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송미경(宋美京)
갱신일 2018-10-10

정의

남녀노소가 입는 상의.

내용

저고리는 한복의 상의류 가운데 길이가 포袍보다 짧은 옷이다. 삼국시대부터 입었던 것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백제 무령왕릉 출토 옥동자상, 신라 조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저고리는 남녀 공용이며 형태도 같았다. 엉덩이 길이에 곧은 깃으로 앞에서 허리에 끈[帶]을 묶어 옷을 여민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저고리는 좁은 소매에 깃과 소매 끝, 도련에 다른 색의 선襈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 저고리의 형태는 1302년 불복장품으로 알려진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중의와 경남 합천 해인사 불복장품 저고리로 짐작할 수 있으며, 밀양 고법리 소재 박익朴翊(1332~1398) 묘 벽화에서도 여자 저고리 입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저고리의 명칭은 삼국시대에는 유襦, 위해尉解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조선시대 『세종실록世宗實錄』 1420년(세종 2) 원경왕후元敬王后(1365~1420) 국상 절차의 천전의遷奠儀에서 ‘赤古里’라는 표기를 처음 찾아볼 수 있다. 남녀 저고리의 차이는 크기와 깃의 형태, 옷감, 색상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남자의 저고리는 포 속에 입는 속옷의 성격이 있어 형태의 변화와 옷감과 색상 등의 변화가 적다. 남자 저고리 종류는 계절에 따라 옷감과 구성법(홑옷, 겹옷, 누비옷)에 따라 적삼·한삼·저고리·겹저고리·솜저고리·누비저고리 등으로 나눈다.
조선 전기 문헌에 등장하는 ‘과두裹肚’, 오襖, 동의冬衣라는 명칭도 남자 저고리로 추측한다. 남자 저고리는 17세기 후기 송시열宋時烈의 상례 기록(1689)에서 등장하지만, 18세기에도 한삼이나 적삼 위에 소창의를 입어 소창의가 저고리 대용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자 저고리는 평상복으로서 겉옷의 경향이 강하여 옷감과 부분 장식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조선시대 문헌에 여자 저고리로 추정되는 것은 短赤古里·赤古里·串衣·胡袖 好袖·虛胸·小古衣·赤衫·汗衫·衫兒·同衣襨·깍기 古都·肩亇只·肩莫只·肩莫伊·腋亇只·傍莫只·裌隔音· 唐赤古里·回粧赤古里·回裝赤古里 등이 있다. 저고리는 시대에 따라 명칭뿐만 아니라 길이와 깃, 품, 소매와 같은 형태도 변하였다.
조선시대 전기 16세기 후반 여자 저고리는 길이에 따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저고리 길이 70~80cm 정도의 옆이 트인 장저고리가 있는데, 이 장저고리는 17세기 이후에 당의唐衣로 변화한다. 둘째, 저고리 길이 60~70cm의 옆트임이 없는 저고리는 중저고리로, 특히 이 가운데 직금단 같은 고급 옷감을 사용한 것은 견마기肩莫只로 분류한다. 셋째, 50cm 정도의 옆트임이 없는 저고리는 단저고리短赤古里이다. 장저고리와 중저고리는 겉옷의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단저고리는 장저고리와 중저고리 속에 받쳐 입는 저고리이다. 이 저고리가 오늘날 겉옷으로 입는 저고리로 변하였다고 생각한다. 16세기 여자 저고리는 깃 너비 10~12cm 내외였으며 목판깃 형태이다. 저고리 품은 60~70cm이며 화장은 70~100cm, 소매의 형태는 진동과 수구가 나란한 직배래이다. 수구에 너비 20cm 정도의 끝동이 있는 저고리도 있다. 옷고름은 2cm 정도로 좁고 길이 25cm 내외로 짧으며 속고름은 없다. 동정 너비는 6cm 내외로 길이는 짧고 너비는 넓은 편이다. 솜저고리에는 저주지가 심감으로 사용되었다.
