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조효숙(趙孝淑)
갱신일 2018-10-04

정의

식물성 혹은 동물성 재료에서 추출한 섬유를 잣거나 꼬아서 만든 두 가닥의 실을 도구를 사용하여 가로 세로로 엮어 만든 구조물.

역사

직물織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기록은 『한서漢書』에 나타난다.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예의를 가르치고 농사짓고 누에치며 직물을 짰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이미 B.C. 12세기경에도 우리 조상들은 양잠을 하며 견직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국지三國志』, 『한서漢書』, 『한원翰苑』에는 북쪽의 부족 국가인 부여와 동예, 남쪽의 마한·진한·변한의 직물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명칭을 언급하였다. 이미 삼한三韓과 예濊 등 한반도 전역에서 종마種麻와 양잠하는 법을 알았고, 당시에 생산된 직물의 종류는 베와 같은 마포麻布는 물론이며 지금의 명주와 같은 면포綿布, 경사의 밀도를 치밀하게 짠 겸포縑布, 폭이 넓고 섬세하게 짠 광폭세포 등의 견직물 등이었다. 부여에서는 출국 시에 증繒·수繡·금錦이라는 고급 견직물과 계罽라는 모직물로 만든 의복을 즐겨 착용했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에 이미 우리 조상들은 상당한 수준의 견직물과 모직물을 생산하고 사용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주목되는 직물은 삼한에서 제직한 겸포와 부여의 기록에 금錦이라는 직물 명칭이다. 겸은 위사에 비하여 경사의 밀도가 두 배 정도 치밀하여 매우 섬세한 견직물이며, 금은 다양하게 염색한 실로 중조직에 의해 무늬를 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견직물이다.
우리나라의 고대사회에 직물 생산을 유추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는 다음과 같다. B.C. 6000~5000년의 평안북도 온천 궁산리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가락바퀴와 마사麻絲가 끼어 있는 상태의 바늘이 출토되었고, 함경북도 웅기 서포항 유적지와 황해도 붕산 지탑리 유적지에서도 다량의 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중기의 유적지인 요동반도의 곽가촌 유적에서도 다량의 가락바퀴와 짐승뼈를 갈아 만든 북도 출토되었으므로 이미 신석기시대 때부터 직물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입증한다.
그 밖에도 고조선의 유적지에서는 몇 점의 직물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중국 길림성 영길현 성성초星星哨 유적에서는 평직으로 짠 모직물 잔편이 나왔고, 대동강 유역의 평양 정백동 유적에서는 평직의 겸縑이, 석암리 유적에서는 겸·면주綿紬·사紗로 보이는 직물이, 오야리 유적 등에서는 겸·사·라羅의 잔편이 발굴되었다. 특히 정백동 유적과 석암리 유적에서는 요령성과 한반도 지역의 특징을 보여 주는 세형동검과 ‘부조예군夫租濊君’이라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에서 사용하였던 관직명이 새겨진 은으로 만든 도장이 함께 출토되어 고고학 분야에서 이들 고분이 B.C. 2~3세기의 고조선 유적지로 밝혀진 바 있다. 오야리의 유적도 일제강점기의 보고서에 의해 한사군의 낙랑군 유적으로 보아 왔으나 고조선의 유적지로 보는 새로운 견해가 있다. 부여의 유적지인 길림성 모아산 유적에서는 중조직의 금錦·사·견絹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는 고조선부터 견직물과 모직물 생산이 가능하였고, 『삼국지』의 “부여 사람들이 출국 시에 증·수·금·계로 만든 옷을 입었다.”라는 기록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이다.

