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時計)

한자명

時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남경미(南瓊美)

정의

시간을 재거나 시각을 나타내는 기계 또는 장치.

내용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계時計를 가리키는 단어로 1883년 이후 종표鍾表, 시진종時辰鐘(괘종시계) 및 시진표時辰表(손목시계), 치시계置時計, 괘시계掛時計, 자명종표自鳴鐘表, 종표鍾表 등으로 표기되었다. 한글로는 『독립신문』 1896년 5월 28일 기사에 “금 시계”가 있다. 이후 시계, 완권 등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계시기[計時器, time-piece]’로서의 ‘시계’라는 단어가 국어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9세기 말엽부터인 듯하다. ‘시계’라는 어형이 국어에 정착하기까지 한동안은 중국에서 유래한 ‘자명종’과 더불어 신생어 ‘시종時鍾·시침時針·시표時標, 時鏢, 時表·시패時牌’와 같은 어형語形이 곳곳에 쓰이고, 19세기 말부터는 ‘시계’라는 단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시종은 괘종시계, 시침은 오늘날의 ‘회중시계’나 ‘손목시계’를 뜻하는 단어였다. 신생어 ‘시계’는 일본어에서 차용되었다. 일본어에는 ‘시계’를 의미하는 단어 표기가 다양하게 나타나다가, 점차 ‘時計’라는 표기로 정착하였다. 그 발음 ‘tokei’는 본래 해시계를 뜻했던 고대 중국어 ‘土圭’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초기의 시계 광고는 대개 회중시계 광고이며, 1920년대 이후 회중시계와 함께 손목시계가 광고에 등장하였고, 그 후로는 손목시계가 시계광고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930년대 사진 자료에 잘 갖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하여 한복 바지, 고리 위에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늘인 모습이 있다. 1930년대에도 시계를 겉으로 드러내어 시계 소유가 자랑할 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계는 해외에서, 특히 스위스에서 수입되는 사치품이었다. 1930년대 휴대용 시계로는 손목시계가 유행하였으나 외국에서는 가방이나 허리춤에 차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기사도 있어 남성들이 의복뿐만 아니라 외국 유행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반영하였다.
시계는 사치품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1922년 시계 광고에 “시계와 안경은 사치품이 아니라 귀중한 일용품 …… 瑞西國(스위스) 란겐회사제 腕卷時計(완권시계)”라고 광고하면서 판매를 유도하였다. 고급 시계, 실용 시계로 구분하여 판매하기도 하였으나 시계는 1945년까지 여전히 사치품이었다.
시계 형태는 회중시계는 몸체는 둥글고 표면에 다양한 장식이 있으며, 길 쇠줄chain이 달려 있었다. 이후 손목시계는 몸체가 둥근 것, 네모난 것 등 다양하며 손목에 차는 시곗줄도 다양했다. 초기에는 주로 회중시계와 남성용으로 보이는 시계가 소개되었는데 차차 여성용 시계도 함께 소개되었고, 시계 판매점에서 안경, 보석을 함께 다룬 경우도 많았다.
우리 역사에서 본격적인 기계 시계로의 이행은 17세기 서양식 시계의 영향 이후에 일어났다. 1759년 홍대용洪大容이 나경적羅景績이 제작한 시계를 보고 나경적에게 부탁하여 시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자명종 후종候鐘이었다. 이규경李奎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노성魯城의 윤달규尹達圭는 수종水鐘 또는 수명종水鳴鐘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이민철이 만든 혼천시계와 비슷하였다. 19세기 초 시계 제작자로는 이들 이외에도 최천악崔天岳·김흥덕金興德 등이 있었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회중시계, 허리춤에 차는 시계, 손목시계 등이 소장되어 있으나 모두 광복 이후의 유물로 일제강점기의 시계 유물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근대에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서양식(기계식) 시계에 대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기술자가 시계를 고친다는 광고는 있으나 시계를 직접 제작한다는 기사 내용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시계 생산이 시작된 것은 1959년 기계 시계가 조립 판매되면서부터였다.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던 시계공업은 그 뒤 국산화율을 높여 1977년 이후에는 전자시계 생산으로 방향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국산 시계도 고급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징 및 의의

시계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현대 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시계가 도입된 초기에는 일반인은 구하기 어려운 비싼 물건이어서 도둑맞는 일도 흔했고, 일제강점기 동안 시계는 사치품이었다.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계는 주로 서양에서 수입했는데, 우리나라에 시계를 수리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공업 분야로 크게 성장하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한자로 표기되다가 일본어에서 온 시계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20세기 전기에는 회중시계가 주로 판매되고 그 후에는 손목시계가 판매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한국 남자 일반 복식에 관한 연구-개항 이후 광복까지(남경미,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한국근대사자료집성1-요시찰한국인거동1(국사편찬위원회, 2001), 시계의 차용(송민, 새국어생활10-2, 국립국어원, 2000), 미국약조(한성순보, 1883. 12. 9), 한국민족문화대백과(encykorea.aks.ac.kr).

