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제사(忌祭祀)

한자명

忌祭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조상의 죽음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유교의례儒敎儀禮로서, 조상이 돌아가신 날 가장 이른 시각에 지내는 제사.

역사

중국 고대에는 기제사忌祭祀를 지내는 풍속이 없었고, 망자의 기일이 되면 살아있는 그 자손이 상喪을 당한 것처럼 예를 행하였다. 송대에 이르러 비로소 기제사의 예를 만들게 되었다. 이는 ‘종신지우終身之憂’라는 말처럼, 기일이 되면 상을 당했을 때의 마음으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것이 옳다는 정신으로 만든 의례이다. 유교에서 제사는 ‘기복행사祈福行事’로서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지만, 기일에 지내는 제사는 상례와 같아 흉례凶禮에 속한다. 따라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수록된 기제사에는 상례의 연장선에서 초헌初獻을 한 다음 “주인 이하는 곡哭을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1390년(공양왕 2)에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였으나 “대부大夫 이상은 3대를 제사 지내고, 6품관 이상은 2대를, 7품관 이하 평민들은 부모제사를 지내도록”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둔 규정을 법령으로 제정하였다. 18세기에 이르러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게 되자, 고조부모까지도 제사를 받들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여 기제사가 정착되었다.

내용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기일忌日’ 또는 ‘휘일諱日’이라고도 한다. 기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의 전날인 입제일入祭日에 제물을 준비하여 돌아가신 날인 파제일罷祭日의 가장 이른 시각에 지낸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짜에 기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조상이 돌아가신 슬픈일이 생겨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파제일의 가장 이른 시각인 자시子時는 전통적으로 새로운 날짜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각에 제사를 지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조상이 돌아가신 날짜의 가장 이른 시간에 조상제사를 지냄으로써, 다른 모든 일보다 더 우선해서 조상을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다. 둘째, 조상신이 활동하는 데 가장 좋은 시간대가 심야의 조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인구의 도시 집중이 심화되면서 자손들이 파제일자시에 기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렵게 되자 파제일의 저녁 시간에 제사를 지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기제사의 방식으로는, 신주神主(또는 지방紙榜)를 제상 앞에 모시는 방식에 따라 기일을 맞이한 조상만 모시는 ‘단설單設’, 기일을 맞은 조상을 기준으로 당사자와 그 배우자, 즉 고위考位와 비위妣位를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이 있다. 그리고 합설을 하더라도 고위와 비위의 상을 각각 차리는 ‘각설各設’도 있다. 기제사의 본디 뜻을 생각해 볼 때, 조상이 죽었기 때문에 지내는 제사이므로 고위와 비위가 같은 날짜에 죽지 않았다면 단설이 맞다. 그런데도 조선시대의 기제도忌祭圖를 보면, 단설과 합설이 공존하고 있다. 퇴계 이황李滉은 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禮로 보면 단설이 맞지만, 정情으로 합설도 무방하다.”라고 하였다. 합설을 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평소에 남편이 밥을 먹을 때면 부인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한편, 대략 1990년대부터는 고위와 비위의 기일에 모두 제사를 지내지 않고 동시에 한 번만 지내는 ‘합사合祀’의 방식이 나타난다. 합사하는 경우, 보통 고위의 제사 때 비위도 함께 모셔와 제사 지내고, 비위의 기일에는 따로 제사 지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4대에 걸친 여러 조상을 특정한 날을 정해서 한꺼번에 합사하는 방식도 있다.

기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대청이나 안방이다. 반가班家의 전통이 남아있는 종가와 고택 등에서는 대청에서 기제사를 지내고, 여염집에서는 안방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러 가옥의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종가에서는 제사 전용의 제청祭廳이 별도로 있지만, 그 경우에도 일반 기제사는 안대청에서 지내고,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 제사만 제청에서 지낸다.

