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혜경(鄭惠敬)
갱신일 2018-10-22

정의

유교 철학의 심원한 의미를 담았다고 하여 유학자가 주로 착용한 깊이 감싸는 형태의 의복.

개관

중국 심의深衣의 기원은 주대周代 이전으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와 한대漢代에 요금심의繞襟深衣 혹은 곡거심의曲裾深衣의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그 후 쇠퇴하였다가 송대宋代에 사마광司馬光과 주자朱子에 의해 유학자의 의복 및 예복으로 부흥하였다. 이후 왕조와 유학의 흥망성쇠에 따라 심의의 지위에도 변화가 있었으며, 청대 이후에는 거의 착용되지 않았다. 심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예기禮記』이지만, 여기에서도 그 제도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관련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자의 『가례家禮』에 준하여 착용하였다. 고려 말 성리학性理學이 유입되고 조선 중기 이후 예학이 발전하면서 주로 관혼상제의 사례복四禮服과 유학자의 예복으로 사용되었으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학자들 사이에 통상 예복으로 착용되었다. 근래에는 습의襲衣로 착용했던 사례가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심의의 용도는 그만큼 광범위하여 중국에서는 천자天子 및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예복禮服 및 연복燕服, 길복吉服 및 흉복凶服으로 통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심의 제도는 『예기』 옥조편玉藻篇과 심의편深衣篇에 기록된 후 『예기』에 대한 후한대後漢代 정현鄭玄의 주注와 당대唐代 공영달孔潁達의 소疏를 단 『예기주소禮記注疏』, 사마광의 『서의書儀』, 주자의 『가례』에 상세하게 언급되었지만 이후에도 그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심의 제도는 깃의 유형에 따라 직령심의直領深衣와 방령심의方領深衣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섶의 유무나 허리선의 유무 등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내용

