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대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명숙(安明淑)
갱신일 2018-10-18

정의

실을 엮어 끈을 짜서 만든 것으로 얇고 좁으므로 세조대라 하며, 도포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다회多會를 쳐서 만든 실띠.

내용

세조대의 형태는 가는 실띠의 양끝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단 모양이며, 조선 초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도아, 세조아, 세도대, 사대라고도 불렀다. 계급에 따라 당상관堂上官은 홍색 또는 자색을, 당하관堂下官은 청색 또는 녹색을 사용하여 품위를 가렸으며, 서민은 흑색을, 상제喪制에는 백색을 사용하였다. 왕도 평상시에 도포를 입을 때는 금사세조대金絲細條帶를 하였다. 1743년(영조 19)에는 구제면복舊制冕服과 강사포絳紗袍에 큰 띠와 함께 작은 띠로 심청深靑세조대를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편복便服 포袍에 사용되었던 세조대는 한말에 이르러 도포, 창의 등 광수의廣袖衣가 폐지되고 두루마기가 일반화하면서 사용이 줄어들어 도포와 함께 가제家祭의 제복祭服에만 사용되었다. 세조대의 길이는 370~400 정도이며, 끈목의 양쪽 끝에 딸기술이 달렸는데 왕이나 왕세자·왕세손은 금사세조대를 하였다.
세조대는 여러 겹으로 합사한 명주실로 짜서 만든 것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짠 것을 다회라고 한다. 둥글게 짠 동다회와 폭이 넓고 납작하게 짠 광다회廣多繪가 있다. 광다회는 주로 군복으로 사용되었던 철릭이나 도포, 전복 위에 착용했으며 대개 양쪽 끝을 풀어 술을 만들었다. 동다회는 주로 노리개·유소·주머니 끈 등을 맺는데 사용하였다. 세조대는 이러한 방법으로 짠 다회 중에서 특히 좁게 짠 것을 지칭한다. 광다회가 띠 모양인데 비하여 세조대는 끈 모양이다.
세조대의 모습은 초상화에서도 확인되는데, 초상화는 색상이 남아 있고 착용법까지 확인할 수 있어 좋은 자료다. 초상화에서 확인한 세조대는 모두 편복便服차림에 착용하였다. 색상은 붉은색, 자색, 흑색이 있고, 술은 심득경沈得經(1673~1710)의 초상화에서 방망이술이, 흥선대원군과 권기수의 초상화에서 딸기술이 확인되었다.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자화상에서 보이는 술은 현재 전해지는 전통 술 중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이 술은 봉술머리의 봉 부분이 상하로 길어진 형태로도 보이며, 그 굵기가 점차 가늘어져 끈목과 연결된다. 유물에서는 딸기술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외의 다양한 술이 장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리에 두를 때는 고를 만들지 않고 매듭지어 늘어뜨리거나, 고를 한 개, 또는 두 개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남은 가닥을 늘어뜨릴 때는 양쪽 가닥의 길이가 같게 나란히 늘어뜨린 것을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허리띠의 일종으로 사대에 속하며 실띠, 술띠라고도 한다. 도포의 허리 부분에 둘러서 앞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묶는 띠로 양쪽에 술이 달려 있어서 술띠라고도 한다. 계급을 구별하여 다양한 색상의 가느다란 실로 만들어서 허리에 찼다. 세조대는 원다회圓多繪·광다회·각대角帶·요대腰帶 등과 함께 면복이나 도포· 전복 등에 착용하던 띠로 품계에 따라 색을 달리하였다. 끝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달아서 마무리했다.
세조대는 조선시대 남자들의 겉옷을 여미는 데 사용했던 사대 중 하나이다. 대개 허리보다는 높게 가슴 부분에 매어 입었다. 길이는 짧은 것은 190 정도에서 긴 것은 4 이상 되기도 한다. 허리 부분이나 가슴에 둘러매고 끝부분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달아 앞가슴에 길게 늘어뜨렸다.

