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명은(李明恩)
갱신일 2018-10-17

정의

유생이나 남자 아이들이 쓰던 검은색 비단으로 만든 쓰개.

내용

옷감 한 폭을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하여 한자어 ‘幅巾’으로 기록되는 남성용 모자로 검은색이 일반적이며 검은색에 가까운 아청색도 있다. 형태는 검은색 비단 한 폭을 반 접어 만든 직사각형 모양에 이마 부분에 맞주름을 잡고 뒤통수 부분이 둥글게 구성되어 있으며 귀 닿은 위치의 양쪽으로 끈을 달았다. 착장 시 뒤통수에서 끈을 묶어 고정하면 머리 뒤로 넓고 긴 자락이 늘어진다.
복건은 특히 유학자의 상징일 정도로 의미 있는 모자로 유생들이 심의를 입을 때 즐겨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통편大典通編』 예전禮典에 학내學內에 있을 때 학생들은 쓴다고 기록된 치포건緇布巾이 복건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유생들의 모자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의 김이안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재 초상 등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에서 심의를 입고 복건을 착장한 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조선 말기 사진 자료에서 학창의와 함께 착용한 모습도 확인된다. 한편 북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이 소장한 김득신金得臣이 그린 <노상알현路上謁見圖>에는 말을 탄 인물의 모습에서 갓에 복건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복건은 『사례편람四禮便覽』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편에서 망자의 습의襲衣와 제례 때에 복건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특히 당시의 복식 제도를 수용하여 망자의 수의로 조선 전기와는 약간 다른 복식을 제시하였는데, 이 가운데 복건과 심의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수의로 심의와 복건을 입고 출토된 사례가 있다. 경기도박물관 소장의 김확(1572~1633) 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이익정(1699~1782) 묘의 출토 경우가 대표적으로 심의와 함께 복건, 대대, 조대 일습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점차 유생들의 착용 수가 줄어들면서 조선 말기에는 미혼 남자나 어린아이의 통상 예복으로 정착하였다. 혼례를 치르지 않은 남자 아이가 관례冠禮를 치를 때 관례자가 초가初加 때 심의를 입으면서 치포관과 복건을 착용하였다. 왕실에서는 왕자의 백일복, 돌복, 설빔 등에 복건을 마련한 기록이 있다. 1898년의 「무술월아기시일의복긔」에 따르면 국말 왕실에서는 어린 왕자의 백일에 복건·괘자·두루마기·전대·배자·저고리·바지·버선·행전을 갖추었다. 이때 아청색 인접문사 복건에 옥판과 석웅황을 장식하였다고 하며 「무슐구월아기시돌신의복긔」(1898)의 돌날에는 사규삼四揆衫을 입으면서 백일 때와 같은 모양의 복건을 이용하였는데 옷의 주인공은 영친왕이었다. 「경칠월 친왕가슌빈가봉작시의복긔」(1900)는 영친왕이 만 3세 때에 올린 물목인데, 이때 착용한 복건은 아청색 광수사로 만들어 금박을 치고 옥판과 석웅황으로 장식한 것이었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의대목록』은 구玖 왕자의 돌복과 관련된 것인데, 아청색 별문단 복건에 무늬를 금박친 형태이다. 이때 공정책과 함께 마련된 것으로 보아 복건을 쓰고, 그 위에 공정책을 덧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구왕자가 자색 용포를 입고 복건과 공정책을 착용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사진 자료가 전해진다.
이와 같이 복건은 남자 아이들의 돌복으로는 물론, 관례 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전복에 두루마기나 동다리, 사규삼 등의 차림에 복건을 썼다. 성인 남자들의 복건과 비교하면 모양과 색상은 같으나 아이들의 복건에는 가장자리와 끈 부분에 봉황이나 박쥐, 수복강녕 등 좋은 의미를 지닌 글자나 무늬를 금박으로 찍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마 부분에 옥판이나 석웅황 등의 장식물을 달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검은색 비단 직물 한 폭으로 만들어진 남성용 모자로 어린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쓰는 모자 종류로, 특히 유학자들의 상징인 의미 있는 모자이다. 조선 말기까지 사대부나 유생이 심의학창의를 입을 때 복건을 썼으며, 17세기 이후 심의를 입을 때 수의용 모자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관례 때에는 남자 아이가 심의를 입고 복건을 착용하였다. 조선 말기 이후에는 남자 어린이의 대표적인 모자로 이용되었고, 첫돌을 맞은 남자 아기의 쓰개로 이용되어 오늘날까지 돌복 일습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궁중발기에 나타난 행사 및 복식 연구(이명은,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심의(경남대학교출판부, 정혜경, 1998),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전통어린이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 한민족역사문화도감-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05).

