회적 폐단을 초래하여 영정조 때에는 부녀자의 머리와 쓰개, 치장에 관한 규제와 사치를 근절하는 시도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여자 옷의 가장 큰 변화는 저고리의 형태와 착장에 있다. 초기 저고리 길이는 60 전후이며 네모난 목판깃이 달린 직선배래 형태이다. 중기 저고리는 길이가 50 전후로 짧아지고 배래는 진동에서 수구 쪽을 향해 좁아지는 사선배래가 많으며 목판당코깃과 임진왜란 이후에는 칼깃이 달린 것이 많다. 조선 후기에는 20 내외로 가슴선을 덮지 못할 정도로 더욱 짧아졌다. 치마 속에는 여러 개의 속옷을 껴입어 이른바 ‘하후상박下厚上薄’이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되었다. 또 혹자는 이를 ‘복요服妖(요사스럽고 기이한 복장)’라 하여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우려하였으나, 정작 여자들은 작고 짧은 저고리에 어울리는 치마를 입는 방법을 고안하여 다양한 실루엣을 유행시켰다.
  5. 개항기: 1894년 7월(고종 31)부터 1896년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갑오개혁甲午改革은 옷차림에도 변화를 주었다. 1895년에는 단발령을 내려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모자를 쓰게 하였고, 문무관복이 양복화가 되면서 양복에 양화를 신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전통복식도 간소화되어 남자 한복은 하의에는 바지와 속고의를 입고 발목은 여전히 대님을 묶었다. 상의에는 속적삼과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마고자조끼를 입었다. 그런 다음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고름을 없애고 단추를 달아 입기도 했다.
    여자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전통복식에 장옷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른바 일본 유학파나 신여성은 모던걸이라 하여 양장을 입고, 서양식 짧은 스커트에 허리까지 오는 긴 저고리를 입은 모습도 혼재하였다. 한편 국내에서 신교육을 받는 여학생들은 조끼허리로 연결된 짧은 통치마에 30~35 길이의 치마저고리를 교복으로 입고 다녔다. 소매통은 넓어져 마치 붕어 배와 같다하여 붕어배래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수입 양장지로 한복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6. 한복 디자인시대: 1950년대 말에는 여성들도 경제 부흥과 재건 등 사회 참여 기회가 증가하자 서양복 디자이너들은 개량한복에 관심을 갖고 패턴과 재단, 봉제에 서양 바느질법을 접목하였다. 1세대 서양복 디자이너 노라노는 최초로 아리랑저고리를 선보였다. 당시 사회는 경제 발전으로 접대 문화가 확산되면서 요식업소를 중심으로 공연과 접대를 위해 한복을 입으면서 한복의 이미지가 평가 절하되기 시작했다. 1957년을 전후하여 값비싼 수입 벨벳이 최고의 혼수품으로 각광받았다. 벨벳 치마가 유행하여 벨벳의 결이 눌릴까 봐 차에 타고 앉을 때는 치마를 훌러덩 까고 앉는 것이 유행하면서 뒷사람에게 속옷을 보여 주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1960년대 말에는 양장 보급과 양장지 수입이 확산되면서 한복은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잔치에 입는 예복, 노인들의 옷으로 인식되면서 어쩌다 한 번 꺼내 입는 옷이 되었다. 한편 예단만큼은 한복 옷감이 필수품이었는데, 이때는 마치 싱글 양복처럼 치마저고리 한 벌을 위아래 같은 옷감으로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물실크 양장지가 유행하면서 문양과 색감이 전통적인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세탁과 관리는 용이하였다.