참고문헌

우리옷 이천년(유희경 외, 미술문화, 2001), 조선시대 조대의 형태적 특징과 제작법에 관한 연구(김시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복식 2천년(국립민속박물관, 1995),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세조대

세조대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명숙(安明淑)
갱신일 2018-10-18

정의

실을 엮어 끈을 짜서 만든 것으로 얇고 좁으므로 세조대라 하며, 도포나 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다회多會를 쳐서 만든 실띠.

내용

세조대의 형태는 가는 실띠의 양끝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단 모양이며, 조선 초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도아, 세조아, 세도대, 사대라고도 불렀다. 계급에 따라 당상관堂上官은 홍색 또는 자색을, 당하관堂下官은 청색 또는 녹색을 사용하여 품위를 가렸으며, 서민은 흑색을, 상제喪制에는 백색을 사용하였다. 왕도 평상시에 도포를 입을 때는 금사세조대金絲細條帶를 하였다. 1743년(영조 19)에는 구제면복舊制冕服과 강사포絳紗袍에 큰 띠와 함께 작은 띠로 심청深靑세조대를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편복便服 포袍에 사용되었던 세조대는 한말에 이르러 도포, 창의 등 광수의廣袖衣가 폐지되고 두루마기가 일반화하면서 사용이 줄어들어 도포와 함께 가제家祭의 제복祭服에만 사용되었다. 세조대의 길이는 370~400 정도이며, 끈목의 양쪽 끝에 딸기술이 달렸는데 왕이나 왕세자·왕세손은 금사세조대를 하였다.세조대는 여러 겹으로 합사한 명주실로 짜서 만든 것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짠 것을 다회라고 한다. 둥글게 짠 동다회와 폭이 넓고 납작하게 짠 광다회廣多繪가 있다. 광다회는 주로 군복으로 사용되었던 철릭이나 도포, 전복 위에 착용했으며 대개 양쪽 끝을 풀어 술을 만들었다. 동다회는 주로 노리개·유소·주머니 끈 등을 맺는데 사용하였다. 세조대는 이러한 방법으로 짠 다회 중에서 특히 좁게 짠 것을 지칭한다. 광다회가 띠 모양인데 비하여 세조대는 끈 모양이다.세조대의 모습은 초상화에서도 확인되는데, 초상화는 색상이 남아 있고 착용법까지 확인할 수 있어 좋은 자료다. 초상화에서 확인한 세조대는 모두 편복便服차림에 착용하였다. 색상은 붉은색, 자색, 흑색이 있고, 술은 심득경沈得經(1673~1710)의 초상화에서 방망이술이, 흥선대원군과 권기수의 초상화에서 딸기술이 확인되었다.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자화상에서 보이는 술은 현재 전해지는 전통 술 중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이 술은 봉술머리의 봉 부분이 상하로 길어진 형태로도 보이며, 그 굵기가 점차 가늘어져 끈목과 연결된다. 유물에서는 딸기술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외의 다양한 술이 장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리에 두를 때는 고를 만들지 않고 매듭지어 늘어뜨리거나, 고를 한 개, 또는 두 개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남은 가닥을 늘어뜨릴 때는 양쪽 가닥의 길이가 같게 나란히 늘어뜨린 것을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허리띠의 일종으로 사대에 속하며 실띠, 술띠라고도 한다. 도포의 허리 부분에 둘러서 앞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묶는 띠로 양쪽에 술이 달려 있어서 술띠라고도 한다. 계급을 구별하여 다양한 색상의 가느다란 실로 만들어서 허리에 찼다. 세조대는 원다회圓多繪·광다회·각대角帶·요대腰帶 등과 함께 면복이나 도포· 전복 등에 착용하던 띠로 품계에 따라 색을 달리하였다. 끝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달아서 마무리했다.세조대는 조선시대 남자들의 겉옷을 여미는 데 사용했던 사대 중 하나이다. 대개 허리보다는 높게 가슴 부분에 매어 입었다. 길이는 짧은 것은 190 정도에서 긴 것은 4 이상 되기도 한다. 허리 부분이나 가슴에 둘러매고 끝부분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달아 앞가슴에 길게 늘어뜨렸다.

참고문헌

우리옷 이천년(유희경 외, 미술문화, 2001), 조선시대 조대의 형태적 특징과 제작법에 관한 연구(김시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복식 2천년(국립민속박물관, 1995),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