심의 제도는 『예기』에서 3거袪, 임당방衽當旁, 장중계엄척長中繼掩尺, 속임구변續衽鉤邊, 십유이폭十有二幅, 곡겁曲袷 등이 주로 논의되고 다양한 형태가 제시되었다. 그 논의의 목적은 모두 『예기』에 기록된 본모습을 찾고자 하는 데에 있었지만, 모두 각각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가례』의 심의를 숭상하여 송대의 심의가 널리 착용되었으나, 실학자들은 『예기』의 심의 제도까지 비판하고, 때로는 심의 제도의 정확성 여부보다 실제 기능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가진 끝에, 나름대로 해석하여 구성상 오류를 범한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의 심의 제도는 주자의 설을 따른 것을 대표로 하여 대략 다음과 같다. 백세포白細布를 기본 재료로 하였으나 면綿과 저紵도 널리 사용되었으며, 다만 견絹의 사용 여부는 논란이 있었다. 척도는 『예기』에 언급되지 않았으며, 사마광은 이를 주척周尺(주대의 길이 단위)이라 하였고 주자는 지척指尺(손가락 길이를 기준으로 한 길이 단위)이라 하였으므로 이 두 척도가 혼용되었다. 지척은 ‘신체를 계산하여 옷을 마른다.’라는 비례 준칙에 따라서 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를 1촌寸으로 삼아 신체에 따라 변한다. 조선시대 심의 제도 역시 지척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17세기 이후부터는 주척과 포백척도 함께 사용되었다. 심의에 쓰이는 포의 폭은 2척 2촌으로 의衣의 나비와 소매 길이, 상裳 12쪽 나비 등의 치수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심의를 마름질할 때 폭이 넓을 경우에는 의 2폭, 상 6폭(12쪽), 소매 2폭이 들지만, 폭이 좁을 경우 소매는 1폭에 반 폭씩을 더 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문공가례文公家禮』에 포 폭의 광이 좁아 1척 8촌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폭이 넓은 포를 구하기 쉽지 않아 중국에서 구입하거나 때로는 국내의 좁은 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바느질 순서는 『가례』에 의하면 ‘의·상·소매·깃· 곡거 및 속임구변·연’의 순서이며, 『문공가례』에 기록된 바느질 순서는 ‘의·상폭 연결·진동·배래·깃·의와 상 연결·속임구변·연’으로 비교적 상세하다. 각 부위의 바느질법을 살펴보면 의는 포 2폭을 사용하여 가운데를 구부리고, 2척 2촌 길이로 아래로 늘어뜨려 늑골 부위를 지나도록 한다. 상에 연결되는 허리 부위의 둘레는 7척 2촌이 된다. 소매는 둥글게 하여 원몌圓袂라고 하며, 포 2폭을 각각 가운데를 구부려 의 좌우에 붙인다. 소매 나비는 의의 길이와 같고 점점 둥글게 호아 부리를 이루는데, 소맷부리는 1척 2촌으로 한다. 두 깃襟을 서로 여며서 임衽이 늑골 아래에 오게 하면 자연히 모난 형태를 이루어 소위 직령심의直領深衣가 된다. 하지만 옷깃을 여며 입으면 앞자락이 당겨지면서 깃이 반듯한 방형이 되지 않아 아랫단이 들려 올라가 평평하게 되지 않는 문제점이 늘 지적되었다. 상은 6폭을 12쪽으로 마름질하여 의에 붙이고 길이는 복숭아뼈에 이른다. 즉, 매 폭을 어슷하게 마름질하여 두 쪽으로 만들되, 한쪽 머리는 넓고 한쪽 머리는 좁게 하여 좁은 쪽이 넓은 쪽의 반이 되게 한다. 좁은 머리가 위로 향하게 하여 의 1폭에 상 3쪽을 붙이니 허리쪽은 7척 2촌, 아랫단은 14척 4촌이 된다. 연은 흑증黑繒만을 사용하므로 흑연이라 하였으며, 깃은 안팎 각 2촌, 소맷부리와 상 가장자리는 안팎 각 1.5촌이다. 소맷부리는 감의 바깥쪽으로 연을 이어 단다. 심의의 부속물로는 대대大帶가 있어 2촌의 겹으로 된 백증白繒으로 허리를 두 번 둘러 앞에서 묶어 양 귀를 만들어 늘어뜨리고 묶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3푼分의 조絛로서 다시 묶고 대와 조의 길이는 치마 길이와 같게 한다. 그리고 머리에는 복건을 쓴다.