    1970년대에는 미스코리아의 세계무대 진출을 계기로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는 전통적인 한복에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고어드 재단법을 활용한 치마에 저고리 고름을 길게 늘어뜨려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이는 착시 효과를 주었다. 반면 저고리 품은 작지만 겉섶선을 사선으로 달아 앞품에만 여유를 주어 브래지어를 착용하고도 한복을 입을 수 있었다. 한복의 현대화, 예복화가 진행하면서 광택 있는 공단이 유행하였고 그 위에 금박·은박·자수를 놓은 화려한 한복이 유행했다.
    1980년대에는 생활한복 붐이 불면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실용적 소재와 모시·삼베 같은 천연 소재가 유행하였다. 대량 생산과 기성복화가 진행되면서 서양복과 접목된 디자인 개발과 용도에 맞게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한편 아파트 주거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철깨끼 바느질이란 용어가 생길 정도로 한겨울에도 비치는 노방으로 깨끼 바느질한 한복을 입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디자이너 이영희는 해외 패션쇼를 통해 한복의 소재와 색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의 국내 개최를 계기로 전통한복의 고유한 멋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던 반면 한복의 세계화를 위한 생활한복의 중요성도 강조되어 동정 없는 저고리, 한복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한복 웨딩드레스도 선보였다. 올림픽이 치러지는 기간에는 우리의 전통문화, 전통한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 화려한 장식은 줄고 단아한 치마저고리에 중간 색조의 반두루마기가 복고풍으로 유행하였다.
    1990년대는 한복의 쇠퇴기이다. 한복을 자주 입지 않자 예단에서조차 한복 옷감이 빠지는 경우가 점차 늘고, 또한 난방과 교통 수단이 좋아지면서 한겨울에도 노방 사철깨끼한복을 입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전통한복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줄자 학계·산업계가 힘을 합쳐 우리 옷에 대한 관심과 위상을 높이는 데 중지를 모아 1996년 12월 4일 ‘한복의 날’을 제정하고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많은 한복 디자이너들이 해외 전시나 패션쇼를 통해 전통한복과 디자인한복, 궁중복식을 알렸다. 2007년에는 한스타일 육성 사업에 한복이 포함되면서 한복의 세계화, 산업화를 목표로 다양한 한복 디자인 개발 사업과 한복의 대중화, 한복입기실천사업이 진행되고 더불어 한복 대여점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대여점에서 취급하는 한복의 일부는 이른바 퓨전한복과 전통한복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옷들도 대여되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0년 이후에는 특히 젊은이들이 한복에 관심을 갖으면서 전통한복, 생활한복, 디자인한복, 신한복, 데일리한복 등 다양한 명칭이 생겨났고, 전통한복과 현대적 디자인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트렌디한 한복들이 유행하였다.