자시가 다가오면 제물을 진설할 준비를 하고 축문을 미리 써두는데, 요즈음의 기제사에서는 축문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당이 없어 신주를 모시지 않는 집에서는 지방을 미리 써둔다. 기제사에 참여하는 제관참사자들은 직계자손과 당내堂內의 친인척으로 구성된다. 제관과 참사자들이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다. 기제사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설위設位: 신위(신주 또는 지방)를 모시는 자리를 마련한다.
  2. 진기陳器: 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을 늘어놓는 절차로, 이때 축문이나 지방을 작성한다.
  3. 진설陳設: 설소과設蔬果라고도 하는데, 포·잔·수저·실과·채소처럼 식어도 되는 제수祭需를 미리 진설한다.
  4. 출주出主: 신주를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곳으로 모셔오는 것인데, 지방을 붙이고 지내는 제사의 경우에는 이때 지방을 부착한다.
  5. 참신參神: 참사자 전원이 신위에 재배한다.
  6. 강신降神: 주인主人이 분향하고 술을 모사기茅沙器에 세 번 따른 다음 빈 잔을 원래의 자리에 올린다. 간혹 분향 이후에 재배하는 사례도 있다.
    신주를 모셨으면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을 써 붙였으면 강신을 먼저 한다.
  7. 진찬進饌: 진설에서 차리지 않은 나머지 제수를 진설한다.
  8. 초헌初獻: 주인이 신위에 첫 번째 잔을 올린다. 이때 적炙을 올리고 밥의 뚜껑을 연 다음, 축관이 주인의 서쪽에 앉아서 축문을 읽는다. 이어서 주인이 재배한다.
  9. 아헌亞獻: 신위에 두 번째 잔을 올린다. 『주자가례』에는 주부가 아헌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집안의 연장자나 주인의 동생이 하기도 한다.
  10. 종헌終獻: 신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린다. 보통 귀한 손님이나 사위, 연장자 등이 한다.
  11. 유식侑食: 주인이 종헌에서 다 채우지 않은 잔에 술을 가득 채우는 첨작添酌을 한 다음, 메에 숟가락을 꽂고 적이나 편에 젓가락을 올리는 삽시정저插匙正箸를 한다. 가정에 따라 계반삽시啓飯插匙를 하기도 하고 주인은 재배, 주부는 4배를 하기도 한다.
  12. 합문闔門: 조상이 음식을 드시도록 기다리는 절차이다. 제상 앞에 병풍을 친 후 참사자들은 부복하여 조상이 수저를 아홉 번 뜨는 시간만큼 기다린다.
  13. 계문啓門: 합문의 문을 연 다음 갱을 물로 바꾸고, 메 세 숟가락을 푸는 헌다獻茶를 진행한다. 물에 메를 푸는 것은 숭늉을 의미한다. 이후 조상신이 후식을 먹을 수 있도록 참사자는 선 자세로 묵념하는 국궁鞠躬을 한다. 국궁이 끝나면 집사자가 수저를 거두고, 메 등의 뚜껑을 닫는 시복반撤匙覆飯을 행한다.
  14. 사신辭神: 참사자 전원이 재배하는 것으로, 신을 돌려 보내드린다.
  15. 납주納主: 신위를 사당으로 다시 모셔드린다. 지방으로 제사를 지낸 경우에는 지방을 태운다.
  16. 분축焚祝: 축문을 태운다.
  17. 철撤: 제수를 모두 거두어들인다.
  18. 餕: 제관과 참사자들이 음복주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을 한다. 원래 기제사에는 음복 절차가 없으나 관행적으로 행한다.