복건

복건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명은(李明恩)
갱신일 2018-10-17

정의

유생이나 남자 아이들이 쓰던 검은색 비단으로 만든 쓰개.

내용

옷감 한 폭을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하여 한자어 ‘幅巾’으로 기록되는 남성용 모자로 검은색이 일반적이며 검은색에 가까운 아청색도 있다. 형태는 검은색 비단 한 폭을 반 접어 만든 직사각형 모양에 이마 부분에 맞주름을 잡고 뒤통수 부분이 둥글게 구성되어 있으며 귀 닿은 위치의 양쪽으로 끈을 달았다. 착장 시 뒤통수에서 끈을 묶어 고정하면 머리 뒤로 넓고 긴 자락이 늘어진다.복건은 특히 유학자의 상징일 정도로 의미 있는 모자로 유생들이 심의를 입을 때 즐겨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통편大典通編』 예전禮典에 학내學內에 있을 때 학생들은 쓴다고 기록된 치포건緇布巾이 복건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유생들의 모자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의 김이안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재 초상 등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에서 심의를 입고 복건을 착장한 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조선 말기 사진 자료에서 학창의와 함께 착용한 모습도 확인된다. 한편 북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이 소장한 김득신金得臣이 그린 에는 말을 탄 인물의 모습에서 갓에 복건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복건은 『사례편람四禮便覽』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편에서 망자의 습의襲衣와 제례 때에 복건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특히 당시의 복식 제도를 수용하여 망자의 수의로 조선 전기와는 약간 다른 복식을 제시하였는데, 이 가운데 복건과 심의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수의로 심의와 복건을 입고 출토된 사례가 있다. 경기도박물관 소장의 김확(1572~1633) 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이익정(1699~1782) 묘의 출토 경우가 대표적으로 심의와 함께 복건, 대대, 조대 일습이 출토되었다.그러나 점차 유생들의 착용 수가 줄어들면서 조선 말기에는 미혼 남자나 어린아이의 통상 예복으로 정착하였다. 혼례를 치르지 않은 남자 아이가 관례冠禮를 치를 때 관례자가 초가初加 때 심의를 입으면서 치포관과 복건을 착용하였다. 왕실에서는 왕자의 백일복, 돌복, 설빔 등에 복건을 마련한 기록이 있다. 1898년의 「무술월아기시일의복긔」에 따르면 국말 왕실에서는 어린 왕자의 백일에 복건·괘자·두루마기·전대·배자·저고리·바지·버선·행전을 갖추었다. 이때 아청색 인접문사 복건에 옥판과 석웅황을 장식하였다고 하며 「무슐구월아기시돌신의복긔」(1898)의 돌날에는 사규삼四揆衫을 입으면서 백일 때와 같은 모양의 복건을 이용하였는데 옷의 주인공은 영친왕이었다. 「경칠월 친왕가슌빈가봉작시의복긔」(1900)는 영친왕이 만 3세 때에 올린 물목인데, 이때 착용한 복건은 아청색 광수사로 만들어 금박을 치고 옥판과 석웅황으로 장식한 것이었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의대목록』은 구玖 왕자의 돌복과 관련된 것인데, 아청색 별문단 복건에 무늬를 금박친 형태이다. 이때 공정책과 함께 마련된 것으로 보아 복건을 쓰고, 그 위에 공정책을 덧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구왕자가 자색 용포를 입고 복건과 공정책을 착용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사진 자료가 전해진다.이와 같이 복건은 남자 아이들의 돌복으로는 물론, 관례 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전복에 두루마기나 동다리, 사규삼 등의 차림에 복건을 썼다. 성인 남자들의 복건과 비교하면 모양과 색상은 같으나 아이들의 복건에는 가장자리와 끈 부분에 봉황이나 박쥐, 수복강녕 등 좋은 의미를 지닌 글자나 무늬를 금박으로 찍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마 부분에 옥판이나 석웅황 등의 장식물을 달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검은색 비단 직물 한 폭으로 만들어진 남성용 모자로 어린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쓰는 모자 종류로, 특히 유학자들의 상징인 의미 있는 모자이다. 조선 말기까지 사대부나 유생이 심의나 학창의를 입을 때 복건을 썼으며, 17세기 이후 심의를 입을 때 수의용 모자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관례 때에는 남자 아이가 심의를 입고 복건을 착용하였다. 조선 말기 이후에는 남자 어린이의 대표적인 모자로 이용되었고, 첫돌을 맞은 남자 아기의 쓰개로 이용되어 오늘날까지 돌복 일습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궁중발기에 나타난 행사 및 복식 연구(이명은,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심의(경남대학교출판부, 정혜경, 1998),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전통어린이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 한민족역사문화도감-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05).