시계

시계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남경미(南瓊美)

정의

시간을 재거나 시각을 나타내는 기계 또는 장치.

내용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계時計를 가리키는 단어로 1883년 이후 종표鍾表, 시진종時辰鐘(괘종시계) 및 시진표時辰表(손목시계), 치시계置時計, 괘시계掛時計, 자명종표自鳴鐘表, 종표鍾表 등으로 표기되었다. 한글로는 『독립신문』 1896년 5월 28일 기사에 “금 시계”가 있다. 이후 시계, 완권 등 다양하게 표현되었다.‘계시기[計時器, time-piece]’로서의 ‘시계’라는 단어가 국어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9세기 말엽부터인 듯하다. ‘시계’라는 어형이 국어에 정착하기까지 한동안은 중국에서 유래한 ‘자명종’과 더불어 신생어 ‘시종時鍾·시침時針·시표時標, 時鏢, 時表·시패時牌’와 같은 어형語形이 곳곳에 쓰이고, 19세기 말부터는 ‘시계’라는 단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시종은 괘종시계, 시침은 오늘날의 ‘회중시계’나 ‘손목시계’를 뜻하는 단어였다. 신생어 ‘시계’는 일본어에서 차용되었다. 일본어에는 ‘시계’를 의미하는 단어 표기가 다양하게 나타나다가, 점차 ‘時計’라는 표기로 정착하였다. 그 발음 ‘tokei’는 본래 해시계를 뜻했던 고대 중국어 ‘土圭’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초기의 시계 광고는 대개 회중시계 광고이며, 1920년대 이후 회중시계와 함께 손목시계가 광고에 등장하였고, 그 후로는 손목시계가 시계광고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1930년대 사진 자료에 잘 갖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하여 한복 바지, 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늘인 모습이 있다. 1930년대에도 시계를 겉으로 드러내어 시계 소유가 자랑할 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계는 해외에서, 특히 스위스에서 수입되는 사치품이었다. 1930년대 휴대용 시계로는 손목시계가 유행하였으나 외국에서는 가방이나 허리춤에 차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기사도 있어 남성들이 의복뿐만 아니라 외국 유행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반영하였다.시계는 사치품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1922년 시계 광고에 “시계와 안경은 사치품이 아니라 귀중한 일용품 …… 瑞西國(스위스) 란겐회사제 腕卷時計(완권시계)”라고 광고하면서 판매를 유도하였다. 고급 시계, 실용 시계로 구분하여 판매하기도 하였으나 시계는 1945년까지 여전히 사치품이었다.시계 형태는 회중시계는 몸체는 둥글고 표면에 다양한 장식이 있으며, 길 쇠줄chain이 달려 있었다. 이후 손목시계는 몸체가 둥근 것, 네모난 것 등 다양하며 손목에 차는 시곗줄도 다양했다. 초기에는 주로 회중시계와 남성용으로 보이는 시계가 소개되었는데 차차 여성용 시계도 함께 소개되었고, 시계 판매점에서 안경, 보석을 함께 다룬 경우도 많았다.우리 역사에서 본격적인 기계 시계로의 이행은 17세기 서양식 시계의 영향 이후에 일어났다. 1759년 홍대용洪大容이 나경적羅景績이 제작한 시계를 보고 나경적에게 부탁하여 시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자명종 후종候鐘이었다. 이규경李奎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노성魯城의 윤달규尹達圭는 수종水鐘 또는 수명종水鳴鐘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이민철이 만든 혼천시계와 비슷하였다. 19세기 초 시계 제작자로는 이들 이외에도 최천악崔天岳·김흥덕金興德 등이 있었다고 한다.국립민속박물관에 회중시계, 허리춤에 차는 시계, 손목시계 등이 소장되어 있으나 모두 광복 이후의 유물로 일제강점기의 시계 유물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근대에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서양식(기계식) 시계에 대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기술자가 시계를 고친다는 광고는 있으나 시계를 직접 제작한다는 기사 내용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시계 생산이 시작된 것은 1959년 기계 시계가 조립 판매되면서부터였다.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던 시계공업은 그 뒤 국산화율을 높여 1977년 이후에는 전자시계 생산으로 방향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국산 시계도 고급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징 및 의의

시계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현대 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시계가 도입된 초기에는 일반인은 구하기 어려운 비싼 물건이어서 도둑맞는 일도 흔했고, 일제강점기 동안 시계는 사치품이었다.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계는 주로 서양에서 수입했는데, 우리나라에 시계를 수리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공업 분야로 크게 성장하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한자로 표기되다가 일본어에서 온 시계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20세기 전기에는 회중시계가 주로 판매되고 그 후에는 손목시계가 판매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한국 남자 일반 복식에 관한 연구-개항 이후 광복까지(남경미,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한국근대사자료집성1-요시찰한국인거동1(국사편찬위원회, 2001), 시계의 차용(송민, 새국어생활10-2, 국립국어원, 2000), 미국약조(한성순보, 1883. 12. 9), 한국민족문화대백과(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