특징 및 의의

  1. 단순함 속의 다양함: 한복은 직선과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단순 조형이지만 각각의 형태 안에서 선으로 면을 분할하고, 그 속에서 색과 문양만으로 디자인의 변화와 미적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한복은 삼국시대부터 전 세기를 총망라하여 어린아이에서 장년까지 다양한 색상과 소재, 디자인 한복을 입는다.
  2. 수준 높은 복식문화: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분리된 투피스형이며, 팔과 다리를 넣어 입는 체형형體型形 복식이다. 상의는 모두 앞이 열리는 전개형前開型이며, 여자 치마는 둘러 입는 권의형卷衣形 복식이므로 두르는 방식에 따라 선의 흐름과 다양한 실루엣을 연출할 수 있다. 한복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서 디자인과 기술 수준이 다 녹아 있다.
  3. 디자인과 입는 순서를 알 수 있는 명칭: 한복은 형태적 특징, 소재, 문양, 색, 직물 조직 등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저고리는 길이에 따라 장저고리·단저고리로 구분하고, 저고리 깃의 형태에 따라 당코깃저고리·목판깃저고리·둥근깃저고리·목판당코깃저고리·칼깃저고리라고 한다.
    기본 저고리 형태에 곁마기가 있어 곁막이·깃·고름·끝동 등의 색을 길색(몸판)과 다른 색으로 한 것은 회장저고리, 때로는 옷감과 직물조직에 따라 갑사저고리·숙고사저고리·양단저고리·진주사저고리·항라저고리·모시저고리·무명저고리·모본단저고리 등 소재 명칭을 저고리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노랑저고리·분홍저고리·색동저고리 등처럼 색명을 앞에 붙여 부르고 솜을 두면 솜저고리, 누빔을 하면 누비저고리, 솜을 두어 누비면 솜누비저고리, 수놓은 것은 수저고리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문양과 소재를 함께 붙여 연화문단저고리, 보상화문단저고리라고 한다.
    바느질 방법에 따라 홑저고리·겹저고리(물겹저고리)· 깨끼저고리 등 저고리 앞에 붙어 있는 수많은 수식어를 통해 그 저고리의 형태와 옷감, 색과 문양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 수 있어 명칭만으로도 구체적 소통이 가능하다.
    이상과 같이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도 있지만 옷의 각 부위별 명칭도 있다. 예를 들어 저고리와 두루마기는 길·소매·진동·깃·고름·배래·수구·도련·고름·동정으로 이루어지고, 바지는 마루폭·큰사폭·작은사폭·부리·허리·가마귀머리, 치마는 치마말기·치마폭·치마끈·조끼허리 등 각각의 부위별 명칭이 따로 있다.
    뿐만 아니라 한복의 착장 순서는 항상 하의를 먼저 입고 그다음 상의를 입는다. 여자 한복을 치마저고리, 남자 한복을 바지저고리라고 부르는 것도 착장 순서와 관련이 있다.
  4. 구멍으로 뒤집기: 한복은 겉감과 안감을 같은 크기로 재단하여 각각 봉제한 후 합봉하고 안감에 미리 준비한 창구멍으로 뒤집어 겉감이 밖으로 나오게 한 후 마무리한다.
  5. 끈과 고름으로 묶는 여밈: 치마말기 끈, 바지허리 끈과 대님, 저고리 고름과 두루마기 고름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여밈은 모두 끈과 고름으로 한다. 특히 고름은 세계 어느 전통복식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옷의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이다. 걸을 때마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고름은 정적인 한복 이미지에 동적 이미지를 더해 리듬감을 준다. 또 고름의 넓이, 길이, 색의 변화만으로도 미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6. 주름으로 만들어지는 볼륨감: 직선 재단과 평면 구성으로 만들어지는 한복은 면과 면이 만나는 곳에 주름을 잡아 볼륨감을 준다. 볼륨감은 대부분 아래쪽에 형성된다. 예를 들어 상의와 하의 중에서는 하의에 볼륨을 준다. 특히 여자의 치마는 옛날에는 모시 열두 폭을 이어 주름을 잡아 말기에 이어 붙여 풍성한 볼륨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의 쪽에 볼륨을 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있어 안정감이 있다.
  7. 작은 조각이 만들어 내는 공간성: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네모난 작은 천을 대각선으로 접어 앞길과 뒷길에 연결하여 만들어진 공간은 평면을 입체화하여 통풍과 땀의 발산을 좋게 하고 활동성을 높여 준다. 또한 조각 천의 크기와 색에 따라 디자인의 포인트가 되어 미적 효과를 높여 주기도 한다.