2012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경상북도 안동에 거주하며 기제사를 지내는 500여 명의 시민들에게 실시한 「조상제사의 실태 및 의식 조사」를 살펴보면, 제삿날은 돌아가신 날(25.4%)보다 돌아가신 전날(74.6%)이 약 3배 가까이 더 많았다. 돌아가신 전날에 지낼 경우에는 밤 11시~12시 사이에 지내는 비율이 51.9%로 매우 높았다. 이것은 파제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경우에도 밤 11시~12시 사이에 지내는 비율이 31.7%로 가장 높았으며, 밤 8시~9시 사이에 지내는 것이 그다음이었다. 제사의 방식은 단설보다 합설을 하는 경우가 66.0%로 2배 이상 많았다. 축문은 생략하는 경우가 81.4%로 많았고, 술은 한 번이나 두 번 올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이는 관습에 따르거나 참사자의 인원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아헌을 주부가 하는 경우는 32.3%이며, 그 외에는 맏며느리 또는 며느리가 술을 올렸다. 돌아가신 조상을 한꺼번에 모셔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5.6%로 적었으나, 합사할 경우에는 남녀 모든 조상을 한꺼번에 지내거나 여성의 제사를 생략하고 남성과 함께 지내는 사례가 비등했다. 기제사에서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은 제물의 종류와 조리법, 참사자의 대상이었다. 즉, 제물의 종류와 조리법이 간소화였으며, 참사자의 대상이 가족 중심으로 변화했다.

우리말에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는데, 의례를 행하는 예법이 가정마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제사 역시 가정마다 예법의 차이가 있어 제사 시간, 절차, 제물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기제사는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제의 절차와 고향 땅까지 이동하는 고단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기제사의 전통이 유지되는 것은, 기제사를 통해 조상을 숭배하고 예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징 및 의의

기제사는 유교 제사의 기본이 되는 제사로서 조상에게 예를 다하고, 친족 간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교의례에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하는 기제사는 유교적 전통문화에서 ‘효’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특히 기제사는 사대봉사를 원칙으로 하여 생전 면식面識이 있는 조상에 대한 예와 효를 다하고자한 것이다.

참고문헌

우리의 전통예절(김득중・유송옥・황혜성, 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8), 전통적 기제사를 통해 본 조상관(배영동, 비교민속학23, 비교민속학회, 2002), 제사와 제례문화(박원재・유권종・배영동 외, 한국국학진흥원, 2002),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이욱 외, 한국국학진흥원, 2012),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

기제사

기제사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조상의 죽음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유교의례儒敎儀禮로서, 조상이 돌아가신 날 가장 이른 시각에 지내는 제사.

역사

중국 고대에는 기제사忌祭祀를 지내는 풍속이 없었고, 망자의 기일이 되면 살아있는 그 자손이 상喪을 당한 것처럼 예를 행하였다. 송대에 이르러 비로소 기제사의 예를 만들게 되었다. 이는 ‘종신지우終身之憂’라는 말처럼, 기일이 되면 상을 당했을 때의 마음으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것이 옳다는 정신으로 만든 의례이다. 유교에서 제사는 ‘기복행사祈福行事’로서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지만, 기일에 지내는 제사는 상례와 같아 흉례凶禮에 속한다. 따라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수록된 기제사에는 상례의 연장선에서 초헌初獻을 한 다음 “주인 이하는 곡哭을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1390년(공양왕 2)에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였으나 “대부大夫 이상은 3대를 제사 지내고, 6품관 이상은 2대를, 7품관 이하 평민들은 부모제사를 지내도록”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둔 규정을 법령으로 제정하였다. 18세기에 이르러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게 되자, 고조부모까지도 제사를 받들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여 기제사가 정착되었다.