내용

직물은 두 올의 실을 직기를 활용하여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가로와 세로로 교차되면서 짜인 천이다. 세로로 걸어 놓은 실을 ‘경사經絲’라 하고, 가로로 보내는 실을 ‘위사緯絲’라 한다. 직물에서 경사와 위사가 교차한 상태를 직물의 ‘조직’이라고 하며 평직平織·능직綾織·수자직繻子織 등 기본이 되는 조직을 ‘삼원조직三原組織’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익조직搦組織·이중직二重織·교직交織·첨모직添毛織 등으로 제직한 직물도 있다. 이러한 조직들이 여러 가지로 변화, 혼합되면서 다양한 직물을 짜내게 된다. 또한 직물은 사용한 섬유의 종류에 따라 면직물綿織物·마직물麻織物·모직물毛織物·견직물絹織物·교직물交織物 등으로 나눈다. 그 밖에 무늬의 유무에 따라 문직물紋織物·무문직물無紋織物, 염색 방법에 따라 선염직물先染織物·후염직물後染織物·날염직물捺染織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평직平織, plain weave은 경사와 위사가 한 올씩 상하 교대로 교차하여 교차점이 균형 있게 드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직물 조직으로 직물의 발생과 함께 가장 먼저 출현하였다. 씨실과 날실이 각각 한 올씩 번갈아 상하로 교차하고, 일완전조직은 날실 2올과 씨실 2올로 이루어진다. 교차점이 많아서 천이 튼튼하지만,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 편이다. 현재 사용되는 평직으로 짠 견직물은 명주明紬로 단순화되었지만 고대에는 사용한 견 섬유의 종류 및 품질에 따라 주紬·초綃·시絁·제綈·호縞· 환紈·겸縑·사紗·곡縠·추사縐絲·면주綿紬 등으로 매우 다양한 명칭이 있었다.
능직綾織, twill weave은 직물 표면에 날실과 씨실의 조직점이 능선 또는 사선을 나타내는 조직이다. 능직은 사선으로 무늬를 이루어 ‘사문직斜紋織’이라고도 부르며 평직·수자직과 함께 직물의 삼원조직 중 하나이다. 가장 일반적인 능직의 교착점은 계단식으로 계속 이어감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경·위사는 3올 이상으로 이루어진다. 고대부터 견 섬유를 능직으로 짠 직물을 ‘능綾’이라 호칭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부터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대체로 얇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 평직에 비하여 부드럽고 탄력성이 좋다. 능선은 동일 직물의 양 측면에 형성되며, 사선 방향은 우향right handed(Z자 방향)과 좌향left handed(S자 방향)의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를 ‘우능右綾’, 후자를 ‘좌능左綾’이라고 한다. 능직의 가장 간단한 조직은 삼매릉三枚綾이며, 사문斜紋의 경사도에 따라 정칙능직正則綾織과 변화능직變化綾織으로 나눌 수 있다.
수자직繻子織·朱子織, satin weave은 경사와 위사의 조직점을 될 수 있으면 적게 하면서 조직점을 연결시키지 않고 분산시켜 경사 또는 위사만 돋보이게 한 직물이다. 경사가 많이 나타나면 ‘경수자직’, 위사가 많이 나타나면 ‘위수자직’이라 한다. 수자직은 ‘주자직朱子織’이라고도 하며 평직·능직과 함께 직물의 삼원조직 중 하나이다. 직물 조직을 구성하는 일단위인 일완전조직一完全組織(one-repeat)에서 경사는 단 한 번씩 위사와 교차하기 때문에, 직물의 표면에 경사 또는 위사만 올라와 다른 직물에 비하여 광택이 많다. 수자직은 고대 직물 조직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조직으로, 기원이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8~9세기에 이미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기에 처음으로 유물이 나타났으며, 조선시대가 되면서 수자직은 매우 중요한 직조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수자직의 종류에는 경사를 많이 뜨게 한 경수자經繻子와 위사를 많이 뜨게 한 위수자緯繻子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경수자가 많고 무늬가 있는 경우 바탕을 경수자, 무늬를 위수자로 한다. 수자직은 일완전조직이 너무 커지면 실의 뜨는 부분이 너무 길어지므로 5매 혹은 8매 수자직이 많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조선 중기까지는 5매 수자직이, 조선 후기에는 8매 수자직이 많다. 수자직의 내구력은 평직이나 능직에 미치지 못하나 부드럽고 광택이 좋은 직물을 짤 수 있다.
익조직搦組織, gauze and leno weave은 경사가 서로 평행하지 않고 2올 이상의 경사들이 1올 또는 수 올의 위사 사이에 서로 교차하는 직조 방법이다. 일반 직물은 경사가 평행인 데 반하여 익조직은 인접 배열되어 있는 2올의 경사가 서로 꼬이면서 짜이는 것이 특징이다. 익조직으로 직조한 익직물은 경사가 서로 꼬임으로써 틈이 있는 구조를 이루어 반투명하다. 익직물은 얇고 통기성이 좋기 때문에 여름용 옷감으로 널리 쓰이며, 어망·모기장·체 등에도 쓰인다. 익직물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紗, 라羅를 들 수 있다.
중조직重組織, compound weave은 경사나 위사 중에 한 종류 혹은 경사와 위사 모두를 이중으로 하여 무늬를 표출하는 방법이다. 중조직은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의 색실을 써서 안팎이 각각 다른 색 무늬가 나타나도록 한다. 종류로는 경사만을 이용해서 짠 ‘경이중직’, 위사만을 이용해서 짠 ‘위이중직’, 경사와 위사를 모두 이용한 ‘경위이중직’ 등이 있다. 우리나라 고대의 대표적인 중조직인 금錦도 무늬를 표현하기 위하여 별도의 경사나 위사를 사용하여 제직하였다. 각종 색사色絲를 사용하여 무늬를 짠 것은 금錦이라 불렀고, 금사金絲·은사銀絲를 사용하여 무늬를 짠 것은 직금織金이라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금錦의 생산은 사라지고 대부분 금사나 은사를 위사에 이중으로 사용하여 직조한 직금 직물을 주로 생산하였다. 현대의 한복 직물인 양단은 위사를 이중으로 해서 기본 조직과 무늬 조직을 번갈아 가면서 무늬를 짠 중조직이다.
교직交織, mixture fabric은 경·위사에 서로 다른 종류의 실을 사용하여 제직한 직물이다. 일반적으로 경사 전체를 한 가지 종류의 실로만 제직하고 위사는 경사와 다른 종류의 실로 제직한다. 이렇게 제직된 교직물은 한 가닥의 실에 서로 다른 섬유가 섞여 있는 혼방직물blended fabric과는 구별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교직의 종류를 원사原絲의 종류에 따라 견사와 면사를 교직한 ‘사면교직絲綿交織’과 견사와 마사를 교직한 ‘사마교직絲麻交織’, 견사와 저사를 교직한 ‘사저교직絲紵交織’ 등으로 구분하였다. 교직에 관한 기록은 1419년(세종 1)에 황제에게 사마교직포·사저교직포 등을 진상하였고, 1429년(세종 11)에 19승 사마교직포 등을 생산했으며, 1557년(명종 12)에 사면교직은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미 의복으로 착용한 지가 오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498년(연산군 4)에 유생들에게 사치를 금하는 조항 중에 교직을 금한 기록이 있으며, 1508년(중종 3)에 사치스러운 풍속을 단속하기 위해 교직단령의 착용을 금하였지만 더러 입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 말기에 나타난 견면교직에 관한 기록으로 「의복발기」에는 ‘반주班紬·생사반주·원주·저주’가 있으며, 1915년 『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반주班紬, 半紬·아량주·원주元紬, 原紬·양저주洋紵紬·문양저주紋洋紵紬·목저주木紵紬’가 있다. 교직은 최원립 등 출토복식을 비롯하여 15~18세기 유물에도 고루 나타난다.
