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문자(金文子)
갱신일 2018-10-29

정의

팔에 하는 장신구를 총칭.

역사

고구려 팔찌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온달전溫達傳에 의하면, “공주는 보천寶釧 수십 개를 팔뚝에 차고 궁궐을 나와 혼자 갔다 …… 이 금천을 팔아 집, 노비, 우마牛馬, 기물을 구입하였다.”라고 하여 팔찌를 착용한 예를 보여 준다. 팔찌의 양식 중 특히 금판환식金板環式 팔찌는 스키타이계 대표적인 팔찌 양식의 하나로 스키타이 금판환식 팔찌는 하나의 둥근 금판에 다시 하나의 금판을 덧대고, 그 표면에 누금세공鏤金細工을 가하고 여러 색의 유리옥을 박은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팔찌에도 이와 같은 양식이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팔찌를 사용하였다. 연대도 패총 7호분 남성 인골의 발목에서 나온 발찌는 돌고래, 수달, 너구리의 이빨 124개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팔이 아니라 발목에 한 것이지만,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유일한 예이며, 당시 사람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 외 서포항 유적, 옹기 송평동 패총유적 등에서 패각貝殼, 대리석으로 만든 팔찌가 출토된 바 있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청동, 옥 등 재료가 다양해져 청동기시대 사회에서도 패각, 옥석, 금속 등의 자료를 이용하여 팔찌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도 옥팔찌와 청동팔찌가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모든 나라에서 애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도에도 양팔에 팔찌를 찬 모습이 보인다. 고분에서 출토된 팔찌에는 금·은·동· 옥제품이 있으며, 양식은 간단한 환형環形 팔찌와 쇠사슬형 팔찌, 톱니식 팔찌, 금판환식金板環式 팔찌, 옥팔찌 등이 있다. 이 중 쇠사슬형 팔찌는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은제 팔찌로 같은 고분에서 출토된 쇠사슬형 목걸이류와 구성방법이 비슷하다. 환형 팔찌에는 삼국 모두 간단한 원형으로 된 것과 원형이나 끝이 열려 있는 것도 있다. 가장 많이 출토되는 톱니식 팔찌는 황해북도 봉산군 천덕리와 봉화리 1호분에서 출토된 고구려 청동팔찌가 있는데, 고리의 바깥 둘레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톱날 모양의 돌기로 장식하였다. 백제 무령왕비의 은제 팔찌에는 팔목이 닿는 안쪽에 톱니 모양을 촘촘히 새겼고, 바깥 면에는 발이 셋 달린 용을 두마리 새겼다. 그 외 무령왕릉 출토 금·은제 팔찌와 부여 출토 은제 팔찌도 표면인 굵은 톱니식이다. 경상북도 경주 노서동 215호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팔찌는 납작한 단면 바깥쪽에 각각 59개의 돌기를 내어 하나하나에 옥을 상감하였으며, 돌기 좌우에는 용들이 입을 벌리고 서로 다른 용의 꼬리를 물려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나타냈다. 세밀하게 표현된 용의 비늘, 상감 기법 등 당시 뛰어난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경주 금관총과 호우총에서 출토된 금팔찌 환체의 외측에는 톱니문이 새겨져 있다. 이외에 금관총 출토 은팔찌, 황오리 33호분 출토 동팔찌 모두 톱니문을 이루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은팔찌는 은銀으로 된 납작한 고리의 바깥 둘레에 둥근 구슬 모양으로 돌기를 내고 그 양옆으로 작은 구슬 모양을 놓았다. 이러한 형태의 팔찌는 넓은 의미에서 톱니식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창녕 계성동 고분 A지구 1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팔찌 두 개 중 한 개는 은에 도금을 한 것이고 한 개는 순은제이다. 팔찌의 표면에는 눈을 돋을새김하거나 둥근 돌기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창녕 교동리 12호분에서 출토된 팔찌는 은으로 둥근 고리 모양을 만든 것으로, 팔찌의 표면에는 각목刻目하거나 둥근 돌기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대체로 5세기 후반 무렵에 만들어졌으며, 귀족들의 생활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양산 부부총 출토 은팔찌 두 개는 둘레에 톱니문을 새겼다. 