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저고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정아(金廷兒)
갱신일 2018-10-18

정의

여러 가지 색상의 옷감을 이어 만든 색동소매가 달린 어린아이용 고리.

내용

색동저고리는 어린아이가 입는 저고리로, 형태는 성인의 저고리와 같으나 소매를 색동으로 만들어 달았다. 저고리는 우리 옷의 가장 기본적인 상의로 길·소매·섶·깃·동정·고름으로 구성되며 시대에 따라 저고리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왔다. 남녀 저고리의 기본적인 구성은 거의 동일하나 저고리의 길이와 크기에 차이가 있고, 색상이나 소재 등으로 구분이 된다. 어린아이의 저고리는 구조가 성인의 것과 거의 유사하고 저고리의 색상은 흰색, 옥색, 보라색 등으로 성인의 저고리에도 많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색상 이외에 노랑색, 진분홍색, 연두색 등의 밝은 색상을 사용한 예도 많았다. 깃과 고름의 색상을 달리하여 남아와 여아의 구별을 두기도 하였는데, 남아용 저고리의 깃과 고름은 남색 계열, 여아의 경우는 홍색 계열로 만들었다. 색동저고리를 좀 더 호사스럽게 하기 위해 겉섶에 색색의 삼각형 옷감을 연결하거나 잣물림 장식을 하기도 하였다.
아동 한복은 옷의 조각마다 색상을 달리하거나 여러 색상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는 특징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색동’이다. 색동은 여러 색의 옷감을 잇대거나 혹은 그러한 모양으로 옷감을 짠 것을 말한다. 색동이 시작된 정확한 연원을 알기는 힘드나 삼국시대의 벽화에서 색동치마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아이들의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소매부분에 색동이 많이 사용되었고, 섶부분을 색동으로 꾸미기도 하였다. 그 밖에 원삼, 활옷 등의 여성의 예복을 비롯하여 무당의 무복巫服이나 여령의 무복舞服 등의 소매에 부분적으로 색동이 장식되었고, 책집의 포장이나 교명敎命에도 사용하였다.
색동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로 몇 가지 설을 들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고려시대 승려들이 그들의 자녀를 구별하기 위하여 색동으로 된 옷을 입히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다. 그 밖에 길상의 의미를 담아 화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음양오행설에 따라 오방색을 이어 붙여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옷감이 귀한 시기에 옷을 만들고 남은 옷감 조각을 모아서 색동을 만들어 활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색동으로 된 옷에는 이와 같이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어린아이의 옷에 많이 사용되었다. 색동저고리는 색동을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어린아이의 옷으로 첫돌 복식으로 입히거나 명절옷으로 만들어 입히는 예가 많았다.
색동의 구성은 주로 색색의 좁고 긴 헝겊조각을 연결하여 만드는데 색동의 폭은 일정하나 색동의 너비나 색상의 선택은 만드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색동의 색상 배열은 정해진 규정 없이 다양하게 조합하고, 여기에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오방색을 사용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조선 후기 이후 유물 자료를 살펴보면 오방색 이외의 다양한 색상의 옷감으로 자유롭게 구성한 것이 많다. 오방색은 동양사상의 기초를 이루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비롯한 색상으로 청·백·적·흑·황을 정색正色으로 지정하였는데 각각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한다. 다섯 가지의 오방색은 아이들 옷에 두루 사용되었는데 여러 가지 색상이 조화를 이룬 오방장두루마기에서 그 아름다움이 잘 나타난다. 음양오행의 상생 원리를 적용한 오방색의 조화로운 사용은 의복을 통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막아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오방장두루마기를 구성하는 옷감의 색상 중 길吉에 많이 쓰이는 녹색은 음양오행사상에서 간색으로 분류된다. 