첨모직添毛織, pile weave은 짧은 파일섬유가 표면에 덮인 특수 조직으로 ‘파일직’이라고도 하며, 직물 표면의 실을 잘라서 마치 우모羽毛로 덮은 듯 보이는 것과 직물 표면의 실을 자르지 않고 고리의 모양을 나타낸 타월towels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첨모직은 파일을 위사로 형성할 때와 경사로 형성할 때가 있는데, 전자를 ‘위파일직’, 후자를 ‘경파일직’이라고 한다. 위파일직은 위이중직의 응용으로, 한 종류의 경·위사로 바탕 조직을 이루고 여기에 다시 특별한 위사, 즉 파일 위사로 파일을 이룬 것이다. 바탕 위사는 견고한 바탕 조직을 얻기 위하여 경사와 치밀하게 직조하고, 파일 위사는 직물 표면에 느슨하게 띄워 직조 후 길게 뜬 위사를 자르지 않은 채 고리를 만들어 파일을 형성한다. 경파일직은 경이중직의 응용이며, 한 가지의 경·위사로 바탕 조직을 만들고 다시 다른 경사를 배열하여 이것으로 직물 표면에 파일 혹은 고리를 이루도록 한 직물이다. 경파일직은 주로 위사에 철사鐵絲를 넣어 파일을 만드는데, 이러한 방법을 ‘철사법’이라고 한다. 철사법은 홈이 파인 철사를 위사에 넣고 제직 후 홈에 따라 절단하거나, 끝이 날카로운 철사를 넣고 제직한 후 철사를 뽑으면 파일 경사가 절단되어 컷파일cut pile을 형성하게 된다. 첨모직 직물은 요즈음의 벨벳과 같은 모습이며 중국에서 청대淸代에 생산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사용 기록이 없으며 조선 말기의 요대腰帶등 소수의 유물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였던 전통 직물은 견직물·면직물·마직물이며, 드물기는 하지만 부족국가 시대부터 모직물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통 견직물의 명칭은 사紗·라羅·능綾·단緞·주紬·초綃·견絹·금錦·저사紵紗 등으로 기록되었다. 면직물 명칭은 면포·무명·백첩포白氎布이며, 모직물은 전氈·계罽·담毯, 마직물은 저포苧布·마포麻布·갈葛 등으로 기록되었다.
견직물은 상류층이 애용하던 옷감으로 직조방법은 평직·능직·수자직·익조직·중조직으로 다양하다. 평직으로 제작된 견직물이라 하더라도 사용한 견사의 상태와 밀도에 따라 견絹·초綃·주紬·추사縐紗 등으로 다양하다.
견은 가장 상등품의 장견사로 제직하여 씨줄과 날줄의 굵기가 균질하므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직물이다. ‘견자’ 또는 ‘깁’으로 불렸다. 잿물에 정련하여 광택이 많이 나는 ‘수광견’, 다듬이질하여 손질한 ‘전견’ 등이 기록에 나타난다.
초 역시 품질이 좋은 장견사로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정련하지 않은 생사로 제직하므로 ‘생초生綃’라고도 한다. 얇고 가벼우며 빳빳한 특성을 지닌다. 생초와 실의 굵기와 밀도는 같으나 미리 정련하여 부드럽게 만든 숙사熟絲로 제직한 ‘숙초熟綃’도 있다. 초는 씨줄과 날줄의 밀도가 주보다 높지만 워낙 실이 가늘기 때문에 얇고 반투명해 보인다.
주는 중등품의 견사로 제직한 평견직물이다. 토주· 면주·정주·수주 등이 있다. 토주와 면주는 꼬임이 있는 견방사로 제직하여 광택이 없고 면직물과 같은 물성을 보인다. 특히 토주는 질기고 따뜻하며 실이 많이 들어 가격이 보통 주의 두 배나 된다고 하였다. 견사와 면사를 교직한 사면교직은 조선 후기에는 ‘아랑주’ 혹은 ‘반주’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계속 생산되었다. 그 밖에도 문헌에 기록된 주는 노주주·화사주·방사주·화방주·수화주· 경광주·장원주·삼팔주·왜주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추사 역시 평직으로 제직한 견직물로 Z방향과 S방향의 강한 꼬임을 준 날줄을 교대로 넣어 마치 요즘의 지지미 원단과 같이 표면이 까슬까슬한 물성을 보이며 중량감이 있는 직물이다. 17세기 후반부터 화문단 사용을 금지하자 무늬가 없는 추사가 한때 매우 유행하였다. 그 외에 바탕은 평직이지만 능직이나 수자직으로 무늬를 제작한 화문주花紋紬가 있다.
능은 주에 비해 치밀하고 탄력이 좋은 견직물로 능직으로 직조하여 직물 표면에 사선이 나타난다. 문헌에는 무늬가 없는 소릉素綾 혹은 무문릉無紋綾과 무늬가 있는 화문릉花紋綾, 특별히 작은 무늬가 있는 소문릉小紋綾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단은 수자직으로 직조하여 흔히 ‘양단’이나 ‘공단’으로 부르는 옷감이다. 조선시대의 단은 주로 바탕은 경수자직, 무늬는 위수자직으로 직조하였으며, 사선 방향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음영으로 무늬를 표현한다. 조선시대의 단 중에서 특별히 선호되었던 옷감은 구름무늬가 시문된 ‘운문단’, 연꽃무늬가 시문된 ‘연화문단’, 사계절꽃이 시문된 직물은 ‘사양화문단’이 있다. 또한 화문단 바탕에 특정한 무늬 부분에만 금사나 은사를 이중으로 화려하게 넣어 제직한 직물은 ‘금선단金線緞’이라 불렀는데 특별히 상류층에서만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단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기의 유물이다. 1346년에 장곡사 철조약사불을 조성할 때 넣은 복장 유물로서 5매 수자직의 백색의 무문단 조각이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는 아직 단은 보편적인 옷감은 아니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상류층에서 선호하는 고급 옷감으로 확산되었다. 조선 전기인 17세기까지의 단은 대부분 5매 수자직으로 되었으나, 18세기 무렵부터 8매 수자직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19세기가 되면 대부분 단류가 8매 수자직으로 제직되었다. 이러한 조직의 변화는 제사 기술의 발달로 인해 좀 더 가늘고 균질한 견사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문헌에 5매 수자직 단은 ‘오사단五絲緞’ 8매 수자직 단은 ‘팔사단八絲緞’ 등의 명칭으로 기록되었다.
사와 라는 익조직으로 제직된 직물로 인접한 2~4올의 경사끼리 꼬임을 주면서 위사를 위입하여 직물의 투공 효과가 있다. 사는 주로 2올의 경사를 교차하였으며 숙고사·생고사·갑사·화문사·도류사·운문사·화문사· 순인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한편 3~4올의 경사를 교차시켜 만든 라는 고려시대에 매우 유행하였으며 조선 중기까지도 고려시대만큼은 아니라도 드물게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 말기가 되면 제직법을 단순화시킨 ‘항라’가 유행하였다.
면직물은 ‘목면’ 혹은 ‘무명’ 등으로 호칭되었는데, 수종樹種과 생산 시기에 따라 실의 품질이 다르고 치밀한 정도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 일반적인 옷감용 무명은 8승이나 9승이며, 가장 고운 것은 34승 목면이라는 기록도 있다. 흔히 알고 있는 ‘광목’은 20수 이내의 굵은 면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짠 후 정련과 표백을 하지 않은 투박한 면직물로, 폭이 30 미만의 재래식 무명에 비하여 폭을 넓게 짜서 광목이라고 불렀다. 30수 정도의 가는 면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제직한 후 하얗게 표백·정련한 면직물을 ‘옥양목’이라고 불렀으며 옥같이 하얗다는 의미이다. 조선 말기에 면직물이 발달한 영국에서 수입한 면직물을 ‘옥양목’, ‘백양목’ 혹은 ‘서양포’라고도 기록하였다. 「궁중발기」에도 의대용으로 옥양목, 서양포가 기록되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19세기에 직물 명산지가 형성되었는데, 세면포의 산지는 경기도 고양, 충청남도 논산과 강경이 유명하다.
마직물에는 베와 모시가 있는데 ‘저포’, ‘저마’, ‘모시포’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8승, 9승이 일반적이나 고운 것은 15승 이상으로 제직하며, 특히 함경도 육진 지방에서 생산되는 베는 품질이 매우 좋아 특별히 ‘동포’, ‘육진세포’라 하였으며, 절에서 공양할 때 쓰는 바리속에 한 필이 들어갈 만큼 가늘고 섬세하여 ‘바리내포’라고도 하였다. 모시의 산지는 한산·서천·비인·남포·청양, 베의 산지는 함경도 회령·경원·온성 등이 유명하였다.
모직물은 모섬유를 축융시켜 만든 펠트인 전氈과 경사와 위사로 직조한 계罽와 담毯이 생산되었다.