금판환식 팔찌 중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판환식 팔찌는 얇고 길쭉한 금판을 붙여 만든 것으로, 표면의 돌기 속에는 보석을 박아 금빛과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고령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금판환식 팔찌는 얇은 금판에 양쪽으로 금제 원형 영락이 달려 있다. 옥팔찌 중 경주 인왕동 19호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방울팔찌는 곡옥과 금방울을 달아 만들었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옥팔찌는 황·흑색의 소옥과 곡옥을 교차 배치하여 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황오리 54호분 갑총 출토 옥팔찌는 마노제 관옥에 호박제 소옥을 연결한 것이고, 황남리 109호분 4곽 출토 옥팔찌는 녹청색 유리제 소옥 32개를 연결하고 소곡옥 한 개를 달았다. 경주 금령총 출토 옥팔찌는 하나는 유리옥을 연결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러 색채의 남경옥南京玉을 두 줄로 연결하고 그 중간에 경옥제 곡옥을 하나 집어넣는 독특한 형태이다. 장식의 중핵中核을 이루는 곡옥은 백색을 띤 불투명색이며 둘레의 소옥들은 유리색 외에 주朱·황黃·수색水色등을 교차사용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상도 지역 출토 옥팔찌는 녹색 곡옥 11개와 각종 옥을 연결한 것이다. 양산 부부총에서 출토된 2조의 옥팔찌 중 하나는 소마노옥小瑪瑙玉 55개를 연결한 것으로 부인의 오른팔 끼었다. 다른 하나는 같은 소마노옥 23개와 유리소옥 23개와 밀감옥蜜柑玉으로 구성되었는데, 부인의 왼팔에 끼어져 있었다. 중국 길림성 돈화현 육정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발해 청동팔찌들이 있는데, 완전히 막힌 것과 한쪽이 열린 것도 있다. 그 외 고분에서도 금· 은·동·철제로 된 팔찌들이 출토되었으며 원형과 타원형이 있다. 장식은 없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들이 대부분이다.
고려시대는 그 유물의 양이나 장식 방법 등으로 보아 귀고리나 목걸이에 비해 특히 팔찌가 애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타출화조문銀製鍍金打出花鳥紋 팔찌는 팔찌의 바깥 면을 돌아가며 능화형菱花形으로 된 여섯 개의 구획을 주 문양으로 배치한 뒤, 능화문 안에는 서로 엇갈리게 표현된 두 마리의 새와 연꽃넝쿨무늬를 번갈아가며 장식하였다. 그 여백에는 연꽃넝쿨무늬를 빼곡히 배치하고 그 주위를 눌러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외측면의 위· 아래 단은 톱니모양의 장식으로 마감하였다. 팔찌 안쪽의 둥글게 비어 있는 부분은 별도의 얇은 은제 판으로 끼워 위로 덧대었으며, 이 은제 판에는 넝쿨무늬와 그 여백에 어자문魚子紋을 촘촘히 선각, 또는 저부조底浮彫로 타출하였다.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타출화조문 팔찌에서도 거의 같은 양식을 볼 수 있다. 이 팔찌들은 단순히 치장 목적 외에 제작 방식을 볼 때 팔찌 속에 다라니陀羅尼 경전이나 부적 등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타출화문 팔찌는 바깥 면은 만개한 꽃잎 군을 안쪽에서 두드린 다음, 바깥쪽에서 다시 두드려 고부조의 타출기법의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에 안은 빈 공간이다. 팔찌의 바깥 부분은 삼단으로 구성하여 한 줄에 20개의 꽃잎이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였고, 여백도 작은 꽃잎으로 채웠다. 은제연화당초문 팔찌는 연화당초문을 장식하였고, 여백은 어자문으로 메웠다. 안쪽 면에는 별도의 은판을 덧댄 위에 당초문을 선각한 후 바탕을 점선조 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은제도금용문銀製鍍金龍紋 팔찌는 둘레에 타출 기법으로 용문을 새겼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소장된 은제 팔찌는 겉 표면 전체를 능형菱形의 구획으로 나누고 위와 아래의 문양에는 도안한 국화를 음각하였으며, 중간에는 총 23자의 명문을 새겨
넣었다.
현대에 착용되는 팔찌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뱅글 브레이슬릿bangle bracelet: 원래는 인도나 아프리카의 여성이 사용했던 것으로 팔에 두르는 장식 테를 이르는 말이다. 금·은·유리 등으로 만들어 그대로 팔목에 끼는 팔찌이다.
2. 참 브레이슬릿charm bracelet: 참charm이란 ‘부적’, ‘주문’이라는 뜻으로, 팔찌 주위에 체인으로 여러 장신구들을 늘어뜨린 형식을 말한다.
3. 스네이크 브레이슬릿snake bracelet: 팔목이나 팔뚝에 뱀처럼 나선형으로 감아 올라가는 팔찌를 말한다.
4. 체인 브레이슬릿chain bracelet: 사슬을 연결한 팔찌를 말한다.
5. 암릿armlet: 브레이슬릿이 손목에 끼는 장식인 데 비해, 위팔에 끼는 팔찌를 말한다.