참고문헌

고려도경(서긍, 김대식 외 역, 황소자리, 2005), 아름다운 한국복식(황의숙·윤양노·조선희·이민주, 수학사, 2010), 조선여속고(이능화, 김상억 역, 동문선, 1990), 한국복식논고(박경자, 신구문화사, 1983),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유송옥, 수학사, 199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한복

한복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윤양노(尹良老)
갱신일 2018-10-16

정의

전통과 문화가 담긴 우리 옷의 총칭.

개관

고구려 고분벽화 속 많은 인물이 입은 옷은 신체 보호 기능 목적을 넘어 사회와 문화, 주변 국가와의 관계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 기능과 미의식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옷의 형태와 착장 방식을 기본으로 한 우리 옷은 역사와 함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변화·발전하여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통복식으로 입고 있다.

내용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많은 인물의 옷차림은 우리 옷의 원형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벽화 속 남녀 인물은 하의는 바지[袴]를, 상의는 엉덩이를 덮을 정도의 긴 저고리[襦]를 좌임 또는 우임으로 여며 입었다. 성인 여자는 바지 위에 치마[裳, 裙]를 더 입었는데, 쌍영총과 수산리 고분벽화에서는 주름치마와 색동치마의 유행도 엿볼 수 있다. 기본 복식 위에는 긴 포袍를 입고 허리에 대를 띠어 여몄다. 거의 모든 옷의 가장자리에는 선두름을 하여 선단 부분의 보강과 동시에 배색과 문양을 통해 미적 효과를 높였다. 통일신라시대: 중국 문화가 적극 수용되면서 서역풍이 반영된 이른바 당풍唐風이 유입되어 이국풍의 옷차림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외국산을 선호하며 사치가 심해지자 834년(흥덕왕 9)에는 관모인 복두幞頭를 비롯하여 단령포團領袍·고袴·단의短衣·내상內裳·표상表裳·반비半臂·배당褙襠·표裱·요대腰帶·요반䙅襻·말襪·말요襪袎· 화靴·화대靴帶·빗梳·옷감의 색과 직물의 품질을 나타내는 승수乘數 등 21개의 복식 품목에 대해 신분에 따른 규제를 내용으로 한 복식금제를 내려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한편 이러한 당풍의 옷차림은 특히 여자 옷의 착장 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본래 우리 옷은 하의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상의를 입는다. 반면 당풍은 반대로 윗옷인 저고리를 먼저 입고 그 위로 치마를 겨드랑이 밑까지 높이 올려 입고 가슴 위치에서 치마끈을 묶어 앞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또 그 위에는 짧은 반비를 입고 긴 스카프[裱]를 목에 걸어 앞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고려시대: 고려 귀부인들은 감람橄欖으로 물들인 늑건을 허리에 매고 금방울과 향주머니를 차며 흰 모시포를 입는데 남자의 것과 같다. 또 공경귀인公卿貴人의 처는 외출할 때 생명주로 넉넉하게 안을 받친 무늬 있는 비단으로 만든 넓은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머리에는 몽수蒙首를 써서 몸을 가린다. 신분이 낮은 관리의 부인은 여덟 폭으로 된 치마를 겨드랑이까지 끌어 올려 자락을 돌려 입고 묶는데, 여러 번 휘감을수록 고상하게 여겼다. 이러한 착장은 고려 전기의 모습으로 일부는 통일신라시대의 잔존이었다. 고려 후기에는 정치적으로 원나라와 국혼 관계를 맺으면서, 개체 변발과 요선오자 등 원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왕에서 서민 남녀까지 흰색 모시옷을 입었고,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 안에서 나온 직령포·자의·중의·장수의 등을 보면 내면적으로는 우리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에서 이어진 구습을 개혁하려는 시도와 중국 명나라의 제도를 따르자는 의견이 함께 거론되는 가운데 폐단이 있는 것은 조금씩 바꿔 가며 자주적인 정책을 펼쳤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선사회는 밖에서 활동이 많은 반가班家 남자들의 겉옷과 쓰개류가 발달했던 반면, 밖의 출입에 제한을 받았던 여자들은 머리 치장으로 미적 욕구를 해소했다. 특히 머리 치장에 사용한 가체는 사치와 사회적 폐단을 초래하여 영정조 때에는 부녀자의 머리와 쓰개, 치장에 관한 규제와 사치를 근절하는 시도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조선시대를 통틀어 여자 옷의 가장 큰 변화는 저고리의 형태와 착장에 있다. 초기 저고리 길이는 60 전후이며 네모난 목판깃이 달린 직선배래 형태이다. 중기 저고리는 길이가 50 전후로 짧아지고 배래는 진동에서 수구 쪽을 향해 좁아지는 사선배래가 많으며 목판당코깃과 임진왜란 이후에는 칼깃이 달린 것이 많다. 조선 후기에는 20 내외로 가슴선을 덮지 못할 정도로 더욱 짧아졌다. 치마 속에는 여러 개의 속옷을 껴입어 이른바 ‘하후상박下厚上薄’이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되었다. 또 혹자는 이를 ‘복요服妖(요사스럽고 기이한 복장)’라 하여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우려하였으나, 정작 여자들은 작고 짧은 저고리에 어울리는 치마를 입는 방법을 고안하여 다양한 실루엣을 유행시켰다. 개항기: 1894년 7월(고종 31)부터 1896년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갑오개혁甲午改革은 옷차림에도 변화를 주었다. 1895년에는 단발령을 내려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모자를 쓰게 하였고, 문무관복이 양복화가 되면서 양복에 양화를 신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전통복식도 간소화되어 남자 한복은 하의에는 바지와 속고의를 입고 발목은 여전히 대님을 묶었다. 