17세기 이후 여자 저고리는 옆트임이 사라지고, 저고리 길이는 50cm 전후의 한 가지만 있다. 저고리의 품은 50~60cm 내외, 화장은 60~80cm로 16세기와 비교하면 저고리 길이는 짧아지고 품은 좁아지며 화장도 짧아진다. 17세기 이후 저고리는 길이와 품의 변화 외도 저고리 깃의 변화가 가장 특징이다. 1620년대경부터 깃 너비는 10cm 정도로 좁아지면서 깃머리가 깎인 목판 당코깃으로 변화한다. 동정 너비는 7.5cm 정도로 깃 너비보다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소매 끝에 거들지가 있는 저고리가 있으며, 깃이나 섶과 견마기에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한 회장저고리도 있다. 이 시기에는 저고리에 속고름이 달려 있다. 1650년대까지 목판깃과 목판 당코깃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1660년대 이후에는 깃 너비 9~11.5cm 목판 당코깃으로 변화한다. 저고리 품은 17세기 전반과 비교하면 거의 같으나 저고리의 겉섶이 뒷중심과 비교하면 1~3cm 정도 이동하기 시작한다. 화장은 70~80cm이며 수구 안쪽으로 너비 5cm가량의 덧단이 있어, 수구 쪽의 동정 역할처럼 옷에 때가 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저고리가 점점 몸에 맞는 옷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접어들면 저고리는 길이는 짧아지고 품은 좁아진다. 18세기 전기의 여자 저고리를 알 수 있는 것은 경기도박물관 소장 안동 권씨(1662~1722) 묘 출토 저고리이다. 이를 참고하면 18세기 전기 저고리는 저고리 길이 36~46cm, 품 41~48cm, 화장 67~77cm이며 끝동은 12cm 내외이며, 깃 너비는 8.8~10.8cm이다. 16점의 저고리 가운데 거들지가 달린 저고리는 1점이며, 나머지 15점은 모두 다른 색의 끝동이 달려 있었다. 저고리의 깃은 깎은 목판당코깃이며, 옷고름은 좁고 짧다. 누비저고리와 솜저고리와 겹저고리가 있는데, 솜저고리도 솜을 매우 얇게 넣었다. 저고리의 섶은 모두 겉섶선이 이동하였고, 옷고름은 짧고 좁다. 특히 안동 권씨의 수의로 한삼, 민저고리, 회장저고리, 거들지 달린 저고리 순서로 입고 있어 예복용 저고리는 거들지 달린 저고리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저고리 2벌을 껴입는 풍속도 있음을 안동 권씨 묘 출토 저고리를 통해 알 수 있다. 18세기 중기의 저고리의 특징은 강원도 인제 백담사 목조아미타불(1748) 복장저고리 1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고리 길이 37.5cm, 화장 75cm, 품 39cm로 깃은 깎은 목판당코깃이고 깃 너비는 8.2cm이다. 옷고름과 동정은 떼어져 알 수 없다. 18세기 저고리를 17세기와 비교하면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품은 좁아지며 소매도 좁아진다. 깃은 깎은 목판당코깃이며 깃을 놓을 때는 많이 굴려진다. 옷고름은 좁고 짧다.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19세기 전기 여자 저고리는 청연군주(1754~ 1821) 묘 출토 성인 저고리로 짐작되는 저고리를 살펴보면 저고리 길이는 25~29.5cm, 화장 67~73cm, 품은 34~44cm이며 저고리 깃 모양은 깎은 목판당코깃이다. 19세기 말 이연응(1818~1887) 묘 출토 여자 저고리는 저고리 길이 21.5cm, 화장 73cm, 품 42cm이다. 깃 모양은 당코동그레깃으로 깃 궁둥이가 목판깃에서 둥글어졌다. 깃 너비도 5cm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품이 좁아지고 소매가 좁아지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했던 저고리의 명칭은 ‘저고리’라는 이름으로 일원화된다. ‘곁마기(견마기)’는 16세기에는 저고리의 일종이었으나, 20세기 초에는 저고리의 장식 부분 명칭으로 되었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저고리 길이는 20cm 정도로 매우 짧아져 가슴선 위로 올라갔으며, 진동도 16~19cm로 좁아져 가슴이 노출되기도 하여 가슴을 가리기 위한 허리띠가 필요하였다. 저고리 깃도 3cm 정도로 좁아졌으며, 옷고름도 좁고 짧았다. 깃은 둥근당코깃 형태였다.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저고리 길이가 25~27cm 정도로 1910년대보다 길어졌다. 이 시기에 큰 변화가 당코깃이 사라지고 둥그레깃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더불어 깃과 끝동 겨드랑이 부분의 견마기, 고름에 자주색 비단을 댄 회장저고리가 사라지고 대부분 장식이 없는 민저고리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혼례복에는 회장저고리를 입었다. 1920년대 후반 한복이 여학교 교복으로 채택되면서 형태도 단순해지고 저고리 길이도 길어졌다. 1930년대 저고리 길이는 1920년대보다 더 길어져 저고리 길이 30~34cm, 진동 19cm, 깃 너비 4cm, 고름길이는 75cm, 너비 4~5cm 정도이다. 1940년대에는 저고리 길이가 가장 길어져 거의 허리길이 정도였고 상대적으로 화장은 짧아지고, 깃과 고름 그리고 동정 너비가 가장 넓은 시기이다. 