내용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기일忌日’ 또는 ‘휘일諱日’이라고도 한다. 기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의 전날인 입제일入祭日에 제물을 준비하여 돌아가신 날인 파제일罷祭日의 가장 이른 시각에 지낸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짜에 기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조상이 돌아가신 슬픈일이 생겨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파제일의 가장 이른 시각인 자시子時는 전통적으로 새로운 날짜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각에 제사를 지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조상이 돌아가신 날짜의 가장 이른 시간에 조상제사를 지냄으로써, 다른 모든 일보다 더 우선해서 조상을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다. 둘째, 조상신이 활동하는 데 가장 좋은 시간대가 심야의 조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인구의 도시 집중이 심화되면서 자손들이 파제일자시에 기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렵게 되자 파제일의 저녁 시간에 제사를 지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기제사의 방식으로는, 신주神主(또는 지방紙榜)를 제상 앞에 모시는 방식에 따라 기일을 맞이한 조상만 모시는 ‘단설單設’, 기일을 맞은 조상을 기준으로 당사자와 그 배우자, 즉 고위考位와 비위妣位를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이 있다. 그리고 합설을 하더라도 고위와 비위의 상을 각각 차리는 ‘각설各設’도 있다. 기제사의 본디 뜻을 생각해 볼 때, 조상이 죽었기 때문에 지내는 제사이므로 고위와 비위가 같은 날짜에 죽지 않았다면 단설이 맞다. 그런데도 조선시대의 기제도忌祭圖를 보면, 단설과 합설이 공존하고 있다. 퇴계 이황李滉은 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禮로 보면 단설이 맞지만, 정情으로 합설도 무방하다.”라고 하였다. 합설을 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평소에 남편이 밥을 먹을 때면 부인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한편, 대략 1990년대부터는 고위와 비위의 기일에 모두 제사를 지내지 않고 동시에 한 번만 지내는 ‘합사合祀’의 방식이 나타난다. 합사하는 경우, 보통 고위의 제사 때 비위도 함께 모셔와 제사 지내고, 비위의 기일에는 따로 제사 지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4대에 걸친 여러 조상을 특정한 날을 정해서 한꺼번에 합사하는 방식도 있다. 기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대청이나 안방이다. 반가班家의 전통이 남아있는 종가와 고택 등에서는 대청에서 기제사를 지내고, 여염집에서는 안방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러 가옥의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종가에서는 제사 전용의 제청祭廳이 별도로 있지만, 그 경우에도 일반 기제사는 안대청에서 지내고,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 제사만 제청에서 지낸다. 자시가 다가오면 제물을 진설할 준비를 하고 축문을 미리 써두는데, 요즈음의 기제사에서는 축문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당이 없어 신주를 모시지 않는 집에서는 지방을 미리 써둔다. 기제사에 참여하는 제관과 참사자들은 직계자손과 당내堂內의 친인척으로 구성된다. 제관과 참사자들이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다. 기제사 절차는 다음과 같다. 설위設位: 신위(신주 또는 지방)를 모시는 자리를 마련한다. 진기陳器: 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을 늘어놓는 절차로, 이때 축문이나 지방을 작성한다. 진설陳設: 설소과設蔬果라고도 하는데, 포·잔·수저·실과·채소처럼 식어도 되는 제수祭需를 미리 진설한다. 출주出主: 신주를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곳으로 모셔오는 것인데, 지방을 붙이고 지내는 제사의 경우에는 이때 지방을 부착한다. 참신參神: 참사자 전원이 신위에 재배한다. 강신降神: 주인主人이 분향하고 술을 모사기茅沙器에 세 번 따른 다음 빈 잔을 원래의 자리에 올린다. 간혹 분향 이후에 재배하는 사례도 있다.신주를 모셨으면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을 써 붙였으면 강신을 먼저 한다. 진찬進饌: 진설에서 차리지 않은 나머지 제수를 진설한다. 초헌初獻: 주인이 신위에 첫 번째 잔을 올린다. 