녹색은 불교에서 오불五佛의 신색身色중 하나로 흑색을 대신하여 사용하는데, 아이들의 옷에서 어둠을 연상하는 흑색을 배재하고 녹색으로 대체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색동’이라는 명칭은 국말에 등장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채綵’, ‘채복彩服’, ‘반의斑衣’, ‘래복莱服’, ‘노래의老萊衣’ 등으로 표기되었다. 국말 「궁중발기」의 왕손복의 유물이나 돌옷의 기록에서도 ‘동다리 저고리’와 ‘동다리 주의’를 색동옷으로 보기도 했으며, 1916년 덕혜옹주의 생일 「의복발기」에 나오는 색동관사저고리는 민간에서 입었던 색동옷과 동일한 형태로 추정한다. 어린아이가 입었던 색동저고리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 부모에게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 입기도 했다. 이는 춘추시대 노래자老萊子가 70세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와 같은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는 명절에 많이 입는다고 하여 까치저고리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때 ‘까치’라고 하는 명칭은 섣달그믐날인 까치설날에 입는다고 하여 붙인 명칭이라고 한다. 작은설이라고도 하는 까치설날의 ‘까치’의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국어학계에서는 중세 국어의 ‘아-’가 변하여 ‘까치’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는 ‘드물다, 작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섣달그믐날’ 곧 ‘작은설’을 지시하는 ‘아설’이 ‘아치설’로 바뀐 후 ‘까치설’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아치설’에 쓰인 ‘아치’의 본래의 뜻을 잊고, 비슷한 발음의 ‘까치[鵲]’를 떠올려 그것으로 ‘아치’를 대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까치’는 지혜와 부지런함을 갖춘 새로서 ‘설날’이 지향하는 희망적인 이미지와 부합하여 ‘까치설’이라는 단어가 정착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까치저고리에서도 길조吉鳥인 까치의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저고리는 가장 기본적인 내의이자 평상복으로 아이들의 저고리도 성인의 것과 형태가 같은데 아이들의 저고리에는 겉섶 쪽에 긴 고름을 달아 가슴을 한번 둘러 입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많다. 긴 옷고름을 돌띠라고 하는데 활동이 많은 아이들 옷의 흐트러짐을 막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긴 고름에 수壽, 복福,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을 금박하기도 했으며, 직물의 끝에 수壽, 희囍, 화문花紋을 넣어 짠 부분을 이용하여 고름을 만들기도 하였다.
일반저고리에 비하여 공이 많이 들어가는 색동저고리는 조선시대 반가의 자녀들은 평상복으로 입었고, 현대에는 첫돌 복식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의 평생도의 첫돌 의례에 등장하는 아동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색동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색동옷이 첫돌 의례의 상징적인 복식으로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이후의 남아의 돌복은 두루마기 위에 남색 전복을 덧입힌 후 붉은 색의 돌띠를 묶어주고 복건 또는 호건을 씌우는 형태가 전형적인 모습이다. 남아의 전복과 쓰개에는 인仁·의義· 예禮·지智·효孝·제弟·충忠·신信 등의 덕담의 내용을 금박으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여아는 저고리와 치마 위에 두루마기나 당의를 입히고, 조바위를 씌우는데 아동용 조바위에는 호화롭게 수를 놓거나 금박장식을 한 경우가 많다. 금박문양의 내용은 부귀富貴·다남多男·수복壽福·강녕康寧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조바위의 앞과 뒤에 호박, 비취, 마노 등의 보석 장식과 오색술 장식을 하고 꼭대기의 앞뒤에 구슬 장식이나 산호줄을 연결해서 장식하였다.