민저고리가 대부분이었고, 저고리에 장식을 할 때에는 자주고름에 남색끝동을 하였다. 특별히 혼례용 저고리는 다홍색 깃과 끝동과 고름에 금박을 찍어 장식하였다. 저고리 고름 대신 단추나 브로치를 달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인조견이 선풍을 일으킨 시기이다.
1950년대에는 저고리 길이가 1940년대와 비교하여 조금 짧아지며 소매통이 넓어지면서 배래가 곡선으로 변화여 붕어배래 형태가 등장하였다. 동정에 딱딱한 종이 심을 넣어 기성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1960년대 초는 1950년대 후반과 비슷한 형태의 저고리가 유지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정치적 이유로 한복이 활성화되고 고위직에서 한복을 예복으로 입게 되면서, 한복의 형태도 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저고리 길이도 짧아지고 품이 좁아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깃과 고름 동정 모두 좁아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저고리의 겉감을 부드러운 옷감을 사용하면서 심감을 넣기 시작하여 저고리 겉감과 심감 그리고 안감을 사용하는 3겹 바느질이 유행하였다. 1970년대는 한복의 예복화 시기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지방까지 일상복은 서양복으로 변하였고, 한복은 특별한 날에 입는 예복으로 점차 바뀌어갔다. 명절복, 대학의 사은회, 결혼식 참석, 교회 갈 때 입는 옷 등으로 목적이 변화하면서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이 강화되었다. 실루엣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시기이다. 치마가 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고리 길이가 짧아졌다. 그리고 깃 길이도 길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길어졌다. 1980년대는 한복의 예복화 현상은 지속되었으나, 저고리의 길이는 조금 길어지고, 깃과 끝동 고름에 다른 색을 댄 회장저고리가 유행한 시기였다. 더불어 전통한복에 대한 관심은 궁중예복인 당의 착용의 유행을 가져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사철깨끼 감의 유행으로 한복에는 깨끼바느질이 유행했다. 1990년대부터 조선시대 출토복식 연구가 활발하게 되고, 고급 한복 매장의 번창으로 한복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저고리는 길이가 길어지고 깊과 섶, 동정이 넓어졌다. 2000년대 후반부터 마치 조선시대 복식으로 회귀한 듯한 형태의 저고리가 소개되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향으로 일반 여성의 저고리는 19세기 후반의 짧은 저고리 길이와 좁은 직선 소매 거들치 등이 유행하였다. 2010년에는 저고리 길이는 27cm 내외로 길어지고, 깃도 넓어지며 깃 모양은 깎은 목판당코깃과 넓은 동정이 유행하며 섶도 넓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당코깃저고리는 깃 모양이 당코인 저고리이다. 당코란 깃머리 앞쪽을 사선으로 베어낸 형태이다. 당코깃이라는 명칭은 중국 명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명나라 출토복식 여자 저고리에는 목판당코깃저고리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620년대 이후 등장하는 저고리의 깃 모양으로 16세기의 목판깃에서 깃머리를 사선으로 베어 낸 것이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목판 당코깃이 유지되었으나 19세기 말경 깃 궁둥이가 둥글어진 당코둥그레깃으로, 1920년대 후반에는 당코깃이 사라지고 둥그레깃으로 변하였고, 현대에는 2010년경부터 깃이 넓어지면서 목판당코깃이 다시 유행하였다.