이때 적炙을 올리고 밥의 뚜껑을 연 다음, 축관이 주인의 서쪽에 앉아서 축문을 읽는다. 이어서 주인이 재배한다. 아헌亞獻: 신위에 두 번째 잔을 올린다. 『주자가례』에는 주부가 아헌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집안의 연장자나 주인의 동생이 하기도 한다. 종헌終獻: 신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린다. 보통 귀한 손님이나 사위, 연장자 등이 한다. 유식侑食: 주인이 종헌에서 다 채우지 않은 잔에 술을 가득 채우는 첨작添酌을 한 다음, 메에 숟가락을 꽂고 적이나 편에 젓가락을 올리는 삽시정저插匙正箸를 한다. 가정에 따라 계반삽시啓飯插匙를 하기도 하고 주인은 재배, 주부는 4배를 하기도 한다. 합문闔門: 조상이 음식을 드시도록 기다리는 절차이다. 제상 앞에 병풍을 친 후 참사자들은 부복하여 조상이 수저를 아홉 번 뜨는 시간만큼 기다린다. 계문啓門: 합문의 문을 연 다음 갱을 물로 바꾸고, 메 세 숟가락을 푸는 헌다獻茶를 진행한다. 물에 메를 푸는 것은 숭늉을 의미한다. 이후 조상신이 후식을 먹을 수 있도록 참사자는 선 자세로 묵념하는 국궁鞠躬을 한다. 국궁이 끝나면 집사자가 수저를 거두고, 메 등의 뚜껑을 닫는 철시복반撤匙覆飯을 행한다. 사신辭神: 참사자 전원이 재배하는 것으로, 신을 돌려 보내드린다. 납주納主: 신위를 사당으로 다시 모셔드린다. 지방으로 제사를 지낸 경우에는 지방을 태운다. 분축焚祝: 축문을 태운다. 철撤: 제수를 모두 거두어들인다. 준餕: 제관과 참사자들이 음복주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을 한다. 원래 기제사에는 음복 절차가 없으나 관행적으로 행한다. 2012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경상북도 안동에 거주하며 기제사를 지내는 500여 명의 시민들에게 실시한 「조상제사의 실태 및 의식 조사」를 살펴보면, 제삿날은 돌아가신 날(25.4%)보다 돌아가신 전날(74.6%)이 약 3배 가까이 더 많았다. 돌아가신 전날에 지낼 경우에는 밤 11시~12시 사이에 지내는 비율이 51.9%로 매우 높았다. 이것은 파제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경우에도 밤 11시~12시 사이에 지내는 비율이 31.7%로 가장 높았으며, 밤 8시~9시 사이에 지내는 것이 그다음이었다. 제사의 방식은 단설보다 합설을 하는 경우가 66.0%로 2배 이상 많았다. 축문은 생략하는 경우가 81.4%로 많았고, 술은 한 번이나 두 번 올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이는 관습에 따르거나 참사자의 인원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아헌을 주부가 하는 경우는 32.3%이며, 그 외에는 맏며느리 또는 며느리가 술을 올렸다. 돌아가신 조상을 한꺼번에 모셔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5.6%로 적었으나, 합사할 경우에는 남녀 모든 조상을 한꺼번에 지내거나 여성의 제사를 생략하고 남성과 함께 지내는 사례가 비등했다. 기제사에서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은 제물의 종류와 조리법, 참사자의 대상이었다. 즉, 제물의 종류와 조리법이 간소화였으며, 참사자의 대상이 가족 중심으로 변화했다. 우리말에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는데, 의례를 행하는 예법이 가정마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제사 역시 가정마다 예법의 차이가 있어 제사 시간, 절차, 제물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기제사는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제의 절차와 고향 땅까지 이동하는 고단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기제사의 전통이 유지되는 것은, 기제사를 통해 조상을 숭배하고 예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징 및 의의

기제사는 유교 제사의 기본이 되는 제사로서 조상에게 예를 다하고, 친족 간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교의례에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하는 기제사는 유교적 전통문화에서 ‘효’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특히 기제사는 사대봉사를 원칙으로 하여 생전 면식面識이 있는 조상에 대한 예와 효를 다하고자한 것이다.

참고문헌

우리의 전통예절(김득중・유송옥・황혜성, 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8), 전통적 기제사를 통해 본 조상관(배영동, 비교민속학23, 비교민속학회, 2002), 제사와 제례문화(박원재・유권종・배영동 외, 한국국학진흥원, 2002),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이욱 외, 한국국학진흥원, 2012),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