특징 및 의의

심의는 중국에서 주자가 복원한 이래, 유교 문화를 꽃피운 조선시대에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수의 등에 착용 계승되는 역사적인 복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그동안 제시되었던 다양한 유형의 심의 제도가 집대성되고, 또한 심의의 상징적 의미도 더욱 깊이 탐구되었다. 심의의 유형은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양대 산맥의 학풍과 가문의 계보에 따라 이어져 내려왔으며, 깃의 형태와 깃의 구성요소를 통해 유교 경문의 본뜻을 구현하려는 의지, 그리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실학적 사고 등에 의해 다음과 같이 다양한 심의 제도로 분류된다.
첫째, 『가례』의 심의 제도에 준한 것으로 2촌의 연으로 깃을 삼은 직령심의 유형이다. 검은색 연으로만 깃을 삼은 것은 주자가 검약함을 강조했다는 의미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둘째, 『가례』 중심 심의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여 『예기』와 고례에 따라 2촌 너비의 깃 위에 1.5촌 너비의 검은색 연을 둘러 깃을 조금 노출시킨 직령심의이다. 주로 기호학파를 중심으로 착용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심의 제도이다. 셋째, 섶이 있는 직령심의제로 편리하고 합리적인 데에 중점을 두었으며, 여며 입었을 때 아랫단이 가지런해져 『예기』의 본뜻에도 부합하는 제도를 추구하여 제작된 것이다. 주로 영남학파에 의해 제기되었다. 넷째, 방령심의는 실학자 한백겸이 제시한 대금형 방령심의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뿐 아니라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그 후 박규수와 허전의 섶이 있는 방령심의는 조선 말기의 이항로를 중심으로 화서학파를 주축으로 한 위정척사 사상가들에게 널리 착용되었다.
성리학에서 인간을 소우주로 간주해 천지를 상징한다고 생각한 바와 마찬가지로 심의 구성에 담긴 상징도 우주의 원리를 담은 것이다. 즉 우주와 인간과 의복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의 원리인 천도天道를 본받아 인간이 행해야 할 바 인도人道를 이루고자 하였는데, 심의 속에 내포된 철학적 상징성은 유교의 중심 사상이 되는 역易이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심의 구성에 사용된 상象의 상징성은 각 부위에 표현된다. 소매, 깃, 등솔, 상裳의 아랫단은 자연의 공간적 측면을 표현하는 원圓, 방方, 직直, 평平의 상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이 상들은 천天(원), 지地(방), 인人(직·평)을 상징하였으므로 심의에 하나의 소우주를 담아 인간과 우주가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이 네 가지 상은 각각 ‘원’은 무사無私를, ‘방’은 의義와 무사無私를, ‘직’은 정政과 곧음을, ‘평’은 안지安志, 평심平心, 평평함을 상징한다. 심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의 치수는 상호에 비례하며, 심의 12폭은 자연의 시간적 측면을 포함하는 1년, 4시, 12월 등 음양과 천지자연의 법칙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심의의 상징성에 대한 해석을 확장하여 『주역』을 근거로 더욱 다양하며 심도 있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각 부위의 치수마다 수의 상징성을 더하여 형태와 치수가 다양한 심의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家禮, 家禮輯覽, 久庵遺槁, 文公家禮, 士儀, 禮記注疏, 심의(정혜경, 경남대학교출판부, 1998), 中國古代服飾研究(沈從文, 龍田出版社, 1981), 中華五千年文物集刊-服飾編 上·下(中華五千年文物集刊編輯委員會, 裕台公司中華印刷廠出版, 1986).

심의

심의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혜경(鄭惠敬)
갱신일 2018-10-22

정의

유교 철학의 심원한 의미를 담았다고 하여 유학자가 주로 착용한 깊이 감싸는 형태의 의복.

개관

중국 심의深衣의 기원은 주대周代 이전으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와 한대漢代에 요금심의繞襟深衣 혹은 곡거심의曲裾深衣의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그 후 쇠퇴하였다가 송대宋代에 사마광司馬光과 주자朱子에 의해 유학자의 의복 및 예복으로 부흥하였다. 이후 왕조와 유학의 흥망성쇠에 따라 심의의 지위에도 변화가 있었으며, 청대 이후에는 거의 착용되지 않았다. 심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예기禮記』이지만, 여기에서도 그 제도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관련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자의 『가례家禮』에 준하여 착용하였다. 고려 말 성리학性理學이 유입되고 조선 중기 이후 예학이 발전하면서 주로 관혼상제의 사례복四禮服과 유학자의 예복으로 사용되었으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학자들 사이에 통상 예복으로 착용되었다. 근래에는 습의襲衣로 착용했던 사례가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심의의 용도는 그만큼 광범위하여 중국에서는 천자天子 및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예복禮服 및 연복燕服, 길복吉服 및 흉복凶服으로 통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심의 제도는 『예기』 옥조편玉藻篇과 심의편深衣篇에 기록된 후 『예기』에 대한 후한대後漢代 정현鄭玄의 주注와 당대唐代 공영달孔潁達의 소疏를 단 『예기주소禮記注疏』, 사마광의 『서의書儀』, 주자의 『가례』에 상세하게 언급되었지만 이후에도 그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심의 제도는 깃의 유형에 따라 직령심의直領深衣와 방령심의方領深衣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섶의 유무나 허리선의 유무 등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내용