특징 및 의의

저고리는 한복을 구성하는 기본 복식으로 한민족을 대표하는 복식 용어이다.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옷으로 시대에 따라 형태가 변하였다. 남녀 공용의 옷이나 옷감과 장식에 따라 민저고리·회장저고리·삼회장저고리 등으로 불리고, 홑옷·겹옷·누비옷 등의 구성법에 따라 홑저고리·겹저고리· 누비저고리·박이저고리 등으로 불린다. 깨끼저고리는 항라·노방·생고사 등의 얇고 비치는 옷감을 두 겹으로 곱솔 바느질한 저고리를 말한다. 주로 여름용에 사용되는 저고리로 솔기가 매우 얇고 섬세한 고급 바느질을 한 옷이다. 관대깃저고리는 경북 지역의 아기용 저고리로, 관대깃이란 겉깃 끝이 약간 구부러진 것을 말한다. 관대冠帶라는 명칭은 관리가 입는 옷을 칭한다. 민간에서는 3대를 계속해서 관대깃저고리를 입히면, 집안에 과거 급제하는 인물이 나온다고 하여 잘 세탁해서 보관해 두었다가 입혔다고 한다.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관대깃저고리는 문경 호계면 구산리에서 나온 저고리로 깃모양은 관리들의 복식인 단령團領의 깃에 가깝다기보다는 원삼圓衫 깃에 가까운 형태이다. 회장저고리는 여자 저고리에서 깃, 끝동, 곁마기 등에 길과 다른 색상의 옷감으로 장식한 저고리이다. 회장저고리[回粧赤古里]라는 기록은 1632년 『인목왕후빈전도감의궤仁穆王后殯殿都監儀軌』에 처음 보인다. 유물로는 1464년 강원도 평창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인 국가민속자료 제219호 회장저고리가 있다. 20세기에는 깃과 끝동 고름에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한 반회장저고리와 곁마기까지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한 삼회장저고리로 구분하였다.

참고문헌

그리운 저고리(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7), 안동지역전통복식(이은주, 안동대학교박물관, 1996), 조선시대 저고리류 명칭에 관한 연구(황유선,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조선재봉전서(김숙당, 활문사, 1925), 회장저리와 견마기 재고(박성실, 미술자료54, 국립중앙박물관, 1994), 한국복식사전(dic-costumekorea.org).

저고리

저고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송미경(宋美京)
갱신일 2018-10-10

정의

남녀노소가 입는 상의.