상의에는 속적삼과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마고자와 조끼를 입었다. 그런 다음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고름을 없애고 단추를 달아 입기도 했다.여자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전통복식에 장옷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른바 일본 유학파나 신여성은 모던걸이라 하여 양장을 입고, 서양식 짧은 스커트에 허리까지 오는 긴 저고리를 입은 모습도 혼재하였다. 한편 국내에서 신교육을 받는 여학생들은 조끼허리로 연결된 짧은 통치마에 30~35 길이의 치마저고리를 교복으로 입고 다녔다. 소매통은 넓어져 마치 붕어 배와 같다하여 붕어배래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수입 양장지로 한복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한복 디자인시대: 1950년대 말에는 여성들도 경제 부흥과 재건 등 사회 참여 기회가 증가하자 서양복 디자이너들은 개량한복에 관심을 갖고 패턴과 재단, 봉제에 서양 바느질법을 접목하였다. 1세대 서양복 디자이너 노라노는 최초로 아리랑저고리를 선보였다. 당시 사회는 경제 발전으로 접대 문화가 확산되면서 요식업소를 중심으로 공연과 접대를 위해 한복을 입으면서 한복의 이미지가 평가 절하되기 시작했다. 1957년을 전후하여 값비싼 수입 벨벳이 최고의 혼수품으로 각광받았다. 벨벳 치마가 유행하여 벨벳의 결이 눌릴까 봐 차에 타고 앉을 때는 치마를 훌러덩 까고 앉는 것이 유행하면서 뒷사람에게 속옷을 보여 주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1960년대 말에는 양장 보급과 양장지 수입이 확산되면서 한복은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잔치에 입는 예복, 노인들의 옷으로 인식되면서 어쩌다 한 번 꺼내 입는 옷이 되었다. 한편 예단만큼은 한복 옷감이 필수품이었는데, 이때는 마치 싱글 양복처럼 치마저고리 한 벌을 위아래 같은 옷감으로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물실크 양장지가 유행하면서 문양과 색감이 전통적인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세탁과 관리는 용이하였다.1970년대에는 미스코리아의 세계무대 진출을 계기로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는 전통적인 한복에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고어드 재단법을 활용한 치마에 저고리 고름을 길게 늘어뜨려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이는 착시 효과를 주었다. 반면 저고리 품은 작지만 겉섶선을 사선으로 달아 앞품에만 여유를 주어 브래지어를 착용하고도 한복을 입을 수 있었다. 한복의 현대화, 예복화가 진행하면서 광택 있는 공단이 유행하였고 그 위에 금박·은박·자수를 놓은 화려한 한복이 유행했다.1980년대에는 생활한복 붐이 불면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실용적 소재와 모시·삼베 같은 천연 소재가 유행하였다. 대량 생산과 기성복화가 진행되면서 서양복과 접목된 디자인 개발과 용도에 맞게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한편 아파트 주거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철깨끼 바느질이란 용어가 생길 정도로 한겨울에도 비치는 노방으로 깨끼 바느질한 한복을 입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디자이너 이영희는 해외 패션쇼를 통해 한복의 소재와 색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의 국내 개최를 계기로 전통한복의 고유한 멋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던 반면 한복의 세계화를 위한 생활한복의 중요성도 강조되어 동정 없는 저고리, 한복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한복 웨딩드레스도 선보였다. 올림픽이 치러지는 기간에는 우리의 전통문화, 전통한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 화려한 장식은 줄고 단아한 치마저고리에 중간 색조의 반두루마기가 복고풍으로 유행하였다.1990년대는 한복의 쇠퇴기이다. 한복을 자주 입지 않자 예단에서조차 한복 옷감이 빠지는 경우가 점차 늘고, 또한 난방과 교통 수단이 좋아지면서 한겨울에도 노방 사철깨끼한복을 입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전통한복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줄자 학계·산업계가 힘을 합쳐 우리 옷에 대한 관심과 위상을 높이는 데 중지를 모아 1996년 12월 4일 ‘한복의 날’을 제정하고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2000년대 들어서면서 많은 한복 디자이너들이 해외 전시나 패션쇼를 통해 전통한복과 디자인한복, 궁중복식을 알렸다. 2007년에는 한스타일 육성 사업에 한복이 포함되면서 한복의 세계화, 산업화를 목표로 다양한 한복 디자인 개발 사업과 한복의 대중화, 한복입기실천사업이 진행되고 더불어 한복 대여점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대여점에서 취급하는 한복의 일부는 이른바 퓨전한복과 전통한복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옷들도 대여되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2010년 이후에는 특히 젊은이들이 한복에 관심을 갖으면서 전통한복, 생활한복, 디자인한복, 신한복, 데일리한복 등 다양한 명칭이 생겨났고, 전통한복과 현대적 디자인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트렌디한 한복들이 유행하였다.