심의 제도는 『예기』에서 3거袪, 임당방衽當旁, 장중계엄척長中繼掩尺, 속임구변續衽鉤邊, 십유이폭十有二幅, 곡겁曲袷 등이 주로 논의되고 다양한 형태가 제시되었다. 그 논의의 목적은 모두 『예기』에 기록된 본모습을 찾고자 하는 데에 있었지만, 모두 각각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가례』의 심의를 숭상하여 송대의 심의가 널리 착용되었으나, 실학자들은 『예기』의 심의 제도까지 비판하고, 때로는 심의 제도의 정확성 여부보다 실제 기능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가진 끝에, 나름대로 해석하여 구성상 오류를 범한 경우도 많았다.조선시대의 심의 제도는 주자의 설을 따른 것을 대표로 하여 대략 다음과 같다. 백세포白細布를 기본 재료로 하였으나 면綿과 저紵도 널리 사용되었으며, 다만 견絹의 사용 여부는 논란이 있었다. 척도는 『예기』에 언급되지 않았으며, 사마광은 이를 주척周尺(주대의 길이 단위)이라 하였고 주자는 지척指尺(손가락 길이를 기준으로 한 길이 단위)이라 하였으므로 이 두 척도가 혼용되었다. 지척은 ‘신체를 계산하여 옷을 마른다.’라는 비례 준칙에 따라서 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를 1촌寸으로 삼아 신체에 따라 변한다. 조선시대 심의 제도 역시 지척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17세기 이후부터는 주척과 포백척도 함께 사용되었다. 심의에 쓰이는 포의 폭은 2척 2촌으로 의衣의 나비와 소매 길이, 상裳 12쪽 나비 등의 치수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심의를 마름질할 때 폭이 넓을 경우에는 의 2폭, 상 6폭(12쪽), 소매 2폭이 들지만, 폭이 좁을 경우 소매는 1폭에 반 폭씩을 더 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문공가례文公家禮』에 포 폭의 광이 좁아 1척 8촌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폭이 넓은 포를 구하기 쉽지 않아 중국에서 구입하거나 때로는 국내의 좁은 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바느질 순서는 『가례』에 의하면 ‘의·상·소매·깃· 곡거 및 속임구변·연’의 순서이며, 『문공가례』에 기록된 바느질 순서는 ‘의·상폭 연결·진동·배래·깃·의와 상 연결·속임구변·연’으로 비교적 상세하다. 각 부위의 바느질법을 살펴보면 의는 포 2폭을 사용하여 가운데를 구부리고, 2척 2촌 길이로 아래로 늘어뜨려 늑골 부위를 지나도록 한다. 상에 연결되는 허리 부위의 둘레는 7척 2촌이 된다. 소매는 둥글게 하여 원몌圓袂라고 하며, 포 2폭을 각각 가운데를 구부려 의 좌우에 붙인다. 소매 나비는 의의 길이와 같고 점점 둥글게 호아 부리를 이루는데, 소맷부리는 1척 2촌으로 한다. 두 깃襟을 서로 여며서 임衽이 늑골 아래에 오게 하면 자연히 모난 형태를 이루어 소위 직령심의直領深衣가 된다. 하지만 옷깃을 여며 입으면 앞자락이 당겨지면서 깃이 반듯한 방형이 되지 않아 아랫단이 들려 올라가 평평하게 되지 않는 문제점이 늘 지적되었다. 상은 6폭을 12쪽으로 마름질하여 의에 붙이고 길이는 복숭아뼈에 이른다. 즉, 매 폭을 어슷하게 마름질하여 두 쪽으로 만들되, 한쪽 머리는 넓고 한쪽 머리는 좁게 하여 좁은 쪽이 넓은 쪽의 반이 되게 한다. 좁은 머리가 위로 향하게 하여 의 1폭에 상 3쪽을 붙이니 허리쪽은 7척 2촌, 아랫단은 14척 4촌이 된다. 연은 흑증黑繒만을 사용하므로 흑연이라 하였으며, 깃은 안팎 각 2촌, 소맷부리와 상 가장자리는 안팎 각 1.5촌이다. 소맷부리는 감의 바깥쪽으로 연을 이어 단다. 심의의 부속물로는 대대大帶가 있어 2촌의 겹으로 된 백증白繒으로 허리를 두 번 둘러 앞에서 묶어 양 귀를 만들어 늘어뜨리고 묶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3푼分의 조絛로서 다시 묶고 대와 조의 길이는 치마 길이와 같게 한다. 그리고 머리에는 복건을 쓴다.