특징 및 의의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상의원尙衣院(조선 왕실의 의복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각종 견직물을 생산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상의원 소속의 공장工匠은 모두 597명이었으며, 그중 직물 생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장인만 264명으로 다른 수공업 분야에 비하여 직조 수공업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다. 합사장合絲匠 10명과 연사장練絲匠 75명은 실을 정련하고 합사하는 등 실을 만드는 작업을 하며, 홍염장紅染匠 10명, 청염장靑染匠 10명은 염색 작업을 하고, 능라장綾羅匠 105명과 방직장紡織匠 20명은 사·라·능·단 같은 고급 직물들을 생산하였다. 이때 10명의 성장筬匠이 직기의 바디를 만들고 수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또한 재금장裁金匠 4명, 금박장金箔匠 4명, 사금장絲金匠 4명 등은 금선단金線緞을 제직하는 데 필요한 금사와 금박을 만들었다. 도침장擣砧匠 14명은 제직된 직물에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하는 후처리 과정에 종사하였다. 이렇듯 궁중 안의 직물 생산 과정 내에서는 분업 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영 직물 생산 기관은 상의원 이외에도 직물 생산과 관련된 호조戶曹 소속의 내자시內資寺·내첨시內贍寺·제용감濟用監 등에도 방직장·성장·홍염장·청염장·도침장 등이 있어 직물 생산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朝鮮女俗考, 朝鮮王朝實錄,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국사편찬위원회, 두산동아, 2006), 우리나라 전통무늬1-직물(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직물조직학(우범식, 문운당, 1971), 패션전문자료사전(패션전문자료편찬위원회, 한국사전연구사, 1997).