특징 및 의의

고리는 우리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전통옷으로 앞여밈을 겹쳐 입고 곧은 깃이 달리는데 성인과 어린아이의 저고리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 색동저고리는 소매를 색동으로 장식한 저고리로 단색의 저고리보다 화려하여 돌이나 명절과 같은 날에 많이 입었다고 하지만 반가에서는 평상복으로 입기도 했다. 소매나 섶에 오색천을 이어 색동으로 장식하는 것은 어린아이를 화려하고 귀하게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벽사의 의미가 담겨있어 아이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기록과 유물을 통해 1900년대 이후부터는 남아와 여아의 구별 없이 왕실과 반가, 민간에 이르기까지 두루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는 색동저고리를 돌복의 구성으로 갖춰 입히는 경우가 많으며, 디자인이 아름다워 성인이 색동저고리를 입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개항기 이후 한국 아동복식 연구(김정아,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복식에 나타난 색동의 미적 고찰(최윤정,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앛-小’ 계열 어휘의 어원과 의미(조항범, 국어학47, 국어학회, 2006),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전통어린이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

색동저고리

색동저고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정아(金廷兒)
갱신일 2018-10-18

정의

여러 가지 색상의 옷감을 이어 만든 색동소매가 달린 어린아이용 저고리.

내용

색동저고리는 어린아이가 입는 저고리로, 형태는 성인의 저고리와 같으나 소매를 색동으로 만들어 달았다. 저고리는 우리 옷의 가장 기본적인 상의로 길·소매·섶·깃·동정·고름으로 구성되며 시대에 따라 저고리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왔다. 남녀 저고리의 기본적인 구성은 거의 동일하나 저고리의 길이와 크기에 차이가 있고, 색상이나 소재 등으로 구분이 된다. 어린아이의 저고리는 구조가 성인의 것과 거의 유사하고 저고리의 색상은 흰색, 옥색, 보라색 등으로 성인의 저고리에도 많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색상 이외에 노랑색, 진분홍색, 연두색 등의 밝은 색상을 사용한 예도 많았다. 깃과 고름의 색상을 달리하여 남아와 여아의 구별을 두기도 하였는데, 남아용 저고리의 깃과 고름은 남색 계열, 여아의 경우는 홍색 계열로 만들었다. 색동저고리를 좀 더 호사스럽게 하기 위해 겉섶에 색색의 삼각형 옷감을 연결하거나 잣물림 장식을 하기도 하였다.아동 한복은 옷의 조각마다 색상을 달리하거나 여러 색상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는 특징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색동’이다. 색동은 여러 색의 옷감을 잇대거나 혹은 그러한 모양으로 옷감을 짠 것을 말한다. 색동이 시작된 정확한 연원을 알기는 힘드나 삼국시대의 벽화에서 색동치마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아이들의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소매부분에 색동이 많이 사용되었고, 섶부분을 색동으로 꾸미기도 하였다. 그 밖에 원삼, 활옷 등의 여성의 예복을 비롯하여 무당의 무복巫服이나 여령의 무복舞服 등의 소매에 부분적으로 색동이 장식되었고, 책집의 포장이나 교명敎命에도 사용하였다.색동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로 몇 가지 설을 들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고려시대 승려들이 그들의 자녀를 구별하기 위하여 색동으로 된 옷을 입히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다. 그 밖에 길상의 의미를 담아 화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음양오행설에 따라 오방색을 이어 붙여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옷감이 귀한 시기에 옷을 만들고 남은 옷감 조각을 모아서 색동을 만들어 활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색동으로 된 옷에는 이와 같이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어린아이의 옷에 많이 사용되었다. 색동저고리는 색동을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어린아이의 옷으로 첫돌 복식으로 입히거나 명절옷으로 만들어 입히는 예가 많았다.색동의 구성은 주로 색색의 좁고 긴 헝겊조각을 연결하여 만드는데 색동의 폭은 일정하나 색동의 너비나 색상의 선택은 만드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색동의 색상 배열은 정해진 규정 없이 다양하게 조합하고, 여기에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오방색을 사용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조선 후기 이후 유물 자료를 살펴보면 오방색 이외의 다양한 색상의 옷감으로 자유롭게 구성한 것이 많다. 오방색은 동양사상의 기초를 이루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비롯한 색상으로 청·백·적·흑·황을 정색正色으로 지정하였는데 각각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한다. 다섯 가지의 오방색은 아이들 옷에 두루 사용되었는데 여러 가지 색상이 조화를 이룬 오방장두루마기에서 그 아름다움이 잘 나타난다. 음양오행의 상생 원리를 적용한 오방색의 조화로운 사용은 의복을 통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막아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오방장두루마기를 구성하는 옷감의 색상 중 길吉에 많이 쓰이는 녹색은 음양오행사상에서 간색으로 분류된다. 