내용

저고리는 한복의 상의류 가운데 길이가 포袍보다 짧은 옷이다. 삼국시대부터 입었던 것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백제 무령왕릉 출토 옥동자상, 신라 조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저고리는 남녀 공용이며 형태도 같았다. 엉덩이 길이에 곧은 깃으로 앞에서 허리에 끈[帶]을 묶어 옷을 여민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저고리는 좁은 소매에 깃과 소매 끝, 도련에 다른 색의 선襈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 저고리의 형태는 1302년 불복장품으로 알려진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중의와 경남 합천 해인사 불복장품 저고리로 짐작할 수 있으며, 밀양 고법리 소재 박익朴翊(1332~1398) 묘 벽화에서도 여자 저고리 입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저고리의 명칭은 삼국시대에는 유襦, 위해尉解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조선시대 『세종실록世宗實錄』 1420년(세종 2) 원경왕후元敬王后(1365~1420) 국상 절차의 천전의遷奠儀에서 ‘赤古里’라는 표기를 처음 찾아볼 수 있다. 남녀 저고리의 차이는 크기와 깃의 형태, 옷감, 색상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남자의 저고리는 포 속에 입는 속옷의 성격이 있어 형태의 변화와 옷감과 색상 등의 변화가 적다. 남자 저고리 종류는 계절에 따라 옷감과 구성법(홑옷, 겹옷, 누비옷)에 따라 적삼·한삼·저고리·겹저고리·솜저고리·누비저고리 등으로 나눈다.조선 전기 문헌에 등장하는 ‘과두裹肚’, 오襖, 동의冬衣라는 명칭도 남자 저고리로 추측한다. 남자 저고리는 17세기 후기 송시열宋時烈의 상례 기록(1689)에서 등장하지만, 18세기에도 한삼이나 적삼 위에 소창의를 입어 소창의가 저고리 대용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자 저고리는 평상복으로서 겉옷의 경향이 강하여 옷감과 부분 장식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조선시대 문헌에 여자 저고리로 추정되는 것은 短赤古里·赤古里·串衣·胡袖 好袖·虛胸·小古衣·赤衫·汗衫·衫兒·同衣襨·깍기 古都·肩亇只·肩莫只·肩莫伊·腋亇只·傍莫只·裌隔音· 唐赤古里·回粧赤古里·回裝赤古里 등이 있다. 저고리는 시대에 따라 명칭뿐만 아니라 길이와 깃, 품, 소매와 같은 형태도 변하였다.조선시대 전기 16세기 후반 여자 저고리는 길이에 따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저고리 길이 70~80cm 정도의 옆이 트인 장저고리가 있는데, 이 장저고리는 17세기 이후에 당의唐衣로 변화한다. 둘째, 저고리 길이 60~70cm의 옆트임이 없는 저고리는 중저고리로, 특히 이 가운데 직금단 같은 고급 옷감을 사용한 것은 견마기肩莫只로 분류한다. 셋째, 50cm 정도의 옆트임이 없는 저고리는 단저고리短赤古里이다. 장저고리와 중저고리는 겉옷의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단저고리는 장저고리와 중저고리 속에 받쳐 입는 저고리이다. 이 저고리가 오늘날 겉옷으로 입는 저고리로 변하였다고 생각한다. 16세기 여자 저고리는 깃 너비 10~12cm 내외였으며 목판깃 형태이다. 저고리 품은 60~70cm이며 화장은 70~100cm, 소매의 형태는 진동과 수구가 나란한 직배래이다. 수구에 너비 20cm 정도의 끝동이 있는 저고리도 있다. 옷고름은 2cm 정도로 좁고 길이 25cm 내외로 짧으며 속고름은 없다. 동정 너비는 6cm 내외로 길이는 짧고 너비는 넓은 편이다. 솜저고리에는 저주지가 심감으로 사용되었다.17세기 이후 여자 저고리는 옆트임이 사라지고, 저고리 길이는 50cm 전후의 한 가지만 있다. 저고리의 품은 50~60cm 내외, 화장은 60~80cm로 16세기와 비교하면 저고리 길이는 짧아지고 품은 좁아지며 화장도 짧아진다. 17세기 이후 저고리는 길이와 품의 변화 외도 저고리 깃의 변화가 가장 특징이다. 1620년대경부터 깃 너비는 10cm 정도로 좁아지면서 깃머리가 깎인 목판 당코깃으로 변화한다. 동정 너비는 7.5cm 정도로 깃 너비보다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소매 끝에 거들지가 있는 저고리가 있으며, 깃이나 섶과 견마기에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한 회장저고리도 있다. 이 시기에는 저고리에 속고름이 달려 있다. 1650년대까지 목판깃과 목판 당코깃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1660년대 이후에는 깃 너비 9~11.5cm 목판 당코깃으로 변화한다. 저고리 품은 17세기 전반과 비교하면 거의 같으나 저고리의 겉섶이 뒷중심과 비교하면 1~3cm 정도 이동하기 시작한다. 화장은 70~80cm이며 수구 안쪽으로 너비 5cm가량의 덧단이 있어, 수구 쪽의 동정 역할처럼 옷에 때가 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저고리가 점점 몸에 맞는 옷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18세기에 접어들면 저고리는 길이는 짧아지고 품은 좁아진다. 18세기 전기의 여자 저고리를 알 수 있는 것은 경기도박물관 소장 안동 권씨(1662~1722) 묘 출토 저고리이다. 이를 참고하면 18세기 전기 저고리는 저고리 길이 36~46cm, 품 41~48cm, 화장 67~77cm이며 끝동은 12cm 내외이며, 깃 너비는 8.8~10.8cm이다. 16점의 저고리 가운데 거들지가 달린 저고리는 1점이며, 나머지 15점은 모두 다른 색의 끝동이 달려 있었다. 저고리의 깃은 깎은 목판당코깃이며, 옷고름은 좁고 짧다. 누비저고리와 솜저고리와 겹저고리가 있는데, 솜저고리도 솜을 매우 얇게 넣었다. 저고리의 섶은 모두 겉섶선이 이동하였고, 옷고름은 짧고 좁다. 특히 안동 권씨의 수의로 한삼, 민저고리, 회장저고리, 거들지 달린 저고리 순서로 입고 있어 예복용 저고리는 거들지 달린 저고리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저고리 2벌을 껴입는 풍속도 있음을 안동 권씨 묘 출토 저고리를 통해 알 수 있다. 18세기 중기의 저고리의 특징은 강원도 인제 백담사 목조아미타불(1748) 복장저고리 1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고리 길이 37.5cm, 화장 75cm, 품 39cm로 깃은 깎은 목판당코깃이고 깃 너비는 8.2cm이다. 