직물

직물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조효숙(趙孝淑)
갱신일 2018-10-04

정의

식물성 혹은 동물성 재료에서 추출한 섬유를 잣거나 꼬아서 만든 두 가닥의 실을 도구를 사용하여 가로 세로로 엮어 만든 구조물.

역사

직물織物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기록은 『한서漢書』에 나타난다.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예의를 가르치고 농사짓고 누에치며 직물을 짰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이미 B.C. 12세기경에도 우리 조상들은 양잠을 하며 견직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국지三國志』, 『한서漢書』, 『한원翰苑』에는 북쪽의 부족 국가인 부여와 동예, 남쪽의 마한·진한·변한의 직물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명칭을 언급하였다. 이미 삼한三韓과 예濊 등 한반도 전역에서 종마種麻와 양잠하는 법을 알았고, 당시에 생산된 직물의 종류는 베와 같은 마포麻布는 물론이며 지금의 명주와 같은 면포綿布, 경사의 밀도를 치밀하게 짠 겸포縑布, 폭이 넓고 섬세하게 짠 광폭세포 등의 견직물 등이었다. 부여에서는 출국 시에 증繒·수繡·금錦이라는 고급 견직물과 계罽라는 모직물로 만든 의복을 즐겨 착용했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에 이미 우리 조상들은 상당한 수준의 견직물과 모직물을 생산하고 사용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주목되는 직물은 삼한에서 제직한 겸포와 부여의 기록에 금錦이라는 직물 명칭이다. 겸은 위사에 비하여 경사의 밀도가 두 배 정도 치밀하여 매우 섬세한 견직물이며, 금은 다양하게 염색한 실로 중조직에 의해 무늬를 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견직물이다.우리나라의 고대사회에 직물 생산을 유추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는 다음과 같다. B.C. 6000~5000년의 평안북도 온천 궁산리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가락바퀴와 마사麻絲가 끼어 있는 상태의 바늘이 출토되었고, 함경북도 웅기 서포항 유적지와 황해도 붕산 지탑리 유적지에서도 다량의 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중기의 유적지인 요동반도의 곽가촌 유적에서도 다량의 가락바퀴와 짐승뼈를 갈아 만든 북도 출토되었으므로 이미 신석기시대 때부터 직물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입증한다.그 밖에도 고조선의 유적지에서는 몇 점의 직물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중국 길림성 영길현 성성초星星哨 유적에서는 평직으로 짠 모직물 잔편이 나왔고, 대동강 유역의 평양 정백동 유적에서는 평직의 겸縑이, 석암리 유적에서는 겸·면주綿紬·사紗로 보이는 직물이, 오야리 유적 등에서는 겸·사·라羅의 잔편이 발굴되었다. 특히 정백동 유적과 석암리 유적에서는 요령성과 한반도 지역의 특징을 보여 주는 세형동검과 ‘부조예군夫租濊君’이라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에서 사용하였던 관직명이 새겨진 은으로 만든 도장이 함께 출토되어 고고학 분야에서 이들 고분이 B.C. 2~3세기의 고조선 유적지로 밝혀진 바 있다. 오야리의 유적도 일제강점기의 보고서에 의해 한사군의 낙랑군 유적으로 보아 왔으나 고조선의 유적지로 보는 새로운 견해가 있다. 부여의 유적지인 길림성 모아산 유적에서는 중조직의 금錦·사·견絹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는 고조선부터 견직물과 모직물 생산이 가능하였고, 『삼국지』의 “부여 사람들이 출국 시에 증·수·금·계로 만든 옷을 입었다.”라는 기록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이다.