특징 및 의의

팔찌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모든 나라에서 애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녀 공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한 번에 여러 종류의 팔찌를 양팔에 착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이전 시대에 귀고리, 목걸이가 유행했던 것과 달리 팔찌가 애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거의 착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손목시계 때문에 팔찌는 목걸이보다 덜 착용하지만, 팔의 노출에 비례해 여름에 특히 팔찌 착용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고려시대 타출공예품 연구(김은애,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고분출토 부장품연구(오세영, 고려대학교출판부, 1988), 한국미술전집4-벽화(김원룡, 동화출판공사, 1980), 한국복식사개론(김문자, 교문사, 2015),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5), e뮤지엄(emuseum.go.kr).

팔찌

팔찌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문자(金文子)
갱신일 2018-10-29

정의

팔에 하는 장신구를 총칭.

역사

고구려 팔찌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온달전溫達傳에 의하면, “공주는 보천寶釧 수십 개를 팔뚝에 차고 궁궐을 나와 혼자 갔다 …… 이 금천을 팔아 집, 노비, 우마牛馬, 기물을 구입하였다.”라고 하여 팔찌를 착용한 예를 보여 준다. 팔찌의 양식 중 특히 금판환식金板環式 팔찌는 스키타이계 대표적인 팔찌 양식의 하나로 스키타이 금판환식 팔찌는 하나의 둥근 금판에 다시 하나의 금판을 덧대고, 그 표면에 누금세공鏤金細工을 가하고 여러 색의 유리옥을 박은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팔찌에도 이와 같은 양식이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팔찌를 사용하였다. 연대도 패총 7호분 남성 인골의 발목에서 나온 발찌는 돌고래, 수달, 너구리의 이빨 124개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팔이 아니라 발목에 한 것이지만,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유일한 예이며, 당시 사람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 외 서포항 유적, 옹기 송평동 패총유적 등에서 패각貝殼, 대리석으로 만든 팔찌가 출토된 바 있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청동, 옥 등 재료가 다양해져 청동기시대 사회에서도 패각, 옥석, 금속 등의 자료를 이용하여 팔찌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도 옥팔찌와 청동팔찌가 있었다.삼국시대에는 모든 나라에서 애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도에도 양팔에 팔찌를 찬 모습이 보인다. 고분에서 출토된 팔찌에는 금·은·동· 옥제품이 있으며, 양식은 간단한 환형環形 팔찌와 쇠사슬형 팔찌, 톱니식 팔찌, 금판환식金板環式 팔찌, 옥팔찌 등이 있다. 이 중 쇠사슬형 팔찌는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은제 팔찌로 같은 고분에서 출토된 쇠사슬형 목걸이류와 구성방법이 비슷하다. 환형 팔찌에는 삼국 모두 간단한 원형으로 된 것과 원형이나 끝이 열려 있는 것도 있다. 가장 많이 출토되는 톱니식 팔찌는 황해북도 봉산군 천덕리와 봉화리 1호분에서 출토된 고구려 청동팔찌가 있는데, 고리의 바깥 둘레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톱날 모양의 돌기로 장식하였다. 백제 무령왕비의 은제 팔찌에는 팔목이 닿는 안쪽에 톱니 모양을 촘촘히 새겼고, 바깥 면에는 발이 셋 달린 용을 두마리 새겼다. 