특징 및 의의

단순함 속의 다양함: 한복은 직선과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단순 조형이지만 각각의 형태 안에서 선으로 면을 분할하고, 그 속에서 색과 문양만으로 디자인의 변화와 미적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한복은 삼국시대부터 전 세기를 총망라하여 어린아이에서 장년까지 다양한 색상과 소재, 디자인 한복을 입는다. 수준 높은 복식문화: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분리된 투피스형이며, 팔과 다리를 넣어 입는 체형형體型形 복식이다. 상의는 모두 앞이 열리는 전개형前開型이며, 여자 치마는 둘러 입는 권의형卷衣形 복식이므로 두르는 방식에 따라 선의 흐름과 다양한 실루엣을 연출할 수 있다. 한복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서 디자인과 기술 수준이 다 녹아 있다. 디자인과 입는 순서를 알 수 있는 명칭: 한복은 형태적 특징, 소재, 문양, 색, 직물 조직 등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저고리는 길이에 따라 장저고리·단저고리로 구분하고, 저고리 깃의 형태에 따라 당코깃저고리·목판깃저고리·둥근깃저고리·목판당코깃저고리·칼깃저고리라고 한다.기본 저고리 형태에 곁마기가 있어 곁막이·깃·고름·끝동 등의 색을 길색(몸판)과 다른 색으로 한 것은 회장저고리, 때로는 옷감과 직물조직에 따라 갑사저고리·숙고사저고리·양단저고리·진주사저고리·항라저고리·모시저고리·무명저고리·모본단저고리 등 소재 명칭을 저고리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노랑저고리·분홍저고리·색동저고리 등처럼 색명을 앞에 붙여 부르고 솜을 두면 솜저고리, 누빔을 하면 누비저고리, 솜을 두어 누비면 솜누비저고리, 수놓은 것은 수저고리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문양과 소재를 함께 붙여 연화문단저고리, 보상화문단저고리라고 한다.바느질 방법에 따라 홑저고리·겹저고리(물겹저고리)· 깨끼저고리 등 저고리 앞에 붙어 있는 수많은 수식어를 통해 그 저고리의 형태와 옷감, 색과 문양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 수 있어 명칭만으로도 구체적 소통이 가능하다.이상과 같이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도 있지만 옷의 각 부위별 명칭도 있다. 예를 들어 저고리와 두루마기는 길·소매·진동·깃·고름·배래·수구·도련·고름·동정으로 이루어지고, 바지는 마루폭·큰사폭·작은사폭·부리·허리·가마귀머리, 치마는 치마말기·치마폭·치마끈·조끼허리 등 각각의 부위별 명칭이 따로 있다.뿐만 아니라 한복의 착장 순서는 항상 하의를 먼저 입고 그다음 상의를 입는다. 여자 한복을 치마저고리, 남자 한복을 바지저고리라고 부르는 것도 착장 순서와 관련이 있다. 구멍으로 뒤집기: 한복은 겉감과 안감을 같은 크기로 재단하여 각각 봉제한 후 합봉하고 안감에 미리 준비한 창구멍으로 뒤집어 겉감이 밖으로 나오게 한 후 마무리한다. 끈과 고름으로 묶는 여밈: 치마말기 끈, 바지허리 끈과 대님, 저고리 고름과 두루마기 고름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여밈은 모두 끈과 고름으로 한다. 특히 고름은 세계 어느 전통복식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옷의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이다. 걸을 때마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고름은 정적인 한복 이미지에 동적 이미지를 더해 리듬감을 준다. 또 고름의 넓이, 길이, 색의 변화만으로도 미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주름으로 만들어지는 볼륨감: 직선 재단과 평면 구성으로 만들어지는 한복은 면과 면이 만나는 곳에 주름을 잡아 볼륨감을 준다. 볼륨감은 대부분 아래쪽에 형성된다. 예를 들어 상의와 하의 중에서는 하의에 볼륨을 준다. 특히 여자의 치마는 옛날에는 모시 열두 폭을 이어 주름을 잡아 말기에 이어 붙여 풍성한 볼륨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의 쪽에 볼륨을 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있어 안정감이 있다. 작은 조각이 만들어 내는 공간성: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네모난 작은 천을 대각선으로 접어 앞길과 뒷길에 연결하여 만들어진 공간은 평면을 입체화하여 통풍과 땀의 발산을 좋게 하고 활동성을 높여 준다. 또한 조각 천의 크기와 색에 따라 디자인의 포인트가 되어 미적 효과를 높여 주기도 한다.

참고문헌

고려도경(서긍, 김대식 외 역, 황소자리, 2005), 아름다운 한국복식(황의숙·윤양노·조선희·이민주, 수학사, 2010), 조선여속고(이능화, 김상억 역, 동문선, 1990), 한국복식논고(박경자, 신구문화사, 1983),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유송옥, 수학사, 199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