내용

직물은 두 올의 실을 직기를 활용하여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가로와 세로로 교차되면서 짜인 천이다. 세로로 걸어 놓은 실을 ‘경사經絲’라 하고, 가로로 보내는 실을 ‘위사緯絲’라 한다. 직물에서 경사와 위사가 교차한 상태를 직물의 ‘조직’이라고 하며 평직平織·능직綾織·수자직繻子織 등 기본이 되는 조직을 ‘삼원조직三原組織’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익조직搦組織·이중직二重織·교직交織·첨모직添毛織 등으로 제직한 직물도 있다. 이러한 조직들이 여러 가지로 변화, 혼합되면서 다양한 직물을 짜내게 된다. 또한 직물은 사용한 섬유의 종류에 따라 면직물綿織物·마직물麻織物·모직물毛織物·견직물絹織物·교직물交織物 등으로 나눈다. 그 밖에 무늬의 유무에 따라 문직물紋織物·무문직물無紋織物, 염색 방법에 따라 선염직물先染織物·후염직물後染織物·날염직물捺染織物 등으로 나눌 수 있다.평직平織, plain weave은 경사와 위사가 한 올씩 상하 교대로 교차하여 교차점이 균형 있게 드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직물 조직으로 직물의 발생과 함께 가장 먼저 출현하였다. 씨실과 날실이 각각 한 올씩 번갈아 상하로 교차하고, 일완전조직은 날실 2올과 씨실 2올로 이루어진다. 교차점이 많아서 천이 튼튼하지만,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 편이다. 현재 사용되는 평직으로 짠 견직물은 명주明紬로 단순화되었지만 고대에는 사용한 견 섬유의 종류 및 품질에 따라 주紬·초綃·시絁·제綈·호縞· 환紈·겸縑·사紗·곡縠·추사縐絲·면주綿紬 등으로 매우 다양한 명칭이 있었다.능직綾織, twill weave은 직물 표면에 날실과 씨실의 조직점이 능선 또는 사선을 나타내는 조직이다. 능직은 사선으로 무늬를 이루어 ‘사문직斜紋織’이라고도 부르며 평직·수자직과 함께 직물의 삼원조직 중 하나이다. 가장 일반적인 능직의 교착점은 계단식으로 계속 이어감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경·위사는 3올 이상으로 이루어진다. 고대부터 견 섬유를 능직으로 짠 직물을 ‘능綾’이라 호칭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부터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대체로 얇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 평직에 비하여 부드럽고 탄력성이 좋다. 능선은 동일 직물의 양 측면에 형성되며, 사선 방향은 우향right handed(Z자 방향)과 좌향left handed(S자 방향)의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를 ‘우능右綾’, 후자를 ‘좌능左綾’이라고 한다. 능직의 가장 간단한 조직은 삼매릉三枚綾이며, 사문斜紋의 경사도에 따라 정칙능직正則綾織과 변화능직變化綾織으로 나눌 수 있다.수자직繻子織·朱子織, satin weave은 경사와 위사의 조직점을 될 수 있으면 적게 하면서 조직점을 연결시키지 않고 분산시켜 경사 또는 위사만 돋보이게 한 직물이다. 경사가 많이 나타나면 ‘경수자직’, 위사가 많이 나타나면 ‘위수자직’이라 한다. 수자직은 ‘주자직朱子織’이라고도 하며 평직·능직과 함께 직물의 삼원조직 중 하나이다. 직물 조직을 구성하는 일단위인 일완전조직一完全組織(one-repeat)에서 경사는 단 한 번씩 위사와 교차하기 때문에, 직물의 표면에 경사 또는 위사만 올라와 다른 직물에 비하여 광택이 많다. 수자직은 고대 직물 조직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조직으로, 기원이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8~9세기에 이미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기에 처음으로 유물이 나타났으며, 조선시대가 되면서 수자직은 매우 중요한 직조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수자직의 종류에는 경사를 많이 뜨게 한 경수자經繻子와 위사를 많이 뜨게 한 위수자緯繻子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경수자가 많고 무늬가 있는 경우 바탕을 경수자, 무늬를 위수자로 한다. 수자직은 일완전조직이 너무 커지면 실의 뜨는 부분이 너무 길어지므로 5매 혹은 8매 수자직이 많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조선 중기까지는 5매 수자직이, 조선 후기에는 8매 수자직이 많다. 수자직의 내구력은 평직이나 능직에 미치지 못하나 부드럽고 광택이 좋은 직물을 짤 수 있다.익조직搦組織, gauze and leno weave은 경사가 서로 평행하지 않고 2올 이상의 경사들이 1올 또는 수 올의 위사 사이에 서로 교차하는 직조 방법이다. 일반 직물은 경사가 평행인 데 반하여 익조직은 인접 배열되어 있는 2올의 경사가 서로 꼬이면서 짜이는 것이 특징이다. 익조직으로 직조한 익직물은 경사가 서로 꼬임으로써 틈이 있는 구조를 이루어 반투명하다. 익직물은 얇고 통기성이 좋기 때문에 여름용 옷감으로 널리 쓰이며, 어망·모기장·체 등에도 쓰인다. 익직물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紗, 라羅를 들 수 있다.중조직重組織, compound weave은 경사나 위사 중에 한 종류 혹은 경사와 위사 모두를 이중으로 하여 무늬를 표출하는 방법이다. 중조직은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의 색실을 써서 안팎이 각각 다른 색 무늬가 나타나도록 한다. 종류로는 경사만을 이용해서 짠 ‘경이중직’, 위사만을 이용해서 짠 ‘위이중직’, 경사와 위사를 모두 이용한 ‘경위이중직’ 등이 있다. 우리나라 고대의 대표적인 중조직인 금錦도 무늬를 표현하기 위하여 별도의 경사나 위사를 사용하여 제직하였다. 각종 색사色絲를 사용하여 무늬를 짠 것은 금錦이라 불렀고, 금사金絲·은사銀絲를 사용하여 무늬를 짠 것은 직금織金이라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금錦의 생산은 사라지고 대부분 금사나 은사를 위사에 이중으로 사용하여 직조한 직금 직물을 주로 생산하였다. 현대의 한복 직물인 양단은 위사를 이중으로 해서 기본 조직과 무늬 조직을 번갈아 가면서 무늬를 짠 중조직이다.교직交織, mixture fabric은 경·위사에 서로 다른 종류의 실을 사용하여 제직한 직물이다. 일반적으로 경사 전체를 한 가지 종류의 실로만 제직하고 위사는 경사와 다른 종류의 실로 제직한다. 이렇게 제직된 교직물은 한 가닥의 실에 서로 다른 섬유가 섞여 있는 혼방직물blended fabric과는 구별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교직의 종류를 원사原絲의 종류에 따라 견사와 면사를 교직한 ‘사면교직絲綿交織’과 견사와 마사를 교직한 ‘사마교직絲麻交織’, 견사와 저사를 교직한 ‘사저교직絲紵交織’ 등으로 구분하였다. 교직에 관한 기록은 1419년(세종 1)에 황제에게 사마교직포·사저교직포 등을 진상하였고, 1429년(세종 11)에 19승 사마교직포 등을 생산했으며, 1557년(명종 12)에 사면교직은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미 의복으로 착용한 지가 오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498년(연산군 4)에 유생들에게 사치를 금하는 조항 중에 교직을 금한 기록이 있으며, 1508년(중종 3)에 사치스러운 풍속을 단속하기 위해 교직단령의 착용을 금하였지만 더러 입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 말기에 나타난 견면교직에 관한 기록으로 「의복발기」에는 ‘반주班紬·생사반주·원주·저주’가 있으며, 1915년 『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반주班紬, 半紬·아량주·원주元紬, 原紬·양저주洋紵紬·문양저주紋洋紵紬·목저주木紵紬’가 있다. 교직은 최원립 등 출토복식을 비롯하여 15~18세기 유물에도 고루 나타난다.