그 외 무령왕릉 출토 금·은제 팔찌와 부여 출토 은제 팔찌도 표면인 굵은 톱니식이다. 경상북도 경주 노서동 215호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팔찌는 납작한 단면 바깥쪽에 각각 59개의 돌기를 내어 하나하나에 옥을 상감하였으며, 돌기 좌우에는 용들이 입을 벌리고 서로 다른 용의 꼬리를 물려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나타냈다. 세밀하게 표현된 용의 비늘, 상감 기법 등 당시 뛰어난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경주 금관총과 호우총에서 출토된 금팔찌 환체의 외측에는 톱니문이 새겨져 있다. 이외에 금관총 출토 은팔찌, 황오리 33호분 출토 동팔찌 모두 톱니문을 이루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은팔찌는 은銀으로 된 납작한 고리의 바깥 둘레에 둥근 구슬 모양으로 돌기를 내고 그 양옆으로 작은 구슬 모양을 놓았다. 이러한 형태의 팔찌는 넓은 의미에서 톱니식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창녕 계성동 고분 A지구 1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팔찌 두 개 중 한 개는 은에 도금을 한 것이고 한 개는 순은제이다. 팔찌의 표면에는 눈을 돋을새김하거나 둥근 돌기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창녕 교동리 12호분에서 출토된 팔찌는 은으로 둥근 고리 모양을 만든 것으로, 팔찌의 표면에는 각목刻目하거나 둥근 돌기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대체로 5세기 후반 무렵에 만들어졌으며, 귀족들의 생활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양산 부부총 출토 은팔찌 두 개는 둘레에 톱니문을 새겼다. 금판환식 팔찌 중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판환식 팔찌는 얇고 길쭉한 금판을 붙여 만든 것으로, 표면의 돌기 속에는 보석을 박아 금빛과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고령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금판환식 팔찌는 얇은 금판에 양쪽으로 금제 원형 영락이 달려 있다. 옥팔찌 중 경주 인왕동 19호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방울팔찌는 곡옥과 금방울을 달아 만들었다.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옥팔찌는 황·흑색의 소옥과 곡옥을 교차 배치하여 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황오리 54호분 갑총 출토 옥팔찌는 마노제 관옥에 호박제 소옥을 연결한 것이고, 황남리 109호분 4곽 출토 옥팔찌는 녹청색 유리제 소옥 32개를 연결하고 소곡옥 한 개를 달았다. 경주 금령총 출토 옥팔찌는 하나는 유리옥을 연결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러 색채의 남경옥南京玉을 두 줄로 연결하고 그 중간에 경옥제 곡옥을 하나 집어넣는 독특한 형태이다. 장식의 중핵中核을 이루는 곡옥은 백색을 띤 불투명색이며 둘레의 소옥들은 유리색 외에 주朱·황黃·수색水色등을 교차사용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상도 지역 출토 옥팔찌는 녹색 곡옥 11개와 각종 옥을 연결한 것이다. 양산 부부총에서 출토된 2조의 옥팔찌 중 하나는 소마노옥小瑪瑙玉 55개를 연결한 것으로 부인의 오른팔 끼었다. 다른 하나는 같은 소마노옥 23개와 유리소옥 23개와 밀감옥蜜柑玉으로 구성되었는데, 부인의 왼팔에 끼어져 있었다. 중국 길림성 돈화현 육정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발해 청동팔찌들이 있는데, 완전히 막힌 것과 한쪽이 열린 것도 있다. 그 외 고분에서도 금· 은·동·철제로 된 팔찌들이 출토되었으며 원형과 타원형이 있다. 장식은 없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들이 대부분이다.