옷고름과 동정은 떼어져 알 수 없다. 18세기 저고리를 17세기와 비교하면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품은 좁아지며 소매도 좁아진다. 깃은 깎은 목판당코깃이며 깃을 놓을 때는 많이 굴려진다. 옷고름은 좁고 짧다.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19세기 전기 여자 저고리는 청연군주(1754~ 1821) 묘 출토 성인 저고리로 짐작되는 저고리를 살펴보면 저고리 길이는 25~29.5cm, 화장 67~73cm, 품은 34~44cm이며 저고리 깃 모양은 깎은 목판당코깃이다. 19세기 말 이연응(1818~1887) 묘 출토 여자 저고리는 저고리 길이 21.5cm, 화장 73cm, 품 42cm이다. 깃 모양은 당코동그레깃으로 깃 궁둥이가 목판깃에서 둥글어졌다. 깃 너비도 5cm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품이 좁아지고 소매가 좁아지는 현상이 계속되었다.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했던 저고리의 명칭은 ‘저고리’라는 이름으로 일원화된다. ‘곁마기(견마기)’는 16세기에는 저고리의 일종이었으나, 20세기 초에는 저고리의 장식 부분 명칭으로 되었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저고리 길이는 20cm 정도로 매우 짧아져 가슴선 위로 올라갔으며, 진동도 16~19cm로 좁아져 가슴이 노출되기도 하여 가슴을 가리기 위한 허리띠가 필요하였다. 저고리 깃도 3cm 정도로 좁아졌으며, 옷고름도 좁고 짧았다. 깃은 둥근당코깃 형태였다.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저고리 길이가 25~27cm 정도로 1910년대보다 길어졌다. 이 시기에 큰 변화가 당코깃이 사라지고 둥그레깃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더불어 깃과 끝동 겨드랑이 부분의 견마기, 고름에 자주색 비단을 댄 회장저고리가 사라지고 대부분 장식이 없는 민저고리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혼례복에는 회장저고리를 입었다. 1920년대 후반 한복이 여학교 교복으로 채택되면서 형태도 단순해지고 저고리 길이도 길어졌다. 1930년대 저고리 길이는 1920년대보다 더 길어져 저고리 길이 30~34cm, 진동 19cm, 깃 너비 4cm, 고름길이는 75cm, 너비 4~5cm 정도이다. 1940년대에는 저고리 길이가 가장 길어져 거의 허리길이 정도였고 상대적으로 화장은 짧아지고, 깃과 고름 그리고 동정 너비가 가장 넓은 시기이다. 민저고리가 대부분이었고, 저고리에 장식을 할 때에는 자주고름에 남색끝동을 하였다. 특별히 혼례용 저고리는 다홍색 깃과 끝동과 고름에 금박을 찍어 장식하였다. 저고리 고름 대신 단추나 브로치를 달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인조견이 선풍을 일으킨 시기이다.1950년대에는 저고리 길이가 1940년대와 비교하여 조금 짧아지며 소매통이 넓어지면서 배래가 곡선으로 변화여 붕어배래 형태가 등장하였다. 동정에 딱딱한 종이 심을 넣어 기성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1960년대 초는 1950년대 후반과 비슷한 형태의 저고리가 유지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정치적 이유로 한복이 활성화되고 고위직에서 한복을 예복으로 입게 되면서, 한복의 형태도 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저고리 길이도 짧아지고 품이 좁아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깃과 고름 동정 모두 좁아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저고리의 겉감을 부드러운 옷감을 사용하면서 심감을 넣기 시작하여 저고리 겉감과 심감 그리고 안감을 사용하는 3겹 바느질이 유행하였다. 1970년대는 한복의 예복화 시기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지방까지 일상복은 서양복으로 변하였고, 한복은 특별한 날에 입는 예복으로 점차 바뀌어갔다. 명절복, 대학의 사은회, 결혼식 참석, 교회 갈 때 입는 옷 등으로 목적이 변화하면서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이 강화되었다. 실루엣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시기이다. 치마가 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고리 길이가 짧아졌다. 그리고 깃 길이도 길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길어졌다. 1980년대는 한복의 예복화 현상은 지속되었으나, 저고리의 길이는 조금 길어지고, 깃과 끝동 고름에 다른 색을 댄 회장저고리가 유행한 시기였다. 더불어 전통한복에 대한 관심은 궁중예복인 당의 착용의 유행을 가져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사철깨끼 감의 유행으로 한복에는 깨끼바느질이 유행했다. 1990년대부터 조선시대 출토복식 연구가 활발하게 되고, 고급 한복 매장의 번창으로 한복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저고리는 길이가 길어지고 깊과 섶, 동정이 넓어졌다. 2000년대 후반부터 마치 조선시대 복식으로 회귀한 듯한 형태의 저고리가 소개되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향으로 일반 여성의 저고리는 19세기 후반의 짧은 저고리 길이와 좁은 직선 소매 거들치 등이 유행하였다. 2010년에는 저고리 길이는 27cm 내외로 길어지고, 깃도 넓어지며 깃 모양은 깎은 목판당코깃과 넓은 동정이 유행하며 섶도 넓어지는 경향을 보였다.당코깃저고리는 깃 모양이 당코인 저고리이다. 당코란 깃머리 앞쪽을 사선으로 베어낸 형태이다. 당코깃이라는 명칭은 중국 명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명나라 출토복식 여자 저고리에는 목판당코깃저고리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620년대 이후 등장하는 저고리의 깃 모양으로 16세기의 목판깃에서 깃머리를 사선으로 베어 낸 것이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목판 당코깃이 유지되었으나 19세기 말경 깃 궁둥이가 둥글어진 당코둥그레깃으로, 1920년대 후반에는 당코깃이 사라지고 둥그레깃으로 변하였고, 현대에는 2010년경부터 깃이 넓어지면서 목판당코깃이 다시 유행하였다.