녹색은 불교에서 오불五佛의 신색身色중 하나로 흑색을 대신하여 사용하는데, 아이들의 옷에서 어둠을 연상하는 흑색을 배재하고 녹색으로 대체되었다고 보기도 한다.‘색동’이라는 명칭은 국말에 등장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채綵’, ‘채복彩服’, ‘반의斑衣’, ‘래복莱服’, ‘노래의老萊衣’ 등으로 표기되었다. 국말 「궁중발기」의 왕손복의 유물이나 돌옷의 기록에서도 ‘동다리 저고리’와 ‘동다리 주의’를 색동옷으로 보기도 했으며, 1916년 덕혜옹주의 생일 「의복발기」에 나오는 색동관사저고리는 민간에서 입었던 색동옷과 동일한 형태로 추정한다. 어린아이가 입었던 색동저고리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 부모에게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 입기도 했다. 이는 춘추시대 노래자老萊子가 70세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와 같은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는 명절에 많이 입는다고 하여 까치저고리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때 ‘까치’라고 하는 명칭은 섣달그믐날인 까치설날에 입는다고 하여 붙인 명칭이라고 한다. 작은설이라고도 하는 까치설날의 ‘까치’의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국어학계에서는 중세 국어의 ‘아-’가 변하여 ‘까치’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는 ‘드물다, 작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섣달그믐날’ 곧 ‘작은설’을 지시하는 ‘아설’이 ‘아치설’로 바뀐 후 ‘까치설’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아치설’에 쓰인 ‘아치’의 본래의 뜻을 잊고, 비슷한 발음의 ‘까치[鵲]’를 떠올려 그것으로 ‘아치’를 대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까치’는 지혜와 부지런함을 갖춘 새로서 ‘설날’이 지향하는 희망적인 이미지와 부합하여 ‘까치설’이라는 단어가 정착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까치저고리에서도 길조吉鳥인 까치의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저고리는 가장 기본적인 내의이자 평상복으로 아이들의 저고리도 성인의 것과 형태가 같은데 아이들의 저고리에는 겉섶 쪽에 긴 고름을 달아 가슴을 한번 둘러 입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많다. 긴 옷고름을 돌띠라고 하는데 활동이 많은 아이들 옷의 흐트러짐을 막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긴 고름에 수壽, 복福,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을 금박하기도 했으며, 직물의 끝에 수壽, 희囍, 화문花紋을 넣어 짠 부분을 이용하여 고름을 만들기도 하였다.일반저고리에 비하여 공이 많이 들어가는 색동저고리는 조선시대 반가의 자녀들은 평상복으로 입었고, 현대에는 첫돌 복식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의 평생도의 첫돌 의례에 등장하는 아동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색동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색동옷이 첫돌 의례의 상징적인 복식으로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이후의 남아의 돌복은 두루마기 위에 남색 전복을 덧입힌 후 붉은 색의 돌띠를 묶어주고 복건 또는 호건을 씌우는 형태가 전형적인 모습이다. 남아의 전복과 쓰개에는 인仁·의義· 예禮·지智·효孝·제弟·충忠·신信 등의 덕담의 내용을 금박으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여아는 저고리와 치마 위에 두루마기나 당의를 입히고, 조바위를 씌우는데 아동용 조바위에는 호화롭게 수를 놓거나 금박장식을 한 경우가 많다. 금박문양의 내용은 부귀富貴·다남多男·수복壽福·강녕康寧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조바위의 앞과 뒤에 호박, 비취, 마노 등의 보석 장식과 오색술 장식을 하고 꼭대기의 앞뒤에 구슬 장식이나 산호줄을 연결해서 장식하였다.

특징 및 의의

저고리는 우리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전통옷으로 앞여밈을 겹쳐 입고 곧은 깃이 달리는데 성인과 어린아이의 저고리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 색동저고리는 소매를 색동으로 장식한 저고리로 단색의 저고리보다 화려하여 돌이나 명절과 같은 날에 많이 입었다고 하지만 반가에서는 평상복으로 입기도 했다. 소매나 섶에 오색천을 이어 색동으로 장식하는 것은 어린아이를 화려하고 귀하게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벽사의 의미가 담겨있어 아이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기록과 유물을 통해 1900년대 이후부터는 남아와 여아의 구별 없이 왕실과 반가, 민간에 이르기까지 두루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는 색동저고리를 돌복의 구성으로 갖춰 입히는 경우가 많으며, 디자인이 아름다워 성인이 색동저고리를 입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개항기 이후 한국 아동복식 연구(김정아,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복식에 나타난 색동의 미적 고찰(최윤정,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앛-小’ 계열 어휘의 어원과 의미(조항범, 국어학47, 국어학회, 2006),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전통어린이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