고려시대는 그 유물의 양이나 장식 방법 등으로 보아 귀고리나 목걸이에 비해 특히 팔찌가 애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타출화조문銀製鍍金打出花鳥紋 팔찌는 팔찌의 바깥 면을 돌아가며 능화형菱花形으로 된 여섯 개의 구획을 주 문양으로 배치한 뒤, 능화문 안에는 서로 엇갈리게 표현된 두 마리의 새와 연꽃넝쿨무늬를 번갈아가며 장식하였다. 그 여백에는 연꽃넝쿨무늬를 빼곡히 배치하고 그 주위를 눌러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외측면의 위· 아래 단은 톱니모양의 장식으로 마감하였다. 팔찌 안쪽의 둥글게 비어 있는 부분은 별도의 얇은 은제 판으로 끼워 위로 덧대었으며, 이 은제 판에는 넝쿨무늬와 그 여백에 어자문魚子紋을 촘촘히 선각, 또는 저부조底浮彫로 타출하였다.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타출화조문 팔찌에서도 거의 같은 양식을 볼 수 있다. 이 팔찌들은 단순히 치장 목적 외에 제작 방식을 볼 때 팔찌 속에 다라니陀羅尼 경전이나 부적 등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타출화문 팔찌는 바깥 면은 만개한 꽃잎 군을 안쪽에서 두드린 다음, 바깥쪽에서 다시 두드려 고부조의 타출기법의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에 안은 빈 공간이다. 팔찌의 바깥 부분은 삼단으로 구성하여 한 줄에 20개의 꽃잎이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였고, 여백도 작은 꽃잎으로 채웠다. 은제연화당초문 팔찌는 연화당초문을 장식하였고, 여백은 어자문으로 메웠다. 안쪽 면에는 별도의 은판을 덧댄 위에 당초문을 선각한 후 바탕을 점선조 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은제도금용문銀製鍍金龍紋 팔찌는 둘레에 타출 기법으로 용문을 새겼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소장된 은제 팔찌는 겉 표면 전체를 능형菱形의 구획으로 나누고 위와 아래의 문양에는 도안한 국화를 음각하였으며, 중간에는 총 23자의 명문을 새겨넣었다.현대에 착용되는 팔찌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1. 뱅글 브레이슬릿bangle bracelet: 원래는 인도나 아프리카의 여성이 사용했던 것으로 팔에 두르는 장식 테를 이르는 말이다. 금·은·유리 등으로 만들어 그대로 팔목에 끼는 팔찌이다.2. 참 브레이슬릿charm bracelet: 참charm이란 ‘부적’, ‘주문’이라는 뜻으로, 팔찌 주위에 체인으로 여러 장신구들을 늘어뜨린 형식을 말한다.3. 스네이크 브레이슬릿snake bracelet: 팔목이나 팔뚝에 뱀처럼 나선형으로 감아 올라가는 팔찌를 말한다.4. 체인 브레이슬릿chain bracelet: 사슬을 연결한 팔찌를 말한다.5. 암릿armlet: 브레이슬릿이 손목에 끼는 장식인 데 비해, 위팔에 끼는 팔찌를 말한다.

특징 및 의의

팔찌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모든 나라에서 애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녀 공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한 번에 여러 종류의 팔찌를 양팔에 착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이전 시대에 귀고리, 목걸이가 유행했던 것과 달리 팔찌가 애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거의 착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손목시계 때문에 팔찌는 목걸이보다 덜 착용하지만, 팔의 노출에 비례해 여름에 특히 팔찌 착용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고려시대 타출공예품 연구(김은애,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고분출토 부장품연구(오세영, 고려대학교출판부, 1988), 한국미술전집4-벽화(김원룡, 동화출판공사, 1980), 한국복식사개론(김문자, 교문사, 2015),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5), e뮤지엄(e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