특징 및 의의

심의는 중국에서 주자가 복원한 이래, 유교 문화를 꽃피운 조선시대에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수의 등에 착용 계승되는 역사적인 복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그동안 제시되었던 다양한 유형의 심의 제도가 집대성되고, 또한 심의의 상징적 의미도 더욱 깊이 탐구되었다. 심의의 유형은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양대 산맥의 학풍과 가문의 계보에 따라 이어져 내려왔으며, 깃의 형태와 깃의 구성요소를 통해 유교 경문의 본뜻을 구현하려는 의지, 그리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실학적 사고 등에 의해 다음과 같이 다양한 심의 제도로 분류된다.첫째, 『가례』의 심의 제도에 준한 것으로 2촌의 연으로 깃을 삼은 직령심의 유형이다. 검은색 연으로만 깃을 삼은 것은 주자가 검약함을 강조했다는 의미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둘째, 『가례』 중심 심의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여 『예기』와 고례에 따라 2촌 너비의 깃 위에 1.5촌 너비의 검은색 연을 둘러 깃을 조금 노출시킨 직령심의이다. 주로 기호학파를 중심으로 착용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심의 제도이다. 셋째, 섶이 있는 직령심의제로 편리하고 합리적인 데에 중점을 두었으며, 여며 입었을 때 아랫단이 가지런해져 『예기』의 본뜻에도 부합하는 제도를 추구하여 제작된 것이다. 주로 영남학파에 의해 제기되었다. 넷째, 방령심의는 실학자 한백겸이 제시한 대금형 방령심의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뿐 아니라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그 후 박규수와 허전의 섶이 있는 방령심의는 조선 말기의 이항로를 중심으로 화서학파를 주축으로 한 위정척사 사상가들에게 널리 착용되었다.성리학에서 인간을 소우주로 간주해 천지를 상징한다고 생각한 바와 마찬가지로 심의 구성에 담긴 상징도 우주의 원리를 담은 것이다. 즉 우주와 인간과 의복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의 원리인 천도天道를 본받아 인간이 행해야 할 바 인도人道를 이루고자 하였는데, 심의 속에 내포된 철학적 상징성은 유교의 중심 사상이 되는 역易이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심의 구성에 사용된 상象의 상징성은 각 부위에 표현된다. 소매, 깃, 등솔, 상裳의 아랫단은 자연의 공간적 측면을 표현하는 원圓, 방方, 직直, 평平의 상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이 상들은 천天(원), 지地(방), 인人(직·평)을 상징하였으므로 심의에 하나의 소우주를 담아 인간과 우주가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이 네 가지 상은 각각 ‘원’은 무사無私를, ‘방’은 의義와 무사無私를, ‘직’은 정政과 곧음을, ‘평’은 안지安志, 평심平心, 평평함을 상징한다. 심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의 치수는 상호에 비례하며, 심의 12폭은 자연의 시간적 측면을 포함하는 1년, 4시, 12월 등 음양과 천지자연의 법칙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심의의 상징성에 대한 해석을 확장하여 『주역』을 근거로 더욱 다양하며 심도 있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각 부위의 치수마다 수의 상징성을 더하여 형태와 치수가 다양한 심의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家禮, 家禮輯覽, 久庵遺槁, 文公家禮, 士儀, 禮記注疏, 심의(정혜경, 경남대학교출판부, 1998), 中國古代服飾研究(沈從文, 龍田出版社, 1981), 中華五千年文物集刊-服飾編 上·下(中華五千年文物集刊編輯委員會, 裕台公司中華印刷廠出版,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