특징 및 의의

저고리는 한복을 구성하는 기본 복식으로 한민족을 대표하는 복식 용어이다.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옷으로 시대에 따라 형태가 변하였다. 남녀 공용의 옷이나 옷감과 장식에 따라 민저고리·회장저고리·삼회장저고리 등으로 불리고, 홑옷·겹옷·누비옷 등의 구성법에 따라 홑저고리·겹저고리· 누비저고리·박이저고리 등으로 불린다. 깨끼저고리는 항라·노방·생고사 등의 얇고 비치는 옷감을 두 겹으로 곱솔 바느질한 저고리를 말한다. 주로 여름용에 사용되는 저고리로 솔기가 매우 얇고 섬세한 고급 바느질을 한 옷이다. 관대깃저고리는 경북 지역의 아기용 저고리로, 관대깃이란 겉깃 끝이 약간 구부러진 것을 말한다. 관대冠帶라는 명칭은 관리가 입는 옷을 칭한다. 민간에서는 3대를 계속해서 관대깃저고리를 입히면, 집안에 과거 급제하는 인물이 나온다고 하여 잘 세탁해서 보관해 두었다가 입혔다고 한다.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관대깃저고리는 문경 호계면 구산리에서 나온 저고리로 깃모양은 관리들의 복식인 단령團領의 깃에 가깝다기보다는 원삼圓衫 깃에 가까운 형태이다. 회장저고리는 여자 저고리에서 깃, 끝동, 곁마기 등에 길과 다른 색상의 옷감으로 장식한 저고리이다. 회장저고리[回粧赤古里]라는 기록은 1632년 『인목왕후빈전도감의궤仁穆王后殯殿都監儀軌』에 처음 보인다. 유물로는 1464년 강원도 평창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인 국가민속자료 제219호 회장저고리가 있다. 20세기에는 깃과 끝동 고름에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한 반회장저고리와 곁마기까지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한 삼회장저고리로 구분하였다.

참고문헌

그리운 저고리(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7), 안동지역전통복식(이은주, 안동대학교박물관, 1996), 조선시대 저고리류 명칭에 관한 연구(황유선,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조선재봉전서(김숙당, 활문사, 1925), 회장저리와 견마기 재고(박성실, 미술자료54, 국립중앙박물관, 1994), 한국복식사전(dic-costume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