첨모직添毛織, pile weave은 짧은 파일섬유가 표면에 덮인 특수 조직으로 ‘파일직’이라고도 하며, 직물 표면의 실을 잘라서 마치 우모羽毛로 덮은 듯 보이는 것과 직물 표면의 실을 자르지 않고 고리의 모양을 나타낸 타월towels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첨모직은 파일을 위사로 형성할 때와 경사로 형성할 때가 있는데, 전자를 ‘위파일직’, 후자를 ‘경파일직’이라고 한다. 위파일직은 위이중직의 응용으로, 한 종류의 경·위사로 바탕 조직을 이루고 여기에 다시 특별한 위사, 즉 파일 위사로 파일을 이룬 것이다. 바탕 위사는 견고한 바탕 조직을 얻기 위하여 경사와 치밀하게 직조하고, 파일 위사는 직물 표면에 느슨하게 띄워 직조 후 길게 뜬 위사를 자르지 않은 채 고리를 만들어 파일을 형성한다. 경파일직은 경이중직의 응용이며, 한 가지의 경·위사로 바탕 조직을 만들고 다시 다른 경사를 배열하여 이것으로 직물 표면에 파일 혹은 고리를 이루도록 한 직물이다. 경파일직은 주로 위사에 철사鐵絲를 넣어 파일을 만드는데, 이러한 방법을 ‘철사법’이라고 한다. 철사법은 홈이 파인 철사를 위사에 넣고 제직 후 홈에 따라 절단하거나, 끝이 날카로운 철사를 넣고 제직한 후 철사를 뽑으면 파일 경사가 절단되어 컷파일cut pile을 형성하게 된다. 첨모직 직물은 요즈음의 벨벳과 같은 모습이며 중국에서 청대淸代에 생산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사용 기록이 없으며 조선 말기의 요대腰帶등 소수의 유물이 남아있다.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였던 전통 직물은 견직물·면직물·마직물이며, 드물기는 하지만 부족국가 시대부터 모직물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통 견직물의 명칭은 사紗·라羅·능綾·단緞·주紬·초綃·견絹·금錦·저사紵紗 등으로 기록되었다. 면직물 명칭은 면포·무명·백첩포白氎布이며, 모직물은 전氈·계罽·담毯, 마직물은 저포苧布·마포麻布·갈葛 등으로 기록되었다.견직물은 상류층이 애용하던 옷감으로 직조방법은 평직·능직·수자직·익조직·중조직으로 다양하다. 평직으로 제작된 견직물이라 하더라도 사용한 견사의 상태와 밀도에 따라 견絹·초綃·주紬·추사縐紗 등으로 다양하다.견은 가장 상등품의 장견사로 제직하여 씨줄과 날줄의 굵기가 균질하므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직물이다. ‘견자’ 또는 ‘깁’으로 불렸다. 잿물에 정련하여 광택이 많이 나는 ‘수광견’, 다듬이질하여 손질한 ‘전견’ 등이 기록에 나타난다.초 역시 품질이 좋은 장견사로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정련하지 않은 생사로 제직하므로 ‘생초生綃’라고도 한다. 얇고 가벼우며 빳빳한 특성을 지닌다. 생초와 실의 굵기와 밀도는 같으나 미리 정련하여 부드럽게 만든 숙사熟絲로 제직한 ‘숙초熟綃’도 있다. 초는 씨줄과 날줄의 밀도가 주보다 높지만 워낙 실이 가늘기 때문에 얇고 반투명해 보인다.주는 중등품의 견사로 제직한 평견직물이다. 토주· 면주·정주·수주 등이 있다. 토주와 면주는 꼬임이 있는 견방사로 제직하여 광택이 없고 면직물과 같은 물성을 보인다. 특히 토주는 질기고 따뜻하며 실이 많이 들어 가격이 보통 주의 두 배나 된다고 하였다. 견사와 면사를 교직한 사면교직은 조선 후기에는 ‘아랑주’ 혹은 ‘반주’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계속 생산되었다. 그 밖에도 문헌에 기록된 주는 노주주·화사주·방사주·화방주·수화주· 경광주·장원주·삼팔주·왜주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추사 역시 평직으로 제직한 견직물로 Z방향과 S방향의 강한 꼬임을 준 날줄을 교대로 넣어 마치 요즘의 지지미 원단과 같이 표면이 까슬까슬한 물성을 보이며 중량감이 있는 직물이다. 17세기 후반부터 화문단 사용을 금지하자 무늬가 없는 추사가 한때 매우 유행하였다. 그 외에 바탕은 평직이지만 능직이나 수자직으로 무늬를 제작한 화문주花紋紬가 있다.능은 주에 비해 치밀하고 탄력이 좋은 견직물로 능직으로 직조하여 직물 표면에 사선이 나타난다. 문헌에는 무늬가 없는 소릉素綾 혹은 무문릉無紋綾과 무늬가 있는 화문릉花紋綾, 특별히 작은 무늬가 있는 소문릉小紋綾 등이 기록되어 있다.단은 수자직으로 직조하여 흔히 ‘양단’이나 ‘공단’으로 부르는 옷감이다. 조선시대의 단은 주로 바탕은 경수자직, 무늬는 위수자직으로 직조하였으며, 사선 방향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음영으로 무늬를 표현한다. 조선시대의 단 중에서 특별히 선호되었던 옷감은 구름무늬가 시문된 ‘운문단’, 연꽃무늬가 시문된 ‘연화문단’, 사계절꽃이 시문된 직물은 ‘사양화문단’이 있다. 또한 화문단 바탕에 특정한 무늬 부분에만 금사나 은사를 이중으로 화려하게 넣어 제직한 직물은 ‘금선단金線緞’이라 불렀는데 특별히 상류층에서만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단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기의 유물이다. 1346년에 장곡사 철조약사불을 조성할 때 넣은 복장 유물로서 5매 수자직의 백색의 무문단 조각이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는 아직 단은 보편적인 옷감은 아니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상류층에서 선호하는 고급 옷감으로 확산되었다. 조선 전기인 17세기까지의 단은 대부분 5매 수자직으로 되었으나, 18세기 무렵부터 8매 수자직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19세기가 되면 대부분 단류가 8매 수자직으로 제직되었다. 이러한 조직의 변화는 제사 기술의 발달로 인해 좀 더 가늘고 균질한 견사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문헌에 5매 수자직 단은 ‘오사단五絲緞’ 8매 수자직 단은 ‘팔사단八絲緞’ 등의 명칭으로 기록되었다.사와 라는 익조직으로 제직된 직물로 인접한 2~4올의 경사끼리 꼬임을 주면서 위사를 위입하여 직물의 투공 효과가 있다. 사는 주로 2올의 경사를 교차하였으며 숙고사·생고사·갑사·화문사·도류사·운문사·화문사· 순인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한편 3~4올의 경사를 교차시켜 만든 라는 고려시대에 매우 유행하였으며 조선 중기까지도 고려시대만큼은 아니라도 드물게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 말기가 되면 제직법을 단순화시킨 ‘항라’가 유행하였다.면직물은 ‘목면’ 혹은 ‘무명’ 등으로 호칭되었는데, 수종樹種과 생산 시기에 따라 실의 품질이 다르고 치밀한 정도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 일반적인 옷감용 무명은 8승이나 9승이며, 가장 고운 것은 34승 목면이라는 기록도 있다. 흔히 알고 있는 ‘광목’은 20수 이내의 굵은 면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짠 후 정련과 표백을 하지 않은 투박한 면직물로, 폭이 30 미만의 재래식 무명에 비하여 폭을 넓게 짜서 광목이라고 불렀다. 30수 정도의 가는 면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제직한 후 하얗게 표백·정련한 면직물을 ‘옥양목’이라고 불렀으며 옥같이 하얗다는 의미이다. 조선 말기에 면직물이 발달한 영국에서 수입한 면직물을 ‘옥양목’, ‘백양목’ 혹은 ‘서양포’라고도 기록하였다. 「궁중발기」에도 의대용으로 옥양목, 서양포가 기록되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19세기에 직물 명산지가 형성되었는데, 세면포의 산지는 경기도 고양, 충청남도 논산과 강경이 유명하다.마직물에는 베와 모시가 있는데 ‘저포’, ‘저마’, ‘모시포’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8승, 9승이 일반적이나 고운 것은 15승 이상으로 제직하며, 특히 함경도 육진 지방에서 생산되는 베는 품질이 매우 좋아 특별히 ‘동포’, ‘육진세포’라 하였으며, 절에서 공양할 때 쓰는 바리속에 한 필이 들어갈 만큼 가늘고 섬세하여 ‘바리내포’라고도 하였다. 모시의 산지는 한산·서천·비인·남포·청양, 베의 산지는 함경도 회령·경원·온성 등이 유명하였다.모직물은 모섬유를 축융시켜 만든 펠트인 전氈과 경사와 위사로 직조한 계罽와 담毯이 생산되었다.

특징 및 의의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상의원尙衣院(조선 왕실의 의복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각종 견직물을 생산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상의원 소속의 공장工匠은 모두 597명이었으며, 그중 직물 생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장인만 264명으로 다른 수공업 분야에 비하여 직조 수공업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다. 합사장合絲匠 10명과 연사장練絲匠 75명은 실을 정련하고 합사하는 등 실을 만드는 작업을 하며, 홍염장紅染匠 10명, 청염장靑染匠 10명은 염색 작업을 하고, 능라장綾羅匠 105명과 방직장紡織匠 20명은 사·라·능·단 같은 고급 직물들을 생산하였다. 이때 10명의 성장筬匠이 직기의 바디를 만들고 수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또한 재금장裁金匠 4명, 금박장金箔匠 4명, 사금장絲金匠 4명 등은 금선단金線緞을 제직하는 데 필요한 금사와 금박을 만들었다. 도침장擣砧匠 14명은 제직된 직물에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하는 후처리 과정에 종사하였다. 이렇듯 궁중 안의 직물 생산 과정 내에서는 분업 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영 직물 생산 기관은 상의원 이외에도 직물 생산과 관련된 호조戶曹 소속의 내자시內資寺·내첨시內贍寺·제용감濟用監 등에도 방직장·성장·홍염장·청염장·도침장 등이 있어 직물 생산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朝鮮女俗考, 朝鮮王朝實錄,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국사편찬위원회, 두산동아, 2006), 우리나라 전통무늬1-직물(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직물조직학(우범식, 문운당, 1971), 패션전문자료사전(패션전